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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382화 (382/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382화

    83. 폭발 배도빈(3)

    이탈리아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다음 날.

    5번 교향곡이 울렸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카밀라의 이름과 오전 11시라는 텍스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틀간 피델리오 본 공연 뒤에 캐논을 그리워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을 위해 독주 무대를 가졌더니 피곤했던 모양이다.

    평소보다 훨씬 오래 잤다.

    “네, 카밀라.”

    -도빈아, 혹시 페터 군이랑 같이 있니?

    녀석이라면 베를린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텐데, 카밀라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프란츠요?”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 바로 앉았다.

    “무슨 일이에요?”

    -오늘 나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안 와서. 연락도 안 되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녀석은 겉보기에는 괜찮아 보여도 잔병치레 가 잦았다.

    “숙소에는요? 아픈 거 아니에요?”

    -그건 아니고 사정이 있다고 해서 휴가 보냈거든. 3일이나 다녀온다고 해서 좀 의아하긴 했는데, 오늘 베 로나에 갔다는 말을 들었어.

    이건 또 무슨.

    녀석이 이곳에 올 이유가 없다.

    “확실한 거예요?”

    -급사장이 말해줬어. 29일 아침에 베로나로 간다고 했다더라. 누구랑 같이 가는 거 아니었냐고. 도시락까 지 싸줬다니까 맞겠지.

    혹시나 감기라도 앓고 있는 건 아 닌가 싶었는데 상황이 심각하다.

    고작 15살짜리 꼬마가 생전 처음 가는 나라에서 연락이 안 되다니.

    더군다나 치안이 그리 좋지 않은 나라다.

    -큰일이네. 네게도 연락을 안 했으면 정말 무작정 혼자 간 것 같은데.

    빌어먹을.

    “혹시 모르니까 갈 만한 곳 알아봐 주세요. 알베르트랑 스칼라가 잘 알 고 있을 거예요. 이쪽에서도 찾아볼 게요. 경찰에도 연락해 주고요.”

    -그래. 할수있는 일은 다 해봐야지.

    통화를 마치자마자 멀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보스.

    “지금 내 방으로 와주세요.”

    -네. 20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대충 씻곤 프란츠에게 전화를 걸었다.

    페터 형제를 데리고 있던 질 나쁜 놈들이 걱정되어 내 핸드폰과 같은 기종이다.

    지구에만 있으면 어디서든 통화가 가능하다. 전원이 켜져 있기만 하면 어디든 추적할 수 있는데.

    전화가 꺼져 있다는 안내음이 나올 뿐이었다.

    까득.

    열이 올라 얼음을 꺼냈다.

    봉투에 옮겨 담고 이마에 얹고 있으니 잠시 후 멀핀이 문을 두드렸다.

    그녀도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방금 국장님께 이야기 들었습니다. 페터 군이 실종되었다고.”

    “네. 우선 여기 경찰에게도 연락해 주세요. 최대한 빨리.”

    “연락해 두고 오는 길입니다.”

    역시 일 처리가 빠르다. 카밀라에 게서 연락을 받곤 미리 움직인 모양.

    “다른 방법은 없나요?”

    “우선 직원들과 브라 광장 주변을 찾아보려 합니다. 페터 군이 베로나에 올 이유는 공연밖에 없을 테니까요.”

    맞는 말이다.

    ‘대체 뭔 생각이야.’

    〈피델리오〉라면 베를린에서 봤을 텐데.

    평소에는 소심해서 다른 사람과 말도 잘 못 붙이는 녀석이 이탈리아까 지 올 생각은 어찌했는지 모를 일이다.

    ‘혹시.’

    유괴 같은 걸 당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저었다.

    자꾸만 안 좋은 생각이 든다.

    멍청한 녀석은 아니라 이쪽에 연락할 방법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했을 텐데, 돌아갈 방법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올 녀석은 아닌데 연락조차 안 되니 어쩔 수 없다.

    ‘말도 안 통할 거 아니야.’

    그 어린 녀석이 얼마나 무서워하고 있을지 생각하면 초조해진다.

    “보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멀핀이 반복해 불렀다.

    “ 보스?”

    “아, 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국제 터미널이나 아레나 주변 CCTV> 통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을 테니까요.”

    “베를린 필하모닉의 팬들도 도와줄 겁니다. 관련 내용 보도해 협조를 부탁하겠습니다.”

    “찾을 수만 있으면 뭐든 상관없어요. 저도 찾으러 가볼게요.”

    “이후 스케줄이 있으시니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멀핀이 방을 나섰다.

    ‘대체 왜.’

    공연을 보고 싶었다면 말 한마디로 충분할 텐데 굳이 왜.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웠던 거냐. 네게 내가 그렇게 부담스러웠던 거냐, 프란츠.’

    자꾸만 카를이 떠오른다.

    바르게 자라주길 바랐지만 끝내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던 녀석.

    ‘왜 못된 인간들하고 어울리냐고요? 큰아버지는 내가 번듯한 인간이 되길 바라잖아요. 그래서요. 절대로. 절대로 큰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살 진 않을 거예요.’

    아마 제 어미와 떨어뜨려 놓은 것을 원망했던 것이다.

    그때의 나로서는 녀석을 어떻게 달 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차마 가족이 빚더미에 앉은 것이 요한나의 사치 때문이었다는 사실 을, 향락을 위해서라면 남편과 아들 마저 배신하고 놀아났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베트호펜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를 그런 천박한 인간에게 둘 순 없어 끝끝내 양육권을 가져왔건만.

    결국 카를과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었다.

    내 뜻대로 바른길을 걷게 할 순 없었다.

    ‘왜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 거지.’

    프란츠만큼은 그 뛰어난 재능과 착한 마음, 노력이 제빛을 발하도록 해주고 싶었거늘.

    대체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똑똑-

    “보스, 2시간 뒤에 인터뷰 예정되어 있습니다.”

    사무국 직원의 목소리다.

    대답하지 않자 거듭 부른다.

    “ 보스?”

    “혼자 있고 싶어요.”

    문에다 대고 말했다.

    “아……. 멀핀 부장께서 중요한 인 터뷰라고 하셨는데. 취소하신다고 전해드리면 될까요?”

    “혼자 있고 싶다고 했어요.”

    “죄, 죄송합니다.”

    ‘제기랄.’

    문을 열었다.

    괜한 짜증을 받은 직원의 어깨가 늘어져 있다.

    “선물 받은 초콜릿인데 저한테는 너무 다네요.”

    상자를 넘기며 말했다.

    “기분이 안 좋았을 뿐이에요. 신경 쓰지 말아요.”

    “저, 전혀요. 정말 괜찮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괜한 화풀이라니.

    이래서야 예전과 똑같지 않은가.

    그러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짜증이 치민다.

    간신히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탈리아의 유력 방송국 중 하나라는 RETE4에서의 인터뷰는 그런 나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반갑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오늘 은 정말 어마어마한 게스트를 모셨는데요. 이탈리아 방송에서는 처음 출연하시는 배도빈 악단주이십니다! 이탈리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마 에스트로.”

    리포터가 호들갑을 떨었다.

    “반갑습니다.”

    “실은 바로 어제 피델리오를 관람 했는데요. 정말 엄청난 무대였습니다. 여러 오페라 중 피델리오를 준 비하신 이유가 특별히 있을까요?”

    “제안은 도이체 오퍼에서 먼저 해 주었습니다. 언젠가 다룰 예정이던 작품이었고 투란도트 때의 신뢰가 있어 함께했습니다.”

    “언젠가 다룰 예정이셨다니, 다른 여러 작품 중에서도 애착을 느끼시는 건가요?”

    “그렇죠.”

    생각해 보니 돈이라도 있었으면 어떻게든 베를린으로 돌아갔거나 연락이라도 했을 텐데.

    역시 납치인가.

    “역시 언제나처럼 시크한 답변이시 네요. 이런 점이 또 팬들이 좋아하는 모습이죠.”

    통통하긴 해도 돈 있어 보이는 느 낌은 아닌데.

    납치는 아닐 거다. 그래. 아닐 거다.

    “그리고 빼먹을 수 없는 질문이 있죠. 현재 과르네리 캐논의 소유주이 시기도 한데요. 이탈리아를 위해 이 틀에 걸쳐 캐논을 연주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만 좀 더 자주 연주되길 바라는 시선도 많은데, 향후 계획에

    포함되어 있을까요?”

    “네, 뭐.”

    생각하면 할수록 열받는다.

    똥돼지 같은 녀석.

    데려가 달라는 그 한 마디가 어려 워서 사람을 이렇게 피 말리게 해?

    “마에스트로 배도빈의 캐논 연주는 앞으로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체사레 호르자 씨 와의 협연이 너무나 기대됩니다.”

    뭐라는 거야.

    “갑작스러운 질문이지만 피아니스트 체사레 호르자 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누구요?”

    조금 당황한 듯하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악가입니다. 마에스트로와 함께 협 연하고 싶다는 인터뷰도 했거든요.”

    “처음 듣습니다.”

    “19살이란 어린 나이에 최근 퀸 엘리자베스 피아노 콩쿠르에서 12 위를 차지했고.”

    “모릅니다.”

    퀸 엘리자베스 이야기가 나오니 또 열이 뻗친다.

    “요,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아, 사 진을 보시면 아실 것 같네요.”

    리포터의 요청에 조연출이 태블릿을 가져다주었다.

    아리엘 녀석이 좀 더 느끼해지면 이렇게 생겼을 것 같다.

    ‘이것들이.’

    뜬금없이 무슨 말을 하나 싶었더니 잘생긴 녀석 좀 밀어주려는 것.

    더는 들어주고 싶지 않다.

    “이탈리아 출신의 피아니스트를 말 씀하실 거면 제대로 말씀하세요.”

    “아.”

    “그 사람이 아르투로 미켈란젤리, 마우리치오 폴리니, 페루초 부소니, 베아트리체 라나, 로베르토 마그리 스 등을 두고 말할 정도로 잘났습니까?”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12위라.

    최지훈이 있었으면 파이널라운드 진출조차 못 했을 녀석이다.

    리포터는 거의 울 지경이었는데 화 가 풀리질 않는다.

    “비발디와 살리에리, 아르투로 토 스카니니,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이 탈리아에 존경하고 사랑할 음악가가 이렇게 많은데 19살짜리 꼬마가 가장 인기 있다니 의외네요.”

    “아.”

    “그, 그렇죠. 아……. 음……. 비, 비발디의 사계는 저도 정말 좋아합니다. 살리에리라면 모차르트를 시 기했던 음악가죠? 이탈리아 출신이었던 건 몰랐네요. 하하.”

    “단언하는데 당시 빈에서의 위상은 아마데 이상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위대한 음악가를 꼽으신다면 반드시 언급하셔야죠.”

    “그, 그렇죠.”

    리포터가 물을 마시고는 어떻게든 화제를 돌리려 했다.

    “그, 그런데 마에스트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를 언급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오케스트라 대전 이후로 관계 가 개선된 건가요?”

    “나쁩니다.”

    “네?”

    “ 싫다고요.”

    “사이가 나쁜 건 나쁜 거고. 그가 위대한 지휘자라는 건 사실입니다.”

    똥돼지 녀석이 어디 있는지, 누구 에게 해코지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밥은 먹었는지, 잠은 제대로 잤는지도 모르는데 자국 출신의 위대한 음악가조차 모르는 리포터와 질문이나 나누고 있으니 짜증이 치민다.

    빨리 정리하고 일어나고 싶은데, 때마침 동행한 직원이 내 핸드폰을 들고 손을 흔들었다.

    폴짝폴짝 뛰는 걸 보니 프란츠를 찾은 모양.

    “더 물어보실 거 없으면 끝내죠.”

    “아. 커피를 좋아하신다고 하던데, 혹시 이탈리아의 타짜도르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나중에 이것들 출신이 이탈리아 관 광공사에서 나온 건 아닌지 확인해 봐야겠다.

    “나중에 마셔보겠습니다.”

    백수 아닌 백수가 된 히무라 쇼우는 그의 집무실에서 무료하게 있다 가 문득 배도빈이 인터뷰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예전에는 하나하나 신경 써서 모니터링도 해줬는데.”

    배도빈을 위해 만든 샛별 엔터테인먼트는 너무나 커졌고, 정작 배도빈은 소속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을 마쳤다.

    ‘많이 컸네.’

    과거를 추억하며 인터뷰를 보는데 배도빈의 표정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 있나?’

    평소에도 항상 짜증을 내고 있지만 오늘따라 특히 기분이 안 좋은 모양.

    히무라는 팥앙금이 들어간 만쥬를 뜯으며 중계 영상을 보았다.

    - 누구요?

    “어이쿠.”

    공식 석상에서는 부드럽게 멘트하 라고 그렇게 가르쳐 줬거늘.

    히무라는 끝도 없이 추락하는 분위 기를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태도면 이탈리아 쪽 이미지 가 안 좋아지잖아, 도빈아. 역시 내가 있어 줘야 한다니까.’

    그는 지금이라도 자신이 배도빈을 관리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만쥬를 우물댔다.

    ‘반응이 심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걱정되는 마음에 채팅창을 열었고.

    ㄴ 진짜 지겹다. 세상에 세계 최고 의 음악가를 데려와 놓고 무슨 질문을 해대는 거야?

    ㄴ 체사레 호르자가 누구?

    ㄴ 배도빈 말 한번 잘했다. 위대한 음악가가 얼마나 많은데 얼굴 믿고 나대는 녀석을 언급하는 거야?

    ㄴ 표정만 봐도 불쾌한 거 알겠는데 거기다 대고 커피 아냐고 묻넼ㅋㅋ

    ㄴ 유명인 오면 뭐 아냐고 묻는 것 좀 하지 마. 진짜 지겹다. 지겨워.

    ㄴ 배도빈이 앞으로 이탈리아를 뭐 라고 생각하겠냐, 멍청한 인간아.

    생각보다 심하지 않기는커녕.

    절대적으로 배도빈에게 우호적인 반응에 히무라는 세월의 흐름을 느끼며 만쥬 하나를 더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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