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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313화 (313/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313화

    68. 그 사람(2)

    ‘ 적당하네.’

    다들 아직 취하진 않은 듯 얼굴색이 멀쩡했다.

    맨 정신으로 저렇게 소리 지르며 웃을 수 있는 걸 보면 만취했을 때는 어떨지 상상하기도 싫다.

    나도 함께 마신 탓에 기억이 없는 게 다행이다.

    “어, 보스다!”

    “어디 갔다 지금 오는 거야!”

    “또 마시고 연주하자고!”

    소란스럽게도 맞이해 준다.

    “그건 뒤로 하고 발표할 게 있으니 다들 모여주세요.”

    앞으로 나가 파티장을 둘러보니 250명의 단원과 80명의 직원들이 천천히 모이고 있었다.

    다들 준비가 된 것 같기에 입을 열었다.

    “우선 최선을 다해준 모든 분께 감 사합니다. 오늘 밤은 충분히 즐겨주세요.”

    다들 정말 기쁜 표정이다.

    좋은 일을 미룰 이유는 전혀 없기 에 시상식 날에 맞춰 일을 진행할 수 있게 준비해 두었다.

    다행히 A팀이든 B팀이든 어느 한 쪽은 우승을 확정해 두었으니 말이다.

    “그와 별개로 공치사는 분명히 해 야겠죠. 카밀라 국장. 부탁할게요.”

    “ 네.”

    카밀라 앤더슨이 무대 옆에 서서 준비해 두었던 일을 발표하기 시작 했다.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의 우승, 준우승 상금은 전 단원에게 공평히 분배될 예정입니다.”

    “와아아!”

    “세금을 제한 총 수령 예정액 9,68 0만 달러 중 40퍼센트가 베를린 필하모닉 운영예산에 포함. 잔액 5,80 8만 달러는 직급에 무관하게 공평 분배됩니다. 3주 뒤 관련 내용이 게 시될 예정이니 자세한 내용은 확인 후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왜 이래?’

    우승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발 표에 환호하던 단원들이 멍청하게 서 있을 뿐이다.

    “자, 잠깐만요. 국장님. 제 귀가 잘 못된 것 같은데.”

    “술은 너무 많이 마셨나?”

    “5,800만 달러 나누기 250이면 얼 마야?”

    “……20만 달러가 넘는다고?”

    단원들이 더 멍청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고 고개를 끄덕이자 기쁨이 아닌 광기를 보여주었다.

    “꺄아아아아악!”

    “진짜야? 진짜? 진짜 진짜 진짜?”

    “우오오오오!”

    단원들은 1년치 또는 2년치 연봉을 한 번에 받게 됨을 알자 우승을 확정 지었을 때보다도 더 기뻐했다.

    뭔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좋아한 다니 잘 된 일이다.

    “또한 3주 뒤 정식 임명 절차가 있을 예정입니다. 악단주, 예술 감독, 퍼스트 피아니스트…… 나머진 생략할게요. 배도빈 악단주를 비롯, 대회 기간 중 변동이 있었던 직원들 과 추가 인사이동에 관해 공지될 예 정입니다.”

    “좋네.”

    “하긴. 좀 날림으로 한 느낌이었으니까.”

    니아 발그레이와 나윤희 이외에 C 팀을 준비하기 위해 B팀을 케르바슈타인에게 맡길 생각이다.

    단기간이지만 상임 지휘자로서 능 력을 발휘해 준 그라면 B팀을 잘 이끌어줄 것이다.

    그래야 내가 활동하기도 쉽고 푸르트벵글러가 내게 지운 짐도 덜어낼 수 있고 말이다.

    “또한 악단주 특별 포상으로 전 직 원은 내일부터 2주간 유급 휴가를 지급받습니다. 기간 조정을 원하시는 분은…… 반려하겠다는 게 악단 주의 입장이십니다.”

    “보스으으으!”

    “이런 독재는 환영이지!”

    “하하하하하!”

    마누엘 노이어의 발언에 옆에서 조 용히 위스키를 마시고 있던 푸르트벵글러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어쨌거나 휴가 끝에 얼마나 고생할 지 생각하면 지금은 그 뒤 일은 숨기는 편이 좋겠다.

    “마지막으로 배도빈 악단주께서 연설을 하시겠습니다.”

    ‘이 녀석들이.’

    방금까지만 해도 날 보던 눈빛과 전혀 다르다.

    순수한 존경의 시선을 돈과 휴가로 산 듯해 조금 불쾌해졌으나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모두에게 공평 한 기회를 부여할 거고 능력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지급할 겁니다. 지금 까지 노력해 온 여러분께는 너무나 반가울 수 있지만, 그 위치에 적합하지 못한 이는 도태될 거예요. 그 점이 언젠가 각 개인에게 부담이 될 때도 있을 겁니다.”

    인간인 이상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 이다.

    그러나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단원이라는 자부심 이 이어진다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것은 그간 너무도 잘해준 단원들 에 대한 보답이자 앞으로 더욱 나아 가기 위한 동기며 동시에 나태해지 지 말라는 경고다.

    ‘너무 앞선 걱정이겠지.’

    하지만 저 믿음직스러운 면면들을 보고 있자면 그런 걱정 따위 조금도 필요 없을 듯하다.

    “그럼 2주 뒤에 뵙죠.”

    누군가 가져다 준 잔을 들어 보이 자 모든 직원이 잔을 들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위해.”

    “베를린 필하모닉을 위해!”

    우렁찬 함성과 함께 연설을 마쳤다.

    “휴가라니. 도빈이가 풀어줄 줄도 아네.”

    “도빈이 속 깊어.”

    이승희는 드물게 남을 칭찬하는 소 소에게 시선을 주었다.

    배도빈은 예외긴 하지만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 그녀였기에 좀 더 말을 붙여보았다.

    “너 평소랑 좀 다르다?”

    “가지고 싶은 TV가 있었어. 이제 살 수 있어. 도빈이 속 깊고 따뜻 해. TV 화면만큼.”

    “아학핳하하. 못 말린다. 진짜. 그래. 솔직한 게 네 매력이지.”

    이승희가 한번 크게 웃고는 잔을 들었다.

    소소도 기분이 좋은지 응해주었는 데 나윤희는 넋을 놓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어, 어? 아니.”

    나윤희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 러본 뒤 잔을 들었다.

    그러나 쉽게 넘어갈 이승희가 아니었다.

    “요거. 요거. 무슨 일 있는데? 뭔 데? 말해봐. 우리 사이에 못 할 말이 어딨어.”

    “••••••있어.”

    이승희가 료코와 소소를 번갈아 보 곤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아무튼 짠!”

    기분 좋게 잔을 비우곤 이승희가 료코에게 물었다.

    “휴가 때 뭐 할 거야?”

    “일본에 가보려고요. 엄마도 보고.”

    “좋네. 요코 씨 아직 평론 활동 활 발히 하시더라. 딸 사랑이 지극하시 던데?”

    “……내 이야기 쓰지 말랬는데.”

    이승희가 나카무라 요코가 쓴 비올 리스트 나카무라 료코에 대한 평론을 찾아 보여주니 료코가 기겁을 하 고 말렸다.

    “소소는?”

    “드라마 볼 거야.”

    “그리고?”

    “그리고?”

    “설마 2주 내내 TV만 볼 생각이야?”

    "응."

    “어지간하다. 대체 뭐가 그렇게 재밌는데?”

    소소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한스 이안이 테이블로 다가왔다. 얼굴 이 잔뜩 달아올라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취해 있었다.

    “이승희 수석! 재미없게 이야기만 할 거야?”

    “네네. 지금 너무 좋은 때니까 놀 거면 저리 가서 놀아.”

    “보스가 또 바이올린 연주하고 있다고. 가서 놀아야지.”

    이승희가 슬쩍 고개를 돌리자 배도빈이 또다시 무대에서 신나게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찰스 브라움은 물론 푸르트벵글러 까지 어울리고 있으니 주변에선 덩실덩실 춤을 추고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재밌어 보이네. 다음에.”

    그러나 이승희의 철벽에 한스 이안 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나이깨나 먹은 남자가 주인에게 혼 난 개처럼 서 있기에 이승희가 한숨을 내쉬고 손을 저었다.

    “데이트 신청할 거면 제정신으로 와. 그럼 한번 생각해 볼 테니까.”

    “어, 어!”

    그제야 후다닥 자리를 떠난 한스 이안을 보며 나윤희와 료코가 노골 적으로 눈을 깜빡였다.

    어떤 사이냐고 묻는 그 행위에 이 승희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원래 저랬어.”

    “어, 언제부터?”

    “글쎄. 기억도 잘 안 나. 도빈이가 들어오기 전부터였으니까 꽤 된 거 같은데.”

    “이, 이 년이나요?”

    “아니. 도빈이가 언제 들어왔었지? 11년도였나? 아마 그쯤.”

    이승희의 말에 나윤희와 료코가 서 로를 보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12년이 넘는 짝사랑이라니.

    연애 경험은 텍스트와 그림뿐이었던 료코와 나윤희로서는 신날 수밖 에 없는 이야기였다.

    “왜, 왜? 왜 안 만나? 한스 이안 부수석 괜찮잖아.”

    “말도 마. 저 녀석 정신 차린 거 얼마 안 됐어. 예전에는 양아치도 그런 양아치가 없었어. 걸핏하면 껄 떡대질 않나 술은 또 엄청 좋아해.”

    “그래도 잘생겼잖아요.”

    “응. 잘생겼어.”

    “이래서 어린 것들은 안 돼.”

    이승희가 검지를 까딱이곤 칵테일 잔을 들었다.

    “남자는 무조건 성실함이야. 그래. 얼굴 반반하고 능력 있으면 좋지. 하지만 그건 기본이고 허튼 데 한눈 팔지 않고 심성 바른 사람이 최고란 말이야.”

    이승희의 말에 나윤희와 료코가 고 개를 끄덕였다.

    만약 필기구가 있었다면 메모라도 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는데 소소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결혼 못 했어?”

    이승희의 얼굴이 기괴하게 꺾였다.

    “우리 소소 드라마 보고 싶지 않은 것 같은데?”

    서슬 퍼런 눈빛을 한 이승희가 ‘요, 요 입이 버릇없는 입이지?’라고 말하며 소소의 볼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얼굴이 잔뜩 늘어난 상태로 도 소소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한 번 더 물었다.

    “사실 기대하고 있는 거 아니야? 달리 만나던 사람도 없었잖아.”

    소소의 추가 공격에 무서워 벌벌 떨던 나윤희와 료코가 다시금 눈을 반짝였다.

    반면 흉흉했던 이승희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가득 차버렸다.

    “무우슨!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헛소리 말고 먹던 거나 마저 먹어!”

    이승희는 소소의 입에 브라우니를 가득 채운 뒤에야 진정했고 소소는 풍족한 당분에 만족하며 입을 닫았다.

    흥분했던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자 료코가 용기를 내 조심스레 물었다.

    “나윤희 악장은 휴가 때 뭐 하세요?”

    “모르겠어. 지금은……

    정말 딱히 생각나는 일이 없었기에 나윤희는 잠시 고민했다.

    ‘아빠도 한번 보러 가야 하는데.’

    그러나 직접 무대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그 이상 힘을 보탰기에 지친 그녀는 쉬고 싶단 생각이 간절했다.

    휴가 기간도 길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은 며칠 미뤄도 될 것 같았다.

    “우선은 슈퍼 슈바인에 가서 특제 카레를 먹고 푹 자고 싶어.”

    “슈퍼 슈바인? 들어본 거 같은데?”

    충격에 빠져 있던 이승희가 고개를 돌렸다.

    “응. 달래가 아르바이트하던 데야.”

    “아아. 기억난다. 도빈이도 엄청 다닌다고 하던데. 그렇게 맛있어?”

    나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카레도 맛있는데 하루에 열 그릇만 파는 특제 카레가 정말 맛있어. 과일이랑 야채를 갈아서 같이 끓인대.”

    “느낌이 안 오는데.”

    “먹어보면 달라. 엄청 인기 있어서 퇴근하고 가면 거의 못 먹거든. 도빈이가 양보해 줘서 몇 번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어.”

    나윤희의 말에 열심히 브라우니를 씹고 있던 소소의 턱이 멈췄다.

    나윤희는 두 사람의 반응에 당 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 정말이야. 정말 맛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이승희가 손을 뻗어 나윤희의 말을 막았다. 그러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배도빈이 카레를 양보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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