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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347화 (347/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347화

76.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2)

“흐어?”

입단 합격을 축하하기 위해 배도빈 저택을 방문한 이승희, 나카무라 료 코와 같은 층에 살고 있던 나윤희, 왕소소가 전한 소식에.

진달래는 퉁퉁 부은 얼굴을 들었다.

“합격했다고!”

이승희가 다시금 축하했고.

떨어졌을 거라 확신하고 있던 진달래는 그 말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그르 리가 업짜나아.”

다시 얼굴을 파묻었다.

베개에 눌린 목소리에 이승희가 진달래의 등을 찰싹 때렸다.

“아!”

“얘가 답지 않게 왜 이래? 퍼뜩 일어나! 못 믿겠으면 확인해 보든가!”

진달래는 어쩔 수 없이 핸드폰으로 자신의 이메일 계정에 접속, 최종 합격 고지 메일을 확인했다.

“어?”

믿기지 않아 핸드폰과 지인들의 얼 굴을 번갈아 보던 진달래는 그들이 웃자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언니이이잉.”

진달래가 이승희에게 안기려 팔을 벌리고 상체를 앞으로 향했다.

“이럴 때가 아니야. 씻고 나와. 빨 리.”

그러나 질척거리는 걸 싫어하는 이 승희가 그것을 받아줄 리 만무.

신경 쓰고 입은 옷이 눈물과 콧물 로 더럽혀질까 몸을 빼낸 이승희가 진달래를 화장실에 처박았다.

한편.

배도빈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기 악부장인 질 루앙으로부터 감사 인 사를 받고 있었다.

-가우왕 씨하고의 일도 그렇고. 이 번 일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권 위가 확고해졌으니 어떻게 인사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에 스트로.

“저야말로.”

-하하. 직접 방문하고 싶은데 언제가 괜찮으신지?

“저도 루앙 씨도 서로 바쁘니 생략 하도록 하죠. 어차피 다음 달 말에는 뵙게 될 테니까요.”

-이거 면목 없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도록 하죠.

통화를 마친 배도빈은 질 루앙이 보낸 이메일을 확인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참가자는 4 월 30일까지 벨기에 파인 아츠 센터에 도착해야 했다.

‘녀석이라면 미리 갈 테니까.’

최지훈과 앞으로 한 달 정도는 못 만날 거라 생각하고 있는데 때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배도빈은 급히 전화를 받았다.

“네, 실장님.”

-도련님, 찾았습니다.

배도빈은 유장혁 회장의 비서실장 김재식이 전한 소식에 벌떡 일어났다.

“생존자는?”

-……면목 없습니다. 늦어져서 죄 송합니다.

WH는 유장혁 회장과 배도빈의 지 시로 비행기 추락 사건 당시 승무원들을 모두 찾을 때까지 조사를 이어 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존 가능성은 희 박했지만 유족들을 생각하면 그만둘 수 없었다.

직원을 가족처럼 여기는 유장혁 회 장과 가혹한 환경을 함께 경험했던 배도빈은 자발적으로 나서 모든 조 사비용을 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실종자를 찾아 낸 것이었다.

배도빈은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던 마지막 인원까지 찾았다는 말에 혹시나 싶었으나.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순간 어지러움을 느꼈다.

다리가 풀려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배도빈이 침을 삼켰다.

“……내일 한국으로 갈게요. 유족 분들과 만날 수 있게 해주세요.”

-힘든 일이실 겁니다.

“감내해야죠.”

김재식 실장은 앞서 몇 차례 생존 자와 유족들을 찾았던 배도빈을 걱 정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너무도 컸기에.

유족 중 일부는 WH그룹에 호의적일 수 없었다. 소수는 원망할 사람을 필요로 하기도 했다.

또는 매달릴 사람을 필요로 하기도 했다.

‘제발. 제발 우리 딸 좀 살려주세요. 선생님, 제발 우리 딸 좀 살려 주세요.’

‘살려내. 살려내! 내가, 아학. 내 아들. 내 아드으으으으을!’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내가 너 희 가만두지 않을 거야. 어! 사고 경위 철저히 조사해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가세요. 할 말 없습니다.’

‘와줘서 고마워요.’

유장혁 회장과 배도빈의 방문은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만은 못했다.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릴 것이 있는데.

“네.”

-지형이 워낙 험준해 현지에서 고용했던 가이드 업체 중 한곳이 어떤 마을과 갈등을 겪었습니다.

김재식의 말에 배도빈이 미간을 좁혔다.

“갈등이라됴?”

-주변을 수색하던 도중 조난자에 대해 물으려 했는데 공격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지만 두 명이 경상을 입었습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원만히 해결하려 했는데 대화가 통하지 않아 애를 먹는 중 도련님 성함과 스칼라라는 친구 이름을 반 복해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혹시.

배도빈이 눈을 감았다.

-도련님?

“……그 일 누가 알고 있죠?”

-네팔 구조대는 전원 알고 있고 저희 쪽에서도 소문이 났습니다. 그건 어찌.

“숨길 수 있나요?”

-입막음이라면 시도할 수 있겠지 만 대상을 특정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언론에 언급되는 걸 막는 정도 라면 가능합니다.

“우선 그렇게라도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배도빈은 굳이 이유를 묻지 않고 일을 진행하는 김재식이 고마웠다.

통화를 마친 그는 곧장 이자벨 멀 핀에게 내일부터 이틀간 자리를 비 울 예정이라 통보했다.

‘어머니, 아버지께 말씀드려야지. 스칼라한테도 알려야겠고.’

똑똑 _

“ 네.”

방을 나서려던 차, 노크 소리가 대 답하니 최지훈이 들어왔다.

“어디 가려고?”

“갑자기 일이 생겨서. 왜?”

“한동안 못 보니까 얼굴 보러 왔지. 밥 먹었어?”

최지훈이 종이 가방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슈퍼 슈바인의 로고를 확인한 배도빈은 웃은 뒤 소파에 앉았다.

포장해 온 카레를 먹으며 이런저런 나누던 두 사람은 자연스레 마지막 시신까지 찾았다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힘내.”

“걱정하지 마. 넌 콩쿠르 준비에 집중해.”

"응"

“빌어먹을 인간들이 하는 헛소리 귀에 담지 말고.”

배도빈의 응원에 최지훈이 웃었다.

배도빈에게 위로가 필요한 것처럼 최지훈도 마찬가지였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본선 진출이 확정된 순간부터 최지훈과 니나 케 베리히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는데.

이미 두 번의 메이저 콩쿠르에서 우승한 최지훈과 북미에서 왕성히 활동하는 니나 케베리히의 참전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비판이었다.

운영위원회에서는 18세부터 30세 까지의 모든 피아니스트가 참가 대 상이라고 확인해 주었지만, 원성은 여전했다.

특히나 최지훈에 대한 공격 여론이 심했는데.

얼마 전 JH71- 벨기에까지 진출하 니, 정치•경제적으로 벨기에에서 최지훈에게 특혜를 주지 않겠냐는 낭설까지 나오는 지경이었다.

배도빈과 최지훈 모두 어렸을 적부 터 지겹지도 않게 반복해 겪은 일이 라지만 상처받지 않을 리 만무.

그저 별다른 대화 없어도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친구와 점심을 함께 먹는 것으로 위로받을 뿐이었다.

“뭐?”

배도빈으로부터 소식을 전달받은 스칼라는 몹시 놀랐다. 상황을 거듭 확인한 뒤에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언론에 알려지는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알 사람은 다 알게 되겠지.”

“어쨌든 그들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니 같이 가자.”

“그래야지. ……빌어먹을.”

스칼라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걱정 과 그들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상황에 한탄했다.

“이용당하지만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마을에 갇혀 산 23년보다.

베를린시에서 보낸 지난 4개월간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테메스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방식의 음악이 너무나 많았고 그것을 접하는 과정은 가슴 벅찼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공연을 들을 때 마다, 웃고 떠드는 밴드와 연습할 때마다, 배도빈에게 음악을 배울 때 마다 행복했던 스칼라.

그는 이 좋은 환경을 누릴 수 없는 고향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이제 숨어 지낼 수조차 없게 되다니.

어쩌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스칼라는 초조한 마음으로 배도빈을 따라나섰고, 이내 그의 아 버지에게서 희망을 얻었다.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거잖아?”

배영준의 질문에 스칼라가 답을 망설였다.

“……그렇기는 한데.”

“그런데?”

“이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어차피 그곳에서 못 살게 되었다면 또 숨어 살 곳을 찾아야 할 텐데.”

그런 일이 쉬울 리 없다.

또 몇 년을 떠돌아다녀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그러는 과정에서 스칼라는 영영 가족과 고향 사람들을 잃을 수 있었다.

그때 배영준이 입을 열었다.

“빈 근처에 테메스족이 살았던 터가 있다고 했잖아.”

“네……

“실은 발굴 사업을 중단하면 다들 직장을 잃어버리게 되니까. 발견할 순 없어도 복원이라도 해보자고 말 해보고 있거든. 정보가 워낙 적어서 될까 싶지만.”

스칼라와 배도빈은 아직 배영준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배영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현장에서 숙식하면서 복구도 도와 줄 인재들이 필요한데. 테메스에 대한 학식이 아주 풍부한 여러 사람들 말이야. 어때?”

“아버지?”

배영준은 아들을 보았다가 스칼라와 눈을 마주하곤 설명을 이어나갔다.

“또다시 떠돌아다니는 것보단 고향 땅에서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스칼라의 눈은 배영준을 향한 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는 한 편 그의 가슴은 터질 듯이 뛰었다.

“조상들의 땅에서 살 수 있다고요?”

조심스러운 질문에 배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 대한 건……

“아마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아무리 숨기려 해도 결국 밝혀질 거야. 테 메스와의 관련성도 찾아낼 테고. 테 메스인을 찾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지.”

“그래서 숨으려면 연막이 필요하겠지. 위장 신분으로 테메스를 연구했던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라는 것보 다 좋은 선택지는 없을 것 같고.”

“정말 그럴 수 있나요? 만약.”

스칼라가 하던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아뇨. 그렇게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마을 사람들은 제가 설득할게요.”

* * *

배영준, 스칼라가 네팔로 향하고 일주일 뒤.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염원, 미지의 음악에 대한 갈증.

마지막으로 스칼라의 설득이 더해져 테메스인들은 스칼라가 그러했던 것처럼 WH 그룹의 도움을 받아, 난민 신분으로 오스트리아에 망명 신청을 냈다.

배영준은 그들을 테메스 문명 발굴 사업을 위해 개인적으로 고용한 전문 인력으로 대했고.

테메스인들이 가지고 온 그들의 물건은 그간 지지부진했던 테메스 발굴 사업의 가치를 입증하는 귀중한 사료로 인정받았다.

배영준과 그가 이끌었던 조사팀은 테메스를 잃어버린 문명으로 결론짓고.

실제 테메스인들이 가져온 물건들을 바탕으로 복구 사업을 실시.

사학계에서의 입지를 다져나갈 수 있었다.

한편, 배도빈은 마지막 발견자의 시신과 함께 유족들을 방문.

WH 그룹을 대표하여 장례를 도왔다.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죽은 아들보다 어린 아이가 고개를 숙이자.

그전까지만 해도 WH 그룹을 비난 했던 유족들도 더는 모질어질 수 없었다.

그저 답답한 가슴을 치며 자리에 주저앉아 울 뿐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누나, 아버지가 우는 가운데 아들 잃은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고개 들어요.”

배도빈은 천천히 허리를 폈다.

“WH항공에 입사했을 때 아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를 거예요. 공 부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조금씩 떨리는 목소리.

“당신과 함께 지낸다고 했을 때는 더 좋아했어요. 세계 최고의 음악가를 볼 수 있다고.”

어머니는 차마 말을 못 이었다.

눈물을 몇 번이나 삼킨 뒤에야 몹 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할 수 있었다.

“하늘에서도 들을 수 있게 더 멋진 음악 해주세요. 아들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누구의 잘 못도 없는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단지 누구라도 원망하지 않으면 버 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유족들을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며 사죄를 하고 다니는 아이.

그리고 반드시 찾아드리겠다던 약 속을 지킨 WH 그룹을 원망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배도빈이 더 이상 죄책감을 가지지 않도록, 아들이 가장 사랑했던 음악가가 계속 음악을 할 수 있도록 응원했고.

그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를 구속했던 하나의 족쇄를 녹이기에 충분했다.

배도빈은 1박 2일간 장례식장에 함께했고.

그러한 일은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법 없이 조용히 처리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4월 30일.

예선을 통과한 80명의 참가자들이 벨기에 파인 아츠 센터에 모였고.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공식 일정 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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