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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341화 (341/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341화

    75. 결성! 웃고 떠드는 밴드(1)

    이른 새벽.

    배도빈 저택을 벗어난 스칼라는 며 칠 전부터 눈여겨보았던 숲으로 향 했다.

    ‘정말 별세상이군.’

    베를린 시내를 지나치던 스칼라는 문명의 발전에 새삼 놀랐다.

    비행기와 자동차에도 놀랐지만 과 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베를린 전경 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저기는 배도빈의 극장이군.’

    중간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콘서트홀도 발견한 스칼라는 가까운 곳에 숲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이내 생각해 둔 숲이 눈에 들어오 기 시작했다.

    ‘저 정도 숲이라면 분명 먹을 수 있는 과일이나 풀도 많겠지. 사냥감 도 있겠고. 큰놈이 있으면 좋겠는데.’

    스칼라는 며칠 안에 덩치 큰 초식 동물이라도 잡아다가 배도빈에게 나 눠줄 생각이었다.

    마을 사람 열 명과 함께 히말라야 의 표범도 잡아봤던 뛰어난 사냥꾼 스칼라는 선물 받은 활만 있다면 야 생 짐승 따위 무섭지 않았다.

    ‘좋은 활이야.’

    장력이 좋아 손가락을 다치지 않으려면 장갑이 필요할 것 같았다.

    ‘가죽을 벗겨 만들어야겠어.’

    또 작은 동물이라면 자신의 노련한 함정 기술로도 충분히 잡을 자신이있었다.

    척박한 테메스 마을에 비해 베를린 은 너무도 따뜻하고 평화로워 수월 하게 적응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던 스칼라는 어느새 베를린 시민들의 상냥한 휴 식처, 티어가르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선 물부터 찾아야겠지.’

    집터는 물과 인접한 곳이 좋다.

    마실 물도 쉽게 얻을 수 있을 뿐 더러 물 근처에는 먹을 것도 얻기 쉬웠기에 주립공원을 배회하던 스칼 라는 마침 작은 수원을 찾을 수 있었다.

    ‘역시 살기 좋은 곳이라니까.’

    주변을 둘러본 스칼라는 빼곡히 자 란 나무들을 만족스럽게 보았다.

    ‘그럼 이제 집을 지어볼까.’

    도끼가 없는 게 아쉬웠지만 그리 큰 집은 필요 없었기에 땅을 발목이 들어갈 높이로 파고 나뭇가지와 나 무줄기를 모았다.

    ‘여긴 질 좋은 나무가 많네.’

    반나절간 나뭇가지를 엮어 지붕과 벽을 만든 스칼라는 해가 지기 시작하자 행동을 서둘렀다.

    주먹만 한 돌을 모아 둥글게 두었고 그 안에 잔가지를 부숴 넣었다. 그러고는 마른 잎을 모아 바닥에 두 고 나무막대를 부비기 시작했다.

    잠시 뒤 마른 잎에 불이 붙고 스칼라는 조심스레 불꽃을 옮겨 잔가지로 덮었다.

    손으로 바람을 일으키니 어느새 잔 가지가 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오늘은 이 쯤하고 내일 아침 먹을 걸 구해볼까.”

    아직 화살을 만들지 못했기에 스칼 라는 열매라도 찾고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며칠 뒤.

    꼬르륵.

    며칠째 변변한 식사를 못한 스칼라는 굶주림에 허덕였다.

    그가 알고 있는 먹을 수 있는 풀 과 열매는 티어가르텐에 없었고.

    생전 처음 보는 것만 있어 그중 먹어도 괜찮아 보이는 걸 조심스레 먹으면 탈이 나기 일쑤였다.

    ‘너무 얕봤나?’

    히말라야와는 전혀 다른 생태에 스 칼라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에 앞서 당장 뭐 라도 먹어야만 했다.

    간신히 일어선 그는 인내심을 가지 고 주변만이 아니라 탐색 범위를 더 넓혔다.

    오늘마저 사냥에 실패한다면 굶어 죽을 것 같았기에 발을 옮겼는데, 가까운 곳에서 부스럭 대는 소리가 났다.

    소리로 판단하건대 제법 덩치가 있는 짐승.

    스칼라는 황급히 몸을 낮추고 바람 이 부는 방향을 살폈다. 다행히 바 람을 맞서고 있어 그의 냄새가 동물에게 닿을 일은 없었다.

    ‘ 신중하자.’

    사냥할 때 급해서 좋았던 적은 없었다.

    스칼라가 간절했던 만큼 짐승도 살 기 위해 발악했기에 얼음처럼 냉정 해야만 고기를 취할 수 있었다.

    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접근한 스칼 라의 귀에 아직 조금 낯선 현대 독 일어가 들어왔다.

    “형, 여기 버섯이 있어.”

    “아. 정말이네. 오늘 스튜에 넣어 먹으면 되겠다. 이젠 나보다 잘 찾는데?”

    “다 컸다구.”

    저녁거리를 찾던 페터 형제는 먹을 수 있는 버섯을 발견해 기뻐하고 있었다.

    반대로 짐승인 줄 알고 잔뜩 긴장 했던 스칼라는 맥이 풀리고 말았다.

    이제 정말 굶어 죽을 거란 생각에 들고 있던 활까지 떨어뜨렸는데, 그 소리에 페터 형제가 고개를 팩 하고 돌렸다.

    상황을 이해하기까지 그리 긴 시간 이 필요치는 않았다.

    잠시간의 정적 후, 프란츠가 있는 힘껏 소리쳤다.

    “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베를린 시 안에서 활과 화살을 가 진 채 거지꼴로 돌아다니는 남자를 본 형제는 분명 살해당할 거라 확신 했다.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에 가방이고 뭐고 일어서 냅다 뛰려는데.

    풀썩.

    스칼라가 쓰러졌고.

    페터 형제는 거리를 둔 채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살펴보았다.

    “배고…… 파.”

    간절한 목소리였다.

    진정 배고픔을 아는 자의 목소리라 어린 알베르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주머니에서 초콜릿 바를 하나 꺼냈다.

    간식은 한 달에 한 번만 사기로 약속해 아껴둔 것이었지만 배고픔을 아는 알베르트로서는 스칼라가 가여 워 가만있을 수 없었다.

    “알! 뭐 해!”

    “하지만.”

    “낯선 사람이잖아. 저러다 해코지 라도 하면 어쩌려고!”

    “하지만 배고파서 움직이지도 못하잖아. 도와주자, 형.”

    동생보다는 조심성이 많은 프란츠도 배고픔을 알았기에 망설였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동생을 위험하게 할 순 없는 프란츠는 알베르트를 끌어내고 용기를 내 직접 나섰다.

    “이, 이거……

    프란츠 페터가 세 걸음 간격을 두고 오늘 점심으로 먹으려던 슈크림 빵을 던졌다.

    그 달콤한 냄새에.

    쓰러져 있던 스칼라가 벌떡 일어났다.

    “ 엄마야!”

    깜짝 놀란 프란츠는 후다닥 동생이 있는 방향으로 도망쳤고, 허겁지겁 슈크림빵을 먹는 스칼라를 주시하며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일주일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안드레아스 볼 경사의 연락을 받고 경찰서로 가니 거지꼴이 된 스칼라와 페터 형제를 만날 수 있었다.

    “도빈 님!”

    “너흰 여기 왜 있어?”

    “그게……

    프란츠가 고개를 돌려 허겁지겁 빵을 먹고 있는 스칼라를 보았다.

    굶고 다니진 않을까 걱정하긴 했어 도 저런 꼴이 될 줄은 몰랐다.

    “ 야.”

    빵에 정신이 팔려 있던 녀석이 나를 보자 반갑게 웃는다.

    “오랜만이군.”

    “오랜만이고 자시고 무슨 짓을 한 거야?”

    녀석을 다그치려던 차 안드레아스 볼 경사가 인사를 했다.

    “저, 정말이셨군요. 오시기 전까지 의심했습니다. 연락드렸던 안드레아스 볼입니다, 마에스트로.”

    “안녕하세요.”

    “자리를 옮기시죠.”

    악수를 나누고 따로 마련된 방으로 가 자세한 사정을 전해 들었다.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주립공원 내 환경훼손에 취사행위, 불법 시설물 건조와 돌화살과 나무 창 등 불법 무기 제작, 소지죄 에……

    “불법 시설물이요?”

    “부비 트랩처럼 공원 내 함정을 만 들어두었습니다. 이 사진을 보시죠.”

    안드레아스 볼 경사가 보여준 사진 에는 녀석이 공원 내 만들어 놓은 집과 그보다 문제가 되는 함정들이 찍혀 있었다.

    ‘이거 미친놈 아냐?’

    어이가 없어 녀석을 보자 어깨를 으쓱인다.

    “뭐가 문제라는 건지 모르겠군.”

    “사람이 당하면 어쩌려고 이딴 걸 만들어둔 거야?”

    “그거라면 주변에 경고하는 푯말을 세워두었어.”

    안드레아스 볼 경사가 사진 몇 장을 더 보여주었다. 녀석의 말대로 ‘진입 금지’라고 적어둔 푯말이다.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대신 저놈의 머리를 터뜨리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집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도련님.

    “지인이 사고를 쳤는데 변호사 좀 연결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프란츠에게 물었다.

    “넌 왜 이 녀석하고 같이 있었던 거야?”

    “버, 버섯 따러 갔다가……

    “버섯?”

    몇 번 주의를 줬거늘.

    가난하게 살았던 탓에 돈 소중한 줄 아는 녀석이 또 생활비를 아낀답 시고 돌아다닌 모양이다.

    “네……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 시간에 공부하라고 말했잖아. 학교 갈 시간 아니야?”

    잘못한 건 아는지 고개를 숙이고 울먹인다.

    “프란츠는 먹을 수 있는 것을 알려 준 소중한 친구야. 상냥하게 대해주었으면 한다.”

    “닥쳐.”

    나도 다시 태어나고 사회화를 거치 지 않았으면 이랬을까?

    아니. 적어도 이놈처럼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너무나 당연시 되는 일들이 폐쇄적 삶을 살았던 이 녀석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할 터.

    최대한 설명해 주니 그제야 조금 이해한 모양이다.

    조금 다른 개념이지만 어찌되었든 지금으로서는 이걸로 만족해야 할 듯싶다.

    “확실히 보호받고 있는 땅인 줄은 몰랐군. 무단으로 침범한 건 잘못이 지. 함부로 머물러 죄송합니다, 안드레아스 볼 씨.”

    “나한테 사과해도……

    “아, 대리인이셨군. 숲의 주인께 직접 사과할 수 있게 부탁드립니다.”

    황당해하는 안드레아스 볼 경사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었다.

    “아무튼. 얘들은 보내도 되는 거죠?”

    “네. 공범이 아니기도 하고. 조사는 끝났으니 돌아가도 괜찮습니다.”

    잔뜩 겁먹은 페터 형제에게 말했다.

    “오늘은 일단 돌아가. 내일 혼내줄 테니 반성하고 있어.”

    “제, 제 잘못이에요. 알은 잘못 없어요. 청소 아르바이트도 버섯이나 풀 뜯으러 다니는 것도 알은 따라온 잘못밖에 없어요. 그러니 혼내시려 면 저만. 저 같은 나쁜 애는 혼나야 죠. 그렇죠. 에잇!”

    “무슨 짓이야!”

    프란츠가 자기 뺨을 때려 깜짝 놀랐다.

    발버둥치는 녀석을 간신히 진정시 키니 숨이 턱 끝까지 차버렸다.

    “끄으으윽. 죄송해요오.”

    “죄송하면 제발 그만해. 저 녀석만 으로도 머리 터질 것 같으니까. 알이 랑 돌아가 있어. 혼 안 낼 테니까.”

    얼마나 학대를 당했으면 이럴까 싶기도 하고.

    가슴이 짠해져서 달래 돌려보냈더 니 스칼라가 빙그레 웃는다.

    “서로를 아끼는 모습이 보기 좋군.”

    순간 열이 뻗쳐 녀석의 엉덩이를 걷어 차버렸다. 앉아 있던 녀석이 넘어지려다가 자세를 고쳐 잡아 바 로 섰다.

    “무슨 짓이냐!”

    “한 번 더 걷어차기 전에 닥쳐.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간 거야? 뭐가 부족해?”

    “언제까지 폐를 끼칠 수만은 없잖아!”

    여태 내 혈압을 오르게 했던 놈은 장미 씹어 먹는 미친놈밖에 없었는데 이놈은 더하다.

    “칼이랑 네게 도움 받았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다고 했잖아!”

    “그러기엔 너무 많아. 난 혼자 살 수 있다. 어린애가 아니야!”

    “누가 어린애래!”

    “그렇게 취급하잖아! 난 돈이란 건 벌 수 없어도 내가 필요한 건 만들고 얻을 수 있다!”

    말이 통하지 않아 한 번 더 걷어 차려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 돈은 알아?”

    “나도 몇 달간 허송세월 보낸 건 아니다. 돈이 무엇인지는 알아.”

    “하는 일 없이 얻어먹기만 하는 게 싫다는 거지?”

    “그래. 난 자랑스러운…… 아무튼 칼의 손자다.”

    테메스란 단어를 꺼내지 않는 걸 보니 이성은 남아 있는 듯.

    “그럼 내 악단에 들어와. 일자리 줄 테니까.”

    그러지 않아도 웃고 떠드는 현악4 중주단 구성원들이 맡은 일이 많아 따로 전담해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잘되었다.

    “그것도 결국 네 도움을 받는 거지 않나. 난.”

    “소소도 있는데?”

    “……그 아름다운 바이올리니스트 말인가?”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하지. 같이 연주할 수 있어.”

    “으으음.”

    녀석이 고민하던 도중 아버지와 할 아버지가 연결해 준 변호사가 들어 왔다.

    “도빈아!”

    “아버지?”

    “경찰서에 갔다고 해서 놀라서 왔지. 무슨 일이야? 응?”

    변호사도 상황을 들어야 하기에 사진과 함께 대충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네. 상황은 이해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저를 통해 이야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안드레아스 볼 경사님.”

    “아, 네.”

    “도련님, 다만 이분은 하루 정도는 구치소에 있어야 할 듯합니다. 최대한 빨리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네. 부탁해요. 너 얌전히 있어. 내 일 데리러 올 테니까.”

    “죄를 지었으면 응당 사과해야지. 신경 쓰지 마라. 내 과오는 내가 책임진다.”

    말이나 못 하면.

    그렇게 나오려는데.

    아버지께서 나오시질 않아 돌아보 니 테이블 위를 유심히 살펴보고 계시다.

    “아버지, 가요.”

    “이 집 형태는……

    아.

    “스칼라 군, 이 돌 조각 직접 만든 거니? 음?”

    “그, 그렇습니다만.”

    아버지가 눈을 크게 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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