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43화 (343/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343화

75. 결성! 웃고 떠드는 밴드(3)

그날 밤 정말 괜찮으시냐는 질문에 아버지는 웃으셨다.

“그나저나 베를린 필하모닉에 입단 시킨다면서?”

“네.”

“테메스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아도 스칼라의 연주는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잖아. 그걸로 된 거야.”

아버지께서는 말끝에 ‘우리 아들이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악단을 운 영해서 다행이네’라고 덧붙이셨다.

그리고.

“3만 유로. 1년 계약직이야. 업무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실내악 보조 연주자.”

“오케스트라에는 못 들어가는 건가?”

스칼라가 아쉬운 듯 물었다.

“준비 안 된 사람을 들이진 않아. 1년간 실내악에서 경험 쌓으면서 공부하면 자리 만들어줄게. 또 그간 다른 오케스트라도 접하면 네 생각 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

베를린 필하모닉이 세계 최고라는 데에는 변함없으나 연주자마다 맞는 악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시대 연주라면 그 어떤 곳에 도 뒤지지 않는 빈 필하모닉이나 런 던 심포니, 런던 필하모닉은 스칼라 에게 좀 더 맞는 환경일 수도 있다.

“보수는 상관없어. 다른 곳에 갈 생각도 없다.”

“있어 보고 결정해.”

어차피 베를린 필하모닉에 익숙해 지면 다른 악단이 성에 찰 리 없다고 생각해 녀석을 배려하고 생색이 나 내려 했더니.

스칼라의 생각은 달랐다.

“나도 마을 사람들도 지금껏 바깥 사람은 조금도 믿지 않았어. 하지만 너와 네 아버지는 달랐지. 이 세계에 남아도 된다는 확신이 생겼다. 다른 곳엔 가지 않겠어.”

“그래.”

그렇게 계약직이 아닌 정식 단원으로 받아들이며 스칼라와 관련한 이 야기는 일단락.

아니, 시작되었다.

* *

웃고 떠드는 현악4중주 팀을 모아 두고 스칼라를 소개했다.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실내악을 맡아줄 스칼라예요.”

간단히 소개하고 녀석을 보니 앞으로 나선다.

“스칼라라고 합니다. 24세. 하프와 바이올린을 다룹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하지 않고 오케스트라도 처음이 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정상적인 자기소개다.

짧은 기간이나마 교육한 티가 나서 다행이다.

“또 어디서 주워온 거야?”

찰스 브라움이 불쾌함을 내비쳤다.

“네가 데려왔으니 실력이야 있겠지만 이 팀은 베를린 필하모닉 안에서 도 특출한 사람만 모은 거야. 아무 리 너라도 이런 방식으로 인사를 진 행하면 뒷말이 나오지.”

“스칼라는 그간 찰스가 맡고 있었던 편곡자 역할을 대신 수행해 줄 예정이에요.”

“환영하지.”

찰스가 웃으며 스칼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욕망에 솔직한 찰스는 다루기 쉽다.

어째 점점 더 푼수가 되어가는 것 같지만 그만큼 지쳤다는 의미이리라.

“당분간은 실연을 중단하고 호흡을 맞출 거예요. 스칼라도 적응해야 하고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려면 선곡도 중요하니까.”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간 빡빡했던 일정에서 그나마 숨 이 트인 거니 반갑게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다.

“그럼 한 곡 해봐.”

“지금?”

“어떤 연주를 하는 사람인지 알려 야 자기소개지.”

“맞는 말이군.”

스칼라가 켈틱 하프를 꺼내 들어 연주를 시작했다.

켈틱 문화권의 하프 소리는 현재 사용되는 하프보다 소리가 얇고 서 정성이 짙다.

차분히 오르고 내리길 반복하는 음 사이의 공백마저 가냘프다.

화려한 기교 없이.

탁월한 표현력을 바탕으로 이어지는 멜로디와 그것을 극적으로 이끄는 노련한 강세 조절.

그 절묘한 행위에서 느껴지는 그리움은 단순하지만 효과적이다.

아마 테메스인이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곡일 터.

언제 들어도 훌륭하다.

짝짝짝짝_

스칼라가 연주를 끝내자 단원들도 박수를 보내주었다.

콘트라베이스의 다니엘 홀랜드가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멋진 연주였어, 친구. 다니엘 홀랜드라 하네.”

두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어때요?”

“좀 구식이지만 제법이네.”

찰스 브라움도 인정한 모양.

나윤희와 료코도 좋아하는 걸 보니 시간이 필요할 뿐, 적응하는 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다만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소소의 마음은 알 길이 없다.

“소소는 어때요?”

"음..."

물어도 별 대답이 없다. 어떻게 돼도 상관없는 듯하다.

이후 스칼라도 기존 현악4중주의 연주를 들었는데 솔직하게 기뻐했다. 가식이나 꾸밀 줄 모르는 녀석 다운 반응이다.

“극단적으로 화려해. 처음이야. 베를린 필하모닉은 항상 이런 식이야?”

“이런 식이라니.”

“마치.”

스칼라가 적당한 표현을 찾더니 이내 소리쳤다.

“무서울 정도로 퇴폐적이야.”

웃는 걸 보니 나쁜 뜻은 없는 것 같지만 표현법이 이상하다.

나중에 사전이라도 가져다줘야겠다 고 생각하면서 오늘 미팅은 여기까지 하려 했는데.

녀석이 생각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노래하는 사람은 어디 있지? 오늘은 만날 수 없나?”

“노래?”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다.

“그런 사람 없어.”

“……그런가.”

그렇게 낙담할 일인가.

녀석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저.”

나윤희가 입을 열었다.

“네.”

“어차피 팝송도 할 예정이니까 가수가 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요?”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니 료코와 소소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니엘 홀랜 드는 턱을 매만졌다.

“흐음. 해보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조심스레 접근해야 할 것 같은 데. 자칫하면.”

“난 반대야.”

신중하게 나선 다니엘과 달리 찰스 브라움이 유일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이유는요?”

“가수가 있으면 내가 묻히니까.”

무시해도 될 것 같다.

스칼라에게 물었다.

“노래 부르는 사람이 있으면 왜 좋을 것 같아?”

“즐겁게 노는 자리라 들었는데 노 래가 빠질 수 있나?”

단순하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 고민하는데 나윤희가 핵심을 짚었다.

“일방적인 공연이 아니라 참여하는 쪽으로 기획한 거니까 관객들도 따 라 부를 수 있으면 더 좋아할 것 같아.”

“시범해 보고 결정하면 안 돼?”

료코도 가세.

그 의견에는 다니엘 홀랜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수와 함께하게 되면 우리 연주를 못 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시험적으로 운용해 보고 결정하는 게 좋겠네.”

“반대다.”

“그럼 후보자를 모집해 볼게요. 면 접에는 여러분도 참여하도록 하죠. 마음에 드는 사람을 뽑아야 하니 까.”

“좋아.”

* *

2024년 3월 7일.

베를린 필하모닉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실내악단과 함께할 솔로 가 수 모집 공고는 적지 않은 관심을 받았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에서 노래 할 수 있다는 점과 배도빈의 곡을 받을 수 있다는 메리트는 어느 가수 에게나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우리는 새로운 단원을 맞이할 준 비가 되었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입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여러 분야에 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이뤄냈고 올 해 역시 진취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정기 연주회에서는 보다 다양한 곡을 즐기실 수 있으며, 올가을에는 지난 <투란도트> 이상의 대규모 오페라〈피델리오〉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자선 연주회와 아이들을 위한 타악기 교실을 확대 편성하였으며 또한 올여름, 여러분이 깜짝 놀라실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배도빈 악단주는 보다 많은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또 다른 일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에 새 로운 실내악 팀이 구성되었고 이와 함께할 가수를 모집하고자 합니다.

아래 조건을 확인하신 뒤 첨부된 이력서를 작성해 베를린 필하모닉 공식 이메일로 접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격요건

나이: 19세부터 40세까지.

인재상: 풍부한 성량과 여러 장르에 두루 능한 자.

제출 서류: 이력서, 비디오 파일(하나의 카메라로 촬영한 원 테이크 무편집 파일. 앵글 고정. 응시자는 녹 음 장소와 날짜에 대한 정보를 제공 해야 합니다).

근무 형태: 24개월 계약직.

급여: 연간 5만 유로와 공연당 인센티브 지급.

일정: 3월 24일까지 접수. 합격자에 한해 개인 통보. 면접일자 4월 4 일, 5일 이틀간.

베를린 필하모닉이 내놓은 모집 공 고는 국가와 성별, 경력 등 여러 조 건에서 자유로웠다.

공연에서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을 것.

오페라, 가곡을 넘어 팝 음악 등 가능한 여러 장르를 시험한다는 점 에서 자연스레 포기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 막 프로로서 활동하기 시작한 사람이나 지망생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모집 공고를 올리고 48시간이 지 났을 때는 이미 200개의 신청서가 접수되었고.

언론에서는 배도빈과 베를린 필하모닉이 이번에는 또 어떤 일을 벌일 지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ㄴ 실내악에 가수?

ㄴ 5만 유로면 얼마냐?

ㄴ 6,600만 원 정도 될 듯. 인센티 브까지 있으니까 연봉 1억 근처는 될 거 같은데. 계약직치곤 대우가 좋은데?

ㄴ 정규 단원 수준이잖아. 생각보다 본격적이다. 기간도 2년이나 되고.

ㄴ 개충 보니까 대중음악처럼 라이 브 무대 준비하는 거 같은데 너무 나가는 거 아닌가 싶음.

ㄴ 어차피 번외잖아. 난 나쁘지 않은 접근 같은데. 팝송도 불러야 한 다고 하니까 접근성 높이려는 것 같고. 작년부터 이런 쪽으로 신경 많이 쓰네.

ㄴ 그러니까 베를린 필하모닉이 클래식을 무너뜨린다고 하지. 멀쩡한 오케스트라가 저런 걸 왜 하는데? 하던 거나 계속하면 좀 좋아.

ㄴ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 왜 그렇게 싫어하는데?

ㄴ 질 떨어지니까.

ㄴ 그럼 그런 음악 좋아하는 사람도 질 떨어지는 거임?

ㄴ 아하 다행이다. 내가 이해 못 하는 건 줄 알았는데 그냥 미친놈이었구나.

ㄴ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논란 속에서도 베를린 필하모닉 실내악단에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은 꾸준히 늘어났고.

배도빈과 푸르트벵글러, 니아 발그 레이 그리고 웃고 떠드는 현악5중주 단 단원들은 천 개에 달하는 영상을 검토하느라 며칠째 추가 근무를 해 야만 했다.

삼 일차에 접어들어 잔뜩 성이 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다음 영상을 틀려던 멀핀에게 신호를 보내곤 으르렁 댔다.

“이 녀석아, 기어이 내가 확인해야겠냐. 네가 기획한 일이잖느냐. 게다가 성악은 내 전공이 아니야.”

“푸르트벵글러가 확인 안 하면 누 가 하는데요.”

“그러니까 내 역할을 줄여나가야 네 권위가 선다고 하지 않았느냐. 안 그렇소, 발그레이 고문?”

아군을 얻기 위해 푸르트벵글러는 평소답지 않게 점잖게 나섰다.

그러나 니아 발그레이에게 그러한 수작이 통할 리 없었다.

그 역시 평소 푸르트벵글러를 대하 던 것과는 달리 격식을 차렸다.

“세프의 역할이 주는 것과 배도빈 악단주의 권위는 별개 문제로 사료 됩니다.”

“거봐요. 슬슬 은퇴하려는 거 누가 모를 줄 알아요? 불평 그만하고 다 음 거 봐요. 이러는 동안에 한 사람 봤겠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신뢰했던 두 제자에게 공격받은 푸르트벵글러는 있는 대로 인상을 썼다.

“너 이러기야?”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왜 이래? 작년 크리스마스 때 안 가서 그래?”

“전혀요. 사심이 들어갈 리 없죠. 불쌍한 내 딸 메리. 할아버지를 보 고 싶다고 얼마나 노래를 불렀는 데……. 다음 노래 듣죠.”

니아 발그레이의 말에 세미나룸에 있던 몇몇 사람이 터지고 말았다.

다니엘 홀랜드는 아예 소리 내어 웃었고 나윤희는 고개를 파묻은 채 어깨를 들썩였다.

푸르트벵글러는 황당하여 니아 발 그레이를 향해 검지를 흔들어 경고 한 뒤 배도빈을 보았다.

“아무튼 내일부터는 난 빠질 테니 그리 알고 있어라.”

“안 돼요.”

“이 녀석이 자꾸? 인마! 나도 늙었어! 여든이야. 여든! 이만했으면 좀 쉬어야지!”

“안 돼요. 일 다 넘겨놓고 누구 맘대로 쉬게. 멀핀, 다음 영상 틀어주 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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