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63화 (363/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363화

79. 희망의 오케스트라(3)

최근 들어 파리 한 마리가 귀찮게 굴고 있다.

앵앵거리는 소리가 거슬리긴 하다 만 어린이 타악 교실과 웃고 떠드는 밴드 그리고 해상 오케스트라에 집 중했다.

달콤한 냄새에 취해 사리분간 못

하는 벌레를 상대하느라 귀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진 않다.

오케스트라 대전 이후 1년간 준비 했던 사업이 이제 막 시작하려는데 막바지 작업을 소홀히 할 수도 없는 법.

카밀라와 멀핀이 적절히 대응해 줄 거라 믿으며 노트를 정리했다.

찰스 브라움에게 맡겼을 때는 관여 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대체자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직접 맡으려 했으나.

‘정기 연주회만으로도 힘들 텐데 꼭 그래야 해?’

‘이제 대학 강의도 나가야 하잖아.’

‘조금만 내려놓자.’

나윤희의 설득으로 그녀와 스칼라 에게 편곡 작업을 맡겼다.

찰스 브라움에 비해 작업 속도, 구 성력 모두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 나윤희 혼자서 맡기엔 버거워 보였다.

마침 스칼라가 현대 음악에 관심을 보였기에 공부도 할 겸, 나윤희를 보조해 주는 것으로 합의했다.

니아 발그레이로부터 이것저것 배 우고 있던 나윤희와 내게 고전 양식을 배우던 스칼라는 나름대로 진전을 보였다.

그러나 아직 원하는 만큼의 수준에 이르진 못하여 이런 식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곡을 제시해 주고 편곡 방향을 알 려준 뒤 두 사람의 결과물에 대해 피드백을 해주길 3개월째.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조급하지 않아도 돼.’

연주자로서의 나윤희와 스칼라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이쪽은 별개의 일.

조금 아쉬운 부분은 나와 니아 발 그레이가 도와주고 있으니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면 된다.

덕분에 요즘은 글을 많이 쓰게 되었는데 스칼라는 매번 알아보기 힘 들다고 불평이다.

나윤희도 처음 한 달은 힘들어 했지만 이후 내 필체에 익숙해진 것을 고려하면 녀석도 곧 내 대담하고 간 결한 필체의 매력을 이해할 것이다.

잡생각은 여기까지.

이승희의 제안으로 웃고 떠드는 밴드에 추가할 예정인 애니메이션 곡을 정리해야 한다.

똑똑-

한 시간쯤 흘렀을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 네.”

펜을 멈추지 않고 대답하자 누군가 조심스레 들어왔다.

“바, 바쁘시면 이따 올까요?”

앳된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프란츠 페터가 양동이와 대걸레를 들고 문 앞에서 삐쭉댔다.

마스크를 턱 아래로 내리고 천으로 머리를 가리고 있는데 겁을 먹은 모양.

문 뒤에 숨는다.

혼날 짓을 한다는 인식은 있는 듯하다.

“청소 안 해도 된다고 했잖아.”

“그, 그래도.”

“그럴 시간 있으면 공부해.”

이 녀석이고 진달래고.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조금 이라도 더 실력을 쌓는 게 도와주는 일이라는 걸 죽어도 이해 못 한다.

“세 번째야.”

“하지만 정말 그냥 있을 수 없어 서. 뭐라도 하게 해주세요.”

“설명은 충분히 했던 걸로 아는데.”

“그래도……

예전에는 내 말이라면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던 녀석이 이제는 이렇게 자기주장을 하는 건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행동이 저래서야 긍정적인 방향으로 향할 리 없다.

“음악 하라고 데려온 거야. 청소를 부탁할 거면 너 말고도 잘하는 사람 많아.”

녀석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청소부가 꿈이라면 나가. 나가서 기술자에게 배워. 굳이 여기서 시간 허비하지 말고.”

“아, 아아아아니에요. 아니에요. 잘 못했어요, 도빈 님. 제발. 제발 쫓아 내지 마세요. 제발.”

솔직히 말해 저럴 수밖에 없는 녀 석의 과거에 가슴 아프지만.

조금 짜증 나는 것도 사실이다.

쓸데없는 걱정 말고 즐겁게 살며 공부하라는데 도통 말을 안 듣는다.

집 주고 용돈 주고 학교까지 보내 주는데 이런 상황, 다른 사람에게는 꿈같은 일일 것이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자아가 약해서 이러는 건 알지만

언제까지고 저렇게 정신이 불안정한 상태로 살아가게 할 수도 없다.

“마스크랑 모자 벗어.”

프란츠가 잽싸게 마스크와 모자를 주머니 안에 넣었다.

그러고는 멍청하게 웃는데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악보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마지막이야. 아무 걱정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하고 싶은 거……

“그래.”

청소를 하든 솔잎을 따러 다니든 프란츠의 삶을 정해주고 싶진 않다.

다만 녀석 스스로 작곡가의 길을 선택한다면 최대한 도와주고 싶을 뿐.

애석하긴 해도 내 고집으로 강제할 수는 없는 법이다.

“ 실은.”

녀석이 뭔가를 말하려는 듯해 펜을 놓았다.

“공부가 너무 어려워요.”

양쪽 검지를 맞부딪치며 생각도 못 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녀석만 한 재능을 가진 사람도 드문데, 일반 학교도 아니고 예술학교 의 작곡 과정이 어려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곡을 만드는 건 즐거웠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자꾸 지금 하는 게 맞는지 알 수 없어서 무서워져요. 선 생님들이 가르쳐 주시는 양식에 맞출 수도 없고. 그렇게 해보려 해도 어려워서……

“어렵다고?”

“지금까지는 제 마음대로 했는데, 배운 대로 하려니까 자꾸 틀린 것 같아요.”

당장에라도 울 것 같다.

“흠.”

“그래서 도빈 님의.”

“형.”

“……혀, 형의 기대에 못 미칠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워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핸드폰을 들어 히무라에게 전화하 니 이내 하품 소리와 함께 느긋한 목소리가 반겼다.

-으음. 도빈아.

“자고 있었어요?”

-응. 요즘 실업자야.

“실업?”

이건 또 무슨 소리지.

-회사 일은 거의 선영이가 맡고 있고 요즘엔 뒷방 노인네 취급당하 고 있어. 정말 세월 무섭다.

“이제 고작 40대 중반이면서 그런 말 하면 안 되죠. 젊다고요.”

-너도 이 나이 먹으면 이해할 거야.

부지런했던 어린 친구가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부린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프란츠 학교 그만둬야겠어요.”

- 갑자기?

“정규 과정이 도리어 안 좋은 것 같아요. 관련 일 좀 처리해 주세요.”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프란츠는 불 안한 듯 눈만 깜빡이고 있다.

-뭐, 너랑 페터 생각이 그렇다면 어렵지 않지.

“네, 부탁해요.”

-그래. 이런 소일거리나 처리하는 신세라니. 다른 일이라도 알아볼까.

히무라의 엄살에 한번 웃어주곤 전 화를 끊었다.

“도빈 님? 아니 형?”

“내일부터 학교 가지 마. 나 따라다니면서 알아서 공부하고. 궁금한 거 있으면 말해. 곡 쓸 때도 네 마 음대로 해. 봐줄 테니까.”

“저, 정말 그래도 돼요?”

“그래.”

이제 막 재능을 뻗으려는 녀석이 부담을 느껴서야 될 일도 안 된다.

지속적으로 흥미를 가지게 해주어 파고들어야만 성장할 수 있다.

이대로라면 프란츠가 그 재능을 썩 힐까 두렵다.

선생의 역할은 학생에게 방향을 제 시하는 것도, 대신 길을 걸어주는 것도 아니다.

흥미를 잃지 않게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으로도 프란츠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걸어 나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테고.

“그럼……. 뭐 하나 여쭤봐도 돼요?”

녀석이 눈을 똘망똘망 빛냈다.

“지금 하시는 거, 노인탐정 도일 테마곡이 죠?”

“애들이 좋아하는 곡이라더니 금방 알아보네.”

웃고 떠드는 밴드의 주 타깃은 어

린이와 청소년이었는데.

이승희가 ‘그러면 애니메이션을 해 야지’라는 의견을 내면서 노인탐정 도일의 메인 테마곡을 추천해 주었다.

나는 잘 모르지만 어느 날 갑자기 불법 약물을 먹고 노인이 된 고등학 생 명탐정의 이야기란다.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만화로 202 4년 현재 유럽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때 남쪽기차라든지 이승희 의 선곡 능력은 체험한 바 있어 일 단 도입.

색소폰 주자가 없는 탓에 B팀의 호른과 트럼펫 주자를 뽑아 시험 삼 아 해보니 꽤 괜찮은 물건이 나올 듯했다.

다만 색소폰이 없이 하려니 어떻게 그 느낌을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니 프란츠가 입을 벌리곤 눈을 빛냈다.

‘이 거.’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다.

“해볼래?”

“네?”

프란츠가 놀라 소리쳤다.

“제, 제가요? 제가 어떻게 감히.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할 곡을. 게 다가, 게다가 노인탐정 도일이라고요? 명작이라고요?”

“싫어?”

“아뇨! 아뇨! 그런 문제가 아니에 요!”

“그럼 해. 기한은 3일.”

“마, 말도 안 돼요. 3일만에 어떻게.”

“일주일 뒤에 무대에 올릴 거야. 못 하겠어?”

“아으으아으”

요상한 소리를 내며 갈팡질팡하던 프란츠가 각오를 굳힌 듯 두 손을 주먹 쥐었다.

“할게요!”

힘찬 대답이다.

처음으로 시원시원한 대답을 들어 무척 기분이 좋은데, 내가 할 일이 줄어든 것도 좋다.

해상 오케스트라에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하나씩 시키다가 익숙해지면 웃고 떠드는 밴드는 전부 넘기는 것도 괜

찮겠네.’

그러면 나윤희와 스칼라도 좀 더 연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나윤희가 짊어지고 있는 짐이 너무 많아 걱정하던 차에 잘 되었다.

똑똑 _

“ 네.”

노크 소리에 응하자 멀핀이 들어왔다.

프란츠에게 눈짓하니 녀석이 나와 멀핀에게 꾸벅 인사하곤 후다닥 뛰어나갔다.

어지간히 신난 모양.

멀핀이 날 보더니 살짝 웃는다.

“즐거워 보이시네요.”

“정말 그래요.”

멀핀의 얼굴에 물음표가 적혔지만 우선 처리할 일이 있는 모양.

그녀가 책상에 서류를 내려놓았다.

악단 운영에 관련된 것들인데 대부 분 카밀라와 멀핀이 처리하고 나는 확인만 하고 있다.

의례적인 일이라 적당히 넘기고 있는데 항상 그랬던 것처럼 멀핀이 특 이사항을 말해주었다.

“말씀하셨던 베를린 시내 복지센터

에 초청장을 보냈습니다. 웨인 씨 가족에게도 마찬가지고요. 부재중이 실 때 방문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 건 웨인 씨의 선물이에요.”

멀핀이 테이블에 오렌지 주스를 올 려놓았다.

“오렌지 주스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아셨지.”

“후훗. 보스 취향 모르는 팬은 없을 거예요. 음료는 항상 커피 아니 면 오렌지 주스잖아요.”

SNS에 올라가는 사진들이 다 그런 것들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단 거예요?”

“100퍼센트 과즙이네요.”

집에 가서 도진이 줘야겠다.

“그리고 레 자미에 대한 고소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번 공연의 티 켓 취소와 이미지 손상 등을 근거로 레 자미에게 160만 유로의 배상액을 청구할 예정입니다.”

20억 원 정도의 액수인데 솔직히 말하면 그마저도 적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멀핀과 법무팀이 알아서 할 테니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베를린 필하모닉뿐만 아니라 찰스 브라움, 한스 이안, 진달래 단원에 대한 고소도 따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 진행되는 사항은 따로 보고 드 리겠습니다.”

“네. 조금도 봐주지 마세요.”

“네. 그리고.. 최근 베를린 필하

모닉과 단원들에 대한 기사들로 인 터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대부분 커트했는데 그간 우호적이었던 인사는 답변 대기로 처리해 두었습니다.”

“누군데요?”

“그래모폰의 한스 레넌과 아사히 신문의 이시하라 린, 피가로의 모리

스 르블랑, 데이즈의 마리 살티스, NBC의 김준용 기자 외 11명입니다.”

“웃고 떠드는 밴드 공연 홍보도 할 겸 기자회견 가지도록 해요. 방금 언급되었던 사람들만 초청하시고요.”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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