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332화
72. 신년 음악회(2)
12월 26일.
28일부터 1월 1일까지 5일간 이어 질 신년 음악회를 이틀 앞둔 시점에.
배도빈과의 협주곡을 위해 차출된 단원들은 상임 지휘자와 악단주의 사랑 가득한 횡포에 반쯤 죽어 있었다.
“틀려. 틀려. 틀려!”
“현을 더 눌러요. 더. 너무 갔잖아 요!”
“악센트가 죽잖아! 다시!”
“넘어오는 게 빨라요. 충분히 기다렸다가 와야 한다고요.”
푸르트벵글러와 배도빈이 번갈아가며 지적을 해대니 B팀 출신은 물론 A팀 소속 베테랑 연주자들까지 정 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여기까지. 내일은 개인 정비를 하고 모레 오전에 다시 모이도록.”
마침내 연습 시간이 끝나고.
단원들은 지쳐 차마 짐을 챙길 기력도 없이 너부러져 있었다.
“다들 안 가?”
악기를 챙긴 이승희가 주변을 둘러 보며 물었다.
그때 B팀에서 차출된 첼리스트 사 샤 크레거가 이승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으끄윽. 저 여기서 못 버틸 것 같아요오. B로 돌려보내 주세요.”
“그건 도빈이나 세프한테 말해.”
당연히 안 받아줄 걸 알기에 말 못하고 있었던 사샤 크레거는 고개를 숙이고 절망했다.
“확실히 터프하긴 하지.”
목 근육을 풀며 마누엘 노이어가 다가왔다.
“진짜 그렇다고요. 전보다 훨씬 힘 들어졌어요.”
사샤 크레거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A팀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B팀은 배도빈이 전담하고 있었기에 어느 한쪽의 요구만 충족 하면 되었지만 폭군과 마왕을 함께 감당하게 되니 단원들로서는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처음 음대에 들어갔을 때보다 혹독하여 모든 게 잘못된 것만 같은 불 안을 느낄 정도였다.
“세프가 화내실 때마다 심장 떨어 지는 것 같아요.”
“보스가 바라시는 게 뭔지 감도 못 잡고 있어요. 저 같은 건 여기 있을 자격이 없어요.”
몇몇 B팀 출신들이 느끼는 자괴감 에 이승희와 마누엘 노이어는 걱정 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그들이 느끼기에도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배도빈은 가혹할 만 큼 완벽함을 요구하고 있었다.
헨리 빈프스키, 이승희, 마누엘 노이어, 진 마르코, 나윤희 정도를 제 외하면 40명 정도 되는 인원 모두 가 하루에도 몇 번씩 지적을 당했다.
문제는 그중에서 배도빈이 요구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배도빈이 직접 연주를 해 비교해 주어도 단원들로서는 솔직히 느낄 수 없었고.
몇몇 우수한 이들만이 어렴풋이 알 아들을 정도니 지적당한 이들은 능 력이 부족해 연주를 고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니 지적은 반복되고 거듭되는 상황 속에 자괴감을 느끼는 것도 무 리는 아니었다.
“우는 소리 그만해. 최고가 되려고 들어온 거 아니었어?”
그때 그 역시 혹독하게 교육을 받 은 한스 이안이 나섰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에서 연주 하려면 이 정도는 해내야지. 포기하 고 싶으면 나가.”
비록 말투는 험했지만.
최고가 아니면, 완벽하지 못하면 무대에 오르지 않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정신을 말하고 있었다.
철저히 성과제로 운영되기 시작한 베를린 필하모닉은 전과 달리 단원 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주었고.
무려 10년간 견습 단원으로 있었던 한스 이안은 지금의 베를린 필하모닉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태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연습이 힘들다고 투 정부리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자부심.
그것은 최고라는 이름에 대한 경의 이자 자긍심을 훼손하는 일이었다.
그것을 모르는 단원들은 없었기에 연습실은 숙연해졌다.
“너……
마누엘 노이어가 한스를 기특한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제일 많이 틀린 놈이 건방지 게 훈육이라니. 백 년은 일러, 인마!”
“칫
마누엘 노이어의 일침에 한스 이안 이 한 발 뒤로 물러서자 후배 단원들이 조금씩 웃기 시작했다.
선배들의 대화에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는 것 같았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단원 중에서도 최고참 중 한 명인 헨리 빈프스키는 그런 모습을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잘 바뀌고 있어.’
40년 넘게 이어진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체제.
겉으로는 철옹의 성이었지만 고참 들 사이에서는 과연 차기 상임 지휘 자가 베를린 필하모닉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만한 카리스마를 가진 이도 드물 고 능력은 말할 것도 없었거늘.
베를린 필하모닉은 스스로 자긍심을 가지고 배도빈이라는 새로운 체 제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마음을 바탕으로 선후배가 서로 밀고 끌어준다면 앞으로도 완벽한 연주를 위해 끝없이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즘 젊은이들 같지 않다니까.’
50대, 헨리 빈프스키는 요즘 아이는 끈기도 열정도 없다고 생각하던 고루한 아저씨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러한 생각을 고치게 되었다.
배도빈의 경우에는 언제, 어디서든 생기는 돌연변이라 여겼지만.
라이든샤프트라 불리는 새 시대의 젊은 음악가들은 정말 열정적으로 음악에 임했다.
헨피 빈프스키가 보기에도 배도빈의 복귀 무대이자 신년 음악회 준비는 빡빡하기 그지없거늘.
비록 힘들다고 칭얼대긴 하나 결국 마지막 연습까지 마친 B팀 단원들 이 자랑스러웠다.
‘……이제 슬슬 은퇴해도 될 것 같은데.’
헨리 빈프스키는 어느새 깔깔 웃고 있는 단원들에게 인사하고는 집으로 향했다.
*
7월 오케스트라 대전 결승 이후.
무려 다섯 달 만에 배도빈이 무대 에 선다는 소식에 전 세계 유명인사와 팬들이 베를린을 찾았다.
사카모토 료이치를 비롯한 음악계 거장들은 물론.
명장 크리스틴 노먼 감독을 비롯하여 그 영화에 출연한 유명 배우들이 모인 가운데.
다시 한번 배도빈과 협업을 바라는 더 퍼스트 오브 미의 총괄 기획자 제임스 터너와 그 경쟁사인 조조 소 프트, 스노우 스톰, 스퀘어 피닉스의 총괄 디렉터들까지 얼굴을 비췄고.
베를린 필하모닉과 사업적 교류를 맺고 있는 뉴튜브, 미시시피, 웹플리스, JH 등 재계 큰손들과 베를린 시장을 비롯한 정계 유력 인사들까지 함께하였다.
그 장면이 뉴스 보도를 타고 각국 에 전파되자 팬들은 놀라움을 넘어 어이가 없고 말았다.
ㄴ 아닠ㅋㅋㅋㅋㅋ 뭔데 대쳌ㅋㅋ
ㄴ 키에에에엑!
ㄴ 그냥 도라이 수준인데;;
ㄴ 혼란하다 혼란해!
ㄴ 샐럽이란 샐럽은 죄다 모였구만.
ㄴ 어지간한 사람은 저기서 명함도 못 내밀겠다.
ㄴ 도빈 대단한 건 알겠는데 저 사람들 대체 왜 저기 다 모인 거임?
ㄴ 여러 이유가 있겠지. 배도빈의 연주회를 찾을 정도로 나는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선전할 수도 있고 또 배도빈의 이름값 때문이라도 얼굴 비추겠지.
ㄴ 애초에 저런 곳에 얼굴 비추면 그것만으로도 어지간한 광고보다 나아.
ㄴ 배도빈이 작업한 콘텐츠가 죄다 성공했으니까. 음악하는 사람들도 영화, 게임 쪽에서도 관계를 유지하 고 싶지 않을까?
ㄴ 베를린 필하모닉이 올해 벌어들 인 돈이 못해도 수천억 원은 될 텐데 거기 주인이 복귀하는 자리에 당 연히 사람이 쏠리지.
ㄴ 개오바야;; 무슨 오케스트라가 수 익이 수천억 원이야.
ㄴ 작년 총매출액이 조를 넘겼으니 까 올해는 가능할걸? 오케스트라 대전 상금도 있었고.
ㄴ 배도빈 공백 기간 길어서 작년하고 비슷한 수치면 감지덕지임.
ㄴ 와 진짜 최종보스급이네;;
ㄴ 도빈 쟤는 이미 탈인간이야. 마왕이다 신이다 하는데 농담이 아니라 진짜 쟤가 하는 행동 하나랑 말 한 마디의 영향력이 비슷하면 비 슷했지 덜하진 않을걸.
ㄴ 현장에서만 파는 티켓이 하루 만 에 매진되었다고 하잖아. 사람들 줄 서 있는 뉴스 못 봤어?
ㄴ 나도 그거 봄. 일주일 전부터 사람들이 몰려와서 걔들 얼어 죽을까봐 텐트도 쳐주던데.
유력 인사를 제외하고도.
배도빈의 복귀 무대에 대한 반응은 팬들의 티켓 구매 과정부터 드러났다.
하필 복귀 무대가 보통 6개월 전 에는 예약해야 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인지라 표를 구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난 것.
암표로 사려 해도 최소 천만 원 이상이고 그마저도 구할 수 없으니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꿈에도 꾸지 못할 정도였다.
“카밀라, 암표 파는 놈들 다 잡아 들이세요. 절대 용서하지 말고 붙일 수 있는 죄목은 전부 붙여다가 다신 얼씬거리지 못하게 해주세요.”
“응. 지금도 움직이고 있으니까 걱정 마.”
“애초에 암표 막을 방법은 없는 거예요?”
“여러 문제가 있어서 대응책을 마련해도 계속 뚫리고 있어.”
“……그 일은 카밀라에게 맡길게요. 멀핀, 암표 때문에 오고 싶어도 못 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요?”
“딱히 뾰족한 방법은 없어요. 공급을 늘리는 방법이 있지만 그렇게까지는……
“28일 하루 더 하기로 해요. 티켓은 현장에서만 판매하고 신분증 대조해서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입장 할 수 없다고 미리 공표해 주세요.”
“도, 도빈아, 잠깐만.”
“네.”
“공연 일정을 더 잡는 거야 우리 건물이니 상관없는데. 현장에서만 팔면 지금 있는 창구로는 감당 못 해. 하루만 해도 7,000표인데 한 사람당 1분씩 걸린다 해도 다른 업무를 못 봐. 아니, 세 개 창구를 계속 돌려도 24시간으론 부족할걸?”
“임시로 필요한 만큼 늘리도록 해요. 베를린까지 찾아온 팬들을 돌려 보낼 순 없어요.”
“그, 그렇기야 하지만.”
“사무국 직원으로는 감당이 안 되면 아르바이트생이라도 구해요. 직 원들이 추가근무하면 2배씩 지급하시고요.”
그들이 파악하고 있는 대로.
미리 표를 구하지 못했던 이들은 발을 동동 굴렀는데, 베를린 필하모닉은 과감히 28일, 공연 일정을 하루 더 늘려 현장을 찾은 이들에게만 티켓을 판매토록 조치하였다.
27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현장 예매는 일주일 전부터 기다리는 사람들로 콘서트홀 주차장 가득찰 정 도였고 건물 주변에 텐트와 침낭이 심심치 않게 보이고 있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긴급 조달한 20개의 티켓 박스를 8시간 내내 쉬 지 않고 가동해야만 했고.
그렇게 28일 정오와 저녁, 두 번의 공연에 대한 총 7,000표의 티켓을 현장 판매로만 매진시키며.
또 한 번의 진기록을 세우고야 말았다.
다만 그로 인해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베를린 필하모닉의 직 원들은 신년 음악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녹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국장님, 이거 다신 하지 말아요.”
“진짜. 제발. 이건 아니잖아요.”
“……도빈이가 베를린에 왔는데 막상 표를 못 구한 사람들은 어쩌냐고 하는데 어떡해.”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저 사람들 감기 걸릴까 봐 손난로 주고 주차장에 아예 대형 텐트까지 치고 진짜 저렇게 다 해주면 어떡해요.”
“……우리 연봉 다 많이 올랐잖아. 요즘 우리처럼 대우받는 곳 없어.”
맞는 말이었기에 그들은 통장에 들어올 돈을 생각하며 다시금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