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00화 (400/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400화

88. 선생님과 수다꾼(1)

독일의 저명한 음악 잡지 ‘리드’는 최근 몇 년간 크게 성장해 온 클래식 음악 시장을 적극적으로 좇았다.

그 결과 구독자를 크게 늘리는 데 성공했으며, 쉽고 재밌는 잡지라는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리드는 그들이 왜 성공했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고 양질의 콘텐츠를 위해서라면 투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편집장 미하엘 엔데가 국적 불문, 여러 칼럼니스트를 사옥으로 초대한 일도 그 일환이었다.

“이거 누구야. 얼굴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든가.”

“자네가 나오질 않으니 그렇지!”

“하하하!”

리드의 카페로 여러 칼럼니스트가 들어서고 있었다.

소속이 있는 이도 있는 반면 프리 랜서도 있었다.

인기를 끌고 있는 유명인도, 아직 조명받지 못한 이도 있었지만 미하 엘 엔데에게 그런 조건은 중요치 않았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만 시장성을 갖춘 글쟁이는 소수였기에 평소에 친목을 다져 놓는 것이 중요 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관계를 형성해 두 면 언젠가는 함께 일할 수 있었다.

“오, 댄. 파티는 즐기고 있나요? 이번 칼럼 잘 읽었습니다.”

미하엘 엔데 편집장이 멀뚱멀뚱 서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아는 척을 했다.

낡은 고동색 정장을 입고 있는 댄 이라는 남자는 리드의 편집장을 보자 깜짝 놀랐다.

“펴, 편집장님.”

“하하. 마티니?”

미하엘 엔데가 잔을 두 개 들어 댄에게 권했다.

댄은 그것을 받은 뒤 망설인 끝에 입에 가져갔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이번 글 괜찮았나요?”

“물론이죠. 아주 독특한 관점이었습니다. 아, 첫 문단이 흥미를 끌 수 있다면 좀 더 좋았을 것 같네요.”

댄은 리드의 성공을 이끈 미하엘 엔데 편집장이 신경 쓸 만한 칼럼니 스트가 아니었다.

그의 글은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지만 딱딱하여 몇몇 잡지에서 전문 성을 갖추기 위해 간간이 등재할 뿐,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미하엘 엔데 편집장은 경험 상 알고 있었다.

비록 현재 큰 인기를 끌지 못하더 라도 댄과 같이 노력하는 글쟁이는 언젠가 한 번은 ‘기회’를 거머쥐었다.

드문 일도 아니었다.

그때를 함께하기 위해 지금처럼 주 목받기 전에 관계를 맺어, 성공 후 함께하는 것이 미하엘 엔데 편집장 의 능력이었다.

댄은 아무것도 아닌 자신의 글을 챙겨 보았다는 미하엘 엔데 편집장 의 말과 단순한 조언으로 또 힘을 낼 수 있었고.

앞으로도 미하엘 엔데에게 호감을 간직할 터였다.

“그럼 마음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아, 참고로 직원들에게 따로 이야기 해 두었으니 돌아갈 때 디저트 챙겨 가세요. 꼭.”

“네, 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댄과 인사를 나눈 미하엘 엔데 편 집장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

카페 내부를 둘러보다 앳된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차채은은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는 어른들과 달리 조금 떨어진 곳 에서 턱을 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지루해하는 표정이었다.

‘저러면 쓰나.’

초대한 이에게 홀대 받았다는 느낌을 줄 수 없었기에 미하엘 엔데는 차채은에게 다가갔다.

한편 차채은은 행사에 참가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이야기 가 한심해서 끼어들 마음이라고는 조금도 들지 않았다.

‘내가 여길 왜 왔지?’

‘독자’와 ‘배도빈’을 주제로 무슨 대화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고민 하던 차채은은 혹시 이곳에 오면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클래식 음악이나 글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다들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든지 어느 축구팀이 이겼다, 여행을 다녀왔다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유명 잡지 리드에서 연 파티라고 해서 뭔가 다를 거라 생각했건만 그 와 같은 분위기에 실망하고 말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갈래.’

차채은이 막 일어서려 할 때 미하 엘 엔데가 말을 걸었다.

“반갑습니다, 차. 미하엘 엔데라고 합니다.”

미하엘 엔데는 정중하게 인사하곤 명함을 건넸다.

중년 남성에게 이런 대우를 받은 적은 처음이라 차채은은 조금 당황 했다. 이필호 편집장으로부터 그가 얼마나 대단한 편집자인지 들었던 터라 더욱 그러했다.

“안녕하세요.”

미하엘 엔데가 빙그레 웃으며 샴페 인을 권했다.

“술 못 마셔요.”

“하하. 알콜은 없으니 걱정 마세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떨떠름하게 무알콜 샴페인을 받은 차채은은 미하엘 엔데를 보았다.

그가 눈썹을 들어올리며 웃어 어쩔 수 없이 맛을 보니 사과향과 백포도 향이 짙게 어우러져 상크하고 달콤 했다.

적당한 탄산도 훌륭했다.

“맛있어!”

“그렇죠?”

미하엘 엔데는 차채은이 음료를 좀 더 즐길 수 있게 기다려 준 뒤 입을 열었다.

“재작년에 발표한 베토벤을 계승한 자는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절묘한 스토리도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죠.”

“아.”

“정말 멋지더군요. 베토벤과 배도빈이라. 보통 모차르트와 비교하는 데, 차의 글을 읽은 뒤로는 그런 생 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베토벤과 푸르트벵글러, 배도빈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정말 명쾌한 풀이였습니다.”

말뿐이 아니었다.

미하엘 엔데 편집장은 칼럼니스트 차채은을 무척이나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녀의 글은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대 흐름을 아우르는 듯했다.

2년 전, 오케스트라 대전 때만 해 도 배도빈은 신동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곧잘 모차르트와 비교되곤 했다.

그러나 작년은 전혀 달랐다.

학계에서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과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그리고 배도빈까지 이어지는 역사성에 주목했고 팬들도 그 스토리에 열광했다.

미하엘 엔데는 그러한 분위기의 시 작을 차채은이 이끌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 생각은 작년과 올해 확신으로 바뀌었다.

올해 또다시 변한 흐름.

차채은이 배도빈이라는 새로운 기준이 들어섰다는 글을 쓰고 몇 개월이 흐른 지금.

학계는 물론 여러 언론과 팬들마저 더 이상 배도빈을 과거 천재들과 비교하지 않았다.

도리어 배도빈이 기준이 되어 여러 음악가들이 평가되고 있었는데 이 역시 그 시작점에 차채은이 있었다.

오랜 시간 편집자로 일했던 그의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차채은에게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 이 있거나, 흐름을 만드는 힘이 있을 거라고.

너무나도 매력적인 재능이었다.

그래서 느꼈던 바 그대로 전했거늘 차채은의 반응은 그리 좋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글을 좋게 봐줘서 고맙긴 하지만 차채은은 당장 뭘 써야 할지 막막한 상태였다.

자신의 장점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살릴 수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 어린 글쟁이는 그저 앞으로 쓸 글에만 관심을 주고 있어, 과거를 칭찬 받아도 그리 기쁘지 않았다.

“어머. 채은이잖아.”

그때 차채은이 싫어하는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엔데 편집장님도 함께 계셨네요. 안녕하시죠?”

“그럼요. 이번 일 축하드립니다.”

미하엘 엔데가 한이슬 평론가를 반 갑게 맞이했다.

오늘 파티에 참가한 칼럼니스트 중 에서 가장 왕성히 활동하고 또 인기를 끌고 있는 한이슬은 리드지의 VIP이기도 했다.

‘미친. 존예.’

차채은이 감탄했다.

한이슬은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사이드 웨이브로 우아하게 넘기고 있었다.

내츄럴한 화장에 입술에만 포인트를 주어 흰 트라페즈 드레스가 잘 어울렸는데, 차채은의 시선을 느낀 한이슬이 웃었다.

“왜 연락도 없었어. 독일은 어때?”

“그냥 그래요.”

“별문제 없으면 잘 지내는 거지. 참, 편집장님. 저번에 말씀하신 기획기사 말인데요.”

“토스카니니 말씀이시군요.”

“네. 아무래도 런던 떠날 것 같거 든요. 레몽 도네크가 후임으로 올라 서려고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기사 올라갈 쯤에 발표되면 묻 힐 테니까 기획을 바꿔야 할 것 같아요.”

“흐음. 이건 중요한 일이군요. 차, 저는 잠시.”

“채은아, 나중에 또 봐.”

두 사람이 자리를 뜨고 차채은은 남은 샴페인을 털어넣었다.

‘ 뭐야.’

이동하는 중에도 파티장에 있던 많은 사람이 한이슬 평론가와 미하엘 엔데 편집장을 향해 다가갔다.

차채은은 여유로운 태도로 그들을 대하는 한이슬을 멋있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차채은은 한이슬 평론가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짜증 나는 인간이지만 리드지의 편집장처럼 대단한 사람과 동등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또 음악계 흐름을 깊이 알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 프로페셔널한 모습은 잘 가꾼 외모와 더불어 차채은에게 어떤 의지를 심어주었다.

‘칼럼니스트가 글만 잘 쓰면 되지 왜 그렇게 꾸미고 다닌대?’

차채은이 속으로 궁시렁거리면서 화장하는 법을 검색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어, 평소 활동하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ㄴ 화장품 같은 거 어디서 사?

ㄴ 아리따움?

ㄴ 아니 그렇게 예쁘진 않은데. 화장 좀 해보려고.

ㄴ 아니……. 아리따움이라고 화장품 파는 데 있어…….

ㄴ ㅋㅋㅋㅋ쓰니 왤케 귀여웤ㅋㅋㅋㅋ

한동안 화장품을 알아보던 차채은 이 고개를 저었다.

“ 아으아으아으으으으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좀 더. 좀 더 창작욕을 불러일으킬 만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그것을 찾아야 하는데 생각나는 것이 없어 답답했다.

‘음악회라도 갈까.’

책상에 엎드려 오늘 무슨 연주회가 있는지 떠올렸다.

“뭐 해?”

“깍!”

차채은이 깜짝 놀라 괴성을 질렀다.

덕분에 놀래킬 생각이 없었던 최지훈도 놀랐차채은에게 얻어맞았다.

“죽을래! 깜짝 놀랐잖아!”

“아하하하하. 미안. 미안.”

최지훈을 한참 때리던 차채은이 순간 멈추었다.

최지훈은 싱글벙글 웃으며 갑자기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차채은과 눈을 마주했다.

“이거다!”

“이거?”

“오빠랑 가우왕 아저씨랑 지메르만 할머니 이야기 써야겠어.”

‘이거’ 취급받은 최지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이야기?”

“예전에 도빈 오빠가 오빠랑 가우왕 아저씨 피아노는 다르다고 했거 든. 깔끔하다고 했나?”

차채은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이해했지만, 최지훈은 그녀가 크리 스틴 지메르만, 가우왕, 본인의 특징을 이해하고 있을지가 궁금했다.

배도빈조차 최근에야 이해하기 시 작했고 어지간한 음악가들도 큰 차 이를 느끼지 못하는, 완벽을 추구하는 피아니스트의 고집 같은 영역이었다.

“차이점을 알겠어?”

“몰라.”

차채은의 즉답에 최지훈이 웃고 말았다.

“모르는데 어떻게 쓰려구.”

“공부하면 돼!”

공부해서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여기는 최지훈조차 청력만큼은 타고났다고 여기는데 여러 경험과 지식도 결합 된 능력이었다.

그것을 차채은이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고 이해할 수 있다 해도 독 자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지는 더 큰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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