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85화 (385/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385화

    84. 세계의 사카모토, 희망을 노래 하다 (2)

    샛별 엔터테인먼트의 전문경영인이 자 도빈 재단의 이사 히무라 쇼우에 게 초대장이 날아왔다.

    크레용 위즈의 대표 김석진이 직접 작성한 초대장에는

    배영빈 감독은 배도빈이라는 음악 가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히무라 쇼우라고 판단.

    그에게〈THE DOBEAN〉의 감수를 의뢰했고.

    마침 일이 없었던 히무라 쇼우는 배도빈에 관한 일이기도 하여 흔쾌 히 자문 역할을 맡아주었다.

    그것이 그가 맡았던 가장 최근 일 이었고 동시에 몇 달 전의 일이었다.

    “끄응차.”

    히무라 쇼우는 소파에 반쯤 누워서 팥앙금 만쥬로 남산만 하게 나온 배를 문지르며 초대장을 읽었다.

    “할 일 없이 행사에나 참가하는 사람이 제일 밉상이었는데.”

    장소와 시간을 확인한 그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TV만이 유일한 낙이었다.

    -유럽을 떠들썩하게 한 피델리오는 과연 어떤 작품일까요? 베를린 필하모닉의 〈피델리오〉를 보러 가 기 전에 알아야 할 상식 다섯 가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을 제작할 정도구 나. 확실히 재밌었지. 그러고 보니 애니메이션 개봉일이랑 북미 투어 일정이 겹치네. 시너지가 있겠어.’

    히무라가 TV 채널을 바꾸었다.

    -피아노의 황제 가우왕 씨가 유난 히 길었던 유럽 활동을 마치고 귀국 하였습니다. 남다른 패션으로 항상 주목받는 가우왕 씨인데요, 이번에 도 레드 계열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저 광택 나는 레드 팬츠 와 같은 재질의 페도라는 대체 어디 서 구한 걸까요?

    ‘서상에나.’

    TV 화면에 비치는 가우왕을 본 히무라는 얼른 채널을 돌렸다.

    -적층가공기술에 대한 지적재산권 에 대한 법률이 통과되었습니다. 이 로써 모든 3D 프린터의 등록절차를 밟아 가공품을 신고하게 되었습니다.

    ‘뭐라는 거지.’

    -WH 그룹이 최근 분자생물학에 투자를 시작하였습니다. WH 그룹 의 대변인이 밝힌 공식 입장은 인간 유전체 사업을 통한 의료 사업 확대 입니다만, 유 회장의 손자 배도진이 분자생물학과로 전과했다는 사실에 더불어 그룹이 사적인 영역에서 운 영되고 있지 않냐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아이고. 왜들 저런다니. 도빈이도 그렇고 도진이도 그렇고 어린애들한 테 너무 심하네.’

    히무라는 어렸을 적부터 유독 지나 친 관심을 받은 배도빈과 배도진 형 제를 걱정하며 혀를 찼다.

    -살아 있는 전설, 사카모토 료이치를 총감독으로 받아들인 빈 필하모닉이 그 외의 상임 지휘자는 없을 거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빈 필하모닉이 자존심 상하긴 했나보네. 하긴, 오케스트라 대전 이후 로 베를린 필과 암스테르담에 계속 밀렸으니까. 사카모토 선생님이 함

    께하게 되었으니 다음 대전도 볼만 하겠어.’

    버릇처럼 포장 봉지를 뜯은 히무라 가 만쥬를 한입에 물었다.

    -홍콩에서 또다시 희생자가 발생 하였습니다. 대만, 티벳, 홍콩을 향 한 중화인민공화국의 무력행사에 세 계 각국이 규탄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쯧쯧. 중국이고 우리나라고 정신 좀 차려야 할 텐데.’

    대충 뉴스를 둘러본 히무라가 하품 할 때에 맞춰 전화벨이 울렸다.

    배도빈이었다.

    “도빈아.”

    -요즘 한가하다고 했죠?

    “그렇지, 뭐. 왜. 일감 좀 주려고?”

    _네.

    “어?"

    소파에 반쯤 누워 있던 히무라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무슨 일인데?”

    히무라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공연 기획이나 배도빈의 개인 앨범 기획, 또는 신곡 발표에 앞선 마케팅 등을 떠올렸다.

    혹은〈피델리오〉의 아시아 투어에 대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누가 뭐라 해도 아시아 최고의 프 로듀서이자 기획자는 히무라 쇼우였다.

    -멀핀이 그러는데 홍보팀을 따로 운영해야 할 것 같대요. 악단 소식 도 전하고 홍보도 할 수 있게. 적당 한 사람 구해줄 수 있어요?

    -히무라?

    세계 각국, 여러 계층에 인맥을 두고 있는 그에게 유능한 인물 몇 소 개해 주는 거야 일도 아니다.

    그러나 본인의 역할이 그 정도일 뿐이라는 건 무척이나 씁쓸한 일이었다.

    심통이 난 히무라가 대충 대답했다.

    “왜, 그 레 자미인가 하는 친구들 너희 잘 알더만. 그 친구들 시켜보 지?”

    -그게 좋겠어요?

    배도빈이 진지하게 되묻자 이제는 기가 막혔다.

    “그냥 하는 말이잖아. 왜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여.”

    -히무라가 저한테 나쁜 말 할 리 가 없잖아요.

    “도빈아……

    배도빈이 조건 없이 신뢰하는 인물 은 극히 적었다.

    음악가 중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고 사업에 관한 일은 히무라, 나카무라, 카밀라, 멀핀 이외에는 대화조차 나 누기 힘들었다.

    배도빈의 그런 성향을 잘 알고 있는 히무라는 괜히 감동받아 울컥하 고 말았다.

    “그렇게 말하면 또 내가.”

    히무라가 막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전화기 너머로 대화 소리가 전해졌다.

    -역시 히무라 대표시네요. 의외로 괜찮은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멀핀 생각도 그래요?

    -네. 당시 레 자미가 보도한 기사 의 당사자와 베를린 필하모닉에 관 한 검색량이 급증했던 걸 보면 단순 히 정보량만 갖춘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럼요?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를 풀어낼 줄 안다는 뜻이죠.

    배도빈과 멀핀이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자 히무라의 또 한 번 말문이 막혔다.

    “자, 잠깐만, 도빈아.”

    _네.

    “무슨 생각이야? 너 그 친구들고 소중이잖아.”

    -합의 봤어요. 그렇죠?

    -네. 200만 유로와 정정, 사과 보도로 합의하였습니다. 의외로 금방 지급하더군요. 생각보다 재정이 튼 튼했던 것 같습니다. 그 점도 파트 너 후보로서 메리트가 있겠네요.

    -봐요. 이런 일은 히무라에게 물어 보면 된다니까.

    -너무 작은 일에 수고를 끼치는 것 같아 망설였는데, 사사로운 감정 에 구애받지 않고 과거의 적을 이용 한다. 역시 아시아 음악계의 입지전 적인 인물이시네요.

    “아니……

    -그렇다니까요. 아, 히무라, 고마워요. 또 연락할게요.

    히무라 쇼우는 끊어진 전화기를 붙잡고 한동안 황당함과 슬픔에 잠겼다.

    2024년 9월 7일.

    영국에서의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 지은 최우철은 아직 런던에 머무르 고 있었다.

    국가안보와 경제를 위협, 브리튼 왕국 왕실과 국민을 우롱한 버만 가 문은 이례적인 속도로 재판장에 섰 고 버만 가문의 당주 로저 버만은 종신 수감되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이었지만 분노한 영국은 멈출 줄 몰랐다.

    의회, 사법부와 국민까지 나서 버 만 가문과 버만 인더스트리를 끌어 내 버렸다.

    주인을 잃은 버만 인더스트리는 어떻게든 살림을 꾸려나가려 했지만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화르륵-

    최우철이 성냥을 그어 시가에 불을 붙였다.

    잘 손질된 시가를 느긋하게 즐기는 최우철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걸 려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

    그의 비서가 창문을 두드렸다.

    작은 틈으로 반가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찾았습니다.”

    최우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비서가 우산을 펼치곤 차 문을 열었다.

    런던의 고약한 날씨를 따라 그의 시가 연기가 바닥에 깔렸다.

    비서는 최우철을 으슥한 곳으로 안내했다. 평소라면 절대로 찾지 않을 지저분한 곳에 이른 최우철은 골목 귀퉁이에서 발을 멈추었다.

    반쯤 넋이 나간 남자가 비에 젖은 채 주저앉아 있었다.

    제임스 버만이었다.

    “말씀하신 대로 수감되지 않도록 조치하였습니다.”

    최우철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필요에 의해 버만 가문 전체를 무 너뜨리긴 했지만, 감히 아들에게 손을 뻗었던 놈을 편히 둘 순 없었다.

    수감되어 잘 곳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부디 최대한 열심히 살아남으시게.’

    어렸을 적부터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했던 50대 중년이, 모든 재산을 압류당한 채 어찌 살아나갈지.

    최우철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대로 발을 돌린 최우철은 마이바흐로 향하며 지시했다.

    “라너드와 다른 놈들도 해. 선거 직전이 좋겠군. 들에게도 언질을 해두면를 유지할 수 있겠지.”

    “준비하겠습니다.”

    최우철은 이번 일로 영국을 장악할 생각이었다.

    버만 가문을 몰락시키기 위해 이용 한 라너드와 영국 보수당 의원들 역시 버만 가문과 한패.

    남겨둘 바에야 적당한 시기를 봐 쳐내는 것이 이로웠다.

    최우철은 그 시기를 선거 직전으로 보았고 그를 통해 영국 야당, 노동 당 의원들을 포섭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유럽에서 동떨어져 있는 영국 시장을 JH가 장악하는 데 큰힘이 되어줄 터였다.

    그의 수족으로 오랜 세월을 함께했던 비서조차 최우철의 철두철미한 계획에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왜 그러나?”

    최우철의 질문에 비서가 움찔했다.

    그러나 그가 최우철 옆에서 오랜 시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어설 프게 속이려 들지 않았던 덕이었다.

    “이번 일 처리하시는 걸 보고 무서 워졌습니다.”

    “하하하하. 그래? 무엇이?”

    “망설이지 않으시는 것도 치밀하신 것도.”

    “자네가 아직 사람이라서 그래. 돈 벌고 싶으면 어서 내려놓게.”

    비서가 고개를 숙이며 최우철의 말을 가슴 깊이 받아들였다.

    “한 말씀 더 드려도 되겠습니까.”

    “오늘따라 말이 많군. 뭔가.”

    “어찌되었든 결국 영국을 좀먹던 버만 가문과 적폐 세력을 도려내신 거라 생각합니다. 대표님은 자각하 실지 모르겠지만, 전에 비하면 분명 긍정적으로 변하신 것 같습니다.”

    비서의 말에 최우철이 눈썹을 좁혔다.

    “그게 무슨 말인가.”

    “최근 아드님과 통화하실 때면 평 범한 아버지처럼 보여서 사족을 붙였습니다. 용서하시지요.”

    “흐하하하하하하하!”

    비서는 호탕하게 웃는 최우철을 보고 침을 삼켰다.

    함께한 시간이 오래되어 마음을 놓고 있었던 탓일까.

    괜한 말을 꺼낸 것은 아닌지 후회 했다.

    “무슨 말을 하는 겐가. 버만 가문 이 브렉시트를 조작했다니. 그럴 깜 냥이 되는 놈들이었으면 이렇게 쉽 게 처리할 수 있었을까.”

    “••••••예?”

    비서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창백해진 그가 손을 벌벌 떨었고 최우철은 그 모습을 보다가 즐거운 듯 미소 지었다.

    안전 운전 하게.”

    * * *

    2024년 1월 어느 날.

    연말, 연초 행사로 베를린 필하모닉이 정신 없을 때.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배도빈의 집무실을 찾았다.

    그는 몇 장의 서류를 대충 쥐고 있었는데, 굳이 직접 결재받겠다고 카밀라에게서 가져온 의 사업 제안서였다.

    ‘하려는 일도 아니고 거절하겠다는 확인 서류를 굳이 가져가시려는 이 유가 뭔데요?’

    ‘혹시 모르잖아. 하고 싶어 할지도.’

    ‘……아닌 거 같은데. 대체 무슨 꿍꿍이에요?’

    ‘아무튼 줘봐.’

    그렇게 몇몇 사유로 협업을 거절하겠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확보한 푸르트벵글러는 배도빈을 실컷 골려줄 생각이었다.

    ‘진수식 전에 이름을 바꿔야지. 암.’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건물과 배가 생기는 게 얼마나 민망한 일인지 가르쳐 주려 했다.

    의 부끄러운 스 토리를 들어 잔뜩 놀려서 올해 여름 에 진수될 크루즈의 이름을 바꾸려 했는데.

    오만 일을 전부 처리하고 있던 배도빈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보자 마자 있는 대로 성질을 냈다.

    “날 속였어!”

    ‘이 녀석이?’

    “무슨 말이냐. 내가 널 왜 속여?”

    “모른 척하면 누가 속을 줄 알아요? 권위고 뭐고 바빠 죽겠으니까 일 좀 하라고요!”

    “조직에 우두머리가 둘이면 혼란스러울 뿐이야.”

    오케스트라 대전 도중 배도빈에게 거의 대부분의 권한을 넘긴 푸르트벵글러는 지독한 업무량에서 벗어나 살 것만 같았다.

    배도빈이 아무리 뭐라 해도 예전처 럼 일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미 베를린 필하모닉의 권좌는 배도빈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이었다.

    “도와주지 않을 거면 방해하지 말고 나가요. 안 그래도 정신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라.”

    배도빈은 푸르트벵글러의 능글맞은 얼굴을 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 고는 책상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바닥에 까지 놓아둔 서류더미를 처 리하는 데 힘썼다.

    너무나 많아 읽는 것은 애초에 포기.

    어차피 대부분의 일은 카밀라와 멀 핀 선에서 커트되었기에 서명하고 있는데.

    “너, 그 배 이름 고칠 생각은 정말 없는 게냐?”

    푸르트벵글러가 이미 정해진 일을 언급하자 짜증이 치밀었다.

    “그게 뭐 어때서요. 좋기만 하구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 바빠요.”

    ‘ 고얀놈.’

    배도빈의 쌀쌀맞은 태도에 푸르트벵글러가 입을 쌜쭉였다.

    “그럼 기념관 이름이라도 바꾸지 그러냐. 루트비히 기념관과 빌헬름 기념관이라니 . 나도 죽은 사람 같지 않느냐.”

    그러지 않아도 정신이 나갈 것만 같은 업무 지옥에 빠져 있는 배도빈 은 푸르트벵글러의 말을 아예 무시했다.

    ‘좋게 넘어가려 했더만 안 되겠어.

    그럼 어떻게 골려준다.’

    생각에 빠진 푸르트벵글러는 집무 실을 둘러보았다. 괜히 악보를 들춰 보기도 특별히 좋아하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흥얼거리기도 했다.

    ‘이 이 이 이익.’

    집무실 한쪽에서 나는 소리에 배도빈의 성질이 터지고야 말았다.

    “ 나가요!”

    “커흠. 그럼 이쪽에 서명 하나 해 주거라.”

    “……그게 뭔데요.”

    “별건 아니고. 그냥 나 혼자 처리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래도 네 결재는 받아야지 않겠느냐.”

    “급한 거 아니면 나중에 읽어보고 드릴게요.”

    “급한 거니까 직접 왔지. 그냥 서 명만 해줘.”

    “무슨 일인데요?”

    “그냥 작은 일이야. 내 선에서 처 리하고 싶어서 그러니 서명만 해 라.”

    배도빈이 폭군을 의심스레 보았다.

    그러나 당장 해주지 않으면 또 귀찮게 굴 것이 뻔했다.

    푸르트벵글러가 배도빈의 책상에 서류를 놓았다. 그러면서도 손으로 교묘하게 내용을 가렸는데.

    짜증이 나, 당장에라도 푸르트벵글러를 쫓아내고 싶었던 배도빈은 개 의치 않고 대충 서명하였다.

    “ 됐죠?”

    “그래. 그래. 그럼 고생하려무나. 끌끌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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