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01화 (401/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1화

    88. 선생님과 수다꾼(2)

    “어려울 텐데 괜찮겠어?” 최지훈이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아. 그런 일이야.” 차채은이 침대에 누웠다.

    “좋아하면 알고 싶어지잖아.”

    사람이든 음악이든 정말 그랬다.

    단지 피아노가 좋아서 국제 메이저 콩쿠르 2연패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냈던 최지훈은 그 말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굳이 똑똑하지 않아도 돼. 어려워 도 좋아하니까 별수 없잖아.”

    최지훈이 차채은을 따라 웃었다.

    “독자도 같은 입장이니까 내가 해 야지.”

    “그건 무슨 뜻이야?”

    “내 글 읽는 사람들 말이야. 음악 좋아하니까 더 알고 싶을 거 아냐.”

    차채은이 벌떡 일어났다.

    “아빠가 그러는데 요즘 세상은 자 기 일 하는 것만으로도 바빠서 취미 활동을 할 여유가 없대. 그래서 나 처럼 리뷰해 주는 사람으로 대리만 족하는 거고.”

    “ 아.”

    “다들 여유만 있었으면 스스로 찾아보고 공부할 텐데 그게 안 되니까 짧은 시간에 볼 수 있는 걸 찾는대. 그러니까 나는 그런 사람들이 만족 할 수 있게 해주는 거야. 친구들이 랑 말하는 것처럼.”

    “멋지네.”

    “응. 어려운 말 쓰지 않고 쉽고 이 해할 수 있게 친구랑 말하는 것처럼. 음악을 더 알고 싶어서 내 글을 읽는데 그게 어려우면 말이 안 되잖아.”

    차채은이 다짐하듯 말했다.

    “어려워도 괜찮아. 난 음악 공부하는 거 좋아하니까. 그리고 엄청 쉽게 풀어주는 거지.”

    그 당찬 모습에 최지훈은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자각했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인지하는 ‘영 역’을 표현하고 이해시키는 일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글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아 니었다.

    음악도 마찬가지.

    난해하고 복잡하다 해서 그 곡을 연습하지 않을 이유는 될 수 없었다.

    치고 싶으니까.

    쓰고 싶으니까.

    그 마음이 가장 중요했다.

    어려우니까 다른 주제는 어떻겠냐고 물어보려던 최지훈은 섣부른 조 언 대신 웃어주었다.

    “기대할게.”

    “그래! 기대해라!”

    두 사람이 마주보고 웃었다.

    “그럼 도빈 오빠한테 물어야지!”

    차채은이 벌떡 일어나자 최지훈이 무엇인가를 떠올렸다.

    “도빈이 지금 녹화 중일 텐데?”

    “ 녹화?”

    “응. 너만 모름이라는 프로그램에 나간다고 했어.”

    음악 전문 토크쇼 ‘너만 모름’은 프로그램 역사 최초로 2부 확대 편 성이란 승부수를 띄웠다.

    1부와 2부 총 120분에 달하는 방 송 시간을 단 한 사람의 빅 게스트를 위한 특집으로 준비한 것.

    지나치게 재미없는 독일 방송 중에 서 그나마 유의미한 시청률을 기록 하고 있는 ‘너만 모름’은 배도빈 특 집에 전력을 기울였다.

    “우진 씨, 이 기회 놓치면 안 돼요. 2주 전부터 홍보해 왔다고요.”

    “잘 알죠. 그 난리를 피웠는데.”

    “반응이 좋아요. 배도빈이 나온다

    고 하니 다들 본방 사수하겠다고 난리도 아니에요. 우리 기록 한번 세 우자고요.”

    “걱정 말아요. 지난 번 한스 짐이 랑 했던 방송 반응 기억 안 나요? 다들 제 드립에 깔깔댔잖아요.”

    “아, 네. 그래요. 배도빈 빈정 상하 지 않게 헛소리는 자세하시고요.”

    “헛소리라뇨. 내 개그가 얼마나.”

    “재미없어요.”

    “아무튼 또 대본 무시하고 했다간 진짜 가만 안 놔둘 거예요.”

    사회자 우진도 제작진의 간곡한 부 탁에 크게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뭐 이리 많아?”

    작가들이 준비해 준 대본을 확인한 그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배도빈의 활동 이력만 해도 A4용 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중요한 곡 정도는 들어봐야 할 듯 하여 추려 달라 부탁했거늘, 공부해 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한두 번 훑어보는 데만 해도 여유 시간을 모두 투자해야 했고 덕분에 그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녹화 당일이 되었다.

    “고품격 음악 전문 토크쇼 너만 모름의 우진입니다. 오늘은 정말 특별 한 분께서 찾아와 주셨습니다. 베를린의 마왕이라 불리죠. 배도빈 씨를 모시겠습니다.”

    방청객들의 환호와 함께 배도빈이 세트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귀찮은 기색이 꼭 일요일 아침 만 화영화를 봐야 하는데 교회에 끌려 나온 아이 같았다.

    “반갑습니다, 마에스트로.”

    “배도빈이면 됐어요.”

    악수를 나눈 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알려진 것처럼 작진 않으시네요. 하하하!”

    심드렁하던 배도빈의 얼굴에 짜증이 묻어 나왔다.

    실패한 드립에 방청객은 깜짝 놀랐고 제작진은 좌절하여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잠시 촬영이 중단되고 PD에게 엉 덩이를 걷어차인 조연출이 우진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헛소리하면 정말 죽이시겠답니다.”

    우진이 고개를 돌리자 PD가 엄지 손가락으로 목을 그어보였다.

    침을 꿀꺽 삼킨 우진은 두 손을 들어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하곤 조연출에게 부탁했다.

    “다시 가자. 이 반응이면 나 배도빈 팬한테 죽을지도 몰라.”

    “그렇겠죠. 그러니까 왜 그랬어요.”

    “신났나 보지! 나도 쫄리니까 그만 좀 닦달해!”

    조연출을 보낸 우진이 배도빈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도빈 씨.”

    우진의 말에 진심이 묻어나와 배도빈도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녹화가 재개되기 전 함께 온 이자벨 멀핀을 찾았다.

    “오늘 이런 식으로 계속되진 않겠죠?”

    “제작진 측에 강력히 대응했으니 걱정 마세요.”

    믿음직스러운 대답에 만족한 배도빈이 세트로 돌아가려다가 문득 돌 아서 멀핀을 빤히 보았다.

    “무슨 문제 있나요?”

    “아뇨.”

    멀핀을 한참을 바라본 배도빈은 예전과 다른 느낌을 받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분명 그녀를 올 려다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살짝 내려다보게 되었다.

    최근 계속해서 무릎이 쑤시던 걸 떠올렸다.

    “멀핀.”

    “ 네.”

    “저 컸어요?”

    “……그러고 보니.”

    이자벨 멀핀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배도빈의 기 분이 무척 좋아보였기에 촬영은 다 시 적당한 분위기로 재개되었다.

    “지금까지 정말 많은 곡을 발표하셨습니다. 부활, 가장 큰 희망, 베를린 환상곡 최근에 발표하신 3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까지 하나같이 명 곡들인데 이렇게 많은 곡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하하. 편히 말씀하시면 됩니다.”

    “모르겠습니다.”

    배도빈의 대답에 우진의 동공이 흔들렸다.

    혹시나 아직 기분이 안 풀린 건 아닌지 우려했지만 배도빈의 표정은 밝았다.

    다행히 그가 답변을 이어나갔기에 우진은 속으로 안도했다.

    “그냥 하고 싶은 걸 할 뿐이죠. 자신을 표현하는 건 방법과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자신을 표현한다라. 그렇네요.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죠.”

    배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이야기란 말이 나와서 여쭙습니다만, 최근 개봉되었던 배도빈 씨의 어린 시절을 다룬 애니메이션 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 흥행 수익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마무리되었는데 도빈 씨는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해지네요.”

    “엉망입니다.”

    배도빈의 대답에 방청객과 우진이 격하게 반응했다.

    웃음이 잦아들고 우진이 질문을 이어나갔다.

    “이거 그냥 넘길 수 없겠네요. 어떤 점이 엉망인가요?”

    “애니메이션에서는 제가 무슨 카레에 중독된 사람처럼 표현되어 있는 데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단원들을 괴롭히다니. 말이 안 되죠.”

    “좋습니다. 이건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알 것 같네요.”

    배도빈이 눈썹을 좁혔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찰스 브라움 악장과 마누엘 노이어 수석을 모시겠습니다.”

    바이올린 협주곡 ‘찰스 브라움’이 연주되면서 미모의 남성과 근육질의 남성이 등장했다.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베를린 필하모닉의 악장 찰스 브라움은 과 장된 미소를 지으며 배도빈 옆에 앉았고.

    마누엘 노이어는 놀란 배도빈을 보며 즐겁게 웃고 있었다.

    두 사람이 출연한다는 말을 듣지 못한 배도빈은 이자벨 멀핀을 찾았지만 이미 그녀가 숨은 뒤였다.

    “흔쾌히 출연해 주신 두 분께 감사 인사드리겠습니다. 먼저 브라움 씨께 여쭤보죠. 애니메이션이 사실과 다르다고 하셨는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중독자라 볼 순 없죠. 카레 때문에 삶이 피폐해지거나 하진 않으니까.”

    경계하고 있던 배도빈이 찰스 브라움의 대답에 의외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아니지. 아무리 생각해도 맞는 말이야. 배도빈 몸에는 피랑 카레가 1 대 1 비율로 흐르고 있을 거라고.”

    “하하하하.”

    마누엘 노이어의 발언에 우진과 방 청객들이 웃었다.

    “자, 노이어 씨께서 재밌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준비된 영상으로 확인해보도록 하죠.”

    세트장 앞의 대형 스크린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직원 식당이 나왔다.

    최고 수준의 설비와 주방장을 자랑 하는 직원 식당의 전경이 소개됨에 따라 방청객들이 호응했다.

    -그런 이곳에 특별한 점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점인가요?

    -역시 4개국 카레가 항상 준비된 다는 거겠죠. 보스의 유일한 지시사항이거든요.

    짧은 인터뷰 뒤에 인도, 영국, 일본, 한국식 카레가 소개되었다.

    “저 봐. 웃긴 건 매일 점심으로 먹는 주제에 퇴근할 때도 슈퍼 슈바인 인지 뭔지 하는 곳에 들린다니까요?”

    “슈퍼 슈바인이요?”

    “카레집입니다.”

    “지금 보니 확실히 중독이군.”

    우진과 방청객 그리고 제보자 마누 엘 노이어가 찰스 브라움의 소감에 크게 웃었다.

    이어 ‘반성회’라는 이름으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부터 베를린 필하모닉의 오랜 관습이 소개되었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된 반성회는 7 시가 되어서야 끝났는데, 영상을 확인한 마누엘 노이어가 푸념하듯 말 했다.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악마가 따 로 없었다니까? 기사 찾아봐요. 내 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지금은 나아졌지만 작년 이맘때는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뻔했지.”

    찰스 브라움이 노이어의 말을 받았고 방청객들이 또 한 번 터지고 말았다.

    아무도 그가 진심으로 한 말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하하하. 그만큼 열정적이라 지 금의 베를린 필하모닉이 있었겠죠.

    정말 대단합니다.”

    우진이 베를린 필하모닉의 이미지를 포장하자 불평하던 마누엘 노이어도 슬쩍 웃으며 인정했다.

    “그럼 또 오케스트라 대전 이야기를 빼먹을 수 없죠. 애니메이션에서는 아쉽게 포함되지 않았는데, 첫 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나란히 차지하셨습니다. 기억에 남는 이야 기는 없을까요?”

    “이 인간 치질 걸렸던 거요.”

    찰스 브라움과 마누엘 노이어에게 얻어맞고만 있었던 배도빈이 때를 놓치지 않고 반격했다.

    “핳핳핳핳핳핳!”

    마누엘 노이어가 미친 듯이 웃었고 찰스 브라움은 눈이 거의 튀어나왔다.

    “배도빈!”

    “당신이 먼저 시작했잖아!”

    “핳학학학학!”

    “웃지 마!”

    흥분한 두 사람은 저만 웃는 마누 엘 노이어에게 눈길을 돌렸다.

    노이어는 방송 상황이 너무 웃겨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점점 웃음 이 격해졌고 그러다 그의 가발이 벗겨지고 말았다.

    “하하하하하!”

    그러자 이번에는 배도빈과 찰스 브라움이 웃기 시작했고 마누엘 노이 어는 조용히 가발을 손에 쥐었다.

    방청객들은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 지 알 수 없어 손으로 입을 막고 있는 상황.

    “……PD님, 이거 방송 내보낼 수 있는 거예요?”

    “그럴 거 같냐?”

    너만 모름의 PD는 과열된 분위기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출연자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적당한 웃음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너만 모름’은 어디까지나 시사 교양 프로그램이었다.

    “도빈 씨, 브라움 씨, 노이어 씨. 저희 프로그램 위해서 웃기게 말씀 하시는 건 정말 감사하지만 무리 안 하셔도 됩니다.”

    한참을 싸운 세 명의 위대한 음악 가는 제발 평소처럼 행동해 달라는 PD의 부탁에 차마 평소대로였다고 솔직하게 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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