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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412화 (412/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412화

90. 사랑과 전쟁 in 푸르트벵글러호(1)

함부르크 항구를 시작으로 아이슬 란드를 경유해 돌아오는 푸르트벵글러호 9박 10일 패키지여행은 티켓 판매와 동시에 매진되었다.

성인 1인 기준 5,500유로라는 높은 가격대를 형성했지만 내용을 들 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았다.

초호화 객실은 전 객실이 WH호 텔, WH해운, WH항공 만이 독점하 고 있는 안락한 침구를 비롯해 WH 호텔 수준으로 준비되어 있었으며.

탑승객들은 9박 10일간 열 명의 일류 셰프와 수십 명의 보조 조리사 가 최고의 재료로 준비한 식사를 마 음껏 즐길 수 있었다.

그뿐일까.

음악 교양을 갖춘 인솔자가 일정 내내 기본 생활은 물론 베를린 필하모닉 밴드와 C팀의 음악회를 안내, 해설해 주었다.

기항지 관광을 포함해(기항지 공연은 제외) 전체 일정에 대한 비용이었으며 미성년자를 포함한 가족의 경우 큰 폭으로 할인받을 수도 있어, 타 크루즈 패키지에 비하면 지 나치게 저렴하였다.

그야말로 꿈같은 여행.

푸르트벵글로호에 탑승하는 가족과 연인, 친구들은 금빛 조명 아래 부푼 가슴의 고동을 느끼고 있었다.

“엄마, 아빠, 저기 봐요! 폭죽이에 요!”

“세상에 맙소사. 여보 난 아직도 믿기지 않아. 이거 설마 진짜 금은 아니겠지?”

“이이가 진짜 주책이야. 존! 위험 하잖니! 불꽃놀이는 배에 탄 다음에 봐!”

들뜬 가족들 중에는 차채은의 가족도 있었다.

“엄마! 아빠! 빨리!”

선상에 오른 차채은은 그 어떤 날 보다도 흥분해 있었다.

밤하늘을 아름답게 밝히는 폭죽들 과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 성.

주변에서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가 홀러나왔고 평소에는 잘 느낄 수 없었던 맑은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진수식 때 보았던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특실에 들어서자 16평 넓이의 복층이 차채은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내 자리!”

창문 바로 옆자리의 침대에 드러누운 차채은은 베개에 얼굴을 부벼댔다.

* * *

한편 베를린 필하모닉은 일찌감치 모여 일정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자벨 멀핀 부장은 각 연주자들에 게 미리 공지했던 사항을 다시 한번 알리면서 첫 공식 항해가 무사히 치 러지길 바랐다.

“내일부터 일정이 시작됩니다. 평 소와 다른 만큼 각별히 신경 써주시길 바랍니다. 내일은 밴드가, 모레는 C팀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3일차에는 일정이 나뉘게 됩니다.”

멀핀이 배도빈을 보았고 그가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에든버러에 도착하면 C팀은 저와 함께 극장으로 가시게 됩니다. 밴드는 선상 및 항구에서 일정을 진행해 주시면 됩니다.”

푸르트벵글러호의 목적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팬들에게 직접 찾아감에 있었다.

그러나 금전적, 시간적 문제로 베를린까지 찾아올 여력이 안 되는 이 들에게 푸르트벵글러호는 꿈같은 이 야기였다.

그렇기에 베를린 필하모닉은 항해 도중 들리는 기항지에서의 공연을 마련하였고 그것은 푸르트벵글러호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내용 이었다.

때문에 c팀과 밴드는 서로의 역할을 나누어 탑승객과 현지 관객을 만 족시키는 데 충실해야만 했다.

“그리고 4일차에는……

준비한 서류를 확인한 멀핀이 한숨을 내쉬었다.

배도빈도 포기한 듯 고개를 저었다.

미팅실에서도 서로 멀찍이 거리를 두고 있는 가우왕과 찰스 브라움은 서로가 있는 방향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바득바득 우겨 기어이 나윤희까지 끌어들인 두 사람의 정신연령이 의심스러웠다.

“찰스 브라움 악장과 나윤희 악장 그리고 가우왕 수석이 차례로 독주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진 마르코가 손을 들었다.

“ 네.”

“그럼 나머지 인원은 오프인가요?”

“네. 휴식입니다.”

“워 허허.”

“좋잖아?”

단원들이 환호했다.

가우왕과 찰스 브라움, 나윤희 덕 분에 본래 일정에는 없었던 휴식일을 하루 챙길 수 있었다.

“다만 심사위원으로 나서주실 분이 필요합니다. 지원자 있으십니까?”

있을 리가 없었다.

생각지 못한 휴일을 얻었으니 초호 화 유람선 푸르트벵글러호를 만끽하 고 싶었다.

마누엘 노이어가 손을 들었다.

“이런 건 본인이 정해야 한다고 생 각합니다.”

그의 말에 다들 기다렸다는 듯 고 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거라면 이의 없다.”

“저는 빠지면 안 될까요……

가우왕과 찰스 브라움도 찬동했고 나윤희가 저항해 보았으나 무시되었다.

“그것도 그렇네. 보스와 가장 어울리는 사람을 뽑는 거니까 보스가 직 접 정해야지.”

“난 나윤희 악장.”

“어? 벌써 거는 거야? 난 찰스 악장.”

“고약한 거 생각하면 가우왕이랑도 잘 맞는 거 같은데. 둘이 똑같잖아.”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진 미팅실 속에서 배도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최지훈이 말해주긴 했지만 정말로 이딴 일로 서로 싸울 줄은 몰랐는 데, 이제는 나윤희까지 끌어들여 뭐 라 하니, 그로서도 어이가 없었다.

‘최지훈까지 들어오면 난장판이겠네.’

배도빈은 이 분위기를 어떻게 정리 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했고 그렇게 상황을 돌이킬 수 없게 진행되고 있었다.

잠시 뒤.

혼돈의 미팅을 마친 배도빈은 특별 히 마련된 단장실에서 머리를 식혔다.

단원들도 좋아하고 무엇보다 승객 들도 가우왕-찰스 브라움-나윤희의 경쟁을 보고 싶을 테니 일정을 진행 하겠지만.

배도빈은 그런 일에 어울려주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세 사람 정도의 연주자라면 우위를 가리기 힘들기도 하고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그날 컨디션으로 결정되었다.

더군다나 찰스 브라움과 나윤희는 서로 지향하는 방향이 달라 비교할 수 없었고.

가우왕은 악기조차 달랐다.

결국 배도빈도 거절하면서 판단해 줄 사람이 없이 미팅을 끝내야만 했다.

‘괜찮네.’

배도빈은 창문 밖으로 펼쳐진 어둠을 바라보았다.

날이 밝으면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진상 두 사람 때문에 피곤했지만 그래도 오래 꿈꿨던 일을 시작하게 되니 기분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똑똑“

“도빈아, 나야.”

최지훈이었다.

배도빈이 문을 열고 형제를 안으로 들였다.

“늦었네.”

“응. 거의 마지막에 들어왔어. 생각보다 멀다.”

자리에 앉은 최지훈은 곧장 가방에서 악보 뭉치를 꺼냈다.

“이게 뭐야?”

“봐 봐.”

최지훈이 빙그레 웃으며 악보를 넘겼다.

의아하게 여기며 그것을 받아 본 배도빈은 이내 집중했다.

치밀하진 않지만 구성력을 갖춘 곡 에서 묘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너가 만들었어?”

"응."

그렇게 말렸거늘.

크리스틴 지메르만을 스승으로 두고 재활을 하며 작곡을 공부하길 고 작 1년.

그럴 듯한 곡을 만들어 왔다.

배도빈은 다시 한번 악보를 살폈고 최지훈은 그런 배도빈을 눈에 담았다.

“어때?”

“40점.”

배도빈의 말에 최지훈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정말?”

배도빈의 점수는 예전부터 짜서 피아노로 80점을 넘긴 것도 3년 전에 야 가능했다.

첫 곡으로서는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어떤 느낌이야?”

“너답네.”

연주해 보지는 않았지만 한눈에 알 아볼 수 있었다.

따뜻한 주제 속에서 강한 의지가 있어 전개부의 드라마틱한 연출로도 흔들리지 않았다.

정말 최지훈이 만든 곡답다고 생각 했다.

“난 너 생각하며 만들었는데. A108 답장으로.”

“ 나?”

최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도빈은 다시 한번 악보를 보아도 최지훈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너무 따뜻하잖아. 난 이렇게 얌전 하지 않아.”

“그런데?”

배도빈은 최지훈과 악보를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맞는데〜”

가장 가까운 최지훈이 그렇다고 하니 배도빈은 턱을 쓸며 고민을 이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과 어울리는 곡은 아닌 듯하여 다시 이야기를 꺼내려다가 문득 아 하고 탄성을 냈다.

“너 아르바이트 하나 할래?”

“갑자기?”

“사람이 필요해.”

“그래. 뭔데?”

“심사위원.”

가우왕과 찰스 브라움은 헤실헤실 웃고 있는 ‘베를린 필하모닉배 콩을 차지하라’의 심사위원 최지훈을 노려 보았다.

“너 한가하다?”

“네. 히힛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를 즐기는 최지훈의 대답은 천진난만하여 가우왕 은 눈썹과 입술을 꿈틀댔다.

“흥.”

가우왕이 콧방귀를 뀌곤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할 말이 있으면 거침없이 뱉는 인간이 그러니, 배도빈은 가우왕이 최지훈을 심사위원으로 인정했다고 여겼다.

“난 찬성이다. 단원들은 눈치 보느라 제대로 판단할 수 없을 테고 이 친구라면 소양은 갖추고 있지.”

찰스 브라움이 나섰다.

“누난 어때요?”

배도빈이 묻자 이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나윤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 이런 데 끌어들여서.”

나윤희가 최지훈에게 사과했다.

본인도 원치 않은 일이었지만 누구도 바라지 않는 일이었고 최지훈이 라면 정확히 봐줄 것 같았다.

“아뇨. 재밌을 것 같아요. 그런데 주제는 뭐예요?”

“도빈이가 만든 곡 중에서 하나 선택하는 거래.”

나윤희가 팸플릿을 보여주자 최지훈이 고개를 저었다.

“첫 번째시네요.”

"응."

“잠자는 숲속의 공주 연주하면 브라움 씨랑 가우왕 씨 잠들어서 부전 승하는 거 아니에요?”

“흐.”

나윤희로서는 폭소한 수준이었지만 최지훈은 재미없는 농담에 웃어주는 것으로 느낄 뿐이었다.

“찰스 씨도 가우왕 씨도 너무 대단 한 분들이니까. 나는 그냥 창피만 안 당하려고.”

한국어를 모르는 찰스 브라움과 가우왕으로서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들었으면 또 뭐라 했겠지.’

배도빈은 찰스 브라움과 가우왕이 인기 투표에서 자신들을 훌쩍 넘어 버린 나윤희의 말을 들었으면 뭐라 고 했을지 눈에 선했다.

비대한 자존감과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자긍심으로 똘똘 뭉친 두 사람 은 나윤희의 말을 도발로 여길 것이 분명했다.

“왜요. 누나도 그럴 사람이잖아요.”

최지훈의 말에 나윤희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성격을 잘 아는지라 최지훈도 더는 말하지 않고 배도빈에게 물었다.

“그런데 상은 없어?”

“상은 무슨. 걷어차고 싶은 걸 참고 있는 중이야.”

“이왕 하는 거 뭐가 걸리면 더 재밌지 않겠어?”

최지훈이 나윤희를 슬쩍 보았다.

누가 봐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게 된 눈치였다.

배도빈도 최지훈의 눈짓으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채고는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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