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338화
73. 2024년 봄(3)
2월의 마지막 날.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WCMA: World Classical music Association)에서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의 새로운 요강을 발표했다.
첫 대회가 175개 국가에서 방송되 며 범지구적 축제로 성공했던 만큼 후원사가 많이 붙은 모양.
1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 대해진 규모에 나도, 그 사실을 전달받은 단원들도 놀라고 말았다.
카밀라가 세미나실에 전 직원을 모 아두고 복잡한 내용을 설명해 주고 있다.
“제2회 오케스트라 대전은 2027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간 진행될 예정입니다.”
“엥?”
“그럼 정기 공연은 어쩌고?”
카밀라가 전달한 WCMA의 어처 구니없는 발상에 다들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카밀라는 잠시 간격을 두고 설명을 계속해 나갔다.
“예선은 미시시피 비디오 프리미엄 서비스에 영상을 등재하여 유료 조회수에 따라 상위 12개 악단만을 선발합니다.”
카밀라는 한 계정이 여러 번 시청 한다 해서 조회 수가 누적되진 않으며 여러 악단을 보는 것은 조회 수 에 반영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결국 파급력 싸움이야.’
접근성이 좋아진 대신 본선에 오르는 악단 수를 극단적으로 줄인 모양이다.
예선을 통과하기 위한 영상이라면 정기 연주회의 실황 영상을 올리는 것으로 충분할 테니 그리 부담스러운 일은 아닌데.
문제는 1년간 진행될 본선이다.
‘대체 뭔 생각인 거야.’
본선 진출 악단이 12개뿐이라면 1 회 때의 문제점이었던 대회 기간을 단축시킬 수도 있을 텐데, 그걸 연 단위로 운영하겠다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놈들의 머리를 이해할 수 없다.
“본선은 각 달의 첫 번째 주에 시작되고 금, 토, 일 총 3일간 하루 4 개 악단이 무대에 서게 됩니다. 경합 장소는 진출 악단의 연고지로 결정된다고 하네요.”
한스 이안이 손을 들었다.
“네. 말씀하세요.”
“12개 도시를 매달 가야 한다고 이해했는데 제가 제대로 이해했습니까?”
한스뿐만이 아니라 단원 모두 기겁 했는데.
스케일이 커져도 너무 커진 탓이다.
한 달에 3일, 이동 시간을 포함하 더라도 5일 정도라면 부담이 적지만 이렇게 되면 유럽과 아메리카를 오가야 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생각이 있으면 대륙별로 일정을 모으겠지.’
그렇게 생각해 보니 처음 받았던 느낌보다는 의외로 할 만하게 느껴진다.
장기간 체류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모르긴 해도 대부분 유럽 내에서 돌아다닐 것이 뻔해,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성공한 사업가에는 이유가 있는 거겠지.’
할아버지가 한 말이 그대로 들어맞아 조금은 놀랐다.
할아버지는 오케스트라 대전 결승 전 시청자 수가 5억 명을 기록한 건 주목해야 할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그렇게 와닿지 않는 수치였다.
그러나.
FIFA 월드컵 결승전 시청자 수가 7억 3,000만 명 이상이고 오케스트라 대전의 기록이 바로 그 아래라고 하니, 다시 태어났을 때와는 비교조 차 할 수 없을 듯하다.
‘도빈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면 욕심 부리는 놈이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결코 독식하려 들면 안 돼.’
‘ 왜요?’
‘그런 자리에서 욕심을 부렸다간 공적이 될 뿐이거든. 잘츠부르크는 다시없을 행운을 얻었던 게지. 다음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익이 분배 될 거다.’
‘그럼요?’
‘허락된 범위 안에서 이득을 취해야지. 하지만 이런 일은 보통 너무나 큰 규모 때문에 금전적으로 따지면 손실이 생길 수밖에 없단다.’
‘손해 보는 일을 한다고요?’
‘그래. 단순한 지표로만 보면 손해지. 하지만 수억 명이 집중하는 콘텐츠는 그 어떤 루트보다 훌륭한 홍보 수단이다. 너도 이제 기업을 운 영하게 되었으니.’
‘사업 이야기 관심 없어요.’
‘이 녀석아, 다 널 위한 말이야. 아무튼 이 행사가 지속되고 파급력이 유지되는 한, 최대한 이용하라는 말이다.’
‘이 녀석아. 방법은 스스로 찾아야지. 할애비가 힌트 하나를 주자면 아마 여러 도시가 오케스트라 대전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할 게다. 베를린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된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란 말이다.’
‘생각해 볼게요.’
이런저런 말을 들려주실 때만 해도 별 생각 없었는데 막상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일이 진행되니 신기할 따름이다.
아마 할아버지의 예측대로 스폰서가 많아진 이유와 마찬가지로, 내로라하는 음악의 도시들이 서로를 견 제하고 나섰을 터.
그 과정에서 WCMA가 내린 결정이 본선 진출 악단의 콘서트홀을 이용하는 것이다.
따로 장소를 마련하지 않아도 좋고 더욱이 본선에 오른 악단은 연고지 와 본인들을 홍보할 수도 있는 만큼 참가 목적이 뚜렷해지기도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확실히 WCMA도 여러 조건을 고려한 듯하다.
답변을 한 카밀라가 설명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더불어 본선은 포인트 리그제로 진행됩니다.”
카밀라가 눈짓하자 정면 스크린에 오케스트라 대전의 새로운 룰이 도 식화되어 비쳤다.
“12번의 경합을 통해 각 악단은 승점을 부여받습니다. 하나의 로케 이션에서 우승한 악단은 10점, 2등은 9점 이후 순차적으로 내려갑니다.”
이번에는 마누엘 노이어가 손을 들었다.
“하위 두 오케스트라는 승점을 못 받는 겁니까?”
“네. 계속해서, 채점 방식은 기존과 동일하게 심사위원단과 투표 점수를 합산하게 됩니다. 비율도 동일. 다만 1회 때와 달리 투표는 처음부터 1인 1표로 제한되네요.”
“ 아.”
단원들 사이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경쟁이 심하겠네.’
모든 악단이 아마 홈그라운드에서 의 우승은 전제 조건으로 깔고 대회에 임할 것이다.
한 사람이 하나의 오케스트라에만 투표할 수 있는 만큼 어느 누구도 12번의 경합 모두 장담할 수 없었다.
“또 한 악단에서 두 개 팀이 나올 수는 없다는 규정이 추가되었습니다. 아마 우리에 대한 견제겠죠.”
상관없다.
어차피 우승은 나와 베를린 필하모닉의 것이니까.
이후 카밀라가 이것저것 부수적인 이야기를 더해주었고 3년이란 시간이 남아 있기에.
우선은 준비했던 일부터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
집에 돌아오니 현대 독일어를 어느 정도 익힌 스칼라가 헛소리를 해댔다.
“뭐라고?”
“내일 떠난다고 했어.”
“왜?”
“그간 너무 오래 신세를 졌고 이 넓고 신비한 세상을 알려면 직접 부딪쳐야 하지 않을까.”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고 있는 녀석이 무슨 자신감으로 이러는지 모르겠다.
“너 하나 더 있는 거 조금도 부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아니. 호의는 충분히 받았다. 도리어 과분할 정도야. 하지만 말했다시 피난 세상을 직접 부딪치고 싶다.”
“어디서 자고 돈은 어떻게 벌게?”
“어떻게든 되겠지. 테메스는 부랑의 민족. 음악만 할 수 있다면 어디서든 적응할 수 있어.”
몇 번 더 말렸지만 녀석은 기어이 마음을 고쳐먹지 않았다.
아무래도 걱정되어서 내 명함과 현금을 쥐어 주고는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건만.
다음 날 녀석의 방을 찾으니 깔끔하게 정돈된 침대 위에 편지가 놓여 있었다.
벗에게.
그간의 호의 너무나 고맙다.
덕분에 안전하게 정말 않은 걸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돈은 받지 않겠어.
자립하고 나면 연락할 레니 너무 걱정 하지 않았으면 한다. 명함과 활은 소중히 간직하도록 하지
레에스 신의 가호가 있기를.
노예가 탈주해 버렸다.
녀석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래는데 아무래도 걱정이다.
‘밥이나 제대로 먹고 다닐지 모르겠네. ……뭐, 돌아오겠지.’
아직 날이 쌀쌀하니 춥고 배고프면 돌아올 거다.
방으로 돌아와 느긋하게 다시 눈을 붙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쾅
요란한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니 최지훈과 차채은이 달려들었다.
“오빠!”
젊은 녀석들의 활기참이 너무 눈부 시다.
“웬일로 자고 있대?”
“도빈이가 낮잠을 잤어. 어디 아 파? 아픈 거지?”
“헐. 진짜?”
그러지 않아도 막 일어난 참인데 유난을 떠니 정신이 없다.
“아니. 그냥.”
좀 쉬고 싶어 잤을 뿐인데 방금까 지만 해도 밝았던 두 녀석의 얼굴이 순식간에 심각해졌다.
“진짜 아픈 거야?”
“병원은? 병원부터 가자.”
가만있으면 정말 업어서라도 데리 고 갈 것 같아 기지개를 펴곤 일어 났다.
하품이 절로 나온다.
“호들갑 떨지 마. 쉬는 날을 정했을 뿐이야.”
분명 안심하라고 말한 건데.
최지훈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그러더니 차채은은 한술 더 떠 복도 로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아줌마! 오빠 아파요!”
발이 어찌나 빠른지 겨우 따라가 붙잡았다. 숨이 턱밑까지 차 괴로워 하는데 최지훈이 말을 걸었다.
“정말 괜찮은 거야? 갑자기 쉬다 니. 이상하잖아.”
“허억. 허억. ……생각을 바꿨을 뿐 이야.”
간신히 숨을 돌리고 녀석들을 보니 멀뚱멀뚱 가만있을 뿐이다.
“뭐야. 아침부터 왔으면.”
“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차채은이 벌떡 일어나 손목을 붙잡고는 연습실로
향했다.
이렇게 영문도 모르고 힘에 굴복해 끌려갈 때면 가끔 어렸을 때의 소심 했던 녀석이 그리워진다.
“들어봐.”
차채은이 피아노 앞에 앉았고.
고개를 돌려 최지훈을 올려다보니 싱긋싱긋 웃을 뿐이다.
심드렁하게 턱을 괴니.
차채은이 연주를 시작했다.
차채은을 위한 연습곡 7번 ‘시’다. 양손 스케일을 시작으로 음계를 높여 나가는데.
제법이다.
7〜8년 가까이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았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발랄 한 연주다.
어느새 다시 연습했는지 떠올리다 가 벌써 오케스트라 대전 이후 8개 월이 흘렀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홍 미롭게 지켜보았다.
‘팔 쓰는 게 어색해. 손목을 밀어 야지. 그래도 박자감각은 여전하네. 미스. 또 미스. 정확히 연주하는 것 부터 다시 익혀야겠어.’
차라리 어렸을 때가 훨씬 나았지만 손녀가 있었으면 이런 기분일까 싶다.
기특하다.
3분간의 짧은 연주를 마친 차채은 이 고개를 팩 돌렸다.
“잘하지!”
“엉망이잖아.”
“씨잉.”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