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96화 (396/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396화

    86. 마왕과 사자와 용사(3)

    한편.

    크리스틴 지메르만과 최지훈은 가우왕을 웅원하기 위해 그의 대기실을 찾았다.

    가우왕은 문을 열고 들어온 스승을 보자마자 얼굴을 구겼다.

    “뭐 하러 왔어?”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구나.”

    스승은 자애롭게 제자를 바라보았다.

    폴란드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크리 스틴 지메르만은 예절을 중시하고 무례한 이를 경멸했다.

    그러나 가우왕만은 예외였다.

    난폭함은 야생동물 같고 때로는 한 심해 보이는 모습도 보이지만 그 안에 숨겨진 순수함을 사랑했다.

    크리스틴 지메르만이 가우왕의 얼 굴을 살피곤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할망구가 또 왜 이래?”

    가우왕은 몸을 비틀어 빠져나오려 했지만 스승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홍콩에서의 일 이후 연습에 매진한 다면서 얼굴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매정한 제자가 오랜만에 손에 들어왔으니 쉽게 풀어줄 리 없었다.

    ‘고양이 같아.’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최지훈은 도 도한 고양이와 애정 많은 주인을 보는 것 같아 웃고 말았다.

    가우왕이 그런 최지훈을 노려보았다.

    “이상한 생각 하지마.”

    “네.”

    “……빌어먹을.”

    부정하는 것이 보통일 텐데.

    가우왕은 순순히 이상한 생각을 했다고 인정하는 최지훈을 배도빈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지메르만은 가우왕의 머 리를 쓸어내리고 있었다.

    “너, 손은 좀 어때.”

    “이제 많이 좋아졌어요. 의사 선생 님도 회복이 빠르다고 놀라셨고요.”

    “잘 됐네.”

    “네.”

    가우왕은 방실방실 웃는 얼굴을 애 써 외면하다가 버럭 소리 질렀다.

    “아, 언제까지 만질 거야!”

    “탈모는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네. 그래도 신경 써야 한단다? 네 괴상한 옷차림 때문에 봐줄 만한 건 이 좋은 머리결뿐이니.”

    “웃기지 마!”

    일시적인 탈모 증상이 왔을 때 바 람에 날려 드러난 두피.

    파파라치가 포착한 그 모습은 가우왕 일생일대의 치욕으로 남았다.

    제자를 골려준 스승은 그가 평소와 같다는 걸 인지하곤 안심했다.

    “그럼 멋진 연주 기대할게.”

    “그러든지 말든지.”

    크리스틴 지메르만이 대기실을 나 서려 해 최지훈도 따라 나서려는데 가우왕이 그를 붙잡았다.

    “넌 잠깐 남아 봐.”

    최지훈이 눈을 깜빡이며 기다렸다.

    가우왕이 물을 마시고는 입을 샐쭉 거리더니 뒷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미안하게 됐다.”

    “네?”

    “의도치 않게 네 자리 뺏었는데 오늘 공연이 마지막이야. 신경 쓰지 말라고.”

    “가우왕 씨.”

    “그 녀석도 나 살리려고 그런 거니 까 서운해 하지 말라고.”

    가우왕은 부상 때문에 메이저 콩쿠르 3연패와 베를린 필하모닉 퍼스트 피아니스트직을 놓친 최지훈이 걱정 되었다.

    스승 크리스틴 지메르만이 최지훈을 아끼는 것처럼, 그도 자신과 최지훈이 닮았다고 여겼다.

    끝없이 노력하는 열정.

    손가락의 작은 움직임조차 완벽히 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면 결코 ‘깔끔한 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것은 글렌 골드나 사카모토 료이치, 미카엘 블레하츠, 막심 에바로트 하물며 그 배도빈도 없는 강점이었다.

    그 열정을 알기에 더욱 신경 쓰였다.

    “ 전.”

    똑똑-

    “가우왕 씨, 입장 준비해 주세요!”

    때마침 무대에 오를 시간이 되었다.

    “그럼 간다.”

    가우왕이 최지훈의 어깨에 손을 얹어 위로하곤 무대로 향했다.

    콘서트홀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앞서 케르바 슈타인이 지휘한 비발디 사계의 겨울과 봄으로 분위기는 한층 더 고조되어 있었다.

    “어떤 느낌일까?”

    “배도빈이 가우왕에게 헌정한 곡이래. 부제가 가우왕이잖아. 어어엄청 화려하겠지.”

    “3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라니까 확실히 그럴 것 같네.”

    웅성이던 객석이 가우왕의 등장으로 폭발하였다.

    “와아아아!”

    황제는 그가 가장 아끼는 선홍색 슈트를 입고 있었다.

    두 갈래로 길게 내려온 트임이 펄 럭였고 손목과 복부에 자리한 금빛 단추가 빛났다.

    진한 스모키 화장을 한 이 시대 최 고의 피아니스트의 복귀 무대.

    팬들은 함성으로 황제를 맞이했다.

    “가우왕!”

    “가우왕!”

    그 실력만큼이나 요란하기로도 유 명한 가우왕이 양손으로 슈트를 펄 럭이곤 피아노 앞에 앉았다.

    눈을 감고 자신을 향한 환호를 만 끽한 뒤 객석을 향해 거만히 웃어보였다.

    윙크는 덤.

    “우오오오!”

    “꺄아아악!”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에서는 보기 힘든 반응이었다.

    단원과 직원들은 가우왕의 수작질 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것이 가우왕의 콘서트.

    가우왕과 오랜 시간 기다려 온 그의 팬들이 음악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가우왕이 오른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과장된 퍼포먼스.

    아무런 의미 없는 동작이었지만 관 객들은 곧 있을 화려한 연주를 기대 하며 숨죽였다.

    고요함 끝에.

    9개의 손가락이 건반 위에 떨어졌다.

    쿠쿵!

    백수의 왕이 포효했다.

    배도빈, 3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 E 단조. 부제 가우왕.

    페달과 함께 울린 왕의 울부짖음에 관객들은 압도되었다.

    위엄 넘치는 도약!

    저 멀리 뻗은 오른손이 조금의 미 스도 없이 건반을 때렸고 그와 동시 에 이어지는 아르페지오.

    사냥을 시작한 사자처럼.

    육중하고 민첩하다.

    순식간에 마주한 양손의 아르페지오.

    가우왕이 온몸을 실어 건반을 때려 냈다.

    얼룩말의 목을 찢어내 듯이 무자비 한 강타가 이어졌다.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강렬한 화음들이 빈틈없이 이어져 야수의 잔인함을 과시했다.

    그리고 맞이한 휴식.

    시작부터 폭력적인 사운드에 압도 당한 관객들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가 옆 사람의 감상을 방해하진 않을까 걱정할 정 도로 놀랐다.

    연주는 차분히 그러나 무게감 있게 이어졌다.

    터벅. 터벅.

    사냥감을 잡은 사자는 천천히 가족 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먹이를 잡아 온 아빠 사자를 향해 뛰어오는 어린 사자들.

    왕의 걸음걸이를 표현했던 묵중함 과 함께, 가볍고 경쾌한 소리들이 서로 다른 박자로 연주되었다.

    그 순간.

    피아노를 조금이라도 접했던 이들은 속으로 감탄했다.

    ‘이런 연주가 가능해?’

    아빠 사자의 걸음이 반주로 이어지는 가운데 서로 다른 멜로디가 솟아 났다.

    마치 아빠 사자 주변을 여러 새끼 사자가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것처럼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연주되었다.

    만약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더라면 여러 대의 피아노가 각각의 연주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팬들이 그러할진대.

    음악에 조예가 깊은 이들은 놀라움을 넘어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불가능해.”

    대기실에서 연주를 듣고 있던 프란 츠 페터가 무심코 말을 흘렸다.

    그러나 소년의 말을 부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기계가 아니고서야, 서로 다른 멜 로디를 동시에 연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두 개의 멜로디를 정확히 인지하고 속주의 한계를 넘어서 실연한다는 뜻인데.

    감히 그 누구도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지 않았다.

    스승이자 최고의 피아니스트라 불 리는 크리스틴 지메르만조차 혼란스러웠다.

    ‘ 언제부터.’

    제목처럼 마치 멜로디를 연주하는 손이 두 개인 듯했다.

    두 새끼 사자의 걸음은 멜로디는 차치하고 박자조차 변칙적이었다.

    그녀는 제자가 드디어 기예의 정점 에 이르렀다 생각했다.

    그리고.

    최지훈은 손이 망가지기 전 자신이 그렇게 찾아 헤맸던 이상적인 연주 방식을 맞이하고 있었다.

    모든 노트를 철저히 기억하고 그것을 때려내기 위해 손과 정신을 완전히 독립시키는 일.

    방법을 찾지 못해 무리하다가 배도빈이 그만 두라고 외쳤던 그 연주였다.

    자신이 바라던 이상을 목도한 최지훈의 가슴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지난 몇 개월간 애써 누르고 있었던 피아노를 향한 갈증을 더는 외면 할 수 없었다.

    가우왕이 양팔을 펼쳤다.

    피아노의 양끝에서 초원의 이상이 펼쳐졌다.

    위험을 인지하고 무리를 이뤄 도망가는 물소들.

    떼를 지어 이주하는 새들.

    가우왕의 양손이 가운데로 모이면 서 각각의 동물들이 그려지는 듯했다.

    그 가운데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왕은 다시 한번 우렁찬 외침을 뿜었다.

    공포스러운 화음이 마치 거대한 괴 물처럼 드리우고.

    그 그림자를 맞이한 왕은 새끼와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꼿꼿이 자리를 지켰다.

    사자가 아무리 포효해도.

    왼손에서 연주되는 강렬한 화음들에 비할 순 없었다.

    현격한 차이.

    그러나 사자는 왕으로서의 프라이드를 지켰다.

    쾅! 쾅! 쾅! 쾅!

    무게를 실어 내리꽂은 건반이 괴성을 질러댔고 오른손을 잡힐 듯 말 듯 반주 사이를 누볐다.

    아슬아슬한 추격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가우왕이 눈을 부릅떴다.

    지난 몇 주간 그를 가장 괴롭혔던 대목.

    괴물을 표현하는 왼손에는 무게를 실어 화음을 연주해야 했고.

    오른손으로는 사자의 용맹함을 과 시하면서 백성들의 움직임을 표현해 야 했다.

    빼곡하게 계속되는 스케일 속에서 멜로디를 연주해야 하는 오른손은 이미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

    가우왕은 이를 악다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얼룩말을 죽일 때와 같은 대목으로 돌아와 괴물의 목을 물어버렸다.

    거대한 몸집이 쓰러지듯 강렬한 화 음이 울렸고.

    괴물의 죽음을 확인한 사자가 포효 했을 때.

    온 초원이 울부짖으며 진동했다.

    마지막 음을 누른 가우왕이 고개를 젖혀 긴 머리를 휘날렸고.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곡을 감상 했던 관객들은 넋을 놓은 채 있다 가.

    “브라보!”

    최지훈의 선창과 동시에 열광했다.

    “와아아아아아!”

    *

    【한계를 넘어선 무대!]

    【황제. 피아노의 새로운 대륙을 정 복하다!】

    [가우왕. 양손으로 각각 1초에 20 개 음을 연주하다!】

    연주가 끝남과 동시에 기사가 쏟아 져 내렸다.

    ㄴ  미친ㅋㅋㅋㅋ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얔ㅋㅋㅋ

    ㄴ 그렇게 대단한 거야?

    ㄴ 귀가 있으면 그런 말 하면 안 됨 ㅋㅋㅋㅋ

    ㄴ 스피커나 이어폰 문제일걸? 저 속주를 제대로 잡아주지 못하는 걸 로 들었으면 이해 못 할 만도 함.

    ㄴ 기계가 잡아내지 못할 정도라고?

    ㄴ 1초에 양손 합쳐서 40개 음을 연주했다잖앜ㅋㅋㅋ

    ㄴ 도랐고 미쳐따.

    ㄴ 저런 걸 연주하는 놈이나 연주하라고 만든 놈이낰ㅋㅋㅋㅋ

    ㄴ 상식 돌려주세욬ㅋㅋㅋ

    ㄴ 인터뷰 시작했다! 인터뷰!

    가우왕의 연주는 세상을 놀라게 하 기에 충분했다.

    연주회 뒤 곧장 이어진 인터뷰에서 기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작곡가 배도빈과 연주자 가우왕을 대 했다.

    “언제부터 준비하셨습니까!”

    “무슨 생각으로 만드셨습니까!”

    “속주 부분에서 기네스 기록을 갈아치우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이 사람이! 왜 자꾸 밀쳐대!”

    “비켜! 마에스트로! 가우왕 씨가 이 곡을 소화할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센세이셔널한 화제의 현장.

    기자들은 체면 차릴 생각도 없이 앞다투어 질문을 쏟아냈다.

    “진정하세요! 한 분씩 받도록 하겠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직원들이 나서 고 나서야 겨우 분위기가 진정되었다.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일을 해내셨습니다. 경의를 표하며 어떻게 3 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를 준비하셨는지 여쭙습니다.”

    기자의 질문에 가우왕이 코를 치켜 들었다.

    “뭐, 평소대로였지.”

    “거짓말하지 마요. 폐인도 그런 폐 인이 없었는데.”

    “뭐!”

    곁에 있던 배도빈이 딴지를 걸었다.

    이미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배도빈의 실랑이를 숱하게 접했던 기자들은 두 사람의 말싸움을 웃으며 지 켜보았다.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친 가우왕 씨도 대단하지만 그에게 이런 곡을 써주신 마에스트로도 대단하십니다. 본인도 이 곡을 연주하실 수 있으십 니까?”

    한 기자의 질문에 기자들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단원, 직원들마저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불가능’이라 생각하지만 상 식적으로 배도빈은 가능하다 여겼으니 이런 곡을 만들었을 터였다.

    “아니요.”

    그러나 배도빈은 단호했다.

    그의 대답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던 사람들은 물론 그것을 지켜보던 팬들마저 감탄하게 했다.

    ㄴ 와, 자기는 못 해도 가우왕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네.

    ㄴ 진짜 대단하다.

    ㄴ 저렇게까지 신뢰했구나.

    ㄴ 배도빈도 피아노 하면 손에 꼽지 않음?

    ㄴ 활동을 잘 안 해서 그렇지 솔직히 열 손가락 안에는 들지. 그런 배도빈이 자기는 못 한다고 할 정도면 대체 곡에다가 무슨 짓을 한 건지 궁금하 넼ㅋㅋ

    “원래 같이 연주하려고 만들었는데 이 인간이 혼자 연습하더라고요.”

    배도빈과 가우왕의 끈끈한 신뢰 관 계에 감탄하던 인터뷰 회장이 싸늘 히 식어버렸다.

    “뻔히 못 치는 거 아는데 혼자 낑 낑대는 게 재밌어서 지켜봤는데 정 말 혼자 하더라고요. 지금도 신기해요.”

    배도빈의 추가 설명에 기자들과 베를린 필하모닉 그리고 가우왕 본인 마저 눈을 멍청하게 깜빡일 뿐이었다.

    ㄴ 이게 뭔 소리얔ㅋㅋㅋㅋ

    ㄴ 아닠 ㅋㅋㅋㅋㅋ

    ㄴ 실화냐고 진짜ㅋㅋㅋㅋ

    채팅창이 웃음으로 도배되는 가운데.

    가우왕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어 색한 움직임으로 배도빈을 보았다.

    “뭔 소리야, 그게.”

    “말 그대로예요.”

    “뭔 소리냐고!”

    무대에서 내려온 사자가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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