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26화 (326/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326화

71. 버라이어티쑈(1)

“헉. 허억. 헉.”

이 몸이 확실히 약하긴 하다.

운동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은 탓에 반나절이나 걸으니 다리가 아파 더는 걷지 못할 것 같았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스칼라를 불러세웠다.

“서둘러야 한다고 했잖아.”

맞는 말이라 억지로 발을 옮겼고 몇 번을 더 걷고 쉬길 반복한 끝에 겨우 작은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어쩌지?”

“따라 와.”

가장 빠른 방법은 핸드폰을 충전해서 할아버지께 전화를 거는 거지만 나도 스칼라도 네팔 사람과 대화가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관공서를 찾았다.

작은 마을이라 금방 주민센터 같은 느낌의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시선이 끌리는 것 같은데.”

스칼라의 말대로 다들 나를 곁눈질로 또는 대놓고 보았는데 다행히 이 들에게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같은 느낌인 듯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네팔 사람의 말은 이해할 수 없다.

뭔가 왜 왔냐는 질문일 텐데 알아 보길 바라며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안경을 올렸다가 내렸다 가 하며 내 신분증을 살피던 직원이 내 얼굴을 보더니.

“웨, 웨이뚜! 웨이뚜!”

기다리란 말을 하며 후다닥 안쪽으로 뛰어갔다.

“왜 저러는 거지?”

“곧 있으면 알겠지.”

예상대로 곧 이곳의 책임자 같은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다행히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전 이곳의 의장 올리라고 합니다.”

“배도빈이에요.”

악수를 나누었다.

“살아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다행이죠. 아마 주변에 WH나 구조대가 머물고 있을 텐데 그쪽에 연락 좀 해주세요.”

“예, 예.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남자가 직원에게 소리쳐 무엇인가를 전했다.

“이, 이런 곳에 계실 게 아니라 제 방으로 가시죠.”

“여기도 괜찮아요.”

“그, 그러십니까.”

목이 타 물을 부탁하자 직접 가져 다 준다. 의장이 뭔지 모르겠지만 아마 우리나라의 군수 정도인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직원들을 시켜도 되는 일을 마다 않고 직접 하니 참 친절한 사람이다.

이제 되었다는 생각에 여유롭게 앉아 있는데 1시간쯤 흐르니 조금 짜증이 났다.

오라는 WH는 안 오고 시장이라는 놈을 비롯해 별별 인간들이 다 찾아와 반갑지도 않은 인사들을 해댔다.

“너 대체 정체가 뭐냐?”

나와 같이 그들이 가져다 준 제법 괜찮은 소파에 앉아 음료를 받아든 스칼라가 오만 인상을 쓰며 물었다.

“배도빈.”

스칼라가 더욱 인상을 썼지만 그 외에 나를 더 잘 표현할 단어는 없다.

“시장님.”

“네, 네.”

“WH에는 연락한 거예요?”

“그, 그럼요. 저기 급하실 테니 저희가 공항까지 안내해 드리는 게 어 떠실지.”

‘ 아.’

친절하다고 생각했던 이 인간들이 뭘 생각하는지 알 것 같다.

날 구조했다는 걸 그들의 공적으로 삼고 싶은 것 같은데 나름 이해가 되면서도 짜증이 나는 건 별개의 일 이기에 웃으며 말했다.

“핸드폰 좀 빌려야겠네요.”

“ 예?”

대답하지 않고 손을 내밀자 시장이란 인간이 울상을 지으며 핸드폰을 꺼내주었다.

할아버지 번호를 누르자 곧장 받으셨다.

-도빈이냐!

“감 좋으시네요.”

직통 번호라 그런지 바로 내 이름을 부르시기에 깜짝 놀랐다.

-이 녀석아! 지금 농담할 때야! 어 디야! 어? 핸드폰은 어디다 팔아먹었어! 몸은! 할애비 죽는 꼴 보고 싶은 게냐!

“하하하하하!”

나도 모르게 크게 웃어버렸다.

순식간에 여러 말을 쏟아내는 할아버지의 사랑이 전달되어 기뻤고 안심이 되었다.

시장에게 여기가 어딘지 물어 할아버지께 전달했다.

“기다리고 있으니까 빨리 와주세요.”

-그래. 꼼작 말고 있어라. 어!

화내는 듯이 말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정겹다.

“ 네.”

전화를 끊고 어머니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로밍이 넘 어가자마자 바로 받으셨는데 말씀은 없으셨다.

“어머니.”

- 끄으으으윽.

“……어머니.”

-으흐윽. 도빈이니? 도빈이야?

너무나 서러운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목이 잠겼다.

“네. 할아버지하고 연락했으니 곧 돌아갈게요.”

—도빈아, 도빈아아.

어머니께선 한참을 우셨다.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눈물을 참을 수 없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몸은? 다친 데는 없고? 밥은? 배고프지? 춥진 않았니? 지금 어디야? 응?

“괜찮아요. 다친 데 없고 밥도 잘 먹었어요. 춥긴 했는데 도와준 사람 이 있었어요. 털 많은 옷도 빌렸고요. 시장님, 여기가 어디라 했죠?”

진정한 어머니께서는 이것저것 물 으셨는데 얼마나 걱정하셨으면 이러 실까 싶어 하나하나 대답해 드리고 있는데.

- 엄마?

-도진아, 이리 와봐. 빨리.

도진이가 통화하는 어머니 곁에 온 모양이다.

-……형아?

녀석의 목소리가 한껏 떨렸다.

“도진이 엄마 말 잘 듣고 있었지?”

-끄으아아앙! 어디야아아! 빨리 와아!

어머니에 이어 도진이도 한참을 울어 달래느라 고역이었다.

“그래. 형 빨리 갈 테니까 밥 잘 먹고 있어.”

-끄허어엉.

대답을 안 하는 걸 보니 전화기를 들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게 뻔하다.

영상 통화 세대라 그런지 곧잘 그랬으니까.

“어머니 좀 바꿔줘.”

도진이의 우는 소리가 멀어지고 어머니께서 전화를 받으셨다.

-그래, 도빈아.

“아버지한테도 전화할게요. 걱정하실 테니까. 어머니도 걱정 마시고 돌아가서 봬요.”

-그래. 엄마 나가 있을게. 조심해서 와. 웅?

“네.”

통화를 끊고 아버지, 최지훈, 차채은, 나윤희, 히무라, 나카무라, 사카모토, 푸르트벵글러, 진달래까지 통 화를 하자 시장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배터리 정도야 다시 충전하면 되는 데 뭐가 저리 걱정인지.

‘그러고 보니 내 걸 충전해 달라고 할 걸 그랬네.’

번호를 기억하지 못해 전화를 못한 이들도 있으니 생각을 잘못했다.

나도 경황이 없긴 없었던 것 같다.

“내 새끼!”

“도빈아!”

그때.

흥분한 할아버지가 동사무소(인지 모르겠지만) 문을 박차고 들어오셨는데 어찌나 힘이 좋은지 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 뒤로 아버지와 수십 명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아버지! 할아버지.”

반가운 마음에 일어서자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달려들어 얼굴과 몸을 떡 주무르듯 했다.

“도빈아, 도빈아!”

“이 녀석아! 할애비 놀라 죽게 할 셈이냐! 다친 덴. 아픈 덴!”

거구의 할아버지가 나를 끌어안고 아버지의 억센 손이 내 얼굴을 꽉 쥐어 숨이 막혔지만.

너무도 반가워 나도 한동안 그렇게 끌어안고 있었다.

“도빈아, 어떻게 된 거야. 응?”

테메스에 대한 일은 비밀로 하기로 했으니 적당히 이야기했다.

“정신을 잃었는데 쟤가 구해줬어요. 바로 내려올 수 없어서 몸이 나은 뒤 내려왔고요.”

깜짝 놀란 스칼라를 보며 이야기하 자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녀석에게 가 손을 꽉 쥐었다.

“고맙네. 참으로 고마워.”

“도빈이 아빠예요. 정말 고마워요.”

놀란 미어캣처럼 고개를 돌리는 스칼라가 당황해 감사를 전하는 할아 버지와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였다.

‘쟤 말은 어떻게 하지.’

신분이야 할아버지께 부탁하면 뭐든 처리해 주실 테니 큰 걱정은 없지만 문제는 언어다.

나도 현대 독일어를 익히려고 영화를 수없이 보고도 이상하게 썼던 만큼 스칼라도 적응하려면 꽤 시간이 들 것이다.

“그래.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돌아가자. 네 엄마랑 동생이 널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데.”

“네. 아, 할아버지, 저 문.”

“그래그래. 걱정 마라.”

“그리고 저 사람이 핸드폰 빌려줬어요.”

“그래. 김 실장.”

“예.”

굳이 자세히 말씀하진 않았지만 김재식 실장은 알아서 이런저런 대화를 시작했고.

경호를 받으며 근처 공항 격납고로 간 뒤.

드디어 의자다운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배도빈이라니까.”

녀석이 궁시렁대다가 비행기를 보 며 물었다.

“이, 이건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 지? 가끔 지나다니는 걸 봤어.”

그러고 보니 이놈도 내가 다시 태 어났을 무렵과 그닥 다르지 않다.

“맞아. 신발은 벗고 타는 거야.”

“아, 그, 그래.”

좀 재밌다.

-속보입니다!

배도빈이 베를린을 향한 지 7시간 뒤.

전 세계에 배도빈이 살아 있다는 속보가 이어지고 있었다.

-지난 달 비행기 추락 사고로 실 종되었던 베를린 필하모닉의 배도빈 씨가 베를린에 도착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뉴스 화면이 전환되어 배도빈과 가족들이 부여안고 우는 장면이 비쳤다.

-1시간 전, 배도빈 씨는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던 가족과 동료들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공항에는 가 족의 상봉을 배려하기 위해 배도빈 씨의 일가와 일부 지인들만이 함께 하였습니다. 현장에 있던 공항 이용 객들도 이들의 감동적인 재회를 축 복하였습니다.

뉴스 화면에는 깔끔하게 정리된 도로가 비쳤다.

-독일 정부에서는 배도빈 씨가 최대한 빨리 자택으로 돌아갈 수 있도 록 도로를 통제하며 환영의 뜻을 밝혔고 WH 그룹의 사설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현재 베를린의 자택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TV 화면에는 40여 대의 세단과 두 대의 헬리콥터 20대의 바이크가 배도빈 일가와 유장혁 회장 그리고 최지훈, 차채은, 왕소소, 진달래가 타고 있는 리무진을 경호하는 모습 이 비쳤다.

독일 정부는 타국의 대통령, 교황 과 같은 수준의 대우로 배도빈의 복 귀를 환영했고 베를린 시민들은 거 리로 나와 그들의 희망을 향해 눈물과 환호를 던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세계 각지에서 배도빈의 무사귀환을 대서특필하였으며 그간 슬픔에 빠졌던 이들은 배도빈의 환한 얼굴을 봄으로써 비로소 안도하였다.

4살부터 18살까지.

그가 활동한 14년간, 전 세계 클래식 음악 시장은 1,800% 성장하였고.

지구 전체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그 주역이었던 배도빈을 향한 사람 들의 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자 문제로 잠시 떨어진 스칼라를 두고 리무진에 올랐다.

이틀만 기다리면 데리러 오겠다고 하는데 말귀를 이해 못 해서 설득하느라 애썼다.

그나저나.

“……그만 좀 놔줬으면 좋겠는데.”

도진이가 목을 감고 안겨 있는 상태에서 최지훈과 차채은이 양쪽 팔을 붙들고 놔주지를 않아 꼼짝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도대체 다리는 왜 잡고 있는지 모르겠는 진달래까지.

2시간 가까이 우신 어머니를 간신히 진정시키니 다음 차례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안 돼!”

도진이와 차채은이 머리를 처박고 부벼대서 만족할 때까지 가만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겨우 고개를 돌려 최지훈을 보며 너라도 놓아 달라는 눈빛을 보냈는데 안 그러던 녀석도 내 시선을 무시하곤 머리를 들이댔다.

“야, 다리는 좀.”

“어림없지! 어딜 도망가려고!”

“……도망이 라니.”

진달래가 하악질을 한다.

포기하자.

소소가 주는 브라우니를 받아먹으니 좀 살 것 같다.

‘바쁜가 보네.’

나윤희가 보이지 않아 소소에게 물었다.

“푸르트벵글러랑 다른 사람들은요?”

“단원이랑 직원들 다 간다고 하는 데 국장이 말렸어.”

알 것 같은 느낌이다.

240명의 단원들과 80명의 직원들이 왔다면 정말 공항에서 날을 샐 것 같다.

어머니와 도진이를 달래는 데 2시간.

도진이와 최지훈, 차채은, 진달래도 아직까지 매달려 있으니 정말 며칠 간 공항에서 꼼짝 못 할 수도 있을 거다.

카밀라의 판단이 옳다.

얼마간.

베를린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집에 도착했다.

‘ 겨우.’

겨우 도착했다.

‘빨리 씻고 자야지. 아니, 카레를 먹고 싶은데. 슈퍼 슈바인에 가자고 하면 난리가 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문을 열자 농후 한 카레 향이 물씬 풍겼다.

냄새를 따라 천천히 부엌으로 향하자 나윤희가 국자를 휘젓고 있었고 인기척을 느낀 그녀가 뒤돌았다.

항상 포근하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눈물을 흘렸다.

다가가 눈물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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