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28화 (328/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328화

    71. 버라이어티쑈(3)

    “그럼 가볼게.”

    “네.”

    소소와 인사를 하고 대기실과 지휘자실에 들려 한차례 인사를 나누었다.

    다들 차분하게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고 인사를 나눌 때 표정도 좋았다.

    자리를 비우고 있을 때도 잘 꾸려 온 듯해 안심이다.

    A팀이야 수십 년간 정상의 오케스트라로 군림했던 베테랑들이라 문제 없겠지만 B팀은 못내 걱정되었다.

    아무래도 오케스트라 생활을 처음 시작한 이들이 절반 이상이기도 하 고 내게 의지하는 부분이 많아 혹시 나 흔들리진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다행히 평소와 같이 생활한 듯.

    얼굴에 자신감이 깃들어 있다.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객석으로 돌아왔다.

    곧 단원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아나간다.

    ‘비발디라.’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op8의 1번, 2번, 3번, 4번.

    흔히 묶어서 사계라고 하는데.

    실내악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곡이 케르바 슈타인에 의해 확대 편성되었다니 기대된다.

    더군다나.

    ‘이 동양적 느낌이라는 말은 대체 뭐지.’

    소소가 메인으로 등장한다는 점과 요상한 차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뭔가 준비된 게 있을 듯.

    기대에 부풀어 이것저것 생각해 보 고 있을 때, B팀 지휘자로 활동하게 된 케르바 슈타인이 소소와 함께 무 대 위에 올라섰다.

    “쑈! 쑈! 쑈! 쇼!”

    그 순간 객석에서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 뭐야?’

    함성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무리를 이룬 중국인과 한국인들이 소소의 얼굴이 박힌 티셔츠를 입은 채 울부 짖고 있었다.

    다른 관객들이 허허 하고 웃는 걸 보아 하루 이틀 이런 게 아닌 듯하다.

    ‘즐기고 있잖아.’

    정작 소소도 그들을 보고선 웃어준 뒤 검지를 입술에 가져갔다.

    “끄아악! 웃었어! 웃었다고!”

    “나랑 눈 마주친 거 봤어?”

    “미쳤어! 나 본 거라고!”

    몇 달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내가 알던 분위기가 아니다.

    흡사 팝스타의 콘서트장에 온 듯한 분위기에 조금 당황스럽다.

    더욱 황당한 건.

    ‘왕소소가 웃었다고?’

    음악을 할 때를 제외하고.

    종일 침대에서 단 음식을 먹으며 무표정하게 드라마만 보던 소소가 관객을 보며 웃다니.

    저런 모습은 처음이다.

    객석이 잠잠해지고.

    소소가 눈만 가리는 가면을 썼다.

    케르바 슈타인이 팔을 크게 아울러 연주를 시작하였다.

    이탈리아가 낳은 바이올린의 대가.

    바로크 시대를 풍미했던 안토니오 비발디의 봄(La primavera)이 콘서트홀에 싹을 틔운다.

    더없이 활기차게.

    잠시 소리를 죽였다가 강조를 하며 변형되기 시작된 봄은.

    ‘뭐야, 이게.’

    기대했던 수준 이하였다.

    ‘컨디션이 안 좋나?’

    나쁘지 않은 수준이지만 평소 소소 의 연주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더욱 큰 문제는.

    ‘ 엉망이잖아.’

    평소 실력을 못 내더라도 소소의 연주는 들어줄 만했는데 베를린 필하모닉 B의 연주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다.

    특별할 만한 변형이 없는데도 들어 올 때를 놓치거나 음 표현이 충분치 못한 상태에서 전개됨에 혼란스럽다.

    ‘거슬려.’

    바이올린도 비올라도 첼로도 콘트 라베이스도 피아노도 곡의 멜로디를 깔아주던 목관 악기 모두 엉망이다.

    1악장이 끝나고.

    갖은 인상을 다 쓰며 고개를 돌렸는데 프란츠 페터와 스칼라의 표정이 밝다.

    그래서 더.

    이상하다.

    2악장이 시작되기 전.

    소소가 가면을 바꿨고 뒤에서 얼후를 받아 의자에 앉았다.

    중국 최고의 얼후.

    불안감을 조성하는 배경 속에서 소 소의 얼후가 천천히 지난겨울 죽어 간 초목과 짐승을 위해 노래했다.

    ‘좋아.’

    내색하진 않았지만 긴장했던 듯.

    소소의 얼후는 깊은 탄식을 하듯 구슬피 울었다.

    얼후의 음색이 묘하게 곡의 분위기 와 잘 맞아떨어지고 그녀의 뛰어난 실력 덕에 곡이 늘어지는 법도 없었다.

    애초에 바이올린과 얼후의 연주법 이 유사하긴 하지만 바이올린의 편 의성에는 비할 바가 못 되는데.

    소소의 얼후는 그러한 점에서 생기는 작은 문제점조차 허용치 않았다.

    짧은 2악장이 끝나고.

    소소가 다시금 악기를 바꿔 쥐었다.

    ‘이래서 버라이어티라고 한 건가.’

    아마 오늘 콘셉트는 대부분의 현악 기를 다루는 천재 왕소소를 위한 무대.

    소소의 남성 팬들이 열광했던 이유 도 이해가 되었다.

    다시 전원풍으로 빠른 3악장이 시 작되고 소소의 바이올린과 함께 베를린 필하모닉 B가 다시 연주를 시 작하는데.

    주제와 유사하게 시작되더니 극적 변형이 일어나는 시점에 또다시 연주가 엉망이 되었다.

    불쾌하다.

    나는 이런 연주를 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을 용납할 수 없다.

    여름 (L estate).

    가을 (L'autunno).

    겨울 (L’inverno).

    그나마 들어줄 만한 연주는 소소와 마르코뿐.

    도대체 4달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악단이 이런 식으로 망가졌는지 알 수 없었고.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연주회를 망칠 순 없었기에 겨우 참아냈고 항의하는 관객들이 생길 것이 뻔해 어떻게 대처할까 고민하던 중.

    “브라보!”

    모든 연주가 끝나고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도빈, 이것이 베를린 필하모닉인가! 정말 놀라워. 이게 오케스트라 라니! 특히 저 여성의 연주는 심금을 울리는군!”

    스칼라가 신이 나서 박수를 쳤다.

    비꼬는 건가 싶지만 너무나 밝은 표정에 혼란스럽다.

    “••••••아니야.”

    고개를 저었다.

    “이런 건 베를린 필하모닉이 아니야.”

    * * *

    스칼라와 페터 형제를 돌려보내고 푸르트벵글러를 찾았다.

    국장실에 있다고 하여 문을 열어젖히고 소리쳤다.

    “세프!”

    “집에서 쉬라니까 왜 또 나왔어?”

    “지금 그게 중요해요?”

    놀란 푸르트벵글러와 카밀라가 눈을 크게 떴다.

    “대체 오늘 연주회 뭐에요. 그런 수준으로 무대에 오른다니. 대체 단 원들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사태의 중대함을 깨달은 푸르트벵글러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물었다.

    “무슨 말이냐.”

    “••••••네?”

    “오늘 B팀 연주는 나도 들었지만 훌륭했어. 그런 수준이라니?”

    어이가 없어 잠시 말을 잃었다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확인차 다시 물었다.

    “그래.”

    “……카밀라, 오늘 연주회 녹음본 좀 가져다주세요.”

    “응.”

    카밀라가 나가자 푸르트벵글러가 심각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B팀은 평소대로 연주했어. 그건 현장에 있었던 내가 자신한다.”

    “……솔직히 실망했어요. 다들 제 가 없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네가 실종되고 많이들 슬퍼했지만 그렇다고 연습을 게을리하진 않았다. 네가 돌아왔을 때 망가진 모습을 보여줄 순 없다며 본인들이 더 열심히 하더구나.”

    자꾸만 핀트가 어긋난다.

    “세프가 그렇게 자신하는 게 믿기 지가 않아요. 제가 듣기에는 정말 엉망이었어요. 소소도 평소답지 않았지만 솔로 연주를 모두 망쳐 버렸다고요.”

    푸르트벵글러가 막 입을 여는데 카 밀라가 들어왔다.

    “여기.”

    “고마워요. ……들어보며 얘기해요.”

    “그래.”

    카밀라의 방에 있는 오디오를 통해 파일을 열었다.

    첫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음정이 흔 들린 부분을 지적했다.

    푸르트벵글러가 눈매를 좁히더니 해당 부분을 반복해 들었다.

    그는 신음하며 고개를 끄덕일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뒷부분을 마저 들으며 그렇게 총 마흔세 번에 해당하는 부분을 지적 했다.

    푸르트벵글러는 내가 꼬집은 부분을 말없이 반복해 들을 뿐 그때까지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봐요. 뭔가 문제가 있는 거예요. 연습이 부족했든 아니면 단원들 사 이에 뭔가 피로가 쌓였든.”

    “아니.”

    푸르트벵글러가 내 말을 끊어내곤 지그시 눈을 감았다.

    “다시 말하지만 B팀의 연주는 평 소와 다르지 않다. 오케스트라 대전 때만큼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했어. 문제는 네게 있는 것 같다.”

    “ 네?”

    “솔직히 말하면.”

    그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는데 꽤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조차 네가 지적하고 반복해 듣고 나서야 문제점을 깨달았다.”

    푸르트벵글러가 맨 처음 봄의 연주가 시작될 때 흔들린 음정을 다시 틀었다.

    명백히 불안정한 음이다.

    “케르바 슈타인도 놓칠 만해. 아니,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판단했을 수 도 있겠지. 나도 같은 생각이니.”

    “지금 절 놀리는 거라면 그만해요. 심각하다고요.”

    “아니다.”

    푸르트벵글러의 눈은 여느 때와 같이 곧게 나를 향하고 있었다.

    ‘ 뭐야.’

    혹시나 전처럼 농담을 하거나 장난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건만, 푸르트벵글러가 무대 위에서의 일로 장 난을 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정말 알 수 없게 되었다.

    “카밀, 우리 앨범 중 아무거나 하나 틀어주게.”

    “그래요.”

    카밀라 앤더슨이 자기 자리로 가 작년 푸르트벵글러가 직접 지휘한 송년 연주회 앨범을 틀었다.

    내 9번 교향곡이다.

    너무도 완벽한 연주라 무척 마음에 들어 종종 듣곤 했었다.

    그러나 오늘 B팀의 연주가 엉망인 것과는 관련 없는 일이다.

    “이 문제랑 상관없잖아요.”

    “잠자코 들어봐.”

    음악이 흐르고.

    5분쯤 흘렀을 때 푸르트벵글러가 카밀라에게 손짓을 해 연주를 멈추었다.

    “어떠냐.”

    나는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훌륭한 연주였지만.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전과는 다르다.

    꼬집어 무엇인가를 틀렸다고 이야 기할 부분은 없었지만 아쉬운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봐.”

    “……틀렸다곤 할 수 없지만 처음 타악부는 아쉬웠어요. 관악부가 살 린 분위기를 따라오지 못했고.”

    푸르트벵글러는 잠자코 들었다.

    “현악기 소리가 상대적으로 차이가 커서 묻힌 것도 아쉬워요. 전체적으로 음량 조절이 들어갔다면.”

    “기억하느냐.”

    차분히 듣고 있던 푸르트벵글러가 다시금 내 말을 끊고 물었다.

    “너와 내가 이 연주를 두고 완벽한 D단조 교향곡이라 말했던 걸.”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자 푸르트벵글러가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웃기 시작했다.

    “흐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한 그를 이 상히 보고 있는데 그거 고개를 설레 설레 젓더니 시원하게 미소 지었다.

    “아직도 부족한 게냐.”

    “무슨 말이에요?”

    “누가 봐도 훌륭한 연주였다. 누가 들어도 완벽하다 생각할 연주였지. 나도 찾아내지 못했던 문제를 듣게 된 거야.”

    “장난치지 말아요. 이렇게 명백한 데 세프가 모를 리 없잖아요.”

    “아니. ……늙으면 귀가 안 좋아지 긴 하지만 감만은 더욱 예리해지지. 난 도빈이 네가 처음에 무슨 말을 하나 싶었다. 반복해 듣고서야 이해 할 수 있었지. 정말이야.”

    “대체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 냐. 널 부러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만 그 귀만은 가지고 싶구나.”

    혼란스러워하는데 .

    케르바 슈타인이 노크를 했다.

    카밀라가 들어오라 신호하자 그가 기쁜 얼굴로 들어와 나와 푸르트벵글러에게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세프, 성공적이에요. 도빈이 너도 들었다며? 어땠어?”

    기뻐하는 케르바 슈타인을 두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돌아오고 나서 가만히 방에 있자니 작은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테메스 마을에 있을 때도 느꼈지만 평소 듣지 못했던 소리들이 귀를 간 지럽 힌다.

    시력을 잃은 뒤로 예민해진 감각은 자연스레 옅어질 줄 알았는데 여전 히 남아 있는 듯.

    푸르트벵글러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그간 만족스러웠던 연주들을 다시금 들어보는데.

    전에는 알지 못했던, 무심코 넘겼 던 것들이 잡힌다.

    유일하게 흡족했던 연주는 몇 달 전 사카모토와 함께한 녹음.

    복잡한 마음으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아니야.’

    틀리다.

    ‘이게 아니야.’

    한참 멀었다.

    ‘조절해. 쉽게 누르지 마.’

    음표 하나를 너무도 쉽게 생각했던 나를 용납할 수, 인정할 수 없었다.

    아무리 반복해도 만족스러운 연주를 할 수 없어서.

    정말 오랜만에 밤새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푸르트벵글러의 말대로 아직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에 이것밖에 안 되었냐고 자책하면서도.

    그 과정이 너무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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