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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405화 (405/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05화

    89. 저주(3)

    ‘스타를 파헤치다’는 유명 인사를 초빙하여 팬들이 궁금해할 만한 이 야기를 거침없이 질문하는 N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연예인, 운동선수, 정치인까지 유명 인이라면 가리지 않고 센스 있는 질 문을 하여 큰 인기를 끌고 있었는

    데, 그러다 보니 제작진도 자부심을 가지고 촬영에 임했다.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차마 물어보 지 못할 질문도 서슴없이, 아주 사 소한 정보라도 팬들이 원한다면 물 어보는 것이 그들의 모토였다.

    “……미쳤다. PD님, PD님.”

    “왜?”

    “우리 일정 바꿔야 할 것 같아요.”

    “그게 무슨 헛소리야?”

    “이번 주에 촬영 가능하냐고 물었어요.”

    이명욱 피디는 다음 출연자를 누구로 할지 회의를 하던 중, 작가가 꺼낸 어이없는 말에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 ‘스타를 파헤치다’는 출연하고 싶은 사람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어지간한 사람은 넘볼 수도 없을 만큼 스케줄이 빠듯했는데, 지금도 그들 중 누구를 선택할지 의견을 나누는 중이었다.

    어떤 건방진 인간이 촬영 일자를 정해두고 연락을 했는지 기가 막힐 일이었다.

    “하여튼. 인기 조금 얻으면 건방이 하늘을 찌르지. 언 놈이야?”

    “배도빈이요.”

    “헐.”

    다른 작가들이 놀라 어이가 없어진 와중 이명욱 피디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어, 어디.”

    작가 곁으로 다가선 이명욱 피디는 그녀가 보여준 모니터 화면을 확인 하곤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거. 이거 지, 진짜야?”

    “이게 거짓말처럼 보이세요?”

    “배도빈이 왜? 아니, 아니지. 왜가 아니지. 당장 촬영 일정 바꿔.”

    “이번 주에 녹화하기로 한 건 어쩌죠?”

    “그게 문제야? 걘 다음 주도, 다음 달에도 찍을 수 있잖아! 알아서 처리하고 당장 애들 불러. 빨리!”

    이명욱 피디는 베를린 필하모닉을 통해 들어온 요청을 직접 답변했고 동시에 제작진을 소집했다.

    “진짜 대박이네.”

    “한국에서 방송 출연하는 게 대체 몇 년 만이에요?”

    “인터뷰 제외하면 거진 10년 가까 이 되었지. 원래 방송 출연 안 하는데다 줄곧 유럽에 있었으니까.”

    배도빈은 유학을 준비하면서 한국 뿐만 아니라 모든 대외 활동을 중단했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에 입단하고 나서는 거의 유럽에만 있었는데, 그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한국 팬 입장에 서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가 이뤄낸 기적은 매번 뉴스 헤 드라인을 장식했지만 정작 한국에서의 활동은 좀처럼 드물었다.

    팬들은 어쩔 수 없이 독어나 영어 방송을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더군다나 〈THE DOBEAN〉과 〈피델리오〉의 대흥행으로 인하여 그 주가가 더 오를 수 없을 정도로 치솟은 지금.

    배도빈의 기존 팬이나 새로 유입된 이들 모두 배도빈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부풀대로 부푼 건 당연한 일 이었다.

    “다들 당장 하던 일 멈추고 대본부터 짜. 어서!”

    이명욱 피디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판단.

    ‘스타를 파헤치다’의 모든 스태프가 달라붙어 촬영을 위한 준비를 서둘렀고.

    그렇게 며칠 뒤.

    한국 팬들이 그토록 바라던 일이 성사되어 전파를 타게 되었다.

    “스타의 모든 것을 파헤치다! 오늘은 정말 특별한 분께서 나와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배도빈 씨. 시청자 분들께 인사 부탁드릴게요.”

    “네, 안녕하세요. 배도빈입니다. 오랜만에 뵙게 되네요.”

    배도빈이 인사하는 모습이 화면에 비치자 인터넷으로 지켜보던 팬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ㄴ 세상에TTTT 도빈이가 TV에서 한국말 하는 걸 볼 줄이야

    ㄴ ㅋㅋㅋㅋㅋ 한국에서 인터뷰 한 것도 한국말로 하잖앜ㅋㅋㅋ

    ㄴ 아닌 게 아니라 뉴스 빼고 한국 정규 방송에서 나오는 건 진짜 한 10년 만에 처음일걸? 기사나 영상 찾아보지 않으면 어색할 만도 하지.

    ㄴ 한국인인데 왜 한국말 쓰는 모습 이 어색하냨ㅋㅋㅋ

    ㄴ 어렸을 때는 연주회도 많이 해줬 는데 ㅠㅠ

    ㄴ 도빈이 진짜 잘 컸다 ㅠㅠ

    ㄴ 그러게. 어렸을 때 얼굴이 남아 있긴 한데 진짜 참하게 잘 컸다.

    방송을 접한 팬들이 불판을 달궜다.

    특히나 가려움을 해소해 주기로 유 명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었기에 배도빈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되었다.

    “정말 가까이 있으니까 제 가슴이 다 떨리는데, 너무 멋있습니다. 올해 스무 살이 되셨죠?”

    “네.”

    “경력을 보면 스무 살 풋풋한 나이가 무색해지네요. 첫 활동이 네 살 때였으니 벌써 16년이나 되었습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오늘 차근차근 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준비되셨나요?”

    “네.”

    “답변은 즉시, 단답으로 해주시면 됩니다.”

    배도빈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사 회자가 ‘스타를 파헤치다’의 메인 코너 ‘질문과 답’을 시작했다.

    “생일은 언제이신가요?”

    “2006년 2월 4일입니다.”

    “별명이 있나요?”

    배도빈이 사회자를 보며 난감하다는 사인을 보냈지만 그녀는 천연덕 스럽게 웃을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희망, 마왕, 천. 여기까지 하죠.”

    시청자들은 항상 당당하고 카리스마 넘치던 배도빈이 눈을 지그시 감 고 입을 굳게 닫는 모습에 열광했다.

    ㄴ 말하기 싫어 한닼ㅋㅋㅋ

    ㄴ 부끄러워하넼 ㅋㅋㅋㅋ

    ㄴ 배도빈도 자기 뭐라고 불리는지 알고 있었구나ㅋㅋㅋ

    ㄴ 예전에 인터뷰에서 나를 지칭할 말은 배도빈이라는 이름뿐이라고 했는데.

    ㄴ 크으~ 배도빈이면 그렇게 말 할 만 하지.

    ㄴ 인류의 희망, 샛별, 루시퍼, 베를린의 마왕, 시대의 구도자, 격정의 선지자, 세기의 천재, 베토벤을 계승 한 자, 콩콩이, 빌어먹을 꼬맹이 이렇게 많은데 왜 다 말 안 해줘ㅠㅠ

    ㄴ 야잌ㅋㅋㅋㅋ 콩콩이랑 빌어먹을 꼬맹이 뭔뎈ㅋㅋㅋ

    ㄴ Bean이 콩이잖아. 도빈이 작고 귀여워서 콩콩이라 하고 팬들 콩깍지라 불림.

    ㄴ 마누엘 노이어랑 가우왕이 빌어 먹을 꼬맹이라고 부름 ㅇㅇ

    “베를린 필하모닉의 소유주이자 예술 감독이신데 단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살려줘.”

    “••••••네?”

    “살려줘요.”

    배도빈의 솔직한 답변에 시청자들 은 또 한 번 뒤집어졌다.

    사회자의 동공에 지진이 일었지만 그녀의 프로 정신이 질문을 이어나가게 했다.

    “어렸을 적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기타, 얼후 등 여러 악기를 다루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런 배도빈이 가장 좋아하는 악기는?”

    “오케스트라.”

    “돌잡이 때 쥔 것은?”

    “만 원.”

    “••••••네?”

    “돈이요.”

    ㄴ 아닠 ㅋㅋㅋㅋ 누가 봐도 악보나 리코더 같은 악기를 기대하고 물은 거잖앜ㅋㅋㅋㅋ

    ㄴ 돈 뭔데 ㅋㅋㅋㅋ

    ㄴ 어려서부터 돈 좋아하던 아이가 한 해 수천억 원을 버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ㄴ 사회자 당황하는 거 왤케 웃겨ㅋㅋㅋㅋ

    “어렸을 적 존경했던 음악가는?”

    “바흐.”

    “현재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는?”

    “배도빈.”

    “가장 친한 음악가는?”

    “ 최지훈.”

    “거리를 두고 싶은 음악가는?”

    “아리엘 얀스.”

    ㄴ 아리엘 의문의 1패

    ㄴ 고민도 안 하넼 ㅋㅋㅋㅋ

    ㄴ 자기가 자길 존경햌ㅋㅋㅋㅋ  나 잘못 들은 줄ㅋㅋㅋㅋ

    ㄴ 엄청 친한 모양이네 저런 질문에 곧장 대답할 정도면.

    ㄴ 진달래랑 사귀니까 배도빈이랑도 접점이 있긴 하겠지. 친한 줄은 몰랐다.

    ㄴ 슬슬 매운맛 질문 나오네. 이래야 스타를 파헤치다지.

    “현재 연애 중이십니까?”

    “아닙니다.”

    “연애 경험은?”

    “없습니다.”

    “최근에 사치를 한 적이 있으십니까?”

    “어느 정도까지가 사치죠?”

    사회자는 이번에도 배도빈의 질문 에 답하지 않았다.

    배도빈은 잠시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카레에 계란프라이 두 개 얹기.”

    배도빈의 답변을 들은 사회자가 잠 깐 멈칫 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못 넘어가겠다는 듯 캐물었다.

    “푸르트벵글러호라든지 최근 SNS 에 올라온 4,200만 원짜리 헤드폰보 다 계란프라이 두 개 얹는 게 사치 라고요?”

    “푸르트벵글러호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분들을

    위한 투자고 헤드폰은 좀 더 나은 음질을 위해서니까 사치가 아니죠.”

    사회자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나름 납득하고는 질문을 이어나갔다.

    시청자들은 납득해 버린 사회자의 반응에 또 즐거워하였다.

    “보유하고 있는 차는?”

    “무르시엘라고. 마이바흐 랜롤렛. 아우디 R8. 다른 것도 포함인가요?”

    “네?”

    “배나 비행기, 헬리콥터라든지.”

    “……네, 네! 말씀해 주세요.”

    당황해서 잠시 멈칫했던 사회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배도빈은 몇 개의 모델명을 말하다 가 생각이 잘 안 나는지 길게 이어 지던 답변을 멈췄고.

    그 놀라운 스케일에 놀란 팬들은 채팅창을 달구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역시 슈퍼 리 치라는 말이 어울리시는데, 혹시 그 러면 비행기나 헬리콥터 조종도 가능하신가요?”

    “그런 취미는 없어요.”

    사회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자동차 운전면허는 있으신가요? 성인도 되셨고 없으시다면 따고 싶으실 텐데.”

    “필요 없어요.”

    “네?”

    “기사님들이 있잖아요.”

    ㄴ 아닠ㅋㅋㅋㅋ 그래도 운전 정돈 할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갘ㅋㅋ

    ㄴ그냥 이동수단이라는 거 이상으로는 관심이 없는 거지ㅋㅋ

    ㄴ사고방식이 진짜 다르긴 다르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렇다면 다음 질문, 좋아하는 음식은?”

    “카레, 연근조림, 무말랭이, 두릅나 물, 냉이된장찌개, 마들렌, 마카롱, 티라미수, 몽블랑.”

    “싫어하는 음식은?”

    “하이라이스.”

    “어? 왜요?”

    “가짜니까요.”

    사회자의 머릿속에 의문표가 가득 차버렸다.

    “ 가짜?”

    “가짜 카레.”

    ‘얘 뭐야.’

    사회자는 질문을 이어갈수록 배도빈이라는 인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라 리액션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하이라이스가 왜 가짜 카레야. 아 니 그보다 애야 할아버지야?’

    디저트와 건강식을 좋아하는 취향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갈팡질팡 하던 사회자는 다음 질문을 서둘러 꺼냈다.

    “밝혀지기 싫은 것이 있다면 이 자 리에서 하나 공개해 주세요.”

    “밝히기 싫은 걸 왜 말해요.”

    배도빈이 짜증을 내자 사회자는 기 가 죽어 울상이 된 채 대본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여기 대본에……

    “싫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최근 가장 기 뻤던 일은?”

    “할아버지께 신곡을 들려드렸는데 주무시더라고요.”

    ㄴ 할아버지?

    ㄴ 유장혁 회장이겠지.

    ㄴ 듣다가 졸았다는 건 안 좋은 거 아니야?

    ㄴ ㅇㅇ 안 좋은 일 같은데.

    시청자들의 생각과 녹화 당시 사회 자의 심정은 똑같았다.

    “할아버지라면 역시 유장혁 회장님을 말씀하시는 걸 텐데, 많이 피곤하셨나 보네요.”

    “아뇨. 같이 휴가 갔을 때라 그러 진 않았어요.”

    이번에도 ‘신곡이 지루해서 졸았다’는 말에 어찌 반응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던 사회자는 화제를 돌렸다.

    “그럼 신곡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어떤 곡인가요?”

    “멋진 곡이에요. G장조 바이올린 소나타인데 프레스토 아다지오 안단테로 이어져요.”

    배도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사회자가 웃고 말았다.

    “저 혹시 제가 싫으신 건 아니죠?”

    웃으면서 우는 사회자의 모습에 배도빈은 의아해했고 시청자들은 즐겁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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