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64화 (364/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364화

    79. 희망의 오케스트라(4)

    베를린 필하모닉이 기자회견을 연 다는 소식에 언론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케스트라 대전 이후.

    베를린 필하모닉은 1년에 걸쳐 대 대적인 리빌딩에 들어섰다.

    정상에 오르고도 그간의 시스템을 바꿔나가는 그들의 모습은 타 오케스트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안주하지 않고 나아가는 점에 자극 받은 빈 필하모닉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으며, 암스테르담 로얄 콘세 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의 경우에는 마리 얀스와 악장단이 신곡을 발표 하며 레퍼토리의 확장과 독립성을 갖추었다.

    그 외에도 많은 오케스트라가 변화를 시도했지만 그중에서도 혁신이라 불릴 곳은 베를린 필하모닉뿐.

    라이든샤프트란 새 시대의 문을 열어젖힌 배도빈이 이번에는 과연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그 관심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히야. 많다. 많아.”

    아사히 신문 문화부 소속, 이시하 라 린 수석기자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언론사를 살피며 혀를 내둘렀다.

    클래식 음악계 현장을 좀 더 오래 느끼기 위해 차장 진급조차 몇 년째 거절해 오던 그녀는 배도빈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영향력을 새삼 느끼 고 있었다.

    그녀의 오랜 파트너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짜 어마어마하네요.”

    “그러니까. 아니, 보통 기자회견을 여는데 다른 나라 기자까지 부르 나?”

    “이시하라 씨도 오셨잖아요.”

    “나야 원래 도빈이 전담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치면 아는 얼굴들 많은데요, 뭘. 다들 벌써 10년 넘게 배도빈 쫓아다녔으니.”

    “그건 그렇지. 아, 저 사람 오랜만 이네.”

    “모리스 르블랑 편집장이네요. 진급하곤 현장에서 보는 건 오랜만이 네요.”

    “그러게. 예전에는 곧잘 보였는데.”

    “다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잖아요. 이시하라 씨는 관심 없으세요? 이번에도 진급대상자에 오르셨던데.”

    “그런 데 관심 없어. 관리직에 있으면 마음대로 못 다니잖아. 난 기 자로 살고 싶지 사무실에서 서류나 보고 싶은 게 아니라고.”

    두 사람이 배도빈을 기다리며 시시 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다른 기자들도 저마다 대화를 이어나갔다.

    “역시 배도빈인가. 기자회견도 범 지구적으로 여는구만.”

    “그럴 수밖에. 이제 세계를 상대로 하니까.”

    “해상 오케스트라 말이지? 그러고 보니 진수식이 모레구만.”

    “이번 주는 베를린 필하모닉 특집 이겠어.”

    이런저런 말이 나오는 도중에도.

    기자들의 마음속에 가장 관심 있는 화제는 가장 자극적인 일일 수밖에 없었다.

    최고의 시기에 닥친 스캔들.

    한스 이안 폭행 사건.

    그로 인해 한스 이안이 솔로로 나오는 공연은 예약된 티켓의 17퍼센트가 취소되었다.

    그 정도로 큰 사건이었기에 베를린 필하모닉과 한스 이안 그리고 배도빈이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할 수밖 에 없었다.

    “오늘 말이 나오긴 하겠지?

    “공식적으론 해상 오케스트라랑 실내악단 발표라고 했잖아.”

    “둘러봐. 친 베를린 필하모닉 언론 밖에 없잖아. 아무래도 난 한스 이안 관련해서도 뭔가 말 나올 것 같은데.”

    “언급하려 할까? 괜히 사이 틀어져 서 이런 기회도 박탈당하면 손핸데.”

    “혹시 또 모르지. 누가 대신 물어 봐 줄지.”

    “그거 좋네.”

    분위기가 무르익고.

    준비를 마친 배도빈과 케르바 슈타 인이 약속된 시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엇.’

    ‘푸르트벵글러와 배도빈이 아니고?’

    ‘세상에나.’

    지난 40년간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징이었던 마에스트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그가 베를린 필하모닉의 새로운 사 업을 발표하는 자리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자들은 기자회견 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카메라를 터 뜨렸다.

    “우선 찾아와 주신 내빈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두 지휘자가 자리에 앉자, 이자벨 멀핀 부장이 멀리서 방문해 준 여러 언론사에 감사를 표했다.

    “그간 우리 베를린 필하모닉은 여 러 변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1년간 악단은 성장했고 단원들의 기 술은 더욱 예리해졌습니다. 우리는 베를린 필하모닉을 사랑하는 분들께 새로운 모습을 공개할 때가 되었다 고 판단했습니다. 지금부터 베를린 필하모닉의 악단주이자 상임 지휘자 께서 관련 내용을 발표해 주시겠습니다.”

    이자벨 멀핀의 말과 함께 모든 시 선이 배도빈에게 쏠렸다.

    그는 무척이나 화가 난 표정을 짓 고 있었는데 회장에 모인 기자들은 분명 얼마 전부터 베를린 필하모닉을 공격하기 시작한 ‘레 자미’에 대 한 분노로 추측했다.

    “우선.”

    배도빈의 말과 함께 기자들이 침을 삼켰다.

    ‘설마 처음부터?’

    ‘이건 무조건 올려야 해.’

    기자들은 그간 배도빈의 행적을 떠 올리며 절대 부드러운 표현이 아닐 것을 직감했다.

    “많이들 의아해하실 테니 밝히고 가겠습니다.”

    배도빈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푸르트벵글러가 배탈이 났다고 합니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

    카메라 셔터 소리조차 멈췄다.

    “요즘 들어 자꾸 꾀병을 부리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팬 분들이 그를 사랑하는 만큼 저와 베를린 필하모닉도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깊이 존경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약속드 립니다. 그의 은퇴는 책임지고 막겠습니다.”

    배도빈이 말을 마칠 때까지 눈만 깜빡이던 기자들이 이해를 마쳤다.

    그 순간 밀려드는 안쓰러움은 만 78세의 노인에 대한 공경이었다.

    그러나 실시간 중계를 확인하고 있는 팬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ㄴ 미치겠다 진짴ㅋㅋㅋㅋ

    ㄴ 40년간 지휘를 해오신 황희, 빌 헬름 푸르트벵글러 이십니다TTTT

    ㄴ 아닠ㅋㅋㅋ 이젠 좀 쉬어도 되지 않나? 40년이나 했잖앜ㅋㅋ 오케스트라 대전에서 왕위 계승도 해줬잖앜ㅋㅋㅋ

    ㄴ 나는 배도빈 악단주의 결정에 감사하다. 13살, 아버지와 함께 그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을 접하고 지난 30년을 베를린 필하모닉과 빌 헬름 푸르트벵글러의 팬으로 살아왔다. 조금이라도 더 그와 함께하고 싶다.

    ㄴ 이거 명장에 대한 존경이냐 아님 노인 학대냨ㅋㅋㅋ

    ㄴ 내가 볼 땐 학대임ㅋㅋㅋㅋ

    ㄴ 솔직히 오늘 푸르트벵글러 안 나 오는 거 보고 놀랐는데 저렇게 말해 줘서 다행이다.

    ㄴ 네, 다음 악덕 고용주.

    다들 황당해하고 있는 사이, 그래 모폰의 한스 레넌이 손을 들었다.

    이자벨 멀핀이 그를 지목하여 발언 기회를 주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활동을 약 속하셨는데, 이제 곧 여든 살이 될 그의 건강이 우려되기도 합니다.”

    한스 레넌의 말에 배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푸르트벵글러가 일어날 때부터 잠들 때까지 각 분야 의 전문가가 케어하고 있습니다.”

    한스 레넌과 기자들은 배도빈이 푸르트벵글러의 건강을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들로서는 밤 10시만 되면 강제 로 침대에 누워야 하고, 아침 7시면 납치당해 공원에서 산책을 해야 했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입장을 알 수 없었다.

    육식 동물이나 마찬가지였던 그가 적절한 양의 육류를 섭취하면서 동 시에 적당한 운동과 채식을 겸하니 날로 건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최고의 진료진이 그의 몸을 빠짐없이 관리했는데, 그 탓에 푸르트벵글러가 아무리 꾀병을 부려 도 통할 리가 없었다.

    배도빈이 머리를 옆으로 넘기곤 마 이크를 쥐었다.

    기자 회견을 연 목적으로 돌아간 그는 새로운 베를린 필하모닉을 차 분히 설명했다.

    “지난 1년간 준비했던 해상 오케스트라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아시다시피 모레, 함부르크에 서 진수식을 가질 예정입니다.”

    배도빈이 잠시 말을 멈추자 NBC 의 김준용 기자가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었다.

    “준비하고 계신 실내악단 공연도 함께라 들었습니다. 자세한 일정 부탁드립니다.”

    “네. 찰스 브라움, 나윤희, 다니엘 홀랜드, 왕소소, 스칼라, 진달래 외 3명으로 구성된 실내악단이 진수식 자축 무대에서 첫 공연을 가질 예정 입니다. 다음주부터는 정규 일정에 편성되어 다양한 음악을 들려드릴 계획이고요.”

    배도빈이 신호를 주자 이자벨 멀핀 이 리모콘을 조작해 베를린 필하모닉의 크루즈, ‘푸르트벵글러호’의 사진을 스크린에 띄웠다.

    167,000톤의 초대형 크루즈 푸르트벵글러호는 승무원만 1,500명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다.

    안내 자료에 소개된 푸르트벵글러 호의 길心1는 35001터, 폭 50°!터에 18층 건물 높이를 보유했으며.

    그러한 스펙에 기자들은 깜짝 놀라 고 말았다.

    ㄴ 이름 누가 지었냨ㅋㅋㅋㅋ

    ㄴ 난 왜 푸르트벵글러가 안 나온지 알 것 같닼ㅋㅋㅋㅋ

    ㄴ 누가 봐도 부끄러워서 안 나온 거잖앜ㅋㅋㅋㅋㅋ

    ㄴ 배도빈 자랑스러워하는 것 봨ㅋ

    ㄴ 사인: 부끄러움.

    푸르트벵글러호는 특별한 콘서트홀을 보유해, 다른 초대형 크루즈에 비해 객실은 적었으나 약 4,000명의 승객을 소화할 수 있었다.

    기자들의 질문이 쇄도했고.

    관련 질문은 이자벨 멀핀 부장에 의해 답변되었다.

    ‘세상에나.’

    ‘WH해운과 협력했다더니 과연.’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회장의 분위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정말 바다 위의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푸르트벵글러호의 구조와 설비는 완벽해 보였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준비한 이야기를 모두 발표한 뒤, 기자들에게 자 유 발언 시간을 주었다.

    그러자 기자들은 찰스 브라움과 나윤희를 중심으로 한 ‘베를린 필하모닉 밴드’와 ‘푸르트벵글러호’에 대해 묻기 시작했고.

    그 궁금증이 조금씩 해소되자 잠시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은 기자들 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고.

    그래모폰의 한스 레넌 기자가 용기를 내 질문을 던졌다.

    “최근 부수석 자리에 오른 한스 이 안에 대한 폭행 사건이 화두입니다. 그에 대한 베를린 필하모닉의 입장을 듣고 싶습니다.”

    다소 흥분했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러나 베를린 필하모닉으로서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기에 이자벨 멀핀 부장은 준비했던 멘 트를 떠올리며 배도빈을 보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을 받은 이자벨 멀핀이 한스 레넌 기자의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언론사 레 자미의 보도 후 저희는 내부적으로 사건의 진위 여부를 파 악했습니다. 당시 한스 이안 부수석 과 함께 있었던 이승희 수석과 사건 장소의 점장에게 사실을 확인한 바, 한스 이안 부수석이 일방적으로 폭 행당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그를 도와 법적 책임을 물 예정입니다.”

    “악단으로서의 움직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베를린 필하모닉은 조작된 기 사를 통해 상당한 피해를 받았습니다. 레 자미는 그들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이자벨 멀핀의 단어 선택은 노골적으로 레 자미를 적대시하고 있었다.

    기자들이 다급히 손을 들었다.

    이자벨 멀핀이 한 기자를 지목했다.

    그는 일어서 예를 갖추었다.

    “한스 이안 부수석과 공연에 관련 한 일은 유감입니다.”

    서두를 던진 기자가 던진 발언에.

    배도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찰스 브라움과 최근에 합 류한 소프라노 진달래에 관한 일도 고소를 진행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앞선 이야기와 달리 그들에 대 한 기사는 지나친 반응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나치다?”

    배도빈이 나섰다.

    그 반응에 남자는 순간 움찔했지만 자신의 신념을 굽히진 않았다.

    “팬들은 베를린 필하모닉에 관해 알고 싶어 합니다. 언론은 대중이 원하는 정보를 알릴 의무가 있고요. 베를린 필하모닉과 단원 분들이 공 인으로서 좀 더 자각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한 기자의 용기 있는 발언은 베를린의 마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마크지의 벤 도리토스입니다.”

    “네, 도리토스 씨. 아마 레 자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한데. 도 리토스 씨도, 그자들도 착각하고 계 신 듯합니다.”

    “무엇을……

    “저를 포함한 베를린 필하모닉의 그 어떤 사람도 공인이 아닙니다. 공인은 시의원이나 경찰서장 같은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죠. 베를린 필하모닉이 언제부터 국가기관이었습니까?”

    “하지만.”

    “공개적인 일을 한다고 해서 공인 이 아닙니다. 그들은 개인으로서 본 인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에요. 착 각하지 마세요.”

    “베를린 필하모닉의 영향력은 이미 전 세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책임은.”

    “도리토스 씨는 단순한 흥미로 WH나 미시시피의 홍보팀 직원이 누구랑 데이트를 하는지 언론에 알 려지는 게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세계적 영향력을 따지면 WH와 미시시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배도빈의 연이은 질문에 벤 토리토스의 말문이 막혔다.

    “분명히 하죠.”

    배도빈은 도리토스를 보는 대신 카메라를 응시했다.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쓰레기 언론을 향한 말이었다.

    “가장 오래 자리를 지켰던 푸르트벵글러부터 가장 최근에 입단한 진 달래까지 단지 음악 하는 사람일 뿐 입니다.”

    배도빈의 어조는 명확했다.

    “우리 같은 사람은 팬 덕분에 존재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와 팬 사이를 연결해 주는 도리토스 씨와 같은 언 론인들께는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말하는 바도 분명했다.

    “그러나 누구와 데이트를 하는지, 엉덩이가 어떤지 같은 개인적인 일이 강제로 드러났을 때, 당사자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을지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경고였다.

    “그와 별개로. 악의적 의도를 가지 고 거짓 기사를 써내는 것은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배도빈이 주변을 둘러본 뒤 말을 마무리했다.

    “이상입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회장을 빠져 나가자 기자들도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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