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11화 (311/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311화

    67. 클래식(10)

    객석으로부터 뜨거운 환호가 이어 졌다.

    베를린 필하모닉에 입단하기 전까 지 몇 년간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던 배도빈의 연주를 다시 들을 수 있음에, 더 이상 체면 따윈 중요치 않았다.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배도빈의 이름을 반복해 외칠 뿐이었다.

    “협주…… 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게.”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관객들은 과연 누가 배도빈과 함께할지 의문 이었는데 무대 위에 그 외에 다른 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사카모토 료이치 아닐까?”

    “대박.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근데 사카모토 료이치는 베를린 필 소속 이 아니잖아.”

    “맞아. 베를린 필하모닉의 우승 기념 앙코르 공연인데 베를린 필 출신 이 아니면 이상하지.”

    “난 찰스 브라움이랑 같이했으면 좋겠는데.”

    “내 생각엔 A팀이 따로 안 나왔으니 그쪽에서 나올 것 같아. 케르바 슈타인이라든지.”

    “헉. 혹시 니아 발그레이 아냐? 왜, 최근에 다시 복귀했다잖아.”

    “힘들지 않을까? 연주가 가능했으면 악장으로 돌아갔겠지.”

    “설마 푸르트벵글러는 아니겠지?”

    “미쳤다.”

    여러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배도빈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오직 배도빈과 피아노만이 빛 아래 도도하게 자리했다.

    콘서트홀은 아주 작은 소리도 없이 고요해 관객들은 고인 침조차 마음 대로 삼킬 수 없었다.

    배도빈의 손이 건반 위로 향했다.

    마치 유리처럼.

    작은 파문조차 없는 호수 위에 놓인 듯한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배도빈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 안타까운 소리가 장내에 스며들고.

    마침내 연주가 시작되었다.

    이슬처럼 떨어지는 음계들이.

    마치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같이 상 냥하게,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을 속삭였다.

    주제의 맑고 부드러운 멜로디에 취 한 관객들은 이내 배도빈의 정원으로 들어서고 말았다.

    보슬보슬 봄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깊게 누르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만 큼의 힘만으로 현을 때린 건반은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관객들의 마음을 적셨다.

    정원에서 한가롭게 여유를 부리던 남자가 비를 피했다.

    축축해진 옷과 젖은 머리를 털어내 니 비강을 가득 채우는 풀내음.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구나.’

    ‘31 번이네.’

    사랑스러운 주제음이 반복될 때마 다 감정은 더욱 고조되었다.

    그것은 빠르고 화려하고 빼곡하게 자리한 음표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걸 말하듯 때때로 간지럽히듯, 음과 음 사이의 공백조차 음악으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마치 처음 나란히 누운 연인처럼.

    서로의 눈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이끌려 얼굴을 어루만지고 이마를 맞대어 조심스러운 행위 속에서 가 슴만은 터질 것만 같이.

    피아노를 다루는 배도빈은 아름다 웠다.

    그와 그의 연인이 함께 내는 노래는 더욱 아름다웠다.

    그러나 드리우는 먹구름.

    빗줄기가 굵어질 것을 암시하는 대 목이 나오며 배도빈 특유의 짙은 우 수에 젖은 감성이 관객들의 가슴을 철렁이게 했다.

    건반을 누르는 배도빈의 손은 마치 쓰러져 처절하게 바닥을 기는 이와 같았고 그럴수록 이 뒤에 올 절망이 두려워졌다.

    그러나.

    ...

    사카모토 료이치는 평소와 다른 느낌을 받았다.

    다른 음악가의 곡은 뜯어고치다시 피, 아니, 자신의 색으로 덧칠했던 배도빈도 유독 베토벤의 곡만큼은 원형을 유지했는데 이번 피아노 소 나타 31번만큼은 이미 조금씩 달라

    지고 있었다.

    음과 음 사이의 공백조차 아름다웠 지만 마치 의도적으로 비운 듯한 느 낌을 지울 수 없었다.

    분명 그 자체로도 훌륭한 곡이나 무엇인가 빠져 있다는 느낌.

    그것은 연주가 이어질수록 확신이 되었다.

    퍼즐 조각 하나를 보면 그 옆에 올 모양을 유추할 수 있듯이 배도빈 이 연주하는 곡은 베토벤의 31번 피아노 소나타가 아니라는 점과.

    반쪽이 따로 있다는 추측.

    그러한 생각이 자리 잡을 즘.

    갑자기 배도빈이 연주를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콘서트홀을 채우기 시 작한 아름다운 선율.

    봄비처럼 내리던 피아노의 음계를 대신해 순풍처럼 불어오는 현의 떨림.

    비슷하면서도 다른 또 다른 주제가 밝고 희망찬 목소리로 연주되었다.

    천천히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에 바이올린이 비쳤다.

    연주자를 알아볼 순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하진 않았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설치한 음향 기기에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연주는 관객들을 매료하고 있었다.

    그에 맞춰.

    배도빈의 피아노도 다시금 노래하기 시작했다.

    작품 번호 30-3번.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8번 G장조.

    분위기는 단 한순간에 변화해 하강 하던 음계들이 높이 더욱 힘차게 날 갯짓을 했다.

    피아노는 당차고 희망 가득한 그 행위에 어울려 방금까지의 어둠에서 탈출해 구름 위로 솟았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들려주는 완벽한 하모니.

    완벽한 협주에 모든 관객이 가슴 설레고 있을 때 단 한 명의 사람만이 입을 막고 몸을 떨었다.

    ‘반드시 결승 무대에 서게 해줄 테 니까.’

    처음에는 몰랐다.

    화면에 보이는 거라곤 클로즈업된 바이올린뿐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베를린 필하모닉 악 장 오디션 때 연주했던 본인이라는 걸 알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바이올리니스트 나윤희는 더 이상 고개를 들고 있을 수 없었다.

    2년 전의 미숙한 연주에 맞추어 너무도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는 배도빈은.

    바이올린의 날개를 장식하고 있었다.

    더 크고 더 화려하게 들리도록 저 음부에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적절히 변형시키며 즉흥적으로 연주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베를린의 바이올리니스트는 .

    준결승과 결승전에 함께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은 끝까지 함께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을 결코 내비치지 않았다.

    기뻐하는 단원들이 마음껏 환호할 수 있도록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았어야 했다.

    진심으로 행복하면서도.

    차마 충족되지 않는, 포기할 수 없는 최고의 무대를 향한 갈망이 나윤희를 괴롭혔거늘.

    OOTY 오케스트라 대전 최후의 무대에서 울리는 자신의 연주와.

    그것에 어울리는 도도하고 고고하 고 따뜻한 피아노.

    그가 무슨 마음으로 이 무대를 준 비했는지 알기에 나윤희는 끝내 눈 물을 쏟고 말았다.

    한편.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배도빈의 연주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연주였지만 굳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번으로 연주를 시작해 바이올린 소나타 8번으로 나아가는 어려움을 자처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두 곡의 주제가 유사하긴 하고.

    그 때문에 피아노 소나타 30번이 바이올린 소나타 8번을 작곡할 시기를 그리워하며 만들어졌다는 의견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완전히 다른 곡 이며, 연주 도중에 다른 곡과 어울 리기는 쉽지 않았다.

    아니, 배도빈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그러한 즉흥 연주가 가능한 이가 몇 이나 될지 푸르트벵글러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어디서 많이 듣던 바이올린인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즘.

    아주 작은 목소리가 새어나와 푸르트벵글러에 귀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우측 아래를 본 그의 눈에 들썩이는 작은 어깨가 들어왔다.

    ‘……그런 일이었나.’

    푸르트벵글러가 숨을 길게 내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연주는 이제 절정으로 치닫고.

    모든 이의 축복 속에 막을 내렸다.

    “보스.”

    “아, 멀핀. 가능할 것 같아요?”

    “네. 영상은 기록실에 남아 있어 가능할 것 같긴 한데 문제는 음향 기기죠.”

    “믿을게요. 준비해 주세요.”

    “네. 그리고……

    “ 네.”

    “저는 음악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음대 출신이라 들었어요.”

    “보스 앞에선 유치원생이죠. ……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도 될까요?”

    “ 얼마든지요.”

    “굳이 이렇게 복잡한, 그러니까 어 려운 방향을 잡으신 이유가 있나요?

    하실 거면 그냥 처음부터 영상을 틀 고 맞춰 같은 곡을 연주하면 될 텐 데. 나윤희 악장의 영상에서 피아노 소리만 추출해 뺄 수 있거든요.”

    “ 아.”

    “네.”

    “31번 피아노 소나타를 헌정할 사람을 찾았거든요.”

    “ 네?”

    “그러니까 그 일은 괜찮아요. 그럼 잘 부탁할게요.”

    “네……

    배도빈의 자축 무대가 끝나고.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애틋함을 느끼며 만족했다.

    “근데 대체 무슨 곡이었어?”

    “바이올린 소나타 8번 아니었나?”

    “30 다시 3말이지?”

    “근데 시작은 피아노 소나타 31번

    이었잖아. 또 반주도 달랐고.”

    “……좋았으니까 됐어!”

    관객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무대 위에 시상대가 준비되었고 준비를 마치자 사회자 자르제가 앞으로 나와 식을 진행하였다.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장이 직접 3위를 차지한 암스테르담 로얄 콘세 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 자 마리 얀스의 목에 화한을 걸어주었다.

    “3위를 차지한 암스테르담 로얄 콘 세트르헤바우 오케스트라에는 빈 협 정에 따라 5,400만 달러와 실버 트 로피가 지급됩니다.”

    사회자의 말에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정말 열렬한 환호였습니다. 마에 스트로 마리 얀스, 소감이 어떠십니까?”

    트로피를 든 마리 얀스는 부드럽게 웃었다.

    “이번 계기를 통해 클래식 음악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오늘 의 영광을 단원들과 팬 분들께 돌립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깊이 숙였는데 전 세계가 대회 기간 내내 감동과 즐거 움을 준 거장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세계 최고의 지휘자면서도 자신의 공적을 내세우지 않는 그 고결함은 수많은 후배 음악가들이 그를 본으로 삼는 이유 중 하나였다.

    “다음은 베를린 필하모닉 A입니다.”

    자르제의 말과 함께 협회장이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에게 화한을 걸어주었다.

    “2위를 차지한 베를린 필하모닉 A 에는 빈 협정에 따라 7,600만 달러 와 골드 트로피가 지급됩니다.”

    “워우.”

    암스테르담 오케스트라 때와는 다른 반응이었다.

    870억 원에 해당하는 거액에 관객 들은 진심으로 놀라고 말았다.

    더욱이 자매 악단인 B가 우승을 차지했으니 이번 대회로 베를린 필하모닉이 거둘 이득은 홍보 효과 등을 차치하고서라도 천문학적 수준이 될 터였다.

    “이번에는 부러움이 다소 섞인 반응이었네요. 마에스트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소감 부탁드립니다.”

    자르제에게서 마이크를 빼앗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꼬장꼬장한 표 정으로 객석을 둘러보았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번 대회에는 참가하지 않으려 했다.”

    전 세계를 상대하고 있는데 뻔뻔하 고 무례하게도 평대하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모습에 사람들은 인상을 쓰기는커녕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이미 나를 대신할, 이 시대의 음악을 대신할 녀석이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푸르트벵글러가 자신의 왼쪽.

    포디움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배도빈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자랑스러움으로 가 득 차 관객들을 흐뭇하게 하였다.

    “그러나 저 흰머리가 말하더군.”

    순간적인 망발에 사회자 자르제도 마리 얀스 본인도 관객과 시청자 모 두 얼이 빠졌지만 푸르트벵글러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해서 내 음악이 끝나는 건 아니라고 말이야. 결과적으로는, 그런 것 같다. 이 자리를 빌려 인사하지.”

    잠시 경직되었던 객석에서 박수가 나왔다.

    20세기와 21세기를 걸쳐 가장 위 대한 지휘자였던 두 명의 거장이 포 디움에서 내려와 서로를 끌어안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이크를 돌려받으려는 자 르제를 무시하고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

    “베를린 필하모닉에 관한 이야기는 새로운 주인에게 맡기도록 하지.”

    푸르트벵글러는 마이크를 곧장 배도빈에게 넘겼고 자르제는 이제 포 기한 듯 한발 뒤로 물러섰다.

    협회장이 나서 배도빈에게 화한을 걸어주자 배도빈이 사회자를 대신해 입을 열었다.

    “우리에겐 수정으로 된 트로피를 주네요. 금이 더 비싸지 않아요?”

    “하하하하!”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다들 궁금해하는 것 같은데, 상금 은 얼마에요?”

    배도빈이 협회장에게 마이크를 가 져가댔고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힘차게 상금을 발표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B의 우승 상금은 빈 협정에 의거, 1억 달러입니다.”

    “와아아!”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돌발행동과 그것을 잘 받아넘긴 배도빈 덕분에 한껏 달아오른 시상식 무대 속에서 배도빈이 마이크를 들었다.

    다소 흥분했던 콘서트홀에 열기가 남아 있을 때 베를린의 마왕이 입을 열었다.

    “저와 베를린 필하모닉이 최고라는 게 입증되었네요.”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배도빈의 오만한 발언은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배도빈은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암스테르담 오케스트라도 런던 심포니도 빈 필도 체코, 시카고, 모스코바, 클리블랜드……. 모두 최고의 오케스트라였습니다.”

    차분한 목소리에서 전달되는 진정 성이 시상식을 보는 모든 이에게 전달되었다.

    “누군가의 기준으로 또 팬들의 선 택으로 이 자리에 섰지만 그것이 그들을 모두 표현할 순 없습니다. 그 건 누구보다도 우리의 연주를 들은 팬 여러분이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

    배도빈이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더욱 성장할 겁니다. 완벽한 연주를 위해. 그러나 완벽이란 있을 수 없기에 끝없이 노 래할 겁니다. 오늘의 이 자리가 끝이 아니고 베를린 필하모닉의 출발 점임을 약속합니다.”

    짝.

    짝짝짝짝.

    누군가의 행동으로 시작된 박수는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해졌다.

    클래식이 영원할 거라고 말하는 듯 한, 그 믿음직스러운 발언에 설레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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