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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397화 (397/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397화

    86. 마왕과 사자와 용사(4)

    가우왕의 난동으로 잠시 인터뷰가 중단되었지만 그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세상 억울해하는 가우왕과 뭐가 문제냐는 듯 태연한 배도빈의 태도 때 문에 채팅창과 인터뷰 회장이 초토 화되었다.

    몇 분의 휴식 뒤 분위기가 간신히 진정되었다.

    카밀라 앤더슨이 진행을 유도하여 기자들이 질문을 계속할 수 있었다.

    “마에스트로, 그렇다면 가우왕 씨 와의 듀엣도 기대할 수 있습니까?”

    “아뇨. 가우왕만의 곡으로 남겨두는 게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적어도 당분간 3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를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사람뿐이 니까요.”

    “크흠.”

    씩씩대던 가우왕이 콧대를 세웠다.

    배도빈의 발언은 도발적이었는데, 가우왕이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많은 피아니스트가 본인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비슷한 나이로는 막심 에바로트가 그의 라이벌로 있었고.

    사카모토 료이치, 글렌 골드, 보리 스 윈스턴, 크리스틴 지메르만, 그레고리 소콜라브, 밀스 베레조프스 등 살아 있는 전설들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여전히 현역이었다.

    그 외에도 니나 케베리히, 최지훈, 최성신,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와 같이 유망한 인재들이 무서운 속도 로 성장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3개의 손을 위한 소나 타’를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라 단정했으니, 인터뷰를 지켜보 고 있는 피아니스트들의 마음에 불을 지핀 격이었다.

    ㄴ 피아니스트들 도발하는 건갘ㅋㅋ

    ㄴ 내가 볼 때 배도빈은 어떻게 해 야 사람 열받게 하는지 통달한 것 같음.

    ㄴ 도빈이는 진심인 거 같은데? 자기도 못 치는데 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고ㅋㅋㅋㅋ

    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막심 에바로 트는 짜증 좀 날 거 같다ㅋㅋㅋ

    인터뷰를 지켜보고 있던 팬들은 배도빈의 발언을 다른 피아니스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 미칠 지 경이었다.

    기자들도 자극적인 제목을 뽑기 위해 일단 내용도 없는 기사를 등재하 기 시작했다.

    다음 기자에게 발언권이 주어졌다.

    “가우왕 씨의 합류는 예전 찰스 브라움 악장 때만큼이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가우왕 씨의 행보는 어떻게 예정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배도빈과 가우왕이 고개를 돌려 시선을 교환했다.

    가우왕은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다소 진중히 입을 열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소속으로서의 공연은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기자들이 깜짝 놀랐다.

    배도빈을 주축으로 한 새로운 베를린 필하모닉이 찰스 브라움과 가우왕을 양쪽 날개로 하여 체제를 굳힐거라는 예측이 빗나가고 말았다.

    조금씩 과거가 되어가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다섯 악장의 전성기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터였다.

    비록 갑작스러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만남이었다고는 해도 이 완벽 한 조합이 깨지는 것을 바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더군다나 이번 ‘3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로 배도빈과 가우왕 두 사람 의 조합이 얼마나 큰 시너지를 보일 지는 이미 증명되었으니, 굳이 헤어 져야만 하는 이유도 없었다.

    기자들이 다급히 질문을 이어나갔다.

    “본래 예정되어 있던 수순입니까!”

    “첫 번째 공연이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재고의 가능성은 없습니까!”

    “돌아간다면 전 소속사 도이치 아리아로 복귀하시는 겁니까!”

    빗발치는 질문 끝에 가우왕은 차분히 발언을 이어나갔다.

    “다들 제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안 좋아하는 것 정도는 알고 계실 겁니다.”

    기자들을 둘러보곤 가우왕이 어깨를 으쓱였다.

    “굳이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협주곡 말고도 연주할 곡은 많으니까요. 물론 베를린 필하모닉에서의 활동은 나쁘지 않을 겁니다. 이 꼬맹이랑 있으면 심심할 것 같진 않으니까요.”

    배도빈이 꼬맹이라는 단어에 반응 해 가우왕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베를린 필하모닉의 퍼스트 피아니스트로서는 가우왕으로 살아 갈 수 없을 겁니다. 그게 이유예요.”

    왕가우란 남자는 16살에 프로에 입문했을 무렵부터 피아니스트 가우왕으로서 살아왔다.

    아름다운 연주와 화려한 퍼포먼스로 관객들을 즐겁게 하는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살기를 결심했다.

    자신의 사명으로, 피아니스트가 아 니면 안 된다고 여겼다.

    ‘이게 맞아.’

    배도빈과 함께하는 일은, 베를린 필하모닉에서의 짧은 휴식은 그에게 도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고독한 맹수였던 그조차 머물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가능하다면 좀 더 오래 있고 싶지 만 그렇게 되어서는 ‘남’의 자리를 빼앗는 것.

    최지훈을 의식한 가우왕은 배도빈과 베를린 필하모닉이라는 좋은 환경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자신을 경 계했다.

    ‘배도빈이라면 치질 환자처럼 솔로 활동도 보장해 주겠지.’

    ‘같이 있다 보면 또 한 단계 넘어 설 수 있겠지.’

    ‘여기 연주는 심심하지 않아서 좋단 말이야. 배도빈 때문인가?’

    지난 몇 달간 조금씩 접한 것만으로도 자꾸만 베를린 필하모닉에 남는 방향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가우왕은 그런 생각을 애써 외면했다.

    그때.

    “안 돼요.”

    낭랑한 목소리가 인터뷰 회장을 가 로질렀다.

    모두가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고 개를 돌렸다.

    ‘ 최잖아.’

    ‘무슨 일이래?’

    배도빈도 가우왕도 기자들도 모두 의아해하는 가운데, 최지훈이 발언을 이어나갔다.

    “두 사람이 함께 준비한 연주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줬잖아요. 왜 떨어지려 하시는 거예요?”

    “너.”

    가우왕이 입을 연 배도빈을 대신해 일어섰다.

    “말했잖아. 혼자 활동하는 게 좋다 니까.”

    “아니잖아요. 가우왕 씨도 도빈이 랑 함께하는 게 좋잖아요.”

    기자들이 최지훈과 가우왕 그리고 배도빈을 번갈아가며 카메라에 담았다.

    무슨 이유로 최지훈이 나섰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충분히 화제가

    될 일이었다.

    “공연 전에 말씀하셨죠. 제 자리를 빼앗아서 미안하다고.”

    의문으로 가득했던 인터뷰 회장이 다시금 활기를 찾았다.

    기자들의 감이 또 하나의 특종을 잡았다고 외치고 있었다.

    ㄴ 아니 이건 또 무슨 일이래 ㅋㅋㅋ

    ㄴ 가우왕이 최지훈 자리를 뺏었다 고? 그게 뭔 말이야?

    ㄴ 배도빈 표정 봨ㅋㅋㅋㅋ

    ㄴ ㅇㅅㅇ ㅋㅋㅋㅋ 눈 똥그랗게

    ㄴ 됐엌ㅋㅋㅋㅋ

    ㄴ 아 일이 이렇게 돌아가네.

    ㄴ 혼자만 알지 말고 빨리빨리 썰 좀 풀어봐.

    ㄴ 베를린 필하모닉이 무리해서 피아니스트 자리를 공석으로 둔 거야 다들 알지?

    ㄴ 모름.

    ㄴ 에휴. 내정되어 있으니까 그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면접 보게 해달 라 해도 거절한 거잖아. 필요할 때는 도빈오

    ㄴ 오?

    ㄴ 배도빈이 그 바쁜 와중에 직접 연주할 필요가 뭐겠어? 최지훈 자리 맡아둔 거지.

    ㄴ 니가 그걸 어태 알아.

    ㄴ 아냐. 도빈이랑 지훈이가 워낙 친했잖아. 가능성 있는 말 같은데?

    ㄴ 어렸을 적부터 둘이 인터뷰 한 거 생각해 보느 당연한 일임. 항상 둘 이 함께한다고 했잖아. 근데 부득이 하게 가우왕이 들어온 거지.

    ㄴ 아, 그 일.

    ㄴ가우왕도 알고 있어서 비켜주려 고 하는 거 같음.

    ㄴ 치정 싸움 ccc

    ㄴ 넌 누군데 그렇게 잘 알아?

    ㄴ 저 체르니라는 사람 원래 이런 쪽에서 썰 잘 품.

    “야, 그건.”

    가우왕이 최지훈의 말을 부정하려 했지만 최지훈은 가만있지 않았다.

    “저 때문에 떠날 필요 없어요. 그 런 일 바라지 않아요. 그 자리는 제 손으로 차지할 테니까.”

    최지훈이 어리둥절하여 눈만 깜빡 이고 있던 배도빈을 보았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피아니스트는 세계 최고여야 한다고 했지?”

    “어……

    최지훈이 다시 가우왕을 보았다.

    “누가 뭐라 해도 지금 그 자리에 가우왕 씨보다 어울리는 사람은 없어요. 본인을 속이지 마세요.”

    그리고 다짐하듯 선포했다.

    “가우왕 씨가 양보하지 않아도 그 자리, 돌려받을 거니까.”

    으앜ㅋㅋㅋ

    ㄴ 최지훈 발진!!

    ㄴ 이게 뭐야ㅋㅋㅋ 오늘 진짜 무슨 날이야?

    ㄴ 와, 최지훈. 그런 연주를 듣고도 실력으로 되찾을 수 있다고 하네. 쟤도 진짜 난놈인 듯.

    ㄴ 배도빈 아까부터 왜 갑자기 멍청 하게 있엌ㅋㅋㅋㅋ

    인터뷰 회장에 있던 리스터지의 사 라 기자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이거야, 이거!’

    그녀는 파트너의 팔뚝을 때리며 온 갖 호들갑을 떨었다.

    부드러워 보이고 상냥할 것만 같은 최지훈 내면에 굵직하게 자리한 불 굴의 의지가 이 상황을 그대로 받아 들일 리 없었다.

    그녀는 배도빈과 가우왕이라는 최 고의 조합을 인정하고 그것을 넘어 보겠다는 당돌함을 기대했었다.

    그리고 그 설레는 이야기가 진행되 고 있었다.

    최지훈의 도전을 들은 가우왕이 천 천히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날 넘어설 수 있다고?”

    “ 네.”

    ‘이것 봐라?’

    언제부터였을까.

    배도빈을 따라다니는 꼬맹이였을 뿐인 최지훈은 어느 순간 가우왕마 저 인정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려고 지난 퀸 엘리자 베스 국제 콩쿠르 특별 무대까지 준 비했는데, 예상을 넘어 본인이 스스 로 도전해 올 줄이야.

    “많이 컸네.”

    진심이었다.

    배도빈이 없는 무료한 피아노계에 서 유희 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던 백수의 왕은 망가진 줄 알았던 장난감 의 도전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양보 따위 필요 없다는 그 말이, 그렇게 기특할 수 없었다.

    “꼬맹이.”

    가우왕이 배도빈을 불렀다.

    반응이 없어 몇 번을 더 부르고 나서야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왜요?”

    “최고가 아니라면 못 들인다며. 어떻게 생각해?”

    가우왕의 탈퇴 발언도 최지훈의 반 대도 모두 예상하지 못했던 배도빈

    은 일단 본인 생각을 입에 담았다.

    “당연하죠.”

    “그럼 됐네. 누가 최고인지 가리면 되는 거 아니야?”

    가우왕이 최지훈의 손에 눈길을 주 곤 말했다.

    “네 입으로 날 넘어설 수 있다고 했으니 그 말에 책임져야 할 거야. 그런 말 듣고 가만있을 내가 아니거 든 ”

    “바라던 바예요.”

    최지훈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답 했다.

    가우왕이 만족스러운 듯 웃고는 중 계 중인 카메라를 향했다.

    “여기 이 꼬맹이 말고도 도전하고 싶은 사람은 찾아와. 베를린 필하모닉에 들어올 수 있고 배도빈의 곡을 받아볼 수 있다고. 다들 바라는 일 이잖아? 성공할 기회야.”

    그 전까지의 인터뷰 내용은 이미 기자들과 팬들 사이에서 잊힌 지 오 래였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연주를 해낸 피아니스트가 전 세계를 도발하고 있었다.

    범접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오만함을 보이며, 베를린 필하모닉 과 배도빈이라는 최고의 상품을 인 질로 걸고 도전을 부추겼다.

    “내년 이맘때까지 기다려 주지. 발 악들 해봐.”

    최지훈은 흉폭한 사자를 상대로, 자 신의 형제를 구해내리라 마음먹으며.

    지난 몇 개월간 참아왔던 피아니스트로서의 혼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도빈은.

    “뭔데?”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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