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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376화 (376/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376화

82. 레오노레(2)

그러한 배경 속에서 마침내 도이체 오퍼와 베를린 필하모닉의 두 번째 콜라보레이션.

오페라〈피델리오〉의 첫 공연일이 다가왔다.

오케스트라 대전 우승 이후로도 베를린 필하모닉을 향한 관심은 날로 짙어졌다.

인류의 희망이라 불리던 배도빈의 실종에 더불어.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건강 악화.

정상에 이르렀던 베를린 필하모닉의 관객 수 저하.

그리고 기적과도 같은 생환!

대대적인 개혁.

푸르트벵글러호의 진수식과 마법과 도 같았던 배도빈의 월광 소나타.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 한 베를린 필하모닉 밴드 활동으로 인해 그 관심이 절정에 이른 베를린 필하모닉의 대형 프로젝트인 만큼 전 세계적으로 이목이 집중되었다.

ㄴ 와 스케일 뭔데?

ㄴ 진짜 미친 수준이넼ㅋㅋㅋㅋㅋ

ㄴ 아무래도 세계 정복 하려는 거임. 아무튼 그런 거임.

ㄴ 아니 대체 얼마나 자신 있으면 저런 식으로 일을 벌려놓냐? 아무리 베를린 필하모닉이라도 너무한 거 아냐?

베를린 필하모닉과 도이체 오퍼가 추진한 유럽 투어의 규모는 전례가 없을 만큼 컸다.

투자 금액 약 480억 원.

정확한 수치를 모르는 팬들이 배도빈과 베를린 필하모닉을 우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7월 3일부터 4일까지 이틀간 올림 피아슈타디온 베를린(30,000석)을 시 작으로.

7월 10일부터 11일까지 바르샤바 국립 오페라 극장(1,841석).

7월 14일부터 15일까지 프라하 O 2아레나(18,000석).

7월 20일부터 21일까지 뮌헨 국립 오페라 극장(2,200석).

7월 26일부터 27일까지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3,600석), 30일부터 31 일까지 로마 아레나 디 베로나(30,0 00석)에서 특별 공연.

8월 10일부터 11일까지 바르셀로나 리세우 극장(2,992석), 14일부터 15일까지 마드리드 오페라 하우스 레알 극장(1,750석).

8월 20일부터 21일까지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2,200석).

8월 24일 암스테르담 스토페라 극장(1,689석).

8월 30일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90,000석)에서 유럽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다.

ㄴ 개비싸;;

ㄴ 일정이 두 달ㅋㅋㅋㅋ

ㄴ 저 가격이 나름 납득되는 게 인건비만 해도 미친 수준이겠는데?

ㄴ 저렇게 일 벌려놔도 표 없어서 못 구한다고 하잖아.

ㄴ 유럽 투어 끝나면 한국에도 오나?

ㄴ 유럽, 북미, 아시아 순으로 돈다 고 했음. 북미 쪽은 이미 예매 진행 중임.

ㄴ 이미 끝났어. 다 팔림.

그러나 이례적인 규모의 투어에도 〈피델리오〉의 성공은 이미 확정되 어 있었다.

220유로(영국 200파운드, 한화 약 29만 원)의 높은 티켓 가격에도 전 공연, 전석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세 워, 티켓 판매 금액만으로 640억 원 의 수입을 기록.

우日와 미시시피 프리미엄 비디오 서비스, 베를린 필하모닉 디지털 콘서트홀을 통한 스트리밍 추가 수입 과 스폰서, 관련 상품 판매 등을 고려하면 배도빈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위상이 다시 한번 증명된 셈이었다.

ㄴ 아니, 그래.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은 투란도트 때도 이용했다고 치 는데 그건 홈그라운드였잖아.

ㄴ 웸블리 스타디움 매진은 진짜 소름 돋는닼ㅋㅋㅋ 영국인들 베를린 필하모닉 싫어하는 거 아니었냨ㅋㅋ

ㄴ 츤츤

ㄴ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축제에 서 특별 공연하는 것도 미쳤지.

ㄴ 콜로세움?

ㄴ 비슷하게 생겼는데 콜로세움은 아님. 아레나 디 베로나는 경 기장이 아니라 야외 극장임.

ㄴ 1930년에 만들어진 곳에서 공연을 한다고?

언론과 팬덤은 다시 한번 베를린 필하모닉의 스케일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오페라 극장을 이용하면서도 베를린, 프라하, 로마, 런던 4 개 도시에서는 그야말로 초대형 무 대를 준비했던 것.

덕분에 베를린 필하모닉과 도이체 오퍼의 직원들은 장소 섭외부터 무 대 설치, 장비 동원, 숙소, 교통 등 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철저해야만 했다.

오랜 시간 베를린 필하모닉의 사무국장으로서 일했던 카밀라 앤더슨과 도이체 오퍼의 운영실장마저 혀를 내두룰 일이었고.

찰스 브라움과의 인연으로 몇몇 도시에서의 연출을 맡은 공연 기획자 루드 테슬라로서는 행복한 비명을 질러댈 일이었다.

모든 것이 초호화.

공연 기획자로서 차마 하지 못했던 이상향을 펼칠 시간이었다.

나이가 먹어 그런지 무릎이 쑤신다.

‘내일은 말라야 할 텐데.’

올림피아슈타디온 경기장에 오전까 지 내린 비 냄새가 가득하다.

푸른 막으로 가려둔 세트장과 객석을 둘러보니 〈투란도트〉를 올렸을 때의 기분이 떠오른다.

더할 나위 없는 성공.

괜스레 힘이 들어간다.

몇 번의 실패를 겪은 작품인 탓일까.

아니면 너무나 긴 시간과 큰 돈, 노력을 투자한 탓일까.

나답지 않은 감상이다.

‘준비는 완벽해.’

첫 번째 삶과는 달리 모든 환경이 완벽하게 준비되었다.

1년간의 준비.

도이체 오퍼의 배우들은 각 나라의 말로 노래를 준비했고 베를린 필하모닉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잘 따라 와 주었다.

A와 B에서 선발한 C팀과 마찬가 지로 도이체 오퍼에서 뽑은 연주자 들까지 무려 200명이 동원되는 대 규모 오페라.

합창단과 배우 그리고 이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힘써준 이들을 생각 하면 실패란 있을 수 없다.

“일 한번 요란하게 하는구나.”

푸르트벵글러가 다가왔다.

그도 주변을 둘러보곤 심심한 감상을 내뱉었다.

“내 이름을 붙인 콘서트홀과 배가 생기고 이런 무대를 심심치 않게 벌 리게 되다니. 시간이 많이 흘렀어.

최근 들어선 여름도 너무 덥고.”

확실히 지금 유럽 날씨는 19세기 와 비교하면 딴 판이다.

어렸을 적 기억으로도 이렇게까지 덥진 않았는데, 이제는 에어컨이 없으면 못 버틸 정도다.

“콘서트홀에도 에어컨 설치하길 잘 했죠.”

“음. 그렇더구나.”

대화 도중 짧게 침묵이 흘렀다.

“걱정되느냐.”

“그러네요.”

흥행 여부는 이미 확정.

단지 그러한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자신감 빼고는 시체인 너도 그러 긴 한가 보구나. 끄응.”

푸르트벵글러가 무대 안 쪽으로 걸 어가 앉았다.

“지휘자란 고독한 법이다. 천재도 그렇지. 아무도 네 고충을 전부 이 해할 순 없다.”

곁에 앉으니 말을 잇는다.

“모두가 널 의지하지. 천재 배도빈 이라면 성공은 당연하고. 경연인으로서 실패란 용납될 수 없다. 그러 다 보면 무리하게 되지.”

완벽하기 위한 발버둥.

나도 푸르트벵글러도 평생을 그것 에 묶여 있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단다. 너도 나 도 사람일 뿐이야.”

“당연하죠.”

“끌끌. 그래. 폭군이니 마왕이니 멋 대로들 부르지만 사람이야. 사람이 니까 그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고 위로할 수 있는 거다.”

가끔, 아니, 자주.

푸르트벵글러는 내 생각과 똑같은 말을 해서 날 놀라게 한다.

“여기는 맡겨두고 잘 다녀오너라. 하고 싶었던 거 전부 토해내고 와.”

“그럴 생각이에요.”

7월 3일 수요일.

평일임에도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의 3만 개의 의자는 모두 채워져 있었다.

한 차례 경험이 있었던 단원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

스칼라는 알 수 없는 소리로 웅성이는 관중석을 바라보곤 심장이 멎는 듯했다.

하프를 조율해야 하건만.

3만 명의 인원이 내뿜는 무게감에 차마 움직일 수 없었다.

‘여기서 연주해야 한다고?’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이 가슴 벅찼다면 지금은 말 그대로 압도되 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앞에 두는 것 은 처음인 스칼라는 할 일도 잊고 말았다.

“ 괜찮아.”

그때, 나윤희가 스칼라의 등에 손을 얹었다.

“ 악장?”

겨우 뒤돌아 본 스칼라는 나윤희의 부드러운 눈과 마주했다. 거세거나 폭력적이진 않으나 그 흔들림 없는 눈동자에서 알 수 없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무대를 두고도 긴장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스칼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내색하진 않지만 평소보다 서두른다든지 손을 떤다든지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공연 20분 전입니다!”

스태프가 간이 대기실에다 대고 소리 쳤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연주자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마음을 달랬다.

타악기 수석 피셔 디스카우는 팀파니 채를 놀렸고, 오보에 주자 진 마 르코는 이미 확인을 마쳤음에도 예비용 리드를 만지작댔다.

바순 수석 마누엘 노이어는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었고 제1바이올린 주자 한스 이안은 다리를 떨었다.

이승희 첼로 수석은 이번 공연과는 전혀 상관없는 곡을 연주하고 멈추 길 반복했고 이번 공연에서 제1바이올린 주자로 들어선 왕소소 부수석 은 파르페를 먹고 있었다.

“우리 모두 함께니까 괜찮아.”

나윤희가 다시 한번 스칼라를 응원 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기실에 음악 감독이자 악단주 배도빈이 들어서자 단원들이 모두 그를 향했다.

그 모습이 마치 의식을 치르는 듯 해 스칼라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오늘 3만 명이 모였습니다.”

배도빈이 단원들 한 명 한 명과 시선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내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르샤바, 프라하, 뮌헨, 밀라노, 로마, 바르셀 로나, 마드리드, 파리, 암스테르담, 런던까지. 수십만 명이 우리를 기다 리고 있습니다.”

배도빈이 한스 이안 앞에 섰다.

“우리가 누구죠.”

“베를린 필하모닉.”

배도빈이 오늘 콘서트마스터를 맡은 찰스 브라움에게 시선을 주었다.

“최고의 오케스트라.”

두 사람의 대답에 만족한 배도빈이 단원들 가운데로 나아갔다.

“위대한 음악가의 작품을 제가 편 곡했습니다. 그것을 세계 최고의 연주진과 배우가 노래합니다.”

스칼라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까지의 역사 중에 이보다 위 대한 피델리오는 없을 겁니다.”

“좋아!”

“우리가 누구!”

“최고의 악단!”

“지휘자는 누구!”

“베를린의 마왕!”

지휘자를 구심점으로 다시 한번 마 음을 모은 베를린 필하모닉과 그 속 의 하피스트 스칼라.

지금껏 단 한 번의 실패도.

단 한 번의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았던 그들의 위대한 지휘자 덕에 베를린 필하모닉은 또 한 번 견고해졌다.

한편.

마음을 다잡은 단원들을 보며 배도빈 또한 힘을 얻었다.

‘나의 성채. 나의 방패. 나의 피난처여.’1)

1)오오, 나의 신이여.

나의 성채, 나의 방패, 나의 피난처여! 당신은 나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실 것이오니, 내게서 내 보배, 카를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의 괴 로움을 아실 것입니다.

Romain Rolland. (1972). 베토벤 의 생애(이휘영 옮김). 문예출판사 (원서출판 1903).

너무도 지고한 곳에 이르렀기에.

경외와 두려움, 신앙처럼 여겨지는 한 음악가가 자신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그와 함께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자랑스러운 기개를 펼칠 때다.’

무대로 향하는 단원들을 보며 배도빈이 이를 앙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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