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61화 (361/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361화

79. 희망의 오케스트라(1)

레 자미는 본래 시시한 가십거리나 다루는 영세한 언론사였다.

언론사라고는 해도 자체 잡지 발행이 불가능해, 각종 사이트와 타사의 잡지에 기사를 돈 주고 파는 일이 주 업무였다.

대표이자 편집장이자 경리인 에드가 린센은 유일한 직원인 알롱 앙리와 함께 굶어죽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3년 차에 접어들어도 나아 지지 않는 상황에 지쳐가고 있었다.

“린센! 전 더 이상 바게트를 먹지 않겠어요!”

“후우. 수익은 공평하게 6 대 4로 나누고 있는데 뭘 더 바라는 거야.”

“한 달에 300유로로 사는 것도 지 쳤다고요. 전 야채와 고기가 필요하다고요!”

“……어쩔 수 없지. 냉장고에 꿀 있으니까 가져와.”

“정말 그래도 돼요?”

“가끔은 사치를 부리는 것도 필요하겠지.”

린센과 앙리의 식사는 하루 바게트 하나와 종합비타민 한 알이었다.

사무실 임대료와 최소한의 경비를 제외하면 남는 돈은 한 달에 고작 900유로에서 1,000유로 사이.

한화 130만 원 정도로 두 사람이 살아가기엔 너무도 적은 돈이었다.

유럽 최고의 언론인이 되자던 꿈도 극빈한 삶을 이기지는 못했고 그들은 몸과 함께 무너져 가고 있었다.

에드가 린센은 바게트에 꿀을 발라 먹으며 행복해하는 알롱 앙리를 보며 생각했다.

이대로 가다간 저 착하고 순박한 남자와 함께 굶어죽을 것이 틀림없다고.

이대로는 꿈도 사랑도 이룰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지.’

그런 도중 알롱 앙리가 11인치 TV> 보며 입을 열었다.

“다다음 달에 베를린 필하모닉이 진수식을 하나 봐요.”

에드가 린센은 고개를 돌려 베를린 필하모닉에 관한 뉴스 보도를 확인 했다.

“나도 타보고 싶다아. 저기, 린센. 해상 오케스트라라니. 멋지지 않아요? 기사로 써야 할 것 같지 않아요?”

“꿈 깨.”

린센의 말에 앙리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애초에 잘 사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게 뻔하잖아. 유지비용만으로도 수십, 수백만 유로가 들 텐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디 타볼 수나 있겠어?”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린센이 고개를 저으며 물을 마셨다.

“쓸데없는 생각할 시간에 꺼리 좀 물어봐.”

“으음. 실은 잠깐 생각해 봤는데요.”

앙리가 바게트를 꼭 쥔 채 말했다.

“우린 너무 착한 기사만 내는 거 같아요. 노인 배우가 강아지를 입양 했다는 소식이나 아역 배우가 주니 어 축구 대회에서 골을 넣은 이야 기를 궁금해할까요?”

“그럼?”

“관심 가질 건 많잖아요. 예를 들어 크리스틴 노만 감독은 정말 독신 인가? 같은.”

“하나도 안 궁금한데.”

“그러니까 린센이 가난한 거예요.”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건 린센이. 아니야. 말 끊지 말아 봐요. 대중은 유명한 사람의 사 생활을 궁금해한다고요.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죠.”

“안 돼. 그러다 고소당하면 어쩌게. 난 돈 없어.”

“적당히 쓰면 되죠.”

린센은 자신이 조금씩 앙리의 말에 이끌리고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예를 들어 이거. 가우왕은 대체 왜 항상 빨간 옷을 입는가. 궁금하 지 않아요?”

“중국인이라서 그런 거 아니야? 중 국에선 왜 빨간색의 부의 상징이라 며.”

“인종차별적 발언이지만 뭐 그런 식으로 관심을 끄는 것도 방법이겠죠.”

“그런 건 안 된다니까?”

“고소 당해 전재산을 넘기고도 매달 돈을 뜯기든, 이대로 굶어죽든 똑같다고요.”

린센은 자신만을 믿고 따라와준 대 학 후배의 말에 마음을 굳혔다.

“그래. 좋아. 어디 한번 써봐.”

“맡겨만 주세요.”

【찰스 브라움의 엉덩이는 건강한가!]

올해 초 해상 오케스트라 사업을 발표한 베를린 필하모닉의 진수식이 다음 달로 다가왔다.

해상 오케스트라란 주요 도시를 거 점으로 호화 크루즈 여행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아름다운 선율을 즐길 수 있는 패키지 여행 상품으로서 예 약이 시작된 저번 달 11일, 10분 만에 마감되었다.

1 달간 해상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해상 오케스트라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이벤트이기도 하다.

그러나 1달 이상 바다에 체류하게 되는 특성상 베를린 필하모닉의 악 장 찰스 브라움의 엉덩이가 무척이 나 우려되는 사항이다.

그는 오케스트라 대전 이후 공식석 상에 나오는 일이 줄었고 그나마도 무척이나 헬쓱한 모습을 보였는데, 믿을 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그의 수 술 부위가 다시금 문제를 일으킨 듯.

그가 1달 이상 배에서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간판이자 수많은 팬을 거느린 찰스 브라움 악장의 엉덩이가 무사하길 바란다.

-레 자미(알롱 앙리)

가우왕의 하이패션을 지적하면서 레 자미 역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렸던 알롱 앙리 기자가 또 하나의 기 사를 써냈다.

그것을 검토하던 에드가 린센 대표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너 제정신이니?”

“그럼요. 혹시나 고소당할까 봐 걱 정하는 투로 썼잖아요.”

태연하게 말하는 앙리를 보고도 믿을 수 없었던 린센은 기사를 다시금 들여다보았다.

‘이런 건 기사가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존재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이었다.

“너 혹시 약 하니?”

“그럴 돈이 어딨어요.”

“그렇기야 하지......

“린센, 날 믿어요. 당신과 내가 굶 어죽게 내버려두진 않을 거예요. 우린 조만간 비타민이 아니라 진짜 야 채를 먹을 수 있고 냄새만이 아니라 진짜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린센!”

앙리의 눈은 진지했다.

무엇에 꽂힌 남자의 눈은 이렇게나 이글대는 건가 싶었던 린센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 자미의 기사는 가우왕을 저격했던 글 이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확실한 정보도 없이 작성된 헛소리 에 불과했지만 적어도 언론사란 이름을 내걸고 커뮤니티 사이트에나 올라올 법한 글이 등재되자 난리가 났다.

ㄴ 맙소샄ㅋㅋㅋㅋ

ㄴ 아닠 ㅋㅋ 기자가 미쳤나?

ㄴ 제정신이 아닌 듯ㅋㅋㅋㅋ

ㄴ 근데 진짜 요즘 찰스 브라움 얼 굴이 안 좋아 보이긴 했음. 좀 걱정 된다.

ㄴ 신고 어디로 해야 하냐?

ㄴ 이거 쓴 사람 전에 가우왕 저격 하지 않았음? 진짜 정신줄 놓고 쓰넼ㅋㅋㅋㅋ

클래식 음악 팬들은 알롱 앙리의 기사를 각종 사이트에 퍼나르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알롱 앙리의 기사는 수십 만 명이 읽게 되었고, 팬들은 자연 스레 찰스 브라움의 엉덩이를 장난 반, 진심 반으로 걱정했다.

그리고.

그 기사를 접한 고귀한 혈통의 바이올리니스트는 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분노했다.

“학학핳학학!”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가장 먼저 소식을 접한 마누엘 노이어가 굳이 웃고 떠드는 밴드의 연습실까지 찾아 왔다.

호흡조차 못할 정도로 웃는 마누엘 노이어가 알롱 앙리의 기사를 보였고.

그것을 확인한 찰스 브라움은 치욕 에 몸을 떨었다.

“누구야!”

“꺽학학헉핳학우웩. 핳학학학.”

그 반응이 마누엘 노이어를 한 번 더 웃겼다.

찰스 브라움은 분에 못 이겨 연습실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무슨 일이에요?”

배도빈이 의아해하며 다가가니 마누엘 노이어가 핸드폰을 넘겼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궁금했던 다른 이들도 그 주변에 모였다.

“헐.”

“크핳학하하.”

“하핫.”

진달래와 다니엘 홀랜드, 왕소소가 각자 반응했다.

“검사 한 번 더 받게 해야 하나?”

배도빈이 기사를 진지하게 대하자 참고 있던 나윤희도 터져 버렸다.

한참을 웃고 난 뒤에야 진정한 다니엘 홀랜드가 양 손바닥을 보이며 항복했다.

“정말 대단한 기자군. 찰스가 제대로 한 방 먹었어.”

“이거 봐. 댓글만 2만 개가 넘어. 미쳤어. 쩔어.”

진달래가 자신의 핸드폰으로 기사를 확인하곤 ‘부럽다’고 덧붙였다.

“난 이해할 수 없군. 왜 그의 엉덩 이에 관심을 가지는 거지?”

홀로 웃지 않은 스칼라가 팔짱을 낀 채 물었다.

그 질문에 나윤희와 다니엘 홀랜드 가 설명해 주려 하다가 정확히 어떤 식으로 풀어내야 좋을지 몰라 포기했다.

“인기 있으니까 그렇지.”

“ 인기?”

스칼라가 되물었다.

진달래가 주먹을 쥔 채 검지를 들 어 올리며 아는 체 했다.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 받는 다고.”

“더러운 이야기군.”

“말이 그렇단 거지. 아, 나도 유명 해지고 싶다.”

진달래가 한숨을 내쉬었는데.

그때 함께 기사를 살펴보고 있던 나윤희와 왕소소가 입을 떡 하니 벌렸다.

그러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진달래를 보았는데, 그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뭐야? 왜?”

나윤희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달래야 너……. 저번 주에 아리엘 얀스 씨 만났어?”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진달래가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분명 부정하는 말이었지만 나윤희 와 왕소소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무, 무슨 소리야. 왜.”

왕소소가 핸드폰을 앞으로 내밀었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아리엘 얀 스 감독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소프라 노의 밀회】

“아. 어. 어? 엥?”

기사를 확인한 진달래가 핸드폰과 왕소소, 나윤희 그리고 배도빈을 번갈아 보며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왕소소가 드물게 흥분 해 진달래를 노려보았다.

“바른 대로 불어.”

“아니. 그게.”

“무슨 짓 했어!”

“아니 진짜 별일 없었어. 그냥 공연 보고 밥 먹고 얘기하고. 아니, 이거 근데 사생활 침해 아니야? 이 사진 뭔데?”

진달래가 믿기지 않는지 카페 안에 마주보고 앉아 있는 자신과 아리엘 얀스를 살폈다.

그러고는 사진을 다운로드 받았는데 그것이 소소의 심기를 한 번 더 자극 해 버렸다.

“아! 언니!”

“아직 무대도 안 올랐으면서 이런 거로 이름 알려지면 어쩌려고 그래! 너 그러고 싶어?”

멍청하지만 착하다며.

배도빈에게 직접 진달래를 돌봐달라 부탁했던 왕소소는 진심으로 동생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렇게나 열심히 노력했으면서.

노래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유명해져, 그 이미지가 고정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던 진달래는 순간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좀 더 조심하지 않았던 자신을 탓하게 되었다.

“누나.”

배도빈이 나윤희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그녀를 불렀다. 나윤희가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를 도렸다.

“소소 말 사실이에요?”

“지나친 걱정이면 좋겠는데. 솔직히 안 좋은 생각밖에 안 들어서.”

배도빈은 울먹이기 시작한 진달래를 보았다.

“이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마누엘 노이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고 동시에 연습실 밖에서 찰스 브라움의 노성이 터졌다.

그 모습을 확인하던 배도빈이 핸드 폰을 들었다.

-네, 보스. 그러지 않아도 연락드리 려고 했어요.

“같은 이야기겠네요. 제 방에서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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