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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314화 (314/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314화

    68. 그 사람(3)

    너무나 갑작스러운 반응에 나윤희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승희와 소소의 반응이 심상 치 않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확실히 맛있어?”

    "응."

    “이건……. 그거지?”

    다시금 확인한 이승희가 고개를 돌 리자 소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처음부터 이상했어. 제2바이올린 부수석 뽑을 때 따로 부른 사람도 윤희뿐이었고. 이제 얹혀살 지 않아도 되는데도 나가지 말라 했던 것도 그렇고.”

    “어, 얹혀사는 거 아니야. 월세도 꼬박꼬박 내고 있는데.”

    “가만있어 봐.”

    “발그레이 악장을 붙여준 것도 그래.”

    마치 퍼즐을 맞춰나가는 듯 추리를 거듭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나윤희는 괜스레 불안해졌다.

    “왜, 왜 그러는데?”

    “의미를 모르겠어요. 도빈 군이 카 레를 양보한 게 그렇게 놀랄 일이에요?”

    답답했던 료코도 가세하자 이승희 가 나윤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도빈이가 카레를 양보했다는 건.”

    이승희와 소소의 심각한 표정에 압 도된 나윤희는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침을 삼키자 이승희가 안타 깝다는 듯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입을 열었다.

    “널 놓칠 생각이 없단 뜻이야.”

    그 말이 너무도 허무했기에.

    나윤희와 료코는 어이가 없었다.

    “그게 무슨.”

    “쉽게 볼 일이 아니야!”

    이승희가 테이블을 내려치며 말했다.

    “내가 아는 배도빈은 자기 것은 절 대 양보하지 않는다고. 마르코도 봐. 결국엔 베를린으로 데려왔잖아. 안 그런 척하지만 걔 집착 엄청 심하다고.”

    “나도 정신 차리고 보니 베를린에 있게 됐어.”

    이승희와 소소의 말에 나윤희의 머 릿속에서도 조금씩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다.

    “확실해. 도빈이, 널 평생 부려먹을 생각이야. 안 봐도 뻔하지. 너 총보 제대로 공부한 적 있어?”

    “아, 아니.”

    “바이올린 섹션만이라면 모를까. 네가 아무리 연주를 잘해도 그런 네 게 악장 자리는 일러도 너무 이르 지. 근데 니아 씨까지 붙여주면서 가르치려 드는 거잖아. 네가 바라지도 않았는데.”

    “으, 응. 그래도.”

    “그래도가 아니지! 넌 아직도 도빈이를 모르니? 걘 악마라고 악마! 채 용시켜 줘, 집 걱정 해결해 줘, 진 급에 최고급 과외 선생도 붙여줘. 이보다 훌륭한 악마가 어딨어?”

    뭔가 이상했지만 이승희의 기세가 너무 대단했다.

    “게다가 아까 도빈이 결승 무대에 서튼 영상, 너였지?”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던 나윤희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되었다.

    “아, 알고 있었어?”

    “네 연주를 2년 넘게 들었는데 못 알아듣겠어? 봐봐. 어떤 사람이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데. 하물며 그 배도빈야. 그런 걜 네가 거부할 수 있을 거 같아?”

    “도, 도빈이는 그런 걸로 뭘 바랄 사람 아니야.”

    “쯧쯧.”

    이승희가 손가락을 까닥였다.

    “도빈이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문 제지. 나야 네가 쭉 베를린 필하모닉에 있길 바라지만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언젠가는 솔로가 되길 바라는 건 당연한 일이야. 게다가 주인공이 되어봤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주인공이 되어봤던 사람.

    불새를 연주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 리면 등을 타고 오르는 짜릿한 기분 에 행복했다.

    다시 한번 그 경험을 할 수 있다 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친한 동생, 훌륭한 후배가 상황을 인지한 것 같기에 이승희는 진심을 담아 그녀와 손을 포갰다.

    “나도 찰스 브라움도 소소도 알아. 오케스트라도 좋지만 솔로만이 느낄 수 있는 그 경험은 쉽게 포기할 수 없어. 지금이야 크게 생각 안 하겠지만 언젠가 베를린 필하모닉에서의 활동에 만족할 수 없을 때가 올 거 야. 넌, 더 성장할 수 있으니까.”

    “언니.”

    “도빈이도 그걸 알아서 네게 더 신 경 쓰고 있는 걸 거야. 걔 성격에 음악을 하겠다고 나가려는 사람을 막진 않을 거거든. 본인도 그런 이 유로 나가려 했었고.”

    “그러니까 유대관계를 더 만들고 싶은 거야. 그만큼 네가 도빈이에게 특별한 사람이라는 뜻이고.”

    ‘특별하다.’

    배도빈에게 직접 들은 게 아니지만 그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동시에 나윤희는 이승희가 왜 이렇게 진지하게 나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난 솔로 생각 없는데.”

    “그럼 안 돼.”

    그때 소소가 입을 열었다.

    “어엿한 바이올리니스트니까 독립 하고 싶다고, 더 성장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해. 욕심도 부릴 줄 알아야 해.”

    “저도 나윤희 악장이 개인 리사이 틀을 열면 꼭 가고 싶어요.”

    세 사람의 열렬한 관심에 나윤희의 얼굴이 붉어졌다. 정말 좋은 사람들 과 만나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 조심스러운 가슴에 네이즈 엔터테인먼트에서 있었을 때는 이루지 못했던, 큰 무대에 대한 동경이 다시금 싹 트기도 했다.

    그녀의 마음은 몹시 모순되어 있었는데 베를린 필하모닉을 벗어난 세 계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을 따듯하게 받아준 베를린이란 울타리 그리 고 본인에게 음악적 영감과 지침, 힘이 되어주는 배도빈이란 존재를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무엇 하나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윤희로서는 고민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나가는 건 안 돼.”

    “어?”

    “저, 저도 나윤희 악장이 나가면 싫어요.”

    “나도.”

    “..흐.”

    응원하면서도, 나가야 한다고 하면 서도 나가지 말라는 모순적인 상황.

    진심으로 위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 기에 나윤희는 작게 웃으며 잔을 들었다.

    그렇게 건배를 한 뒤 이승희가 중 얼거렸다.

    “나윤희 고생깨나 하겠네. 어휴. 배도빈 등쌀 어떻게 버티려나.”

    혹독하기로 유명한 배도빈이었지만 나윤희는 도리어 그런 상황이 더욱 기다려졌다.

    배도진의 바람으로 배영준 일가와 최지훈, 차채은은 휴가 첫날 독일연 방 물리기술 연구원을 견학하였다.

    삼십 분 동안 구체를 관찰하고 한 시간 내내 연구원들에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서야 배도진은 만족했다는 듯 차에 올랐다.

    영문도 모른 채 실리콘 구슬을 함께 봤던 차채은이 배도진에게 물었다.

    “그래서 대체 그게 뭐였는데?”

    “세상에서 젤 둥근 구슬!”

    황당해 말조차 안 나오는 건 차채은만의 일은 아니었다.

    배영준과 유진희, 배도빈마저 귀여 운 막내의 취향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일행 중 배도진을 이해하는 사람은 어렸을 적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던 최지훈뿐이었다.

    “그냥 봤을 때는 몰랐는데 XRCD 로 찍은 단결정 표면은 정말 깔끔하더라.”

    “응! 예뻤어. 간섭계 너무 좋아.”

    최지훈과 배도진의 대화를 듣던 차채은이 더는 못 들어주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배도빈은 넋을 놓고 끝없이 펼쳐진 평야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는데 쉬는 게 익숙하지 않아 다소 불안한 느낌이었다.

    차채은이 말을 걸었다.

    “달래 언닌? 당연히 같이 가는 줄 알았는데.”

    “그간 너무 오래 쉬었다고 돌아간대.”

    “열심히네.”

    “그래야지.”

    차채은이 눈매를 좁혔다.

    평소에도 그리 살갑지는 않지만 유독 진달래 이야기만 나오면 심술을 부리는 듯했다.

    “……오빠 진짜 달래 언니 좋아 해?”

    창밖을 보고 있던 배도빈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그 표정을 본 차채은 이 깔깔 웃었다.

    “왜 그렇게 싫어해.”

    “그런 꼬맹일 누가.”

    “오빠보다 한 살 많은데?”

    “……정신적인 걸 말하는 거야.”

    배도빈을 놀리는 데 신이 난 차채은은 집요하게 늘어졌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지훈이 끼어들었다.

    “저번에도 그렇고 도빈이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한창 재미를 보던 차채은은 방실방 실 웃는 최지훈을 보곤 입을 닫았다.

    배도빈은 다시 창밖으로 눈을 돌려 생각에 잠겼다.

    ‘대교향곡 완성이 너무 더뎌. 여행 이라도 가면 좀 나아지려나. ……휴가 뒤에 B팀 인계를 서둘러야겠어. 케르바 슈타인이 대신해 줘야 그나마 시간이 날 거야.’

    ‘아. C팀 구성도 처리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역시 찰스를 중심

    으로 해야겠지. 아냐. 이승희도 괜찮겠지. 첼로가 메인인 것도 나쁘지 않아. 듀엣으로 올려도 좋고. 그럼 A팀 악장은 누구로 채우지. 역시 소소가……. 아니. 리더로서는 부족 해.’

    ‘지훈이랑 연주할 연탄곡도 문제고. ……가우왕과도 약속했었지. 나윤희에게도 하나 주고 싶은데. 휴가 뒤엔 슬슬 복귀할 수 있을까? 재활이 잘 되어야 할 텐데. 무리하는 쪽 이라 정말 괜찮은지 알 수가 있어야 지.’

    ‘고려할 일이 너무 많아. ……홍승 일의 기일이 언제였더라. 아. 11월 6일. 올해는 가야 할 텐데 시간을 낼 수 있을까.’

    ‘노먼이랑 사카모토가 함께해 달라 고 했는데. 가능한 시간을 정리해 봐야겠어. 휴가를 최대한 활용해 봐 야지. 할아버지와 한 약속도 있는데 계속 미루면 안 좋지.’

    그 외에도 여러 단체에서 보내온 수상 사실과 초청장 등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쌓여 있었다.

    그럴수록 배도빈은 그러한 일들에 대해 더욱 거리를 두고 싶어졌다.

    ‘그러지 않아도 바빠 죽겠는데.’

    배도빈이 피로에 눈을 감자 핸드폰이 울렸다.

    나윤희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붕대 풀었어. 바빠 보여서 인사를 못했는데…… 앙코르 무대 고마워. 정말 감동이었어. 앞으로 더 열심히 할게, 보스.]

    메시지에는 사진도 함께 첨부되어 있었는데 자기 몸보다 큰 TV 박스를 끌어안고 있는 왕소소와 눈이 튀 어나올 것 같이 놀란 이승희와 입을 가린 료코, 두 팔을 번쩍 든 진달래 그리고 화면 앞에 반쯤 잘린 나윤희 의 모습이었다.

    ‘귀엽네.’

    그것을 본 배도빈이 씩 하고 웃었다.

    ‘……케르바 슈타인의 자리를 찰스 가 대신하고 C팀 메인은 나윤희에 게 맡겨도 되겠지.’

    무엇부터 해결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작은 부분이 해결된 듯했다.

    그제야 배도빈은 잠시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레버쿠젠 별장은 어떤 곳이에요?”

    “히도퍼 지란 호수 근처야. 지금쯤 이면 사람이 많을 텐데 외딴 곳이라 조용하대.”

    “가본 적 있으세요?”

    “아니.”

    각 도시마다 별장을 두고 있는 유장혁 회장의 장녀이자 어머니 유진 희의 당당함에 배도빈이 작게 웃으며 눈을 감았다.

    월드 디자인 스튜디오는 이번 대규모 영화 제작에 있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20년, 로버트 바틴슨 주연의 판타지 블록버스터 영화 이후 3년 이 상 대본을 준비한 크리스틴 노먼 감독의 열정은 대단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고 더 바라는 게 있다면 ‘인크리즈’와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함께하며 크게 성공시킨 배도빈과의 합작이었다.

    그러나 배도빈의 일정이 빡빡하고 전처럼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에 크리스틴 노먼 감독은 사카모토 료이치를 영입.

    가능하다면 두 거인이 함께 음악작 업을 도와주었으면 했다.

    언뜻 사카모토 료이치와 배도빈 두 사람 모두에게 실례가 되는 일일 수 도 있었지만, 그것이 큰 욕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크리스틴 노먼은 최고 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일을 밀어붙였고.

    배도빈으로부터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받은 상태였다.

    대부분의 촬영이 끝난 상태.

    우선 작업을 시작한 사카모토 료이치와 크리스틴 노먼은 매일 두 시간 이상 미팅을 가지며 의견을 활발히 공유하였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었다.

    사카모토 료이치의 천재적 발상은 오케스트라 곡만을 고집했던 크리스 틴 노먼에게 또 다른 영감을 불러일으켰고, 크리스틴 노먼의 세계관은 사카모토 료이치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제 바랄 것은 사카모토 료이치의 감성적 피아노와 배도빈의 격렬한 오케스트라를 알맞게 재단해 영화에 입히는 일만 남았고.

    그 고무적인 상황에서 사카모토 료이치의 와병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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