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16화 (416/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16화

    90. 사랑과 전쟁 in 푸르트벵글러호(5)

    찰스 브라움을 향한 환호는 계속되었다.

    깊은 감동을 전해준 바이올리니스 트에 대한 경의였으며, 그 소리가 크고 길어질수록 나윤희는 절망했다.

    ‘ 티켓••••••

    관객이 투표하는 형식은 아니었지만 누가 보아도 최고의 반응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연주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찰스 브라움이란 바이올리니스트의 탁월함이 십분 발휘된 공연.

    편곡 또한 탁월했다.

    협주곡을 독주로 이렇게까지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찰스 브라움이 오늘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를 생각하며, 자신의 안 일함을 탓할 뿐이었다.

    “역시 이름값은 하네요.”

    황제를 부르는 목소리가 길게 이어 진 끝에 마누엘 노이어가 찰스 브라움을 향해 엄지를 들어보였다.

    우승을 확신한 찰스 브라움은 마누 엘 노이어와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 고는 무대를 벗어났다.

    “다음은 마지막 순서입니다. 옷 더 럽게 못 입는 걸로 유명하죠? 중국 중앙음악학원 출신, 2016년부터 3 년간 가장 많은 관객을 확보했던 피아니스트! 가우왕입니다!”

    “가우왕! 가우왕!”

    관객들이 언제나 그러했듯 화려한 연주를 들려줄 가우왕을 부르며 박수를 보냈다.

    더할 나위 없는 환영이었지만 정작 무대에 오르려던 가우왕은 마누엘 노이어의 발언에 발끈했다.

    “누구한테 하는 말이야?”

    그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것이 둘 있었는데 그중 첫 번째가 피아노, 두 번째가 패션이었다.

    ‘오늘 의상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가우왕이 당 당히 무대에 올라섰다.

    그 순간 열렬했던 객석 분위기가 얼어붙고 말았다.

    마치 나윤희가 막 연주를 끝냈을 때와 같이 적막만이 감돌 뿐이었다.

    ‘세상에나.’

    ‘또, 또 얼굴 막 쓰네.’

    ‘내 눈 아악! 내 눈!’

    ‘주여.’

    ‘ 오.’

    관객 중 일부는 아연실색하여 눈을 감기도, 고개를 돌리기도 했고 일부는 눈을 빛내기도 했다.

    가우왕이 오늘을 위해 준비한 의상 탓이었다.

    그는 단추 없는 실크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문제가 여럿이었다.

    가우왕의 셔츠는 앞깊이가 목과 가슴을 지나 허리까지 이어져, 그의 흉근과 복근 일부가 고스란히 드러 나 있었다.

    과도하게 큰 순금 목걸이가 조명을 받아 빛났고 가우왕이 걸을 때마다 넘실대는 선명한 레드 색상의 셔츠 와 호흡을 맞췄다.

    더욱이 사자 갈기와 같은 털이 목 주변을 덮고 있으며, 호피 무늬의 부츠 컷 진까지.

    그 모습이 영락없는 갱스터였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방탕한 졸부의 막내아들 같았으니, 격식과 예의를 중시하는 클래식 음악계가 발 칵 뒤집힐 만한 일이었으며.

    동시에 괴상한 차림으로 유명한 그 의 여러 일화 속에서도 가장 악랄한 차림이었다.

    ‘ 아.’

    객석에 있던 왕소소는 오빠의 복장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빌헬름’ 콘서트홀을 빠져나갔고.

    그때까지 그나마 이성을 유지하고 있던 배도빈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보냈어야 했어.’

    가우왕이 앞으로 무려 7개월이나 더 베를린 필하모닉에 남아 있을 거 라고 생각하니 배도빈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더욱이 7개월 뒤의 경연에서 가우왕을 넘어서는 피아니스트가 나오지 않으면 그를 내칠 명분도 없었다.

    어찌 그를 내쫓는다 해도 최지훈이 그것을 받아들일지 의문이었다.

    고지식한 성격상 만약 경합에서 우승하지 못한다면 베를린 필하모닉에 입단하려 들지 않을 터였다.

    배도빈의 한숨이 반복되었다.

    ‘저 꼬라지를 언제까지 봐야 해?’

    그를 가장 즐겁게 했던 피아니스트가 지금은 가장 큰 문젯거리였다.

    무대 뒤에 있던 이자벨 멀핀도 머 리가 아픈 것은 마찬가지였다.

    배도빈으로 인해 베를린 필하모닉 과 클래식 업계가 많은 변화를 거쳤다고는 하나 전통적인 룰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본 악단과 달리, 실내악팀인 밴드는 클래식뿐만 아니라 여러 장르를 소화하면서 상대적으로 규제가 적기는 해도, 최소한의 수위는 지켜왔다.

    진달래가 스스로 머리를 검게 물들 인 일이나 스칼라가 예복이라고 주장하는 누더기를 포기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가우왕이 솔로 활동을 하던 때처럼 행동하니, 이자벨 멀핀은 그를 컨트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모든 이가 기겁하고 있을 때, 최지훈만은 가우왕을 진지하게 살폈다.

    ‘너무 신선해.’

    어려서부터 그를 동경해 왔고 그의 연주회라면 빠지지 않고 즐겼지만 오늘 같은 의상은 처음이었다.

    여러 곡을 연주하면서 피아노에 다 양한 옷을 입혔지만, 가우왕과 같이 파격적인 시도는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다.

    ‘어떻게 저런 옷을 입을 수 있지? 소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걸까? 그러고 보니 3개의 손을 위한 소나 타도 그렇게 시작했다고 했지.’

    최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가우왕 씨야. 저 셔츠랑 바지는 무슨 의미일까? 도빈이 연주 처음 들었을 때만큼 충격적이야. 아, 그런 이유겠다. 충격. 으음. 그렇다 고 의상 때문에 가산점을 줄 순 없는데.’

    최지훈이 깍지를 끼고 무대에 집중하자 가우왕이 만족하며 피아노 앞 에 앉았다.

    ‘다들 놀라 말도 못 하는군.’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고 판단 한 가우왕은 이 분위기로 만족할 수 없었다.

    관객들이 더욱 놀라고, 자신의 칭 송하며 최고의 음악가가 누구인지 똑똑히 이해하길 바랐다.

    발표 이후 반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 어떤 이도 감히 연주할 수 없었던 성역.

    세 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 모단조, ‘가우왕’.

    가우왕이 아홉 개의 건반과 댐퍼 페달을 동시에 내려찍자 초원의 왕이 포효했다.

    대지를 압도하는 위세.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저 높은 곳 에 이른 사자는 초원을 둘러본 뒤, 사냥감을 향해 뛰어내렸다.

    질주하는 사자처럼 투박하고 민첩 하게 이어지는 아르페지오.

    현존, 아니, 역사상 가장 뛰어난 기교파 피아니스트의 전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양손의 아르페지오가 교차하는 순 간, 가우왕이 양손을 높이 들었다.

    건반이 울부짖었다.

    사자에게 목을 뜯긴 얼룩말의 처절한 울음은 이내 힘을 잃고 만다.

    뚜둑-

    빈틈없이 이어지는 화음들이 긴장감을 더해 숨조차 쉴 수 없게 몰아 붙였다.

    왕은 이내 얼룩말의 목뼈를 부러뜨리고 만다.

    야성.

    그 폭력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심상에 관객들은 지난 두 차례의 연주를 잊고 말았다.

    연주를 이어나가는 가우왕은 이를 악다물었다.

    너무나도 격렬한 연주에 그의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고 손가락은 비명을 질러댔지만.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세 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를 연주 할 때면 그는 세상에 오직 피아노와 본인 그리고 배도빈만을 느낄 뿐이었다.

    완전한 연주를 위한 집착.

    끝끝내 다다를 수 없을 거라는 걸 알지만, 이르고 싶은 순수한 갈증.

    동시에 이르고 싶지 않은 경지.

    세 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로 기교 의 한계를 넘어선 가우왕이었지만, 모든 이가 그를 완벽한 피아니스트 로 인정했지만 그는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아직 더 걸을 수 있다고.

    분명 더 높은 산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며 영혼을 불태웠다.

    ‘더, 더 멋진 곡을 만들어내란 말 이다!’

    가우왕은 건반을 누르면서도 그와 함께 ‘이곳’에 있는 오직 한 사람, 배도빈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가슴이 터질 듯이 벅차오르는 곡을 만들라고, 반드시 연주해 보이겠다 고 외치고 있었다.

    그 집착이 연주에 고스란히 녹아들었고 마침내 초원의 왕이 괴물을 쓰 러뜨리자.

    온 초원을 울리는 거친 울음소리가 관객들의 가슴을 관통했다.

    연주를 마친 가우왕이 고개를 쳐들었고 송글송글 맺혀 있던 땀방울이 홑날려 조명에 반사되었다.

    “브라보!”

    이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를 향한 경외의 목소리가 하나 되어 울렸다.

    “가우왕! 가우왕!”

    앞선 찰스 브라움이 받은 갈채 이 상의 반응이었다.

    그야말로 신의 경지.

    인간이 해낼 수 있을 거라고는 그 누구도 믿지 않았던 기적을 목도한 이들은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가우왕은 거친 호흡을 감추며 객석 에 앉아 있는 배도빈을 노려보았고 최지훈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미소 지었다.

    무려 15분 이상 지속된 연호 끝에 마누엘 노이어가 마이크를 잡았다.

    “자, 이것으로 제1회 콩을 차지하 라의 모든 순서가 막을 내렸습니다. 심사위원께서는 결과 발표 준비되셨나요?”

    최지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누엘 노이어가 그에게 무대 위로 올라올 것을 청했다.

    “누굴 거 같아?”

    정세윤 기자가 차채은에게 물었다.

    “가우왕 아저씨요. 이번이 두 번째 듣는 건데 3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는 진짜 들을 때마다 못 믿겠어요.”

    “그건 그렇지. 그래도 누가 배도빈 하고 어울리는지니까. 나는 찰스 브라움 같은데.”

    “찰스 브라움은 좀. 뭔가 자기 잘 난 맛이 더 강한 거 같아요.”

    “그럼 나윤희는?”

    정세윤 기자의 질문에 차채은이 고 민했다.

    연주 실력이야 세계가 인정하는 수 준이었고 배도빈과의 호흡도 일품이었다.

    그러나 오늘 공연에 있어서만큼은 뭔가 빠진 듯한 기분이었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았나 봐요.”

    “으으으음. 어렵네.”

    정세윤 기사처럼 다들 누가 마계의 중전 자리를 차지할지 알 수 없었다.

    기대감이 잔뜩 부풀어 있을 때.

    최지훈이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심사를 맡은 피아니스트 최지훈입니다.”

    관객들이 박수로 그를 맞이했다.

    “정말 대단한 분들이라 제가 감히 평가를 하는 게 옳나 싶지만, 도빈 이가 일을 떠맡겨 어쩔 수 없네요.”

    소소한 농담으로 분위기를 푼 최지훈이 공연을 들으며 작성한 심사표를 들었다.

    “심사 기준은 세 개였습니다. 연주 의 완성도 3점, 작곡가 배도빈의 의도를 얼마나 잘 재현했는가 3점. 마 지막으로 도빈이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가 4점. 총 10점 만점이었습니다.”

    “잠깐. 미스터 최?”

    마누엘 노이어가 나섰다.

    “앞의 두 개는 이해할 수 있지만 마지막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죠?”

    “연주를 들으면 알 수 있어요.”

    잠깐 멈칫한 마누엘 노이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합니다.”

    그 말에 관객들은 끝까지 한 번 더 웃고 말았다.

    “자, 그럼 3등, 아니죠. 꼴찌부터 발표하겠습니다. 배도빈과는 만나면 안 됐다! 헤어져라! 미스터 최가 뽑 은 최악의 조합은?”

    마누엘 노이어의 과장과 함께.

    준비된 스크린에 찰스 브라움의 얼 굴이 떠올랐다.

    “뭐, 뭐라!”

    무대 아래에서 여유롭게 지켜보고 있던 찰스 브라움이 벌떡 일어났다.

    “연주의 완성도는 만점이었지만 바이올린 협주곡 찰스 브라움의 원곡 과는 너무 다른 편곡이었어요. 게다 가 찰스 브라움 씨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바이올리니스트인지를 알리 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실이었고요. 하지만 도빈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느낄 수 없었어요. 좋은 조건이 라 해도, 도빈이의 옆자리를 줄 순 없어요.”

    “햫햫햑캭햑햑햫

    최지훈이 말을 끝내기도 전부터 차채은은 웃느라 숨이 할딱할딱 넘어 갈 지경이었다.

    공연 시작 전 정세윤 기자의 질문 과 겹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는데, 그녀가 한술 더 보탰다.

    “하긴. 조건이 중요하긴 해도 그것 만 보고 만나는 건 아니지.”

    차채은이 정세윤 기자의 무릎을 치 며 죽으려 할 때, 관객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오직 한 사람, 찰스 브라움만이 주 춤주춤 뒷걸음질 치다 소파에 걸려 풀썩 주저앉았다.

    ‘호, 혹시.’

    나윤희는 꺼졌던 희망을 불태웠고.

    가우왕은 세상 고소하다며 찰스 브라움 앞에서 빈정댔다.

    “자, 경합 의의를 무시했던 나르시스트가 탈락한 가운데, 나윤희 악장 과 가우왕 수석만이 남았습니다. 우 승자, 바로 공개해 주시죠!”

    마누엘 노이어의 말과 함께.

    스크린에 가우왕의 얼굴이 비쳤다.

    “그렇지!”

    오직 나윤희만이 절망했고.

    모두들 ‘배도빈과 가장 어울리는 음악가’ 타이틀을 거머쥔 가우왕을 향해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우승자 가우왕 씨는 무대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가우왕이 마치 사자와 같이 당당한 모습으로 무대 위에 올라섰다.

    최지훈이 심사평을 시작했다.

    “연주의 완성도도 곡의 재현도 더 할 나위 없이 완벽했습니다. 도빈이 에 대한 마음은……. 조금 위험해 보이지만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축 하드립니다.”

    “아주 공정한 심사위원이었어.”

    가우왕이 흡족해하며 최지훈의 손을 잡아끌어 어깨를 토닥였다.

    곧 그에게 1년치 두유를 증정한다는 증서와 상장이 부여되었고.

    즐거운 이벤트의 막바지가 훈훈하 게 끝나갈 무렵, 마누엘 노이어가 마이크를 한 번 더 잡았다.

    “자, 그럼 본인 이야기를 안 들을 수 없겠죠. 배도빈 악단주를 모시겠습니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그러나 모두 마누엘 노이어의 진행을 반가워하며 배도빈의 이름을 외쳐 댔다.

    그때까지 잔뜩 지쳐 있던 배도빈은 어쩔 수 없이 무대로 올라서 넋이 나간 찰스 브라움과 절망하고 있는 나윤희 그리고 의기양양하여 상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가우왕을 둘 러 보았다.

    “ 하아.”

    마이크를 타고 배도빈의 길고 깊은 한숨이 퍼져나가자 관객들은 그마저도 즐거웠다.

    작은 웃음소리 뒤에 배도빈이 입을 열었다.

    “뭐, 축하합니다. 이게 뭔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요. 다만 오늘 가우왕 수석의 복장은 그냥 지나칠 순 없네요.”

    배도빈이 다시 한번 숨을 뱉곤 말을 이었다.

    “무대 위의 미풍양속을 헤친 가우왕 수석에게 근신 조치를 내리겠습니다. 오늘부터 4주간 무대에 서는 걸 금합니다.”

    가우왕의 눈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찰스 브라움의 넋이 이승으로 돌아왔고 관객들은 배도빈의 발 언을 그저 개그로 받아들여 웃을 뿐 이었다.

    “그게 뭔 소리야! 이런 말은 없었잖아!”

    “그건 그동안 가우왕이 선을 넘지 않았고, 넘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죠.”

    “아무리 그래도 근신이라니! 대체 미풍양속이 뭐야! 어? 뭐가 문제인 데?”

    모두가 뭐가 문제인지 알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4주 뒤에 하도록 하죠.”

    배도빈이 마이크를 내려놓고는 ‘빌 헬름’ 콘서트홀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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