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31화 (331/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331화

    72. 신년 음악회(1)

    “억!”

    소소의 일을 해결한 뒤 가우왕의 엉덩이를 걷어차 주었다.

    “무슨 짓이야!”

    “오빠라면서 동생 마음을 그렇게 몰라요?”

    “뜬금없이 뭔 말이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니 넘어 진 채 일어서지도 못한다.

    인기가 많아졌으니 힘들어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것 같다.

    애초에 가우왕이나 나 같은 성격이 아니라는 걸 몰랐던 것 같기도 하고 유명해진다와 기쁘다를 동일시하는 가우왕의 착각에서 기인한 일이기도 하다.

    “안 그래도 힘든 사람한테 조언이 랍시고 부담을 주면 어떡해요? 나 같아도 짜증 나겠구만.”

    “소소가……

    생각보다 충격인 듯.

    한동안 가만있더니 벌떡 일어난다.

    “지금 걔 어딨어?”

    “일하고 있죠.”

    대답하자마자 뒤돌아 뛰어가려는 걸 막아섰다.

    “어쩌려고요?”

    “미안하다 해야지!”

    평소에는 이 인간처럼 마이 웨이인 사람도 없는데 동생에 대해서만큼은 바보가 되는 듯하다.

    “갑자기 오빠가 직장에 찾아와 사과한다 생각해 봐요. 더 싫을걸요?”

    “오늘 저녁에 만나서 이야기해요. 소소 위해서 한 일이라는 거 모를 리 없을 테니 잘 말하면 이해해 줄 거예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생각했는지 의자에 털썩 앉아 담배를 꺼내든다.

    잡아채서 테이블에 내려놓으니 애 꿎은 라이터만 켰다 껐다 반복했다.

    “가우왕은 지켜봐주기만 하면 돼요. 나이 차이가 많은 동생이라 해 도 소소는 이미 한 사람의 성인이니까 그녀만의 길이 있을 거예요.”

    가우왕은 테이블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동안 말이 없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래.”

    재능 있는 동생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길 바라는, 더 유명해 지길 바랐던 마음을 접어둘 줄도 알 게 된 듯하다.

    남을 사랑하는 일에 어설픈 친구지 만 이렇게 금방 실수를 인정하는 건 그 마음만은 진실이기 때문.

    그간 오빠다운 일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다.

    ‘나도 그랬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칼에게 이 것저것 강요하는 것이 많았다.

    베트호펜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라는 점도 그러했고, 카스파 녀석의 유언 때문에라도 칼이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길 바랐었다.

    카스파 그 녀석이 아무리 답답한 동생이었어도 남은 가족은 정말 얼 마 없었으니까.

    그런 내 마음이 칼을 궁지로 몰아 넣고.

    녀석이 가출하게 된 원인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괘씸한 녀석으로 여겼지 만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된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마음과 별개로 ‘받는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서툰 삼 촌이었다.

    소소와 가우왕이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는 걸 알기에.

    오해 없이 지냈으면 한다.

    어렸을 때의 바보 같은 실수 때문 에 벌써 십 년 넘게 떨어져 지냈으니 말이다.

    그날 저녁.

    요란한 복장도.

    가식적인 미소도 없이 시작된 소소 와 베를린 B의 협주, 버라이어티 쑈가 시작되었다.

    여전히 흡족한 연주는 아니었지만 본래 모습을 찾은 베를린 필하모닉 B의 연주에 팬들은 더 없이 반가워 했다.

    ‘조율은 천천히 해나가면 돼.’

    지금은 객석과 무대가 하나가 되었다는 게 더 중요하다.

    진중한 분위기에 소소의 개인 팬들도 주변 공기를 읽고 악장마다 소리 치는 일은 없었으니 응급수술치고는 썩 괜찮아 보였다.

    ㄴ 소소 도도한 거 봐 ㅠㅠ

    ㄴ 쑈 뚀?

    ㄴ 그만 줄여 미친놈아.

    ㄴ 어깨 힘 뺐네. 난 이쪽이 더 좋더라.

    ㄴ 난 눈이 즐거워서 어제 같은 것 도 좋았는데.

    ㄴ  취향이 여러 개인 만큼 베를린 필도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중이겠지. 내년에 개편한다고 하잖아.

    ㄴ 이미 오케스트라 대전에서 1, 2 등 했는데 뭘 또 이렇게 급하게 바꾸려는 걸까. 오케스트라 대전 때처 럼 운영하면 수입은 보장되어 있는 데.

    ㄴ 그게 너처럼 평범한 사람의 생각 이고. 배도빈이나 푸르트벵글러는 그렇게 생각 안 하겠지.

    ㄴ ㅇㅈ 항상 도전해 왔던 사람들이 니 정점까지 오른 거야. 도중에 안 주했으면 세계 최고라 불렸겠냐?

    ㄴ 소소 다른 악기도 좋은데 얼후가 확실히 좋다. 난 저 악기는 소소가 연주하는 것만 들었는데도 좋아.

    ㄴ 다 좋은데 도빈이 언제 복귀하냐 아 ㅠㅠ

    디지털 스트리밍 채널의 댓글 반응 도 좋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진정으로 같이 생각해 주고, 그 미래를 기다려준다는 점에서 팬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야, 야! 같이 가!”

    “떨어져서 와.”

    공연이 끝나고 나란히 걸어가는 남 매를 보고 있으니 흐뭇해졌다.

    정점의 피아니스트.

    무결점의 피아노라 알려진 거장 크 리스틴 지메르만은 오케스트라 대전 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젊은이를 마 음에 두고 있었다.

    최지훈.

    2005년생의 어린 피아니스트는 가우왕 이후 처음으로 그녀를 설레게 했다.

    섬세한 타건으로 감정을 세공해내는 과정은 첫 번째 제자, 가우왕이 19살이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저 아이를 완성시키고 싶다.

    크리스틴 지메르만은 그런 마음으로 러브콜을 보냈고, 5개월이 흐른 뒤에야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들어와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안으로 들어선 최지훈을 보며 흡족했다.

    ‘품위는 갖췄네.’

    크리스틴 지메르만은 자세와 말투만 봐도 최지훈이 훌륭한 환경에서 교육받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당당히 뻗는 다리와 곧은 등.

    눈과 입은 살짝 웃고 있으며 그 모습이 자연스럽다.

    과하지 않은 선에서 여유와 당당함을 내비치니 과연 귀족의 풍모였다.

    따뜻한 차를 앞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연락한 지 꽤 되었는데 이제야 대화를 나눌 수 있네요.”

    크리스틴 지메르만이 웃으며 말했다.

    “직접 불러주신 만큼 신중하고 싶었습니다.”

    ‘좋은 태도야.’

    어떤 피아니스트도 크리스틴 지메르만 앞에 서면 떨기 바빠 말조차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더욱이 이렇게 추궁하듯 물으면 여 지없이 사과나 변명부터 늘어놓았는 데, 지금까지 단 두 명만이 다른 반 응을 보였다.

    그 두 사람은.

    ‘웃기지 마, 이 할망구야!’

    겁 없는 첫 번째 제자와.

    “이제는 그 마음이 섰고요.”

    두 번째 제자로 들이고 싶은 최지훈이었다.

    크리스틴 지메르만은 가우왕을 통 해 최지훈을 제자로 들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한 말이 니 보통은 기뻐 쪼르르 달려왔을 텐데, 신중히 생각하고 마음이 섰을 때 왔다는 최지훈의 말이 그녀를 즐 겁게 했다.

    그만큼 크리스틴 지메르만의 제자 가 된다는 일을 무겁게 여긴다는 뜻 이고.

    그것이 곧 꿀 발린 백 마디의 말 보다 그녀를 존중하는 일이었기 때 문이었다.

    ‘어쩜 이런 애가 다 있을까?’

    생각과 행동에 어설픔이 없다.

    그러면서도 얼굴과 마음에는 천진 한 미소를 띠고 있으니 그 깐깐한 크리스틴 지메르만조차 최지훈을 인 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눈을 마주하고.

    서로 충분히 준비가 되었을 때 최지훈이 입을 열었다.

    “전 제 길을 알고 있어요. 그 길을 걷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고 있고요.”

    낭랑한 목소리로 전해진 명백한 거절에 크리스틴 지메르만은 애석할 뿐이었다.

    “그렇군요.”

    재능 있는 후학을 키워내 가르치는 일은 성인의 큰 기쁨이지만 강요할 수는 없는 법.

    그녀는 아쉬움을 달랬다.

    “당신의 태도는 앞으로 가장 큰 힘 이 되어줄 거예요. 그 어떤 재능보 다도.”

    “감사합니다.”

    “바라는 바를 이루길 바랄게요.”

    크리스틴 지메르만이 손바닥을 들 어 보이며 차를 권했고 최지훈은 거 절하지 않았다.

    차로 목을 축인 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길은 무엇인가요? 최고의 피아니스트? 아니면 베를린 필하모닉의 퍼스트 피아노?”

    그 질문에 최지훈이 활짝 웃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조금 달라요.”

    “ 다르다.”

    “네. 완벽한 연주를 하고 싶어요. 그게 제 꿈이에요.”

    크리스틴 지메르만은 최지훈이 계 속해 이야기하길 바라며 그를 지켜 보았다.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지만

    그러고 싶어요. 욕심이 많아서 언젠 가 만족할 수 있는 연주를 하고 싶거든요.”

    “완벽한 연주를 하면 만족할 수 있을 테니까?”

    “네.”

    “당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연주는 무엇인가요?”

    미스가 없는.

    훌륭한 구성력.

    화려한 기교.

    모든 것이 요소가 될 순 있었지만 적어도 최지훈은 그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요소에 끝이 없었기 때문.

    “오늘 멋진 연주를 해도 내일, 모 레는 더 멋진 연주를 할 수 있었으면 해요.”

    “그러면 영원히 완벽한 연주는 못 하는 거 아닌가요?”

    최지훈의 말은 모순되어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틴 지메르만은 최지훈이 무 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정점에 이른 이들이 공통적

    으로 가지고 있는 집착이었다.

    “네. 하지만 완벽하기 위해 계속 달릴 수 있으니까요.”

    안주하지 않는 정신.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과 음악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위대한 음악가를 만드는 요인이었다.

    ‘정말 알고 있어.’

    크리스틴 지메르만은 자기가 갈 길 이 있고 어떻게 가는지도 알고 있다는 최지훈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연주를 위해 노력하지만.

    그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 에 평생을 달려 나가는 마음가짐.

    정점의 피아니스트는.

    최지훈이 그것을 인지하고 있다면 본인이 돕지 않더라도 언젠가 정상 의 자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 라 여겼다.

    “멋진 생각이네요.”

    최지훈이 웃은 뒤 처음으로 말끝을 흐렸다.

    “저……

    의아하여 눈을 깜빡이는 크리스틴 지메르만에게 최지훈이 쑥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사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불쑥 내민 사인지와 펜. 벌어진 가 방에는 작은 액자까지 들어 있었으니 크리스틴 지메르만은 정말 오랜 만에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요즘 친구들은 정말 예측할 수 없네요.”

    어쩔 수 없다는 듯 종이와 펜을 건네받은 크리스틴 지메르만은 사인을 하고 최지훈의 이름을 적었다.

    그것을 넘겨주고는 그녀 역시 부탁을 꺼냈다.

    “쇼팽이 듣고 싶네요.”

    쇼팽의 권위자 앞에서 쇼팽을 연주 하라니.

    최지훈은 난감했으나 재촉 없이 다 섯 달이나 기다려 주었던 크리스틴을 생각하며 피아노 앞에 앉았다.

    “어떤 걸 연주할까요?”

    “가장 잘할 수 있는 걸로.”

    크리스틴은 좋은 연주를 들을 생각으로 차를 조금 머금은 뒤 눈을 감았다.

    ‘어떤 연주를 들려주려나.’

    그 기다림 뒤에.

    최지훈의 연주가 시작되고 정점의 피아니스트는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장식음이 과하게 들어간 그 연주는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수천 개의 음표들이 마치 점묘화처 럼 악상을 풍부하게 전달하였고 그 야말로 완벽하게 조율된 타건 속에 서 울리는 쇼팽의 애수.

    연주가 진행되는 속도는 평범했지 만 기존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음계가 들어갔기에 그 연주 속도는 이미 한 계에 도달해 있었다.

    ‘어느 틈에……

    오케스트라 대전 2라운드 이후 고작 반 년.

    훌륭한 후배로 보았던 최지훈의 연주에 최고의 피아니스트 크리스틴 지메르만은 경악하고 말았다.

    한편.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하지 왜 참 고만 있어?”

    “했잖아!”

    “안 했어!”

    “죽으라고 했잖아! 죽어!”

    미안해, 괜찮아로 시작된 남매의 대화는 어느새 격해져 배도빈 저택 에 이를 때까지 이어졌다.

    말이 통하지 않자 가우왕의 정강이를 냅다 차버린 소소는 자기 방으로 올라갔고.

    1층에서 놀던 진달래와 배도진, 배토벤은 떼굴떼굴 구르는 가우왕을 멍하니 볼 뿐이었다.

    “삽살개 아저씨 왜 저래?”

    “또 짜증 나게 했나 봐.”

    그러다 이내 관심이 없어져 무시하고는 다시 블록을 쌓아 나갔다.

    부우우웅-

    버려진 가우왕은 고통을 겨우 견디 고 핸드폰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했다.

    오만상을 다 쓰며 스승이 보낸 메 시지를 확인했는데 구겨진 얼굴이 더욱 험악해졌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따라잡힐 거 야. 사랑하는 제자에게.]

    ‘이 할망구가 드디어 노망이 났나.’

    크리스틴 지메르만이 보낸 메시지에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최지훈이 밝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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