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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419화 (419/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419화

91. 이름(3)

기자와 평론가들 사이에서 현재 가 장 좋지 않은 평을 받는 사람은 로 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젊은 감독 아리엘 얀스였다.

모두가 그의 탁월함을 인정하지만 여러 자리에서 보이는 그의 자긍심 과 결벽증은 오만해 보이는 걸 넘어서 무례하기까지 했다.

오늘도 면전에서 인터뷰를 거절당 한 한 기자가 동료들에게 불평을 늘 어놓았다.

“아니, 지가 음악을 잘하면 잘했지 무안은 왜 줘?”

“그놈 인성질이 한두 번이야?”

“한두 번이 아니니까 문제지. 기자를 뭐로 보는 거겠어?”

“안 그래도 저번에 자기 곡 평론한 사람 대차게 까더만. 할아버지 마리 얀스에 비하면 정말 돌연변이지.”

“내 말이. 어떻게 그런 인격자 아 래 그런 놈이 나온 건지. 마리 얀스가 손자는 잘못 키운 거야.”

아리엘 얀스에 대한 악소문은 평단 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황은 복잡했는데, 크게 두 가지 문제였다.

하나는 어떻게든 인기를 끌기 위한 이들이 아리엘 얀스와 배도빈을 항 상 비교했던 것.

압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배도빈 과 유일하게 견줄 수 있는 사람이 아리엘 얀스뿐인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2025년 기준 만 19세의 배도빈과 만 23세의 아리엘 얀스는 나이도 비슷하며 거대 오케스트라의 감독이 라는 입장도 유사했다.

두 사람 모두 연주, 작곡, 지휘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였고, 대중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이 들은 그런 두 사람을 종종 비교했다.

그 결과는 항상 아리엘 얀스가 배도빈보다 못하다는 이야기.

아리엘 얀스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것은 두 번 째 문제로 이어졌다.

여러 이름 있는 평론가들이 항상 아리엘 얀스의 아쉬움을 지적하니, 그의 뛰어남을 말하는 사람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평단의 흐름이었다.

아리엘 얀스가 어떤 곡을 써내든 어떻게든 흠을 잡아내려 했으며 그 것은 사실이 아님에도 점차 퍼져나 갔다.

모든 영혼과 감정을 쏟아낸 작품이 거짓된 이야기로 선동되는 과정을 지켜본 아리엘 얀스가 겪는 스트레 스는 그를 분노케 했다.

공개된 일에 비판이 따르는 당연한 일로 치부할 것이 아니었다.

평단에서 헛소리를 해대니 일반 팬 중에서도 그의 음악성을 의심하는 이들이 나타나 어설픈 조언과 훈계를 늘어놓았다.

본인과 160명의 단원, 직원들의 생 계를 책임지고 있는 입장으로서.

배도빈을 향한 질투와 시기를 억누 르며 고결한 정신을 바쳐 세공한 그 의 협주곡들이 그러한 평을 받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날이 갈수록 예민해졌고.

평론가들이 틀린 말을 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결과는 어리고 고결한 정신의 아리엘 얀스로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거짓과 잘못을 지적하면 모두 자신 처럼 부끄러움을 느끼며 행동을 고 칠 거라 생각한 아리엘이었지만, 평단은 도리어 더욱 세차게 그를 공격 하였다.

심지어는 아리엘 얀스의 곡을 공정 히 평가하려는 평론가를 평단을 무 너뜨리려 하는 변질자로 몰아붙이기까지 했다.

그 소문이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내부까지 전달되었고 관계자들은 모두 아리엘 얀스를 걱정했다.

그러나 그의 올곧은 성정을 아는지 라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오직 악장 이승훈만이 그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뿐이었다.

“평이 안 좋아.”

“개 짖는 소리에 신경 쓰지 마. 시 간이 아깝다.”

“평이 안 좋으면 팬들도 영향을 받 는다는 거 알고 있잖아.”

“지금 나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의 음악이 그들의 버러지 같은 말보 다 못하다고 말하는 건가?”

“부정해 봤자 소용없어. 이미 너도 알고 있으니 그렇게 필사적으로 반 론하는 거 아니야. 아리엘, 거짓말도 계속 듣다 보면 믿게 돼. 언론과 평단을 적으로 두지 마.”

“아니. 내 음악을 들은 사람이 그 런 말에 휘둘릴 리 없다.”

이승훈이 한숨을 쉬었다.

“대체 왜 일부러 척을 지는 거야? 좋게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잖아. 어제 인터뷰는 또 왜 거절한 건데?”

“하고 싶은 말은 무대에서 모두 했다. 거기에 무엇을 덧붙이든 사족일 뿐이지.”

“그럼 제임스였나? 그 평론가의 말 에는 왜 또 말을 붙여?”

“그 우매한 자가 또다시 나를 제2 의 마왕으로 지칭하더군. 그의 아류라고. 그와 나는 추구하는 방향성이 전혀 다르다. 틀린 말을 고쳐주었을 뿐이야.”

무엇을 말하든 너무도 확고하여 이 승훈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마치 벽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져, 이승훈은 악단 내외적으로 자꾸만 안 좋아지는 상황을 우려했다.

그를 누구보다 아꼈기 때문이었다.

이승훈 뿐만 아니라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은 아리엘 얀스의 천재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아꼈다.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타협할 줄 모르고 완벽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이 상적인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다.

그것은 타계한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전설, 토마스 필스와 그 후 임이었던 구스타프 하나엘도 인정한 바였다.

“그래. 더는 말하지 않으마. 하지만 기억해. 넌 지금 악단을 대표하고 있어. 네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 하는지를 생각하길 바란다.”

“언제나 생각하지.”

이승훈이 떠나고 아리엘 얀스는 홀 로 남은 그의 집무실에서 모차르트 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며 직접 키운 장미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장미도 그 진한 향기도 오늘만큼은 위로가 되지 못했다.

고립된 천재.

오랜 세월 세상과 동떨어져 살아온 아리엘 얀스에게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과 토마스 필스는 첫 사회였으며, 동시에 그 누구도 건들 수 없는 성역이었다.

소중하니 까.

부모를 여의고 처음 생긴 소중한 곳이니까 지켜야만 했다.

음악도 마찬가지.

그 누구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과 자신의 음악만은 건들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그것이 그를 몰아붙여 고립시켰다.

상실의 아픔이 소중한 것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이어졌다.

사회 경험이 부족하여 ‘무례한 이들’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저 배척할 뿐.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몰랐고.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도 모르는 그는 지금, 너무나도 소 중한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에서마

저 소외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아리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었다.

백장미의 꽃잎을 뜯어 그 알싸하고 시큼함으로 정념을 억누른 그는 이 내 낡은 깃펜을 들고 곡을 쓰기 시 작했다.

자신을 표현할 줄 모르는 남자는.

오직 음악으로 말할 뿐이었다.

예전에도 지금도.

베를린 필하모닉은 파울 리히터의 악단 은퇴식을 위해 여러 준비를 하였다.

베를린시 거리마다 그의 포스터를 내걸었고 그와 짧게는 5년, 길게는 30년 이상 함께한 A팀은 파울 리히 터가 지휘하는 마지막 무대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오늘 관객들을 위해 준비한 프로그 램은 악장 파울 리히터가 지휘하는 구스타프 말러의 2번 교향곡과 바이올리니스트 파울 리히터의 파가니니

카프리스였다.

‘콘서트마스터’라는 직위를 내려놓고 ‘파울 리히터’로서 살아가려는 남자를 위한 구성이었다.

그 애틋한 감정을 공감하는 많은 이가 ‘루트비히 홀’을 찾았다.

평소와는 관객 구성이 상이했는데, 관객층이 다양한 베를린 필하모닉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중장년층이 주를 이루었다.

또한 클래식 음악계에서 오래 종사했던 이들도 경의를 담아, 새롭게 도전하는 그를 축복하기 위해 대거 참석했다.

빈 필하모닉의 사카모토 료이치, 암스테르담 로얄 콘세르트허바우의 마리 얀스, 런던 심포니 필하모닉의 브루노 발터, 모스코바 방송 차이코 프스키 오케스트라의 예카트리나 베 제노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의 엘가르 데를 등 내로라하는 거장 들은 물론, 명성 높은 여러 바이올리니스트를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관심을 끈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베를린 필하모닉을 떠나 현재는 런던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 자로 취임한 레몽 도네크였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팬들은 마치 쓰레기라도 본 듯 불쾌한 기색을 감추 지 않았고 기자들은 꿀을 향해 달려 드는 벌떼처럼 질문을 쏘아댔다.

“3년 만에 베를린 필하모닉에 방문 하셨습니다! 어떤 심경이십니까!”

“파울 리히터 악장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십니까!”

“베를린 필하모닉의 팬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예상되는데 과거 일을 후회하진 않으십니까!”

레몽 도네크가 침묵으로 일관하던 차.

거리에 있던 관객 중 한 명이 그를 향해 일갈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와!”

누군가의 외침은 시작일 뿐이었다.

“괜히 좋은 날 초치지 말고 꺼져!”

그 광경에 여러 음악가와 팬 그리 고 기자들이 놀랐다.

레몽 도네크의 일이 좋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일부 팬들에게 이렇게까지 반감을 사고 있을 줄은 몰랐다.

레몽 도네크를 향한 일부 팬들의 원색적인 비난은 계속되었고, 런던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는 그에 반 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차장 뒤 작은 벤치 앞에 서 3년 전만 해도 함께 커피를 마시던 친구를 만났다.

“늦었다.”

레몽 도네크의 말에 파울 리히터가 자리를 내주었다.

“여기까지 들리더라.”

그는 말 없이 담배를 빼어 물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아무튼 축하한다. 소원 이뤘네. 런 던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라니.”

“아니.”

레몽 도네크가 입을 열었다.

“내 소원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후계자였지 런던 필하모닉을 지휘하는 게 아니었어.”

한때 같은 꿈을 꾸었던 파울 리히터는 씁쓸하게 웃으며 그의 말을 들 어주었다.

“그래서 증명해 보이려는 거다. 내가 배도빈보다 낫다고.”

“그만해.”

파울의 말에 담배를 털던 레몽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어찌 되었든 넌 명문을 맡았어. 런던 필 단원들이 널 선임했고 토스 카니니조차 네게 후임을 맡겼어. 그 걸로 된 거 아냐?”

"넌 모른다.”

“아니. 누구보다도 잘 알지.”

레몽 도네크가 파울 리히터를 보며 말했다. 그의 시선에 슬픔과 안타까움이 가득 차 있었다.

두 사람은 한참을 서로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런 이야긴 그만 하자.”

“너도 결국 이렇게 될 것을.”

“무슨 뜻이야?”

“인정받지 못했으니 나가려는 거잖나. 지금이라도 잘 생각했다. 헨리도 더 늦기 전에 정신차렸으면 싶군.”

레몽의 말에 파울 리히터가 눈썹을 좁혔다.

“철 좀 들어라.”

“뭐?”

“난 악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했어. 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해선 안 돼.”

“선생님은 결국 널 인정하지 않았어. 그게 현실이다.”

“아니. 현실은 나도 너도 오래 전 에 베를린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 자 리를 포기했던 거지.”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던 파 울 리히터는 깊게 실망하고 있었다.

“니아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지금쯤 내가 상임 지휘자가 되었을 거라 생각했지. 그건 너도 마찬가지였어.”

“니아가 들어오면서 모든 게 바뀌었지. 나는 나보다 녀석이 더 잘해 낼 거라 믿었어. 너도 케르바도 헨 리도 모두. 우린 이미 그때 포기한 거야.”

“아니!”

“부정하지 마. 만약 네가 정말 포기하지 않았다면, 니아가 그렇게 되 고 나서야 나서진 않았겠지. 넌 단 지 도빈이가, 동양에서 온 어린아이 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뿐이야. 니아라는 벽이 사라진 자리를 빼앗 기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파울 리히터가 벤치에서 일어났다.

“난 네 그런 마음도 이해한다, 레 몽. 포기하기에는 평생을 목표로 한 일이었으니.”

레몽 도네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난 너의 비겁함이 안타까울 뿐이야. 솔직하게 도빈이와 포디움을 두고 경쟁하지 않았던 것도, 도 망쳐 런던으로 간 것도 이제 와서 아직도 선생님께 인정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도 모두.”

오랜 친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모두 밝혀진 듯하여 그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선생님도 단원들도 모두 널 사랑 했다. 넌 그저 너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고 용기가 없었고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을 외면했을 뿐이야.”

파울 리히터는 진심으로 그의 실수를 안타까워했고 오늘의 재회를 기대하고 있었다.

수많은 비난을 받을 것을 알면서도 오랜 친구가 자신의 은퇴식을 찾아주길 바랐다.

다행히 그는 승낙했다.

어쩌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비록 함께하진 않지만 과거는 잊고 각자의 위치에서 음악을 계속해 나갈 거라 생각했다.

“스스로도 믿지 못하고, 자신마저 속이는 네가 어떤 음악을 할지 난 모르겠다. ……와줘서 고마웠다.”

파울 리히터가 자리를 떴고.

레몽 도네크는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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