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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329화 (329/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329화

    71. 버라이어티쑈(4)

    하룻밤 연주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 야 어제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에 실망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소리를 인지하는 능력이 더 발달한 듯하다.

    정확히 말하면 가청(可聽: 들을 수 있는)의 영역이 넓어졌다.

    소리를 인식하고 그 파장의 시작을 1로 끝을 10으로 상정하면 그중에 인식할 수 있는 영역은 가운데의 한 정된 구간뿐인데 그 범위가 확실히 넓어진 듯하다.

    들을 수 없었던 소리를 듣는 것이 단순히 귀가 좋아졌다는 게 아니라 첫음과 끝음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 기에.

    같은 소리라도 달리 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 작은 흔들림만으로도 귀에 거슬렸고 그것은 내 연주도 마찬가 지라 건반을 누를 때와 뗄 때 전보다 훨씬 더 신경 써야만 했다.

    ‘깔끔해서 좋긴 한데 생각보다 신경 써야 할 게 많네.’

    다른 거장들의 연주를 들어본 바.

    그들이 나처럼 소리를 듣는 영역이 넓은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뛰어난 사람의 연주는 거슬리지 않았다.

    오케스트라 중에서는 암스테르담과 빈 필의 경우가 그러했고.

    피아니스트 중에서는 크리스틴 지 메르만, 글렌 골드, 가우왕 정도가 깔끔했다.

    피아노는 전체적으로 뛰어난 기량을 가진 것과는 또 별개라 은퇴하기

    전의 미카엘 블레하츠나 나, 사카모토의 경우에는 다소간 떨림이 있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A도 소리를 깔끔 하게 내는 부분에 있어서는 나처럼 완벽하진 못했다.

    ‘이만큼 연주하는 곳이 세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는 게 문제지만.’

    아무래도 푸르트벵글러나 나나 감 정을 싣는 데 더 주력하다 보니 다소간의 떨림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도리어 그게 필요할 때도 있고.’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 아프다.

    그러한 떨림은 현악기에서는 더욱 애매해서 떨림이 있을 때가 더 좋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었다.

    어제 연주의 경우에는 여러 부분에서 문제점이 보였는데.

    불편하지 않고 듣기 좋았던 건 소소의 얼후뿐이었다.

    그녀는 다른 악기를 연주할 때와 달리 얼후만은 무척이나 좋은 소리를 내었다.

    여러 현악기를 수준급 이상으로 다루는 건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역시 주 종목만큼 하는 건 무리였던 듯.

    지금까지는 그 차이를 작게 느꼈지만 지금은 너무나 크다.

    다른 악장들과 비교했을 때 소소가 바이올린 솔로로 나설 일은 많이 없을 듯하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해 보니.

    어느 정도 윤각이 드러났다.

    ‘완벽한 연주의 요소가 될 순 있지 만 전부는 아니야.’

    반대로 말하면 완벽한 연주를 바란 다면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

    그러나 다른 사람도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지가 문제로 남아, 판 단을 도와줄 사람을 불렀다.

    “무, 무슨 일이야?”

    “거기 앉아요. 커피 마실래요?”

    “아, 아니. 괜찮아.”

    이른 새벽, 집에 깨어 있는 사람이 한 사람뿐이었는데 마침 귀도 좋고 실력도 좋은 이라 안성맞춤이다.

    “안 잔 거야?”

    나윤희가 걱정스레 물었다.

    “ 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무슨 일을 할 건지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녹음된 거랑 연주할 걸 들어보라는 말이지?”

    “네.”

    굳이 비교해 보라고 말하지 않은 건 최대한 자연스럽게 들어주길 바라기 때문인데 어떨지 모르겠다.

    기왕이면 평범하게 들어주면 좋겠는데 반대로 집중해서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연주를 들려주는 만큼 신경 쓸 수 밖에 없겠지만.’

    우선 2019년, 검정고시 준비로 지루했던 차에 히무라의 권유로 다시 녹음했던 ‘마왕의 연주 리마스터’를 틀었다.

    ‘배도빈: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모음곡’에 수록된 피아노 소나타 인데 당시에는 최선을 다했고.

    또 그 이후로 크게 발전하지 않아 지금도 이만한 수준으로 연주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나쁘진 않지만 아쉬워.’

    푸르트벵글러와 함께 들은 A팀의 연주와 비슷한 느낌이다.

    1악장만 듣고 오디오를 멈췄다.

    “이번엔 직접 연주할게요.”

    "응."

    변형은 없다.

    녹음했던 그대로 그러나 건반을 누르는 힘을 최대한 조절해 나가며 소리가 보다 깔끔해질 수 있도록 신경 썼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녹음 되었던 것보단 낫다고 자평하며 연주를 마쳤는데.

    나윤희의 표정이 미묘하다.

    “어땠어요?”

    “ 으응••••••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윤희가 입을 뗐다.

    “뭔가 다른 거 같긴 한데 잘 모르겠어. 선명…… 하다고 해야 할까?”

    푸르트벵글러와 같은 반응이다.

    ‘이래선 의미가 없어.’

    고도로 훈련된 음악가의 귀조차 차 이를 느끼지 못하면 일반 관객들은 말할 것도 없을 거다.

    실제로 나만이 불만족스러울 뿐.

    푸르트벵글러는 그 차이를 그리 신 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더욱 멋진 음악을 하기 위한 단서 정도로 생각하던 것 같은데, 아무래 도 30분 이상 고도로 집중해야만 느낄 수 있는 차이가 과연 관객을 위한 연주일까 싶다.

    굳이 명확히 말하진 않았어도 같은 곡을 CD와 실연으로 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은 이상 나윤희도 나름대 로 집중하고 있었을 터.

    연주의 완성도를 높인다 해도 듣는 사람이 그 차이를 제대로 못 느낀다 면 의미가 반감된다.

    하지만.

    이것이 테메스인들의 비밀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스칼라를 불러다 물어봐야겠어.’

    “저……

    고개를 돌리자 나윤희가 다가왔다.

    “이, 일어나 봐.”

    무슨 일인가 싶어 일어났더니 내 뒤로 가 밀기 시작했다.

    “왜, 왜요? 왜 그래요?”

    “끙끙.”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일단 복도로 나왔다. 그러고도 멈추 지를 않았는데 침실 앞까지 와서야 손을 뗐다.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또 무리하면 다들 걱정할 거야. 음악도 중요하지만 건강을 잃으면 그것도 못 하니까.”

    나윤희가 말끝에 그렇지? 하고 덧 붙였다.

    자기도 미련하게 손가락이 터질 때 까지 연습했으면서 남이 그러는 건 못 보는 듯하다.

    ‘하긴. 나도 마찬가지지.’

    푸르트벵글러와 사카모토, 나윤희 가 그랬을 때는 정말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네. 그럼 오후에 봐요.”

    “응. 잘 자.”

    방으로 들어서 침대에 누웠더니 금세 곯아떨어졌다.

    ‘ 으음.’

    얼마나 잠들어 있던 걸까.

    의식이 돌아오자 뭔가가 가슴팍에 서 움직이고 있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니 도진이가 비명을 질렀다.

    “배토벤!”

    이 녀석이 형을 막 불러…….

    눈을 뜨니 도진이가 손에 작은 거 북이 한 마리를 들고 있었다.

    행여나 다칠까 조심스레 손을 포개 어 보호하고 있는데.

    “형 나빠!”

    도진이가 처음으로 내게 소리를 쳤다. 충격이다.

    “토벤이 다친단 말야! 놀랐지 토벤아. 우뉴뉴뉴뉴.”

    거북이는 등껍질에 들어가 반응하 지 않았다.

    “그게 뭐야?”

    “배토벤. 내 동생이니까 형아 동생이야. 그렇게 막 하면 안 돼.”

    “베토벤?”

    “배토벤.”

    배 씨 성을 준 모양이다.

    “언제부터 키웠던 거야? 아니 그보 다 왜 그런 이름을……

    “형아 미국 갔을 때 엄마가 사줬 어. 같이 이름 지어주려 했는데 형이 안 와서…… 계속 이름 없으면 불쌍하니까 지어줬어. 형 때문이야.”

    몇 달간 떨어져 있었던 것에 불만 이 많은 듯하다.

    배토벤이 머리를 꺼내 입을 쩍 벌렸다. 빠끔빠끔하는 것이 확실히 조금은 귀엽다.

    저렇게 소중히 여기는 걸 보니 그 새 정이 많이 든 모양.

    “토벤아, 형아한테 인사해.”

    도진이가 인사를 하라고 해 조금 기대했는데 역시나 들은 척도 안 하 고 하품만 늘어지게 한다.

    “봐봐. 형이 놀라게 해서 삐졌잖아.”

    삐진 건 너겠지.

    “이름 바꾸자.”

    “왜?”

    “……우리 식구니까 한국식으로 지어야지.”

    “그치만 얜 독일 앤데?”

    할 말이 없어진다.

    진달래가 도진이랑 말할 때 왜 가끔 입을 닫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자, 그럼 둘이 친해져야 하니까 오늘은 형한테 맡길게.”

    “뭐?”

    “나 학교 다녀올 동안 토벤이랑 친해져야 해?”

    “도진아, 잠깐. 배도진!”

    후다닥 뛰어 나가는 도진이 녀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도진이가 책상 위에 올려둔 거북이는 미동도 하지 않고 고개를 쳐들고 있을 뿐이다.

    ‘미치겠네.’

    스칼라는 6층 복도 끝에 방을 내 주었는데 시킨 대로 하루 종일 영화 와 TV를 보며 현대 독일어를 익히는 중이었다.

    “TV라는 건 정말 대단해. 방해하 지 말아줘.”

    뭔가 글러먹게 될 것 같아 TV를 꺼버리니 금세 우울해진다.

    어차피 문명사회에 적응해야 할 테니 학교를 보내는 것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눈을 다치고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듣게 됐어.”

    “당연한 일 아닌가?”

    “소리를 크게 듣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확하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고 하나. 아마 그곳에서 네가 말했던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아.”

    “ 흐음.”

    “테메스인들의 힘이 이것과 관련되어 있는 거야?”

    스칼라가 고개를 저었다.

    “말할 수 없어.”

    예상했던 답이다.

    “그럼 이걸 들어봐.”

    사카모토와 함께 녹음했던 ‘Hono 스를 틀었다. 스칼라는 팔짱을 끼고 흥미롭게 듣더니 곡이 끝난 뒤엔 잔 잔히 웃었다.

    “멋진 곡이군. 피아노라 했지? 바이올린과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게 느껴져.”

    “이걸 녹음하고 아팠던 사람이 나았어. 내 눈을 고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던 것도 이 때문이고.”

    “그만한 일을 겪고도 멀쩡해 이상 하다 싶었더니 그런 생각이었군.”

    스칼라가 팔짱을 풀었다.

    “난 네가 진실한 사람이라 믿지만 그것과 마을의 비밀을 공유하는 건 별개의 일이야.”

    치사하게.

    “하지만 호의를 베푼 네게 실마리를 주는 정도는 괜찮겠지. 음악은 대화.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수단이 야. 네 귀가 좋아진 것도 방금 그 멋진 곡도 테메스 신의 가호와는 관 련이 적어.”

    없다가 아니라 적다.

    ‘대부분 말한 것 같은데.’

    마을의 불문율을 지키기 위해 애매 하게 말하기는 했지만 핵심을 짚어준 느낌이다.

    아마 사카모토의 병환이 호전된 것 은 그때 나와 사카모토가 서로를 깊이 이해했고, 그만큼 영혼이 충족되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 눈이 낳은 건 그때 동굴이 내는 소리에 내가 깊이 감화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스칼라와 칼은 그 천연의 동굴이 내는 소리를 신의 목소리라 칭했고 말이다.

    ‘어찌되었든 귀가 좋아진 것과는 무관하다는 건가.’

    내 연주로도 만족할 수 없어 테메 스의 힘이 그 너머에 이르기 위한 방법이라 여겼거늘.

    아무래도 아닌 듯하다.

    “그런데.”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었는데 스 칼라가 입을 열었다.

    “그 귀여운 생물체는 뭐지?”

    머리 위에 서 있는 배토벤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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