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318화
69. 잊을 수 없는(2)
영화계 최고의 거장, 크리스틴 노 먼 감독의 신작〈Pole to Win〉은 2020년과 다음해까지 북미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던 동명 소설 「Pole to Win」을 원작으로 두고 있었다.
포율러 원 예비선수가 시즌 도중 갑작스레 투입되며 일어나는 이야기
가 크리스틴 노먼 특유의 감성으로 재구성되었으며 실제 F1 차량을 지 원받고 7개 서킷을 배경으로 했기에 장기간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해야 만 했다.
월드 디자인 그룹과 포뮬러 원 월 드 챔피언십™, 페라리, 각 서킷을 보유한 지역단체와 수많은 투자자들을 통해 4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수 준의 자본이 투입된 초대형 블록버 스터.
크리스틴 노먼의 신작, 배도빈의
영화계 복귀.
그리고 어쩌면 사카모토 료이치의 유작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Pole to Win〉에 대한 기대치는 최고조에 도달해 있었다.
L연말까지 어떻게 기다리라는 거 야 TTTTTT
L영상 진짜 미친 수준이네;;
느스토리는 단순한 거 같은데 연출 로 압살하는 듯.
닌:^먼 감독 영화 안 봤냐? 스토리 가 단순한 건 장점이지. 그 안에서 생각할 거리를 얼마나 많이 던져주
는데.
□재밌겠다.
L난 레이싱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느그럼 별들의 전쟁은 뭐 우주여행 은 가 봐서 보셨습니까? 지니위즈는 머글 아니셔서 보셨고요?
L얘는 왜 이렇게 날이 서 있냐.
L솔직히 소재 자체는 딱 봐도 홍 보성 영화라는 것 때문에 별론데 감독이랑 각본, 배도빈이랑 사카모토 때문에 안 볼 수가 없을 듯.
匕난 무조건 4DX로 본다.
L제작사측에서도 4DX 설비를 감
안하며 만들었다고 함. 으으. 곡 작 업만 남았다는데 배도빈이랑 사카모토면 진짜 개쩔것!다.
‘포뮬러 원’을 보는 TV 시청자 수는 전 세계 6억 명 정도로 추산되 는데 그들 세계에서도 인정받았던 원작 소설이 거장 중의 거장 크리스 틴 노먼에 의해 재탄생된다니.
포율러 원의 팬들로서는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원래 레이스를 즐기지 않던 사람들이라도 수많은 영화를 상업 적, 예술적으로 성공시킨 노먼 감독
의 신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욱이 배도빈, 사카모토 료이치의 팬들까지 합세하니 작품이 어떻게 나오는지가 중요할 뿐.
화제성에 있어서는 2023년에 발표 되는 그 어떤 문화 콘텐츠보다도 우 위에 있었다.
수많은 기대 속에서.
크리스틴 노먼 감독은 사카모토 료이치를 위해 본인과 음향 감독만을 대동, 그의 병실에서 미팅을 가졌다.
노트북 화면에는 질주하는 차량이 비치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는 속도감을 더해줬으
면 해요.”
이미 배도빈과 여러 번 함께한 적 이 있었기에 크리스틴 노먼은 그가 바라는 방향과 어떤 장면에 음악이 필요하다는 선에서 이야기할 뿐이었다.
배도빈이 잠시 화면을 반복해 보다 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 즉석으로 멜로디를 연주했는데 노먼의 표정이 시원치 않았다.
좋은 느낌이긴 했지만 노먼으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아니야.”
그녀가 고개를 젓자 배도빈이 사카모토 료이치를 보았다.
“아무래도 우리 생각이 맞는 듯하 군. 도빈 군, 준비해 주게.”
배도빈이 일렉트릭기타를 들어 연주하자 비로소 크리스틴 노먼의 얼 굴이 밝아졌다.
“좋아요. 정말 좋네요.”
“아뇨. 이걸로는 안 돼요.”
배도빈이 사카모토에게 시선을 주 자 그가 침상 위에서 노트북을 조작 했다.
묵직한 음이 울리자 배도빈이 연주
를 반복했고 선 굵은 베이스기타 소 리가 마치 엔진 소리와 어울려 그야 말로 질주하는 듯한 음악이 되었다.
음향감독이 입을 벌렸다.
“효과음으로 대체하려 했더만 그럴 필요 없었군.”
“어떻게 된 거야?”
노먼이 크게 기뻐하며 물었다.
“횡적 진행과 박자를 빠르게 가져 간다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어요. 저도 사카모토도 속도감을 높이 는데 속주만이 답이 아닌 걸 알았죠. 그래서 생각한 게 베이스. 비교 대상을 두는 게 더 큰 효과를 줄
테니까요.”
“통주저음을 잘 활용하는 도빈 군 이라면 날아가는 멜로디를 잘 받쳐 줄 거라 믿었지.”
노먼과 음향 감독은 역사적인 두 인물의 화목한 대화에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이런 두 사람이라면 정말
“하지만 역시 두 주인공의 관계에 선 사카모토의 피아노가 필요해요.”
“껄껄. 도빈 군이 이미 멋진 바이올린을 준비하지 않았는가. 그대로
가지.”
“아니에요. 숨을 몰아쉬는 두 사람 이 서로를 마주보고 눈으로만 대화 하는 장면이잖아요. 그 분위기를 살 리는 건 사카모토가 만들어 둔 곡이 더 나아요.”
“아닐세. 보다 보니 한쪽으로 치우 친 방향이지 않았나 싶어. 이야기 전반에 흐르는 감성과도 맞지 않고.”
“그런 점은 조금 수정하면 해결될 일이에요. 이렇게.”
배도빈이 직접 사카모토가 준비한 곡을 수정해 들려주었다.
“그 부분의 전개는 원본이 더 나은 것 같군. 너무 갑작스럽지 않나.”
“그게 더 긴장감을 줄 거예요.”
“아니야.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넘 어갈 수 있게 그 부분은 정적으로 넘기는 게 맞네.”
“아니라니까요. 봐요. 상승하다 떨 어지면서 생기는 공백이 더 효과적 이잖아요.”
훈훈하게 시작되었던 배도빈과 사카모토의 대화가 점점 더 과열되기 시작했다.
노먼이 음향감독에게 시선을 주어 누구 말이 맞냐고 물었지만 그로서
는 판단할 수 없었다.
“맞다니까요!”
“그럴 거면 자네가 준비한 바이올린 곡으로 하게!”
“왜 이렇게 고집을 부려요? 사카모토 피아노가 더 좋다니까!”
“더 좋다고 하면서 고치려는 건 무 슨 심본가!”
“그게 더 죻으니까 그러죠!”
두 사람의 논쟁이 정점에 치달았을 때 순간 반박하려던 사카모토 료이치가 크게 기침을 했다.
“쿨럭!”
거친 호흡과 새액 대는 소리가 겹 쳐 누가 들어도 심각해 보였다.
깜짝 놀란 음향 감독이 의사를 부 르기 위해 인터폰을 들었다.
“사, 사카모토.”
배도빈이 깜짝 놀라 천 밖에서 안 절부절못하는데 사카모토 료이치가 몸을 꿈틀댔다. 그러고는 뭐라 말하 려 하는데 차마 그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사카모토.!”
“쿨럭. 쿨럭. 그. 크허읍. 도빈.”
“알았어요. 알았으니 그만해요. 뭐
해요! 빨리 의사 부르지 않고!”
“하악. 하으으읍. 원…… 곡대로.”
“그렇게 해요. 알겠으니 그렇게 하 자고요. 말하지 말라고!”
“정말인가?”
«..yw
“이거 도빈 군도 같은 생각이라 무 척 기쁘네 그려.”
갑자기 상태가 호전된 사카모토 료이치가 침대에 등을 기대었다.
인터폰을 잡고 있던 음향 감독과 깜짝 놀라 허둥지둥대던 배도빈, 노 먼이 멍청하게 사카모토 료이치를
보았다.
“료이치 사카모토?”
“난 괜찮네.”
“최고의 영화 감독마저 속이는 연 기력이라면 나도 꽤 괜찮은 배우인 것 같은데. 껄껄껄.”
얼이 빠진 배도빈의 입술이 꿈틀댔다.
“웃기지 마!”
UCLA 메디컬 센터에서 벗어난 크 리스틴 노먼과 음향 감독은 웨스트 우드 대로를 지나고 있었다.
신호를 받아 차를 멈춘 음향 감독 이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인 거 같아요.”
그의 말에 크리스틴 노먼도 웃었다.
“그러게. 나도 정말 깜짝 놀랐어. 애도 아니고.”
“하핫! 그 연기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죠.”
그는 정말 감탄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두 사람의 일하는 방식이었어요.”
크리스틴 노먼이 흥미롭다는 듯 고 개를 돌렸다.
“어땠는데?”
“사실 제가 마에스트로 배의 입장 이었다면 료이치 사카모토의 의견을 대부분 들어주었을 것 같거든요. 아 무래도 그는 정말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지.”
“하지만 그는 결코 쉽게 료이치 사카모토의 뜻대로 해주지 않았죠. 연 기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화내면서
결국 자기 뜻대로 그의 곡을 고쳤고요. 충분히 의견을 나눈 뒤에는 료이치 사카모토도 인정했고.”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왔다.
음향 감독이 다시 차를 몰기 시작 했다.
“마지막까지 음악을 위해 그렇게 진지할 수 있다는 게 뭐랄까. 존경 하게 되더라고요.”
크리스틴 노먼이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아이스크림 매장인 로즈와 평소 자 주 들리는 지중해식 레스토랑 리완을 지나친 뒤에야 그녀가 입을 뗐
다.
“음악보다 중요한 게 없어서 그 래.”
손바닥을 앞으로 향해 스트레칭을 한 노먼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들에겐 정말 음악이 살아가는 이유니까. 나이 차이도 출신 국가가 달라도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거겠지. 죽음조차도.”
“말은 쉽지만 저는 그렇게 못 살 것 같아요.”
“맞아. 쉬운 일이 아니지. 그래서 그들이 마에스트로로 불리는 걸 테 고.”
노먼이 음향 감독을 보며 말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거야. 우 리도 최선을 다해야지.”
“네.”
늦은 밤.
사카모토 료이치는 문득 잠에서 깼다.
바스라질 것 같은 몸을 간신히 일 으키고 물을 찾았는데, 피아노 앞에 서 머리를 싸매고 있는 배도빈의 뒷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벌써 며칠째 집에 돌아가지도 않고 보조 침대에서 생활했던 탓일까.
이내 그 피로에 눌려 고개를 꾸벅 이기 시작했다.
사카모토 료이치는 모포를 들고 간 신히 일어나 배도빈에게 덮어주고 싶었지만, 이내 그 사이를 막고 있는 투명한 천에 저지당하고 말았다.
지퍼를 내리기만 해도 넘어갈 수 있건만.
사카모토 료이치는 한참을 서 있다 가 입을 열었다.
“도빈 군.”
배도빈은 반응하지 않았다.
몇 번을 더 부른 뒤에야 움찔하고 정신을 차렸다.
“……사카모토?”
“오늘은 돌아가 쉬게. 내일 오후에 다시 오면 되지 않나.”
간절했다.
마지막 작업을 배도빈과 함께할 수 있어 너무나 기뻤지만, 분노와 슬픔 조차 잊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가 건강을 잃기를 바라진 않았다.
고집은 그만 부리고 돌아가 편히 쉬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어쩜 저렇게 똑같은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보다도 고집스러운 배도빈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보조 침대에 누웠다.
“아침에 봐요.”
이내 배도빈의 숨소리가 고르게 이 뤄 졌다.
눕자마자 다시 잠든 것만으로도 배도빈이 얼마나 피곤한지 알 수 있어, 사카모토 료이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안쪽 커튼을 치고.
침대에 앉아 컴퓨터를 켠 사카모토
는 배도빈이 오케스트라 대전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을 때를 상 상하며 ‘포디움’의 악보를 채워나가 기 시작했다.
다소 발랄한 분위기로 시작하는 ‘포디움’은 10분 정도의 짧은 곡이었다.
복잡하지 않고 정갈하게 놓인 음계 가 전해주는 죽하의 메시지.
오케스트라 대전 파이널라운드에서 들려준 베를린 필하모닉 B의 ‘교향 적 무곡’을 모티프로 잡았는데.
배도빈에게 주는 그의 마지막 선물 이었다.
춤추는 듯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우승의 기쁨을 표출할 방법을 고민 하던 사카모토는 고통마저 잊은 채.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