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44화 (344/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344화

75. 결성! 웃고 떠드는 밴드(4)

“미치겠네.”

이른 새벽부터 영상을 찍고 있던 진달래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노래를 확인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성악 강사에게 가이드라인을 받긴 했지만 카메라 앞에만 서면 긴장한 나머지 실수를 반복했다.

그렇게 2시간이 흐르고.

“아아아아악!”

몇 번을 녹음해도 마음에 들지 않은 탓에 피로가 쌓인 진달래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 하아.”

한숨을 내쉬니 생각이 많아졌다.

‘이번 기회 못 잡으면 너무 오래 걸릴 텐데.’

최근 그녀는 베를린 합창단에 들어 갈 수 있었고 단 한 번이었지만 무대에도 오른 적도 있었다.

일은 즐겁고 단원들도 마음에 들었다.

딱히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도리어 어느 정도 만족하는 편이었지만.

본래 그녀가 바랐던 목표와는 거리 가 있었기에 아쉬움을 느끼던 차.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가수를 구한 다는 소식을 접했다.

삼촌 칠삼과 함께 유럽 여행을 했을 때.

손을 잃고 음악가로서의 삶을 포기 했던 진달래는 새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지금은 익숙해진 의수를 달아주고.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환경까지 마련해준 배도빈.

그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진달래는 언론에서 말하는 세기의 천재, 인류의 희망, 교향곡의 마왕, 피아노 소나타의 신, 새 시대의 선지자라 불리는 그가 스스로를 얼마나 학대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마냥 멋지다고 생각했던 그도 한계 에 부딪힐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작업실 에 처박혀 기어이 문제를 해결해내고야 말았다.

음악을 대하는 그 자세가.

의수만큼이나 진달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거기에.

배도빈의 행동이 희망을 주었다면 베를린 필하모닉과 도이체 오퍼의 대형 오페라 〈투란도트〉는 그녀에게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류 역할을 맡았던 리리코 스핀토 소프라노, 레나 테발디는 특히나 진 달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75,000명의 관중을 목소리 하나로 휘어잡았던 그녀처럼 되고 싶다고.

언젠가는 반드시 그리 될 거라고 다짐하며 지난 2년을 보냈다.

남들은 진달래의 재능을 칭찬하고 부러워했다.

그 전까지 특별히 교육받은 적이 없었음에도 빠르게 성장한 그녀는 단 2년 만에 베를린 합창단의 준레 귤러가 되었다.

그것은 주변인들이 보기에 기적에 가까웠다.

그러나 레나 테발디란 목표를 가진 진달래는 만족할 수 없었다.

간혹 질투에 눈 먼 소리도 들렸지 만 개의치 않았다.

노래를 좀 더 잘하는 것 이외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끝에 찾아온 첫 번째 기회.

정당한 방법으로 자신에게 희망을 주었던 ‘그 녀석’과 같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었다.

놓칠 순 없었다.

‘다시 해보자.’

진달래가 다시 기운을 냈을 때.

빰바빠- 밤바빠바- 밤바빠— 밤빠-

가침 벨소리가 울렸고 발신자를 확 인한 진달래는 양팔과 양다리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오늘은 좀 늦나 싶었는데.’

진달래는 아리엘 대감이라고 저장된 번호를 볼 때마다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매일 밤 자기 전에 나누는 짧은 통화가 아리엘에게 큰 힘이 되듯, 하루의 시작과 함께 걸려오는 아리 엘의 목소리는 진달래에게 큰 활력 소였다.

“아직 안 잤네?”

-그대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으니까.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젊은 감독, 아리엘 얀스의 미친 소리가 진달래에게는 그렇게 달달할 수 없었다.

“오늘은 뭐 했어?”

-전에 말했던 바이올린 협주곡을 완성했습니다. 초연도 성공적이었고요. 당신을 생각하며 만든 만큼 힘 차고 멋진 곡이죠.

한국어를 익히기 시작한 지 이제 고작 1년 정도 되었을 뿐인데 천재는 천재인지, 다소 딱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대화에 큰 위화감 은 없었다.

“듣고 싶다.”

진심으로 바라긴 했지만 설마 직접 연주해 줄 줄이야.

잠시 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바이올린 소리에 진달래는 어쩔 줄 몰 라 했다.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본인을 생각하며 곡을 만들다니.

그런 일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이다음은 나중을 위해 남겨두겠습니다. 곧 유럽 투어도 예정에 있으니 초대장을 보내드리죠.

“정말? 언제?”

-5월 두 번째 주입니다. 베를린에는 목요일이 되겠네요.

“나 만나도 되는 거야?”

-유럽에서 당신을 못 만난다면 아 무리 많은 이에게 환영받는다 해도 기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안 되지!”

다그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그 뒤에는 언제나 그랬듯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오늘은 어디를 갔다든지 재밌는 것을 보았다든지 또는 무엇을 먹었다 든지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마저 즐거웠다.

“아, 맞다. 어제 합창단 사람들이랑 한식당에 갔는데, 대박. 오징어볶음 이 미친 듯이 맛있는 거 있지! 달달하면서도 칼칼한 게 밥까지 비벼먹 으니까 으아아악.”

-오징어볶음?

“응! 왜 저번에 말한 고추장 있잖아. 야채랑 오징어 넣어서 고추장이 랑 고춧가루 팍팍 넣고 볶은 건데 베를린에서 그렇게 잘하는 집이 있는 줄은 몰랐어. 아, 또 먹고 싶다.”

아리엘 얀스로서는 오징어를 먹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고 고추장에 고 줏가루를 넣는 발상은 더더욱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사랑스러운 여신이 좋아한다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징어를 좋아하십니까?

“아, 유럽에선 안 먹는다고 하던데. 그래서 파는 데가 얼마 없나 봐. 베를린 들리게 되면 대감도 한번 먹어 볼래?”

그러나 같이 먹자는 말에는 어쩔 수 없이 태생적으로 거부감이 생겼는데.

마침 좋은 말이 떠올랐다.

-오징어볶음 말고 저라는 오징어는 어떠십니까?

“흑햫학학캭학캭햑!”

아리엘 얀스의 엉뚱한 말이 진달래를 터뜨렸다.

한참을 웃은 뒤에야 간신히 말을 할 수 있게 된 진달래가 물었다.

“그런 말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거얔

-여성을 즐겁게 하는 농담이라는 책을 얻었습니다. 요즘은 그걸로 공 부하고 있지요.

“당장 버려! 킥킥킥킥.”

진달래는 다시 한번 웃은 뒤에 숨을 크게 내쉬었다.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면 욕먹어. 대감 얼굴이 오징어면 다른 사람은 어쩌라고.”

-그렇군요. 아, 이제 슬슬 출근할 시간인 것 같은데 오늘도 빛과 은혜가 함께하길 바랍니다.

“응. 근데 오늘은 휴가. 할 일이 있거든.”

-무슨 일인가요? 봄의 여신은 역시 봄에 할 일이 많아지나 봐요.

“아니야!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가수를 뽑는대. 제출할 영상 찍고 있었는데 잘 안 되네.”

“여보세요?”

-아. 네. 듣고 있었습니다. 성악은 전문 분야가 아니지만 인터뷰용 영상이라면 성량과 기교보다는 정확한 발성을 주로 볼 겁니다.

“발성이 라……

-당신의 목소리는 산새조차 고개를 숙이니 평소처럼 부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겁니다.

“응! 고마워. ……쪽. 끊는다!”

사랑스러운 소리와 함께 끊어진 전 화를 붙들고 아리엘 얀스는 씁쓸하 게 웃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그의 오래된 아파트는 살풍경했다.

거실과 다른 방은 물론 침실까지 온통 악보로 가득했고 빈 공간은 장 미향만이 채울 뿐이었다.

그 흔한 TV와 컴퓨터마저 없었고 가구라고는 침대와 책상 그리고 악보를 수납하기 위한 책장뿐.

하나 있는 책상 위에는 신문이 놓여 있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3일간 거장 배도빈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노래하다.】

[배도빈 바이올린 협주곡 13번. 찰스 브라움 또다시 기록 경신!]

【불새. 오케스트라 대전 이후 첫 완주! 바이올리니스트 나윤희 화려한 복귀!]

‘베를린 필하모닉.’

배도빈과 베를린 필하모닉에 대한 기사는 그 인기에 힘입어 문화예술란은 물론 심심치 않게 전면에 대서 특필되기도 했다.

단 하나의 기사만 실린 아리엘 얀 스의 신곡과는 전혀 달랐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바이올린 협주곡 ‘봄의 여신’ 초연]

지난 7일. 역사와 기품을 자랑하는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이 아리엘 얀스 감독의 신곡 ‘봄의 여신’을 초연 했다.

봄의 여신은 추위를 뚫고 피어난 강인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강점으로 하는 곡으로 제2의 배도빈이라 불리는 작곡가 아리엘 얀스가 1년만에 내놓은 신곡이다.

오는 4월까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콘서트홀에서 매주 공연하고 입장료는 기존과 동일.

자세한 내용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홈페이지를 참조.

아리엘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붉은 혈흔이 흘러내렸다.

오케스트라 대전 이후, 배도빈의 실력을 절감한 그는 절치부심하여 기존의 스케치를 모두 지웠다.

수개월을 단 하나의 곡을 만들기 위해 투자했고 그렇게 다시 만든 ‘봄의 여신’은 천재 아리엘 얀스의 자신작이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간단히 적힌 기사는 그의 긍지와 자존심을 처참히 짓 밟고 말았다.

‘제2의 배도빈이라고?’

이토록 분한 적은 없었다.

기자들의 하찮은 말 따위는 그리 중요치 않았다.

배도빈과 베를린 필하모닉이란 거 대한 커튼을 젖힐 수 없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베를린 필하모닉에 매 료되어 있었다.

손자인 본인보다 배도빈을 높게 평 가하는 할아버지, 마리 얀스.

사랑하는 진달래도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야기했다.

그는 되뇌었다.

이 정도로 무너질 내가 아니라고.

고결한 얀스 가문의 피를 잇고 위대한 정신을 위해 노래하는 나 아리 엘 핀 얀스는 이대로 쓰러지지 않는 다고.

배도빈은 단지 넘어서야 할 시련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모든 정렬을 쏟 아부었다.

분명 그랬건만.

뛰어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이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그 불안을 느끼는 자신에게마저 화가 났다.

‘이렇게 추악한 인간이었나, 아리엘 핀 얀스.’

할아버지 마리 얀스를 제외하고 본 인을 세상 그 어떤 음악가보다 우월 하다 여겼던 자존심은 처참하게 찢 겨 나갔다.

그 무엇보다 본인의 고결한 정신을 검게 물들게 하는 추악한 질투와 긍지를 흔드는 불안감.

‘로스앤젤레스에서 함께합시다.’

‘으웅. 나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노래할 거야.’

단 한 번의 권유 이후 아리엘은 연인에게 그와 같은 말을 반복해 묻지 않았다.

어디서 노래할지는 그녀가 결정할 일. 강요해서도 바라서도 안 되었다. 분명 그러할진대.

‘제기랄.’

자꾸만 붙잡고 싶은 마음을 어쩌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곧게 뻗어 나오는 달콤한 꽃향기와 같은 목소리.

진달래의 노래는 아리엘 얀스에게 힘과 희망을 주었다.

그런 그녀가 베를린 필하모닉의 가수 오디션에서 떨어질 리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적당히 해라.’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지저분한 마음.

아리엘은 고개를 젓고는 펜을 들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시 한번 악보를 들여다보는 것뿐.

추악한 감정을 억누르고 오직 음악 만이 할아버지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돌릴 유일한 길이라고 여기며.

아리엘 핀 얀스는 오늘도 어김없이 스스로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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