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372화
81. 큰북, 작은북⑴
레 자미가 터뜨린 브렉시트 조작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했다.
한 군사기업이 자사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유도했다는 의혹은 관련자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했고 이후 인 터넷을 통해 암암리에 알려졌다.
최우철의 철두철미한 준비로 기반이 준비되었고 그런 상황은 레 자미 의 보도에 강력한 추진제가 되었다.
처음에는 설마 했던 분위기도 관련 증거 자료가 시시각각 공개되면서 반전.
특히나 2016년 11월에 통과된 인터넷 검열, 감청 안건마저 브렉시트를 위한 버만 인더스트리의 초석이었다는 사실은 유럽을 너머 전 세계 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영국인이 접속하는 모든 인터넷 사이트를 저장, 영장 없이 열람이 가 능한데, 국회의원 및 일부만은 영장이 필요하다는 ‘계급’의 논리가 포 함되어 있었고, 당시에도 반발이 심 했던 일인데.
그것이 한 기업의 로비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하니 영국과 아일랜드 국 민들이 치를 떠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버만 가문의 당주 로저 버만이 호통을 쳤다.
세계적 비난 여론이 가속화되었고.
자국 내에서도 심상치 않은 조짐 때문에 영국 의회는 버만 인더스트 리에 대한 특검을 실시했다.
“돈 받아 처먹은 놈들은 뭣들 하고 있어!”
처음에는 보여주기식으로 얼버무리 러던 의원들도 상황이 점차 불리해 지자 등을 돌렸다.
그 과정에서 최우철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아니, 라너드 의원님. 의원님이 대체 무슨 잘못이 있으십니까. 명예라 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장사치에게 속으신 것 아닙니까.”
“그, 그럼! 그렇고말고.”
“모든 건 영국을 위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렇지! 자네가 정확히 알고 있네! 자네 말이 맞아!”
“그러나 애석하게도 무지한 국민들 이 그것을 알아줄까요? 아니죠. 의 원님의 깊은 뜻은 생각지 않고 분노 에 휩싸여 있습니다.”
“어, 어찌해야 하겠는가.”
“진실을 알리셔야지요.”
“진실?”
“모든 건 버만 가문의 욕심 때문에 벌어진 일 아닙니까. 그들이 물고 늘어지기 전에 속히 움직이셔야 합니다.”
“그것이. 그것이 가능한가?”
“의원님과 같이 억울한 분이 한두 사람이겠습니까? 어려울 때일수록 힘을 모으셔야지요.”
“그래. 자네 말이 맞겠어.”
“우선 모든 자료를 압수하고 필요 한 내용만 내보내시면 됩니다. 그 일은 책임지고 도와드리도록 하지요.”
“고맙네. 정말 고맙네.”
“출국 정지와 계좌 거래 중지도 부 탁드립니다.”
“그렇게까지 해야겠나?”
“의원님, 안보법 위반입니다. 영국 의 안위를 위협한 그들에게 도피처를 열어두실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국민들이 뭐라 생각하겠습니까. 이 번 기회에 의원님의 이미지를 확고 히 하셔야지요.”
재선을 떠올린 라너드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왜 나를 도와주는가?”
“이 땅에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지요.”
“하하하하! 농담도 잘하는구만. 덕 분에 좀 긴장이 풀리네.”
“그저 버만 인더스트리의 공백을
조금이나마 채워드리고 싶어 그럴 뿐입니다.”
“걱정 말게. 내 이번 일만 잘 처리 되면 힘을 실어주겠네.”
최우철이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라너드 의원과 밀약한 뒤.
또 다른 의원을 만나기 위해 차에 오른 최우철의 얼굴은 차갑기 그지 없었다.
그는 핸드폰을 훑으며 그의 비서에 게 지시했다.
“압수수색 자료 넘겨받기로 했으니 철저히 준비해. 버만 인더스트리 특 검 결과 보도되면 라너드 의원 관련
내용 레 자미에 넘기고.”
“괜찮겠습니까?”
“쓸모없어진 늙은 너구리는 독이 될 뿐이지.”
최우철의 안배에 따라.
영국 국회의원 일부는 동원 가능한 모든 힘을 동원해 버만 인더스트리 의 모든 자료를 압수.
최우철의 도움을 받아 본인들과의 거래 내용을 삭제하면서 버만 인더 스트리의 비리를 조금씩 풀어냈다.
버만 가문은 사방에서 급격히 조여 오는 벽에 가로막혔으나 누가, 어떠 한 목적으로 그들을 공격하는지조차
파악 못하고 있었다.
궁지에 몰린 로저 버만은 어떻게든 길을 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잡아들이라 한 지가 언젠데 아직 도 소식이 없어!”
“사무실로 등록된 곳이 이미 오랜 시간 비워져 있었습니다.”
“빌어먹을!”
책상을 내려친 로저 버만은 상대조 차 특정할 수 없음에 치를 떨었다.
그로서는 차남 제임스 버만의 소소 한 복수로 100년간 쌓아온 버만 가문이 무너지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 차 할 수 없었다.
올해 계획했던 일 중 피델리오와 크루즈 콘서트만이 남았으니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연주자를 더 뽑을 생각이에요.”
푸르트벵글러와 악장단 그리고 수석들을 소집해 미뤄왔던 일을 언급 하니 다들 울먹인다.
“끄윽. 드디어.”
“난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 믿었다구읍.”
“커 험!”
푸르트벵글러가 본인의 독재로 20년 넘게 인력 부족에 시달렸던 단원 들의 눈물을 애써 무시했다.
“일단 들어봐요.”
악장단과 수석들을 진정시키고 말을 이어나갔다.
“기본적으론 저도 푸르트벵글러와 같은 생각이에요. 아무나 들일 생각 은 추호도 없어요.”
“당연하지.”
“테스트는 엄격할 거예요. 한 명도 못 뽑는 상황이라 해도 기준을 내리 진 않을 거고요. 파트별로 기존 평 가 항목 갱신해서 제출해 주세요.”
감동적이었던 처음과 달리 다소 우 울해졌지만 이견은 없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로서 그에 합당한 선발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조하기 때문.
모두 자긍심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 이다.
니아 발그레이 고문이 미리 상의했던 일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한은 다음 주 수요일까지입니다. 피델리오 상연 전 공고를 올려 이력서와 영상을 받을 예정입니다. 영상 테스트는 저와 악기별 수석들 이 함께해 주셔야 하고요.”
전력을 다하고 있는 피델리오가 남 은 이상, 수석들에게 또 다른 짐을 부여할 순 없었다.
그래서 2주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었는데 다들 만족하는 것 같다.
“모집 대상은 A와 B의 예비, 보충 인원입니다. 이건 악기별 할당된 정 원 수를 정리한 표니 참고해 주세요.”
푸르트벵글러, 니아 발그레이와 함께, 넉넉한 수는 아니지만 적어도 로테이션을 돌릴 여력은 되도록 의논했고.
그 결과를 받아 본 악장단과 수석 들은 혼잣말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저찌 될 것 같은데.”
“그래. 이게 어디야.”
밝은 분위기에 선물 같은 이야기가 하나 더 준비되어 있다.
숨겨 둘 이야기도 아니라 입을 열었다.
“하나 더. 샛별 엔터테인먼트에서 육성한 인원은 추가로 들일 예정이 에요.”
“전에 말했던 특채?”
“네. 솔로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인원 중에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하길 바라는 이들이 있어요.”
일이 없다던 히무라에게 부탁하니 금방 처리해 주었다.
3년 전부터 부탁했던 일이라고는 해도 이틀 만에 해결해 주는 걸 보 니 역시 유능하다.
“당연히 테스트는 봐야 합니다. 바이올린은 파울 리히터 악장이, 첼로는 이승희 수석이 맡아 따로 진행해 주세요.”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면접을 보는 것도 피곤한 일 이지만 적어도 인원이 부족해 생기는 피로보다는 나을 터.
마지막으로 준비한 일에 악장단이 모두 달려들어야 할 것 같다.
“또 베를린 대학 음대생도 오디션 대상입니다.”
그를 데려오는 조건 중 하나였던 베를린 대학 음대생에게 할당된 자 리도 채워야 하는데.
딱 다섯 자리.
이번에는 가장 많은 인원이 필요한 바이올리니스트에 한정했다 .
“찰스.”
찰스 브라움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정성을 위해 찰스 브라움 악장 은 음대생에 대해서는 관여치 않기로 했습니다. 이 일은 나윤희 악장 이 담당해 주세요.”
나윤희의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 그런 중요한 일을 저 혼자요?”
“처음이니 발그레이 고문이 도와줄 테지만 결정권은 나윤희 악장에게 있는 거 맞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악장인 이상 익 숙해져야 할 일이다.
훌륭한 솔로 바이올리니스트로 남 아서는 굳이 악장직에 머무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최근 1년간 나와 발그레이를 사사하면서 보였던 재능을 썩히 기도 아쉽다.
단원들에게서 신뢰받고 있으니 이 제 막 한 단계만 올라서면 훌륭한 악장, 그 이상이 될 수 있을 터.
자신감이 부족한 그녀는 지지해 줄 필요가 있다.
“아……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요, 나윤희 악장. 어떤 사람인지 베를린 필하모닉과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인지만 보 면 되는 거니까.”
이승희가 나윤희의 걱정을 덜어주 려 했다.
왕소소도 이승희의 말에 고개를 끄 덕이니 나윤희가 고민 끝에 결심한 듯하다.
“해볼게요.”
“좋아요.”
나로서는 내심 믿는 구석이 있었는 데, 그녀의 관찰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분위기를 파악한다든지, 상대방의 생각을 읽는다든지, 주변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등 함께 일하면서 그런 생각을 종종 했다.
조심성 많은 성격 탓이라고 하는데 분명 사람을 판단하는 일도 잘해내리라.
“마지막으로. 평가 척도에서 실력은 기본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기준이 되면 안 돼요. 최종적으로는 지원자가 얼마나 우리와 함께하고 싶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정당한 길을 걸어왔는지 잘 확인해 주세요.”
쉽게 표현하면 음악 바보가 좋겠다.
“아들〜 엄마 왔다〜”
오늘도 퇴근 후 서둘러 귀가한 그레이 웨인이 현관 앞에 가방을 두고 아들을 찾았다.
복지사를 두고 있을 적, 산타 웨인이 폭행당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은 가족이 돌아가며 돌보고 있었다.
친절한 이웃과 산타 웨인의 할머니가 도와주긴 하지만 그 정도로는 그레이와 죠엘의 부담을 덜기에 부족 했다.
그럴 때마다 그레이 웨인은 가족을 두고 먼저 떠난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 아들?”
그러나 얼마 전부터 호전을 보이기 시작한 아들에게서 조금씩 희망을 얻고 있었다.
“영화 보고 있었어?”
그레이 웨인은 본인의 방에서 TV를 보고 있는 아들을 꽉 안아주었다.
“흐헤.”
산타 웨인도 살짝 웃으며 엄마를 반겼다.
그레이 웨인이 산타 웨인의 머리를 쓸며 말했다.
“아들 머리 좀 길었네? 잘라야겠다. 이거 다 보고 머리 하자?”
“머니 하쟈.”
그레이 웨인이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아들 옆에 누웠다. 그러고는 아 들이 보고 있던 것을 함께 시청하였는데 영화가 아니라 베를린 필하모닉에 관련한 다큐멘터리였다.
“마리 이모가 틀어줬어?”
산타 웨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 웨인이 왔을 때만 잠시 반 응했을 뿐, 마치 뭔가에 홀린 듯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집중력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못했던 아들의 낯선 모습이 엄마를 기쁘게 했다.
한참 뒤.
머리를 자르기 위해 산타 웨인은 가운을 두르고 의자에 앉았다.
“자, 손님. 오늘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히.”
“뭐라고요? 남자답게 잘라달라고요?”
“힣 히.”
“좋아요. 아빠처럼 남자답게 해드릴게요.”
매번 같은 스타일이었지만 그레이 웨인과 산타 웨인에게는 즐거운 놀이였다.
그레이 웨인은 아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도 혹시나 다치지 않도록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들이 뭐라뭐라 중 얼거리기 시작해서 귀를 기울였다.
“바니올린 20개, 2바니올린 18개.”
산타 웨인이 갑자기가 고개를 틀어 그레이 웨인은 깜짝 놀라 가위를 치웠다.
“비, 비온나 16개, 체체첼로 14개. 풀르트는 4개애. 흐. 오보에 4개. 클라니넷 2개.”
“우리 아들 악기 정말 좋아하나 보 네. 그렇게 많이 있으면 즐겁겠다.”
“흐헤!”
잠시 후.
그레이 웨인은 아들의 머리를 잘라 주고 샤워를 시킨 뒤 책을 읽어주었다.
아들이 완전히 잠들 때까지 함께 있어준 그녀가 피곤한 몸을 뉘였을 때 딸이 돌아왔다.
“어서 오렴.”
딸 죠엘 웨인은 잔뜩 지쳐 보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꽉 끌어안았다.
“미안해요, 엄마. 시험만 끝나면 산 타 제가 돌볼 테니까.”
“걱정하지 마. 엄마 아직 젊으니까. 넌 네 일만 열심히 하면 돼.”
“……믿고 맡길 수 있는 데가 있으면 좋을 텐데.”
죠엘의 말에 그레이가 단호히 나왔다.
“그놈 기억하지? 엄만 남한테 산타 맡길 생각 조금도 없어.”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럴 순 없잖아요. 엄마 먼저 쓰러지면 어쩌게요.”
“엄만 괜찮아. 그러니까 그런 생각 안 해도 돼.”
죠엘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 이곤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공부를 이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