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79화 (379/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379화

82. 레오노레(5)

바르샤바에서 공연을 마쳤다.

단원들은 평소보다 적극적이었는데 아무래도 다들 노이어나 디스카우처럼 날 걱정하는 모양이다.

알 수 없는 열의를 보인다.

작은 행동에도 즉시 반응한다든지 아니면 본인의 연주를 검토해 주길 바란다든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연주를 하기 위한 일이라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단지 나와 함께 음악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인데.

‘이제 와서 뭘 걱정하는 거야.’

베를린 필하모닉을 인수했음에도 여전히 불안한 모양.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하는 내가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것 같다.

여러 사람이 내게 다양한 활동을 기대하고 있고 나 역시 최대한 많은 일을 하고 싶어 생긴 문제.

최근 들어 홍승일의 말이 자꾸 떠 오른다.

‘아마 이렇게 되리라 생각했던 거겠지.’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하고 싶은 음악을 한다는 마음에는 변함없다.

팬이 있기에 음악을 할 수 있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내가 나 로서 있지 않고서야 그들이 사랑하는 ‘배도빈’이 존재할 순 없는 법.

그러나 이런 기사가 자꾸 올라오는 걸 보면 단원들이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피델리오, 바르샤바에서 또다시 진 기록을 세우다!]

【피델리오 초연 영상 217시간 3분 만에 누적 2억 뷰 돌파!]

【재평가를 받는 완성된 피델리오]

【원곡에 충실한 마에스트로 배. 베토벤을 향한 그의 사랑]

【개혁의 베를린 필하모닉. ‘피델리 오’ 역시 스펙트럼의 일부인가]

지난 3일, 베를린 필하모닉과 도이 체 오퍼가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에서 첫 공연을 마쳤다.

동시 시청자 수 400만 명을 기록 한, 2024년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 한 무대는 여러 이야기를 낳았다.

그중에서 이목을 끄는 이야기는 제 르바 루빈스타인, 필립 클래스 등 음악계 거장들의 평.

필립 클래스는 지휘자로서의 배도빈이 한층 더 성숙해졌다고 평하면서도, 그만의 색이 드러나지 않은 데 아쉬움을 표했다.

시카고 심포니의 제르바 루빈스타인은 어느 곡을 연주하든 자신만의 편곡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배도빈이 처음으로 원곡에 충실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앞선 평들과 같이〈피델리오〉를 연주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은 평소와 차이를 보였다.

이에 대해 소수 언론에서는 그간 과거 거장들의 곡을 편곡하는 데 망설임이 없던 배도빈이 부담을 느낀 탓이라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다.

최근 여러 사업을 통해 재정 지출이 컸던 베를린 필하모닉을 안정시키기 위해 조심스러워졌다는 말.

여러 분란을 일으켰던 해먼 쇼익의 경우 배도빈이 베토벤의 걸작을 두고 마침내 능력의 한계를 맞이한 거 라고 주장해 이번에도 여러 팬들의 분노를 샀다.

한편 평단에서는 원곡에 충실한 지 휘와 연주에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유력 음악사의 대표 파인 리파스토는 이번 <피델리오>가 원곡에 충실한 이유로 베토벤을 향한 배도빈 악 단주의 경의라고 주장.

항상 화제를 이끌고 있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개들이 또 짖는 듯하다.

이전에는 아마데와 비교하여 거슬 리게 하더니 이번에는 나와 나를 비교하는 듯.

참으로 할 짓 없는 짐승들이다.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하곤 사카모토의 ‘Bibo no Aozora’> 틀었다.

영화에서 사용된 피아노와 바이올린 합주.

원곡보다 이쪽이 더 마음에 드는데 사카모토는 요란한 원곡이 더 마음 에 든다고 했었다.

사카모토의 곡 중에서 Rain과 더 불어 가장 좋아하는 곡.

안 좋은 곡이 있느냐마는 차분히 감상하기에 더없이 훌륭하다.

바이올린이 움직여선 안 될 영역까 지 침범하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이 끌어 온 분위기와 놀랍도록 잘 어울린다.

똑똑 _

“도빈아, 잠깐 시간 괜찮아?”

나윤희다.

문을 여니 그녀가 과일 바구니를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내일 아침에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고마워요.”

바구니를 받아 들곤 길을 터주었다. 안쪽으로 안내하곤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다.

“어제도 대단했지.”

“네. 대편성이 아니라 조금 아쉬웠지만.”

“무대가 좁으니까. 아, 야외 공연장에 비해서.”

커피포트에 물을 올려두고 마주 앉으니 나윤희가 전에 내주었던 숙제를 꺼냈다.

‘투어 때문에 좀 늦을 거라 생각했는데.’

성실한 학생이다.

“어땠어요?”

“어려웠어.”

“하하.”

악장 취임 후.

악장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 공부하기 시작한 그녀는 차곡차곡 지식을 쌓고 있었다.

어느 정도 성취를 보여 이번에는 새로 발표할 곡에 빈 곳을 만들어 문제를 내주었다.

정답이 없는 일.

완성본과 나윤희가 채워 넣은 악보를 비교하며 그녀의 이해력을 돕고 창작성을 지켜줄 생각이었다.

‘괜찮네.’

쭉 한 번 훑어보니 처음에는 총보를 보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던 것 치고 곧잘 따라온 것 같다.

슬쩍 고개를 드니 조금 긴장한 기색.

작게 웃으며 다시 한번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문제로 낸 것이 아닌 부분이 수정되어 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데크레셴도(Decrescendo: 점점 약하게)가 추가되어 있다.

“이건 뭐예요?”

“아, 빠져 있는 것 같아서.”

“빠져 있다고요?”

“응. 다음 호른에 스포르찬도가 붙어 있으니까. 너라면 이러지 않을까 싶어서……

“제가요?”

“응. 이런 강조 좋아하니까.”

악보를 다시 보니 확실히 여리게 연주하여 다음에 올 스포르찬도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려 했다는 걸 기억할 수 있었다.

‘빼먹었네.’

악보를 쓰다 보면 가끔 있는 실수.

검토를 반복해 수정해 나갈 일인데 나윤희가 그걸 대신한 것이다.

“브루노 발터였으면 중간에 음을 끊었을 거예요. 저도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고.”

다른 방법도 있을 수 있다고 지적 하자 나윤희가 조심스레, 그러나 확 신에 찬 눈빛을 보냈다.

“앞에서 이미 사용했던 방식이니 까. 여기서는 다르게 하고 싶을 거 라 생각했어.”

정답이다.

‘문제를 푸는 데만 집중하고 있는 게 아니야.’

악보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 니 자세히 들여다본 것이고, 동시에 내 음악을 이해하고 있다는 뜻.

푸르트벵글러야 당연한 일이고.

니아 발그레이와 케르바 슈타인, 찰스 브라움 같이 곡을 다루는 몇몇 이만 내 곡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나윤희가 연주자로서의 역량에 더 해 발전하고 있음에 기뻤다.

“좋아요. 투어 끝나고 총연습 때 다시 보도록 해요.”

“응.”

적당히 식은 차를 마셨다.

몸이 이완되어 나른해진다.

문득 그녀는 이번 피델리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누난 어떻게 생각해요?”

“ 뭘?”

“피델리오요. 이런저런 말이 있나 봐요.”

방금까지 보고 있던 신문을 보여주니 눈썹을 살짝 찡그린다.

“다른 건 몰라도 너답지 않다는 말은 아, 아닌 거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나 같은 거보다 훨씬 대단한 분이시지만.”

필립 클래스를 말하는 것 같다.

“아마 널 잘 몰라서 하시는 말 같아. 이, 이번에 준비한 곡이 원곡에 충실한 것도 사실이고 그게 편곡을 적극적으로 했던 예전과 다르긴 해 도.”

말 더듬는 버릇이 많이 좋아졌다.

“강렬하거나 독특한 해석만으로 규정짓는 건 잘못된 판단 같아. 안주 하지 않는……. 완벽한 연주를 위해 서라면 뭐든 하는 게 우리잖아?”

듣고 싶었던 말이다.

그간 몇몇 이를 통해 내 음악이 클래식 고유의 음악성을 헤칠 우려 가 있다는 점을 꾸준히 지적받았다.

모두 전통적으로 지켜져 왔던 해석을 무시한 데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훌륭한 연주를 위해서라면 지금까지 해왔던 실험적 시도든, 시대연주든 상관하지 않는 것이 본질.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헛소리일 뿐이다.

또 완벽한 연주를 추구하는 나와 푸르트벵글러 그리고 베를린 필하모닉의 정신이기도 하다.

“너, 너무 아는 척했지.”

“그런 모습이 더 보기 좋아요.”

손가락을 꼼지락댄다.

불새 이후 생긴 버릇인데,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마다 저런다.

아니나 다를까.

단원들 이야기를 꺼냈다.

“단원들도 알고 있어. 직접 연주하 니까, 네가 가장 멋진 방법을 찾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데.”

표정을 보니 그녀도 걱정하고 있는 모양이다.

“단지 너무 바빠서 하고 싶은 음악을 못 하게 될까 봐. 그건 걱정하는 거 같아. 노이어 씨도. 다들.”

“걱정 마요.”

찻잔을 비웠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걸림돌이 아니 에요. 제가 하고 싶은 걸 이룰 수 있는, 그럴 수 있게 돕는 곳이니까.”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이들만 한 연주자를 모아둔 곳은 몇 없다.

또 마음이 맞는 이들을 구하기도 쉽지 않으니 도리어 이들이 내게 도 움을 주고 있는 거다.

기특한 친구들이다.

“응.”

걱정스럽게 보던 나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베를린에 남은 프란츠 페터는 첫날 직관했던 피델리오에 푹 빠져 있었다.

배도빈과 구스타프 제르너.

두 천재가 재현한 악성의 오페라는 만 15세 소년의 마음에 불을 지피고 말았다.

생활고 때문에 영화 한 편 제대로 보지 못했고, 책 한 권 여유롭게 읽지 못했던 프란츠에게 ‘피델리오’의 서사는 너무나 자극적이었고.

구세주나 다름없는 배도빈의 지휘는 그에게 법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이외에 답은 없었다.

소년은 오페라 피델리오를 사랑하고 말았다.

불꽃과도 같은 마음은 피델리오를 더 알고 싶은 것으로 표출되었고.

프란츠 페터는 일주일째 식음과 수면조차 제대로 하지 않으며 배도빈 이 남기고 간 악보를 들여다볼 뿐이었다.

‘왜?’

‘아, 이래서 저렇게.’

‘대단해. 너무 대단해.’

천재의 눈에 베토벤의 의도가, 그것을 극대화한 배도빈의 의도가 보 이기 시작했다.

정규 과정으로는 충족할 수 없었던 탐구심을 스스로 채워 넣기 시작한 프란츠는 그 행위를 멈출 수 없었다.

“형, 형, 밥 좀 먹어.”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하든 그런 생 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탐할 뿐.

그런 마음이 마침내 10일이 지났을 무렵 더없이 커지고 말았다.

프란츠 페터는 자신이 공부했던, 밝혀냈던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에서의 첫 공연처럼, 스트리밍이 아니라 피부로 직접 느끼고 싶었다.

‘다음 도시가 어디였지?’

프라하 02아레나에서의 공연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다음은 뮌헨.

그러나 일정을 확인하던 프란츠는 공연 시작 전에 이미 모든 표가 매 진되었던 사실을 떠올리곤 좌절하고 말았다.

‘부탁드려볼까.’

배도빈에게 공연을 직접 보고 싶다고 말할까 고민하던 프란츠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받고 있었고 여전히 ‘받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소년에게는 너무나 민망한 일이었다.

그런 고민을 ‘밴드’에 같이 속한 진달래에게 털어놓았다.

“그냥 부탁하지?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객석에는 못 앉겠지만 대기실에는 있게 해주지 않을까?”

“그래도 죄송하잖아요.”

“나도 처음엔 그랬는데, 나중에 돈 벌어서 갚으래. 눈 딱 감고 더 열심 히 하면 돼. 나도 도빈이한테 빚 많아.”

진달래가 손가락을 헤아리곤 좌절 했다.

“이제 11억 남았네……

대부분이 의료비와 수업료였다.

밴드에 합류하면서 연봉의 50퍼센 트를 떼 갚기 시작했지만,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더군다나 계약직.

진달래는 콧김을 크게 내쉬어 의지를 다지고는 녹음실로 들어갔다.

프란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밴드 연습실에 머물렀다.

그러고는〈피델리오〉의 일정에 관련한 팸플릿을 멍하니 들여다보았는데.

“어?”

로마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의 특별 공연만은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 VVIP티켓을 가진 이들에 한해 특별 입장이 가능한 내용을 확 인할 수 있었다.

혹시나 비용이 많이 나올까 봐 반 드시 필요할 때만, 전화만 썼던 선 물 받은 핸드폰을 꺼낸 프란츠가 더 듬더듬 관련 내용을 검색했다.

‘3, 370유로?’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 VVIP티켓 가격을 확인한 프란츠의 눈이 거의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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