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34화 (334/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334화

    72. 신년 음악회(4)

    2023년 12월 31일.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을 찾았다.

    28일부터 시작된 베를린 필하모닉 의 신년 음악회는 첫 날부터 그 전의 기록을 경신하며 오랜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진짜 기대된다. 스트리밍으로 들을 때랑은 차원이 다르겠지? 배도빈 첫 아르페지오가 완전 미쳤던데.”

    “닥쳐. 나 진짜 와서 들으려고 스 트리밍도 안 봤어. 얘기했단 봐.”

    “그런 태도라면 말하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선생님.”

    친구와.

    “아빠, 빨리. 빨리이.”

    “그래. 그래. 사람들 많으니까 아빠 손 잡고 가자?”

    “그럼 안아줘.”

    “아빠, 나도. 나도.”

    가족과.

    “나 이런 데 처음 오는데.”

    “나도. 아, 저기로 가는 건가 봐.”

    “응. 히〜 손이 왜 이렇게 차?”

    “따뜻하게 해줭

    “으이구. 근데 원래 클래식 들었었어? 좋아한다고 말한 적 없잖아.”

    “그냥 뭐. 네가 좋아하니까 경험해 보려 했지. 나 잘했지?”

    “오구오구. 그래. 합격.”

    연인 등 관객들은 한해의 마지막 날을 가장 소중한 사람과 보내고자 했다.

    베를린 필하모닉도 그런 팬들의 마 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신년 음악회 만큼은 최상의 상태로 최고의 곡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하나는 배도빈이 피아노를 맡은 차 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 G장 조였고 둘은 베를린 필하모닉이 자 랑하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었다.

    첫 번째 프로그램에서는 푸르트벵글러가 지휘봉을 잡았고, 두 번째 곡에서는 배도빈이 포디움에 올랐다.

    더욱이 합창의 경우에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전 단원이 함께하는 대규모 편성이었기에 팬들로서는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할 수 없었다.

    배도빈의 가족과 지인들도 마찬가 지로 신이 나 있었다.

    “형 언제 나와요? 응?”

    엉덩이를 들썩이는 둘째 아들을 보 며 유진희가 웃었다.

    “10분 정도 기다려야 해. 도진이는 형 무대에서 피아노 연주하는 거 처음 보네?”

    “응! 달래 누나도!”

    “달래? 달래도 나와?”

    배영준이 의아하게 묻자 배도진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응. 나온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있던 최지훈이 놀라 고개를 돌리니 퀭한 얼굴의 차채은 이 죽어가고 있었다.

    진달래가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에서 노래를 부른다고 하니 놀라 그에 대해 물어보려 했던 최지훈은 놀라서 차채은을 살폈다.

    “어디 아파?”

    “엉? 어어엉.”

    눈을 끔뻑끔뻑 하던 차채은은 어느 새 잠에 들기 시작했다.

    정말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최지훈이 걱정하며 차채은을 흔들어 깨웠다.

    “헓.”

    “정말 어디 안 좋은 거 아니야?”

    “으으응. 아냐.”

    “이제 곧 시작이야.”

    “응……

    “어제 잠 못 잤어?”

    “끄으으응!”

    차채은이 기지개를 펴곤 목을 풀었다.

    “어제 달래 언니가 불안하다고 노래 좀 들어 달라 해서 한숨도 못 잤어. 아하아암.”

    늘어지게 하품을 한 차채은은 입맛을 다시며 멍하니 무대를 보았다.

    아픈 게 아니라고 하니 다행이었다.

    “진짜 나오는 거야?”

    “응. 솔로는 아니구. 합창단으로 나오는 건데 어쨌거나 이런 무대는 처 음이니까.”

    “아아. 그래도 대단하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창법 못 바꿔서 고생이었나 봐. 원래 노래는 곧잘 했는데 예전 버릇 고치는 게 어려웠던 것 같아. …… 안 되겠다. 나 세수하고 올래.”

    “5분밖에 안 남았어.”

    "응."

    차채은이 정신을 차리고 자리로 돌 아오자 무대 위로 단원들이 자리하 기 시작했다.

    여느 때와 같이 오보에의 A음에 맞춰 악기들이 음을 조율해 나갔고 관객들은 그에 맞춰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취재차 방문한 관중석의 이필호와 정세윤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까 대단하긴 대단한 것 같아요.”

    “그치. 저기 오른 마흔 명 중에 솔 로로 성공 못 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런데도 베를린에 남아 있는 거 보면 푸르트벵글러랑 배도빈이 그만 큼 통솔력이 있다는 거겠죠?”

    “그만큼 대단한 음악가와 함께하고 싶을 테니까. 난 프리였을 때의 배도빈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편집장님이랑 같은 생각하는 사람 많더라고요. 첫 번째 날에 온 사람 들이 전부 배도빈한테 곡 하나 받겠다고 온 거잖아요.”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배도빈이 만든 곡이라고 하면 지금까지 실패 는커녕 대박 아닌 적이 없었으니 까.”

    “오케스트라 대전으로 지휘자로서 도 최고가 되었고요. 아, 며칠 전에 가우왕이 한 인터뷰 봤는데 배도빈 이 피아노계로 돌아오길 바라더라고요. 그 가우왕이요.”

    “자극이 필요하겠지. 사실 지금 가우왕의 적수가 없잖아. 글렌 골드나 크리스틴 지메르만이 버티고 있긴

    해도 티켓 파워만으로는 가우왕이 최고지. 또 사실 지금의 그가 전 세 대의 글렌이나 크리스틴보다 못하다 고 보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니나 케베리히는 어때요?”

    “훌륭하지. 북미에서만은 가우왕에 유일하게 맞설 수 있는 피아니스트 니까.”

    “조건이 붙긴 하네요.”

    “아무래도. 그녀의 레퍼토리는 베토벤에 지나치게 쏠려 있고 그 유니 크한 연주가 먹히는 시장도 북미에 한정되어 있으니 말이야.”

    “유럽이 아직까지 보수적이긴 한 것 같아요.”

    “응. 그래서 가우왕의 말에도 공감 할 수 있는 게 배도빈 이외에 피아노에서 그를 자극할 만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아.”

    “최지훈은요?”

    “아.”

    생각을 거듭하던 이필호 편집장이 턱을 쓸며 입을 열었다.

    “오케스트라 대전 때를 생각하면 확실히 가능성이 보이지. 모르긴 몰 라도 몇 년 뒤면 니나 케베리히만큼 이나 대단한 피아니스트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가우왕과는 비교하지 않으시네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 지금 최지훈의 제1 목표는 최성신을 넘어서는 거 아닐 까. 그 대단하던 최성신마저 결국 최정상급에는 이르지 못했으니까.”

    이필호의 말에 무언가 대꾸하려던 정세윤의 말이 환호성에 묻히고 말았다.

    준비를 마친 무대 위로 폭군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배도빈이 나섰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시선을 나눈 두 사람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단 한 번의 연주로 전 세계를 휘 어잡은 배도빈, 베를린 필하모닉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

    너무나도 유명한 1번에 가려져 있으나 촘촘하게 구성된 각 악장은 마 치 인생사와 같았다.

    격렬한 1악장을 지나.

    우수에 젖은 멜로디로 위로하고 과 거를 회상하는 2악장.

    경쾌하게 희망을 노래하는 3악장까 지 표트르 차이코프스키가 남긴 걸 작 중의 걸작이 배도빈에 의해 새롭게 연주되었다.

    그 곡을 직접 듣는다고 생각하니.

    관객들은 안달이 나 이제는 더 이 상 못 참을 것 같았다.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두 팔을 벌렸다.

    한껏 당겨진 긴장감이 흐르고.

    빰 빠빠바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신호로.

    노도의 1악장이 시작되었다.

    치솟았던 희망의 멜로디가 가파르게 추락한다.

    시력을 잃으며 얻었던 초인적인 청력으로 보다 섬세한 연주를 할 수 있게 된 배도빈의 타건이 관객들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차이를 느낄 순 없었지만.

    뭔가 다르다.

    더 좋다는 막연한 기분을 느끼며 관객들은 인식조차 못한 채 배도빈 이 만들어내는 심상 속으로 향했다.

    폭군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노련하고 과감한 해석이 더해진 차이코 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울리는 가운데.

    마치 모든 소리와 음계가 그 자리에 본래 있었다는 듯 노래하니.

    객석에 앉은 이들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세상에 남은 유일한 소리.

    극상의 연주로 인한 착각이 아니었다.

    콘서트홀은 배도빈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와 감동만이 남아 있었다.

    그때.

    “흐헤헷. 학. 헤헥.”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팽팽하게 이어지던 고조감이 순식 간에 끊겼고 폭군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지휘봉을 내렸다.

    최고의 연주를 하던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를 중단한 채 그대로 다음 지시를 기다렸으나.

    “헤헤헤. 헤헤.”

    웃음소리에 더해 박수까지 들렸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어리둥절하던 객석 내부도 조금씩 불쾌감을 드러 내기 시작했다.

    “뭐야?”

    “갑자기 왜 저래?”

    그러한 불만들이 웅성거리며 연주 와 감상을 방해한 남자에게로 향했지만 묘한 웃음소리를 내는 남자는 개의치 않고 손뼉을 치는 두 손을 더욱 빨리 움직였다.

    훼방꾼은 아직 어린 청소년이었다.

    턱을 살짝 오른쪽으로 틀어 들고 있었고 동시에 활짝 웃고 있었다.

    시선은 콘서트홀의 구석에 닿았고 두 손으로 기쁜 듯이 손뼉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양옆에서 필사적으로 소 년을 말리는 두 여성을 함께 볼 수 있었다.

    손뼉을 못 치도록 팔을 붙잡는 그 모습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쉿. 쉿.”

    나이가 있는 여성은 검지를 입술에 가져갔고 젊은 여성은 주변에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남자의 기행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직원들이 오기 전에 두 여성은 스스로 남자를 데리고 콘서트홀을 벗어났다.

    그러는 도중에도 고개를 깊이 숙였다.

    잠시 뒤.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에 안내 방송이 나왔다.

    -고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안내 말씀드립니다. 조금 전 소 동으로 인해 10분간 휴식 뒤 공연을 다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10 분간 휴식 뒤, 6시 30분부터 연주가 다시 시작될 예정입니다.

    공연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안내와 사과 방송.

    무엇보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포디움에서 고개를 숙였기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던 객석도 다소 진정되었다.

    “대체 무슨 일이래?”

    “어디 좀 불편한 사람 같던데.”

    “아무리 그래도 오늘 공연 보려고 1년이나 기다린 다른 사람들한테 민폐잖아.”

    “처음부터 다시 연주한다고 하니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좀 아쉽네.”

    “기본 매너는 좀 지켜줬으면 좋겠다.”

    그러한 말들이 나오자 현장 반응을 살피던 이필호와 정세윤은 잠시 펜을 꺼내 상황을 기록했다.

    “베를린 필하모닉도 난감하겠네.”

    “그러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감상을 방해받으니 불쌍하고. 또 그 사람들도 얼마나 듣고 싶었으면 왔겠어요.”

    “본인들이 먼저 나가줘서 다행이 지. 아쉽긴 해도 공연을 방해하는 건 안 될 일이고.”

    이필호와 정세윤의 말대로 관객들은 오늘 음악회에 오기 위해 정말 많은 것을 준비했었다.

    티켓을 구하는 일부터 무엇을 입을지, 누구와 함께할지 고민하고 배도빈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를 복기하며 기대를 키웠기에 이러한 사 태를 쉽게 넘길 수 없었다.

    그것은 소란을 피운 사람이 장애를 겪고 있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들 역시 본인들처럼 얼마나 오늘을 기대했을지 생각하면 안타까웠지 만 그렇다고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 받고 싶진 않았다.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으며.

    베를린 필하모닉으로서는 그들이 다시 온전히 곡을 감상할 수 있도록 최대한 서둘러 마음을 다잡고 연주를 들려주는 수밖에 없었다.

    6시 30분이 되고.

    분위기가 정리되자 처음부터 다시 연주를 시작한 베를린 필하모닉은 두 번째 곡 합창까지 너무도 완벽한 연주를 들려주었고.

    덕분에 공연 도중의 일은 작은 해 프닝으로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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