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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383화 (383/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383화

    83. 폭발 배도빈(4)

    멀핀이 거지꼬라지를 한 프란츠를 내 방에 데려다 놓았다고 전했다.

    서둘러 차에 올랐다.

    혼구녕을 내줄 생각으로 씩씩대는 데 한편으로는 카를과의 일이 발목을 잡았다.

    혼을 내기도 타일러 보기도 애원하 기도 했지만 녀석은 결국 변하지 않았다.

    녀석과의 관계가 잘못되는 것은 중 요치 않다.

    녀석의 보호자로서, 부모로서 해낸 일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괜히 혼을 내서 프란츠가 삐뚤어지진 않을까.

    그것이 가장 걱정되었다.

    ‘빌어먹을.’

    그 때문에 지금까지 프란츠가 답답 한 행동을 해도 엄포를 놓을 뿐, 제 대로 혼내본 적이 없는데 이런 일이 반복된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혼을 내줘야겠다.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하지만 어떻게.

    고민을 이어가던 중 전화가 울렸다.

    “네, 어머니.”

    -응, 아들. 뉴스 봤어. 프란츠 어떻게 된 거니? 괜찮은 거야?

    꼬맹이 실종 이야기가 반나절 정도 만에 뉴스를 탔다니.

    유능한 건 알고 있었지만 카밀라와 멀핀이 일 처리를 잘해준 듯하다.

    “네. 괜찮아요. 멀핀이 찾아서 호텔 에 데려다 놨대요.”

    어머니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놀랐겠다. 대체 무슨 일이라니?

    “만나서 들어봐야 알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듣기 전에 혼을 내는 게 먼저지만.

    -아들 화 많이 났나보네?

    어렸을 적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어 머니를 속일 순 없다.

    “ 네.”

    -그래. 프란츠에겐 네가 형이고 선 생님이니까 단단히 알려줘야 해.

    “말리실 거라 생각했어요.”

    -잘못했으면 혼나야지. 그래도 도빈아, 혼낸 다음에는 꼭 안아줘.

    어렸을 때가 생각난다.

    아직 어린 몸에 익숙하지 않았던 당시, 의도치 않게 어머니와 아버지 께 심려를 끼치기도 했다.

    그때마다 단단히 혼을 내셨지만, 끝에는 꼭 안아주셨던 것이 떠오른다.

    -도빈아?

    “아, 네. 이제 도착했어요. 이따가 전화드릴게요.”

    -그래.

    그런가.

    그렇게 싫어하고 저주했거늘.

    카를을 다그치던 난 ‘요한’과 다를 게 없었다.

    프란츠 페터는 배도빈이 머무는 호텔 방에 들어온 뒤로 안절부절못했다.

    샤워도 억지로 떠밀려 했다.

    몸을 씻고 나오자 이자벨 멀핀이 주문해 둔 음식이 프란츠를 기다리 고 있었지만, 소년은 차마 포크를 들 수 없었다.

    “도, 도빈 님 많이 화나셨어요?”

    “응.”

    멀핀이 스케줄러를 고치며 대답했다.

    “저 그냥 돌아가면 안 될까요?”

    “안 돼.”

    쌀쌀맞게 대하려던 멀핀이 프란츠를 보았다. 테이블 앞의 프란츠는 잔뜩 쪼그라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또 마음이 약해졌다.

    이틀이나 밖에서 지내면서 얼마나 무서웠고 고생했을지를 생각하면 우 선 밥이라도 먹이고, 잠이라도 재우 고 싶었다.

    “배고플 텐데 어서 먹어.”

    그래서 다시 한번 식사를 권했지만 잔뜩 겁에 질린 프란츠는 고개를 돌 릴 뿐이었다.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프란츠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프란츠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구두 소리가 멈췄다.

    “고생했어요. 둘만 있고 싶어요.”

    얼음장 같은 목소리였다.

    이자벨 멀핀도 배도빈의 이런 태도는 처음이었기에 군말 덧붙이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피해주었다.

    긴 침묵이 이어지고.

    프란츠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을 때 배도빈이 입을 열었다.

    “설명해.”

    “그, 그게. 어, 어쩔 수 없는.”

    배도빈은 프란츠를 차갑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가 같은 말을 두 번 하는 걸 싫어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프란츠는 훌쩍이며 상황을 설명했다.

    “그, 그래서. 그래서.”

    “다음 날에도 공연 있었어. 아레나 로 찾아왔으면 됐잖아.”

    “그게••••••

    프란츠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피,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라고. 끄읍. 하셨는데. 서, 선물로 주신 건 데. 큽. 마, 말도 안 듣고. 혼날까 봐. 끄으으읍.”

    잔뜩 겁먹은 소년은 감정이 격해진 탓에 말을 못 이어나갔다.

    그러나 배도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프란츠를 내버려 두었다.

    소년이 눈물을 멈추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네 입으로 말했지. 나 같은 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선생님이 돼줘 서 기쁘다고.”

    “네……

    “이제 보니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널 동생으로 제자로 생각했는 데 넌 날 그리 생각지 않았어.”

    “그건!”

    프란츠가 고개를 들었다가 배도빈 의 차가운 눈을 보곤 움츠렸다.

    “네가 진짜 날 형으로 생각했으면 그런 이기적인 생각 못 하지. 그깟 핸드폰이 뭐라고 이 난리를 펴?”

    3,000유로가 넘는 초고가 제품.

    프란츠로서는 상상도 못 할 물건이었다.

    핸드폰뿐만이 아니었다.

    1,000유로가 넘는 고야드 지갑도 첫 월급을 받는 날 배도빈이 선물해 준 물건이었다.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프란츠는 자신과 배도빈 사이의 거리를 현격히 느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어, 어떻게 그래요.”

    프란츠가 다시금 울먹였다.

    열등감이, 조금의 반항심이 섞인 투정이었다.

    “도빈 님에겐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저한테는 아니에요. 끕. 그렇게 비싼 물건 무슨 짓을 해도 못 구한다고요. 거, 거짓말해서 죄송해요. 말씀 안 드려서 죄송해요. 하지만. 하지 만.”

    프란츠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걸 말하고 싶었다. 좋아서 한 실수가 아니었음을 알아주었으면 했다.

    “그러니까 이기적이라는 거야.”

    배도빈의 목소리는 한층 더 차게 식었다.

    “왜. 내가 돈이 많아서 그까짓 거 라 생각하는 거 같아?”

    “대답해!”

    “끄우우우우읍.”

    소년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구세주가 처음으로 미웠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알지만 너무나 부담스러운 물건을 잃어버렸고 무엇보다 ‘그’가 준 물건을 잃어버 린 것이 마음에 걸렸거늘.

    구세주는 그저 자신을 물건에 집착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니라고 반항하고 싶었지 만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자신과 구세주 사이는 너무나 멀었으니까.

    그러니 그저 울 수밖에 없었다.

    배도빈은 그런 소년을 그대로 두었다. 지쳐 그만 울 때까지 달래주지 않았다.

    울음이 멎으면 다시 물었다.

    그러나 소년으로서는 배도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두 사람의 대화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배도빈이 눈을 감고 물었다.

    “알베르트가 길을 잃어도 괜찮을 것 같냐.”

    처음으로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네가 큰마음 먹고 사 준 가방 잃 어버렸다고 집도 안 들어오고 연락 이 안 되어도. 그래도 그 가방이 그 리 중요할 것 같냐.”

    배도빈이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넌 그깟 핸드폰 때문에 날 다 신 못 봐도 괜찮은 거냐?”

    그럴 리가 없다.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프란 츠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왜 몰랐을까.

    그 쉬운 걸 왜 몰랐을까.

    물건의 값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때문에 배도빈과 알베르트를 다시는 못 볼 수도 있었다.

    프란츠가 자기 머리를 때렸다.

    멍청해도 이렇게 멍청할 수 없었다.

    ‘도빈 님이 아니라 나였어. 내가 그렇게 생각했어. 돈 때문에 구질구 질하게 구는 놈이었어.’

    “잘못했어요. 끄으읍.”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배도빈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느낄 수 있었고 그 순간 모든 것이 부끄러워졌다.

    배도빈의 말대로 이기적이고 멍청 했다.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죄송해요. 죄송해요오오.”

    배도빈은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는 프란츠를 보다가 얼굴을 풀곤 팔을 벌렸다.

    “끄아아앙!”

    통통한 등을 어루만지자 배도빈은 그제야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피델리오〉를 더 알고 싶다는 녀 석의 말에 유럽 투어에 데리고 다니 기로 했다.

    벌로 피아노 금지 10일형을 내렸는데 다리를 붙잡고 놔주질 않아 혼났다.

    “혀어엉, 피아노 치고 싶어요.”

    “헛소리하지 마.”

    “꾸욱. 꾸우웁

    “한 번만 더 칭얼거리면 10일 추 가야.”

    엄포를 놓으니 입을 잔뜩 내밀고는 피아노를 볼 뿐이다.

    어머니께도 상황을 말씀드렸다.

    -그래. 천만다행이네.

    “네.”

    -프란츠도 네 진심을 알게 되었으니까 많이 반성했을 거야.

    확실히 그렇다.

    예전의 내가 못 했던 일이기도 하다.

    -참, 그러고 보니 투어 뒤에는 시간 좀 나니?

    “무슨 일 있어요?”

    -영빈이가 초청장을 보냈어. LA에서 시사회 한다던데 시간 있으면 가 보자고. 가족 여행 못 간 지 오래되었잖아.

    시간이 될지 모르겠다.

    “알아볼게요. 정확히 언제에요?”

    -9월 20일. 바쁘면 무리하지 말고.

    “악단 일이 우선이니까요. 이번엔 무슨 내용이래요?”

    -어머. 몰랐니?

    “네?”

    -아하하하. 세상에. 난 둘이 얘기 된 이야기인 줄 알았지. 궁금하면 검색해 보렴.

    어머니께서 알 수 없는 말을 남기 시곤 전화를 끊으셨다.

    “뭐지.”

    검색창에 배영빈이라고 검색하니 이젠 제법 그럴듯한 소개란이 나온다.

    “음?”

    이상한 기사가 여럿 보인다.

    【봉달 서커스, 지구방위대 가랜드의 천재 감독 배영빈 신작 초읽기!]

    【세계를 울린 음악가를 주인공으로 한 클래식 음악 애니메이션, 9월 20일 첫 시사회]

    [극장용 애니메이션, 에 빈 필하모닉 협력]

    【왜 베를린 필하모닉이 아니라 빈 필하모닉인가?]

    【사카모토 료이치. “껄껄껄. 왜 하냐니. 재밌으니 하는 것 아닌가.”]

    [사카모토 료이치 충격의 복귀! 빈 필하모닉 수석 감독 취임!]

    이게 뭐야.

    "왜 그러세요?”

    그대로 화면을 내려 배영빈에게 전 화를 걸었다.

    -어, 도빈아! 투어 중이라며! 건강 하지?

    “헛소리 말고 당장 말해. 무슨 짓이야.”

    - 아.

    “말해.”

    -어어어어. 신호가 좀 안 좋다야. 내가 나중에 연락할게.

    “수 쓰지 말고 빨리 불어.”

    -어어어엇. 꾸릅뛝빱깘. 진짜 안 좋나보네. 떫쒟띐.

    “농담할 기분 아니야. 배영빈! 야! 야!!”

    뚜뚜뚜뚜-

    끊어진 통화음이 허무하게 울렸다.

    “아, 이거 이제 나오나 봐요!”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프란츠가 눈을 빛내고 있었다.

    “너 알고 있었어?”

    “그럼요! 모르는 사람 없는데요?”

    “ 없다고?”

    “네! 단원들 모두 피델리오 때문에 못하게 되었다고 아쉬워했잖아요.”

    “……멀핀. 이자벨 멀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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