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67화 (367/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367화

    79. 희망의 오케스트라(7)

    2024년 6월 23일.

    베를린 필하모닉이 주최한 푸르트벵글러호 진수식은 호화롭고 성대하게 펼쳐졌다.

    독일 및 주변 국가의 정재계 유력 인사는 물론, 음악계의 거장들이 함께했는데 사카모토 료이치와 마리 얀스와 같은 리빙 레전드와 영화음악가 한스 짐까지 그 면면이 화려하 기 그지없었다.

    “오, 정말 몰라보게 좋아졌구만. 다행일세.”

    “껄껄. 죽다 살아났지.”

    마리 얀스가 사카모토 료이치를 반갑게 그를 반겼다.

    “요즘 바쁜 듯한데, 조만간 좋은 소식 들려주는 거 아닌가?”

    “허. 누구에게 들었는가?”

    “칼에게 들었네.”

    “껄껄. 그렇다면 모른 척할 수도 없겠구만. 호되게 앓고 나니 의욕이 넘쳐서 말일세. 아직은 공개할 이야기가 아니니 모쪼록 비밀로 해주시 게.”

    “걱정 말게. 3년 뒤가 즐겁겠구만.”

    두 사람이 싱긋 웃어보였다.

    “재밌는 말씀들 나누고 계신 듯합니다.”

    “루빈스타인!”

    제르바 루빈스타인이 아는 체를 하 자 사카모토 료이치가 그를 끌어안았다.

    시카고 심포니를 지휘하는 그는 오 랜 세월 사카모토 료이치와 음악적 교류를 나눴었다.

    서로를 각별히 여기니 오랜만의 만 남이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마리 얀스와도 악수를 나눈 제르바 루빈스타인이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스케일에는 언 제나 감탄할 뿐입니다. 가을에는 투란도트에 이어 피델리오까지 준비한다던데 참 대단해요. 음.”

    “껄껄. 그래서 답사차 온 겐가?”

    “어찌 하나 구경이나 하자는 뜻이 지요. 선생님들도 그런 생각으로 오시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하하하하. 그렇지.”

    베를린 필하모닉의 진수식을 찾은 음악가 모두 해상 오케스트라라는 배도빈의 새로운 시도에 관심을 보였다.

    정규 편성보다는 수가 적지만 A와 B에서도 선발한 이들로 구성된 C팀.

    초대규모 오페라와 10명 이하의 소규모 실내악단 편성까지.

    오케스트라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는 배도빈 체제의 베를린 필하모닉에게 무언가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젊어서 그런지 참으로 대담해.”

    마리 얀스가 웃으며 감탄했다.

    경제적으로도 의식적으로도 베를린 필하모닉처럼 과감할 수 없는 그로 서는 그저 신기하고 기쁠 뿐이었다.

    음악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물씬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참. 그러고 보니 아리엘 감독의 신곡도 반응이 좋더군요.”

    “오오. 봄의 여신 말인가. 나도 즐겨 듣고 있네.”

    루빈스타인의 말에 사카모토가 맞장구쳤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도 새 감독을 맞이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더 군. 멋진 손자를 두어 뿌듯하겠구 만?”

    사카모토의 덕담에 마리 얀스가 웃음으로 화답했다.

    “실은 나도 깜짝 놀랐네. 녀석이 그런 곡도 만들 수 있을 거라곤 생 각 못 했지.”

    “껄껄. 이제 보니 자랑하고 싶었는데 참고 있었구만.”

    마리 얀스가 손자 자랑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한편.

    다른 기자들이 어떻게든 유명 인사들과 인터뷰를 나누고자 할 때, 이 시하라 린만은 다른 곳에 주목하고 있었다.

    “저긴 어디서 온 사람들이지?”

    “어디요?”

    “저기. 어린애들 같은데.”

    이시하라의 말에 시선을 돌린 카메라 기자가 의아해했다.

    “셀럽만 온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네요. 아, 저기도 있어요. 더 어린 데.”

    “..저기요! 저기요!”

    수십 명의 어린아이의 정체가 궁금했던 이시하라의 시야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직원이 포착되었다.

    푸르트벵글러호의 승무원은 갑자기 자신을 붙잡은 동양인 기자 덕분에 깜짝 놀라 하마터면 들고 있던 접시를 떨어뜨릴 뻔했다.

    “ 네?”

    “아사히 신문에서 나왔습니다. 저기 저 아이들은 어떻게 초청받은 건 가요?”

    이시하라의 질문에 고개를 돌린 직원이 아 하고 감탄사를 뱉은 뒤 답 했다.

    “베를린 복지센터에서 온 아이들이에요. 보스께서 따로 초청하셨어요.”

    “복지센터?”

    “ 네.”

    이시하라가 다시 한번 그들을 살피 자 확실히 행동이 다른 사람과 조금 달라 보였다.

    몸이 불편한 아이들의 무리도 있었고 그러진 않은 것 같지만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어린 아이들의 무리도 있었다.

    이시하라 린이 거듭 물었다.

    “어린아이나 장애인도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건가요?”

    “네. 애초에 베를린 필하모닉 밴드 도 그런 이유로 만들어졌으니까요. 아,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직원이 서둘러 자리를 뜨자 이시하 라 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티켓이 비싸니까 초청한 거라 생 각했는데 밴드 자체가 저 아이들 때 문이라고?”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요.”

    “바쁘다고 상대 안 해준단 말이야.”

    “그럼 다른 사람은요?”

    “다른 사람? 누구?”

    “히무라 대표나 나카무라 위원장은 알지 않을까요?”

    “그거다!”

    이시하라 린이 핸드폰을 꺼내 히무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시하라 씨?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죠?”

    -하하. 너무 편하게 있어 문제죠. 그런데 무슨 일로?

    “아이 참. 아시면서. 대표님도 푸르트벵글러호에 계시죠? 인터뷰 좀 부 탁드리려고요.”

    -하하. 저 같은 퇴물에게 얻을 거 없을 텐데.

    “그럴 리가요. 일본 클래식 음악계를 살린 장본인이자 최고의 매니지 먼트를 이끄시는 분인데. 또 도빈이 랑 제일 가까우시잖아요.”

    카메라 기자는 이시하라 린의 입발 린 말에 눈썹을 찡그렸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대놓고 아부하 는데 히무라 쇼우만 한 사람이 좋아 할까 싶었다. 도리어 반감만 사지 않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네! 그럼 선미에서 봬요!”

    이시하라 린이 밝은 목소리로 통화를 마쳤다.

    “해준대요?”

    “그럼! 내가 또 인터뷰는 기똥차게 따잖아.”

    “하핫. 농담도.”

    실장으로 진급한 박선영이 매니저 사업을 전담하고 또 성공적으로 꾸 려나갔고.

    샛별 엔터테인먼트가 성장함에 따 라 능력 있는 직원도 늘어나니 사실 상 할 일이 없어진 히무라 쇼우.

    그가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불렸다는 걸, 그래서 너무나 기쁘다는 걸 이시하라 린과 그의 파트너가 알고 있을 리 없었다.

    푸르트벵글러호의 첫 공연은 ‘웃고 떠드는 4중주’로 시작된 ‘베를린 필하모닉 밴드’가 맡았다.

    진수식 뒤, 선상에서 이루어진 파 티 뒤에 공연이 있다는 사실에 초대 받은 이들은 모두 반가워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티켓은 평균보 다 비싸기도 했지만 예매 자체가 힘 들기 때문이었다.

    오후 6시.

    800여 석의 콘서트홀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베를린 필하모닉 밴드의 수준 높은 연주를 기대하고 있었다.

    “찰스 브라움, 나윤희, 다니엘 홀랜 드, 왕소소. 화려하단 말이 이보다 어울릴 수 있나?”

    “그러게. 나카무라 료코가 의외긴 해도 어차피 비올라는 보조하는 역 할이니까. 어디다 놓아도 손꼽힐 만 한 구성이야.”

    “스칼라란 친구는 어디 출신이지?”

    “글쎄. 켈틱 하프라. 특이하네.”

    “가수도 있네. 진짜 밴드인데? 진……. 뭐라고 읽어야지?”

    기자들은 팸플릿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찰스 브라움과 다니엘 홀랜드는 각자 분야에서 오랜 시간 정상에서 내 려오지 않은, 이른바 거장이었다.

    나윤희의 경우에는 오케스트라 대전에서의 열연 후 베를린 필하모닉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사랑 받았으며 왕소소의 경우에도 안정적 인 연주로 평단과 팬심을 사로잡은 연주자였다.

    비올라와 가수가 무명에 가깝기에 아쉽긴 하지만 연주진만큼은 세계 그 어떤 무대에 올려도 손꼽힐 구성 이었다.

    이윽고.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자들이 무 대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호른, 트럼펫, 트롬본 연주자들이 무대를 감싸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고 그 앞을 플루트, 바순, 오보에.

    그리고 특이하게도 알토, 바리톤, 테너 색소폰이 각각 2대씩 함께 있었다.

    그간 소속 단원이 아니고선 함께 연주하는 일이 지극히 적었던 베를린 필하모닉이었기에, 전문가들의 눈에는 무척 신선하게 비쳤다.

    그렇게 관악기가 주변을 감싸고 있는 형태로 베를린 필하모닉 밴드가 자리를 잡았다.

    “실내악단이라 들었는데 엄청나잖아?”

    “연주할 곡 때문에 그런 거 같은 데? 편성에는 현악기로만 구성되어 있어.”

    “대체 뭘 연주하려고 제목까지 안 써놨는지 모르겠네.”

    “베를린 필하모닉이잖아. 기대해서 손해 볼 것 없지.”

    “하기야. 아, 배도빈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새로운 도전에 잔뜩 기대감을 가졌던 관객들이 배도빈을 열렬히 맞이했다.

    “마에스트로!”

    “와! 배도빈이다!”

    “흐햫!”

    팬들의 환호를 받은 배도빈이 정면 과 좌우를 향해 인사했고 돌아서 밴 드와 금관 악기 연주진을 앞에 두었다.

    그때까지 의견을 나누던 기자들이 대화를 멈추었다.

    곧 연주가 시작될 터라 당연한 행 동이거늘.

    “아핫!”

    “히히 히힛

    “저기, 언제 시작해요?”

    “의자 푹신푹신해!”

    콘서트홀의 분위기는 여전히 떠들 썩했다.

    음악계 인사들과 기자들은 익숙하 지 않은 분위기에 심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아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좀처럼 가라앉을 생각이 없었다.

    ‘ 뭐야?’

    ‘보통 제재하지 않나?’

    ‘인솔자가 누구야? 어디서 나왔어?’

    불편한 상황에서.

    배도빈이 두 팔을 힘차게 휘둘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연주를 시작할 줄은 몰랐던 관객들은 갑자기 터져 나온 관악기 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색소폰과 트럼펫이 완만한 경사를 내달렸고.

    트럼본과 오보에가 그 사이에 튀어 나오며 긴박한 느낌을 주었다.

    아이들이 환호했다.

    “나 이거 알아!”

    “도일! 도일!”

    신나는 주제가 반복되며 분위기를 고조했고 곧장 대두되는 색소폰과 바이올린의 우수 젖은 멜로디.

    명확하면서도 간절한 음률에 음악 계 거장들과 기자들은 당황했다.

    “와아!”

    그들의 아이가 보던 만화영화 곡이 라는 걸 눈치채기까지 그리 오래 걸 리지 않았다.

    ‘이게 뭐야.’

    배도빈의 선곡과 그것을 연주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진의 즐거운 표정 그리고 열광하는 아이들.

    지금까지의 베를린 필하모닉에 익 숙했던 이들은 전혀 다른 세계에 놓인 듯한 기분이었다.

    한편 사카모토 료이치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즐거워했다.

    그는 이 곡이 배도빈이 편곡한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챘고 그럼에도 이 신나는 곡에 현악기를 멋들어지게 곁들인 자가 누군지 궁금했다.

    그러면서.

    어느 누군가 먼저 시작한 박수에 맞춰 손뼉을 쳤다.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마리 얀스는 어리둥절하고 있다가 오랜 친구 사카모토 료이치가 어깨춤을 추며 박 수까지 보내니 황당하여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160초가량의 짧은 연주가 끝나고 아이들은 열광, 어른들은 당 황한 가운데.

    배도빈 앞으로 마이크가 전달되었다.

    공연 도중에 지휘자가 마이크라니.

    코멘트가 있는 연주는 지금껏 많았지만 배도빈이 그럴 거라고는 생각 할 수 없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에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때부터 악장 사이의 박수조차 허용치 않았던 엄격한 룰이 있었다.

    “재밌어요?”

    “네!”

    “하학! 히히힛!”

    배도빈의 질문에 큰 소리로 대답하는 아이들.

    배도빈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다음 곡에 맞춰 노래할 가수를 무대 위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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