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08화 (308/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308화

    67. 클래식(7)

    긴 시간 이어진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은 이제 런던 심포니와 암스테르담 로얄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의 3, 4위전과 시상식 무대만을 남기고 있었다.

    대회 기간 총 6개월.

    참가 악단 총 128곳.

    참가자 14,727명.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 주최.

    잘츠부르크시, 유럽 오케스트라 운영 위원회, 라이브 베이션 주관.

    WH 그룹, 미시시피, 고글, 뉴튜브, 위너 클래식, 그라모폰, 유니온 스 뮤직 그룹 외 21개 사 후원.

    누적 시청자 13억 8천만 명.

    누적 조회 수 42억 7,102만 뷰.

    세계인의 축제라는 말이 과언이 아닌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은 클래식 음악계의 메가 이벤트로 자리잡 으며 지금도 수많은 기록을 경신하고 있었다.

    경쟁이란 요소를 도입.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던 오케스트라 대전은 대회 기간 동안 대규모 경제 효과를 일으키며 다음 개최지에 대한 각국, 지방자치단체, 후원사 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러한 대규모 이벤트에서 가장 빛 나는 것은 대한민국의 천재, 인류의 희망이라 불렸던 마에스트로 배도빈 이었다.

    *

    “하하하하!”

    파이널라운드를 마친 베를린 필하모닉은 숙소로 활용하던 호텔 스카 이라운지를 빌려 음악과 술 그리고 기쁨을 즐기는 중이었다.

    무뚝뚝하기로는 세계 제일이라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자축 파티 내내 호탕하게 웃어, 그가 얼마나 기뻐하는지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 녀석아! 뭐 하고 있어?”

    큰 소리로 웃던 푸르트벵글러가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배도빈을 보며 물었다.

    그러나 대답이 없기에 무엇이 그를 노하게 했는지 생각한 푸르트벵글러는 곧 씩 하고 웃었다.

    “심사 위원단 점수가 마음에 안 드는 거냐?”

    “그런 인간들 누가 신경 쓴다고 그래요.”

    “학하하하! 신경 쓰는구만! 삐졌네, 삐졌어!”

    “아니야!”

    “자, 자! 그런 놈들 무시하고 술이 나 마셔라. 다들 술은 채워져 있냐!”

    “예!”

    푸르트벵글러가 오른팔로 배도빈을 두른 채 잔을 높이 들어 올리자 단원들이 힘차게 따라했다.

    벌써 꽤 많은 술을 마셨음에도 베를린 필하모닉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음? 너 잔이 아까 그대로 아니냐.”

    “푸르트벵글러야말로 적당히 좀 마셔요.”

    “오오. 말 한번 잘했다. 이렇게 기쁜 날에 적당한 정도는 얼마냐!”

    “배럴! 배럴!”

    합을 맞춰 헛소리를 해대는 동료들에게서 빠져나오기 위해 배도빈은 사력을 다했지만.

    단원들은 그런 배도빈을 놓아주지 않았다.

    “얘들아! 보스께서 맥주가 필요하신 모양이다!”

    “아니야!”

    “여기, 여기!”

    취객들이 적당히 자리를 빠져나오려던 배도빈을 붙잡았다.

    배도빈이 바둥거렸으나 그 작은 몸으로는 무거운 악기로 단련된 이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안 마신다고!”

    “마셔, 마셔.”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 켜보던 이승희가 턱을 괸 채 흐뭇하 게 미소 지었다.

    “저렇게 웃는 세프랑 도빈이 정말 오랜만이네.”

    그렇게 말한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윤희를 보았다.

    상큼하고 도수가 높은 녹색 칵테일이 어느새 바닥을 깔고 있을 뿐이었다.

    “무리하는 거 아니야?”

    “흐헥.”

    이승희의 걱정 어린 말에 나윤희는 웃을 뿐이었다.

    ‘취했네. 취했어.’

    이승희는 나름대로 파티를 즐기고 있는 나윤희에게 치즈를 먹여주었다.

    “나 한 잔 더.”

    나윤희가 손을 들자 소소가 그녀의 팔을 낚아챘다.

    “그만 마셔.”

    "으음..."

    “수작 부리지 마.”

    취기에 기댄 애교에도 소소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자 나윤희는 입을 쭉 내밀었다.

    “왜. 오늘 같은 날 즐겨야지.”

    “안 돼. 얘 이미 맛 갔어.”

    이승희의 지원에 다소 밝아졌던 나윤희의 얼굴이 소소의 단호함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미도리 샤워 두 잔!”

    그때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카무라 료코가 화를 내듯 술을 주문했다.

    그러고는 소소를 보았다.

    “나윤희 악장께서 마시고 싶어 하시잖아요.”

    료코의 말에 소소는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다 치즈를 집어 료코의 입에 쑤셔 넣었다.

    우물대며 그것을 받아먹은 료코는 곧 울먹이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끅. 결승 무대 얼마나 올라가고 싶었을까. 끄윽. 근데 술도 맘대로 못 마시게 하구욱. 끄으윽.”

    나카무라 료코의 말에 나윤희도 울먹이기 시작.

    서로를 끌어안고 당황한 바텐더에 게서 칵테일을 받아 호쾌하게 마시는 두 사람을 보며 소소와 이승희는 입을 닫을 수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와아아아!”

    파티장에 함성이 가득 울렸다.

    깜짝 놀란 이승희와 소소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오른 배도빈이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었다.

    “바이올린 가져와!”

    “하는 거냐! 하는 거야?”

    “루트비히의 연주를 들려주지!”

    “크핳하하! 베토벤, 베토벤이냐?”

    “베토벤이 아니라 베트호펜이다!”

    “난 우리 보스 저런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이 좋더라. 킥킥킥킥.”

    “도, 도빈아. 내려와. 위험하잖아.”

    “시끄러!”

    “그럼 내가 빠질 수 없지.”

    막무가내로 나선 배도빈과 열광하는 단원들, 걱정하는 케르바 슈타인 과 자기도 끼려는 찰스 브라움으로 인해 파티장 중앙은 아수라장이었다.

    그 황당한 상황에 어이가 없어진 이승희와 소소는 서로를 보았고.

    “나도 할래!”

    이승희가 중앙으로 달려 나가자 왕 소소는 고개를 슬며시 젓고는 자신의 방으로 발을 옮겼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푸르트벵글러와 단원들에게 둘러싸여 술을 먹은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눈을 떠 보니 방 안이다.

    ‘몇 시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3시.

    암스테르담과 런던의 3, 4위전에는 늦지 않을 것 같다.

    샤워를 하고 라운지로 내려가니 몇 몇 단원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오, 깼어?”

    “어제 대체 얼마나 마신 거예요?”

    “우리도 몰라. 넌 기억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좀 더 기다려 봐야겠네.”

    다들 어제 일을 기억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커피를 주문하고 눈을 감았더니 또 금방 졸음이 몰려왔다.

    ‘예전처럼 마셨다간 죽겠는데.’

    이 몸은 술이 약한 모양.

    다시는 이러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커피를 마시는데 마침 최지훈이 내 려왔다.

    다소 피곤해 보인다.

    “몸은 좀 어때?”

    “죽겠어. 다신 안 마실 거야. 너도 피곤해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추궁하자 녀석이 내 기억을 찾아주었다.

    “새벽부터 문 두들겨서 피아노 치자고 한 누구 덕분에 잠을 설쳤지?”

    그랬구만.

    “기억 안 나?”

    고개를 끄덕이자 최지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 와중에 즉흥 연주를 한 거야?”

    “내가?”

    “응. 처음 듣는 곡이었어. 따라라라 라라.”

    최지훈이 입으로 멜로디를 불렀는 데 이런 낭패가.

    녀석에게 주려고 만들고 있는 헌정 곡의 일부를 연주했던 모양이다.

    좀 더 좋은 자리에서 들려주려 했더니 내가 취하긴 취했었나 보다.

    “연주회는 갈 수 있겠어?”

    “가야지. 흔히 들을 수 있는 게 아 니니까.”

    일상으로 돌아가면 바쁜 일정으로 다른 악단의 실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브루노 발터와 마리 얀스가 경쟁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 연주라면 더더욱.

    오케스트라 대전의 가장 좋은 점 중의 하나가 한자리에서 훌륭한 오케스트라 공연을 여럿 들을 수 있는 것이니만큼 3, 4위전은 놓칠 수 없다.

    그건 단원들에게도 마찬가지.

    특히 경험이 적은 B팀에게 그만큼 좋은 공부도 없다.

    핸드폰을 꺼내 멀핀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채 세 번이 울 리기도 전에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네, 보스. 몸은 좀 괜찮으세요?

    모르긴 몰라도 보는 사람들마다 안 부를 물으니 어제 정말 무리했던 것 같다.

    “괜찮아요. 부탁 좀 하려고요.”

    - 뭐든지요.

    “대부분 자고 있는 것 같은데 단원 들 좀 깨워서 공연장으로 갈 수 있게 해주세요. 예외 없이.”

    이자벨 멀핀이 웃었다.

    -네. 그렇게 할게요.

    통화를 마치고 다시 커피를 마시는 데 최지훈의 시선을 느껴 고개를 돌렸다.

    “왜 그렇게 봐?”

    “그냥.”

    예전처럼 또 내가 너무 멀리 간 것처럼 느끼는 것 같진 않다.

    어렸을 적부터 멘탈이 좋긴 했지만 최근 몇 번의 일로 한층 더 성장했으니 저 맑은 눈동자가 보고 있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이리라.

    최근엔 잘츠부르크에서 거리 연주를 하는 등 여러 가지로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오케스트라 대전을 치르느라 자세 히는 알지 못한다.

    “수고했어.”

    “수고는. 재밌었지.”

    서로 고개를 끄덕이곤 잠깐의 여유를 즐기는데 최지훈이 입을 열었다.

    “저번에 네 오케스트라에 들어오라 했잖아.”

    "응."

    “그거 조금 기다려 줘.”

    고개를 돌리자 지금 녀석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 나갈 거야. 거기서 우승하고 같이하자.”

    “쇼팽이랑 차이코프스키에서 우승해 놓고?”

    나로서도 최지훈의 목표에 다소 황당했다.

    사실 피아니스트에게 있어 레퍼토리가 넓은 것은 큰 장점 중 하나지 만, 한 작곡가의 무수히 많은 곡을 깊이 있게 다루는 것만으로도 거장 의 반열에 들 자격으로 충분하다.

    자격 요건을 떠나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인데.

    최지훈은 이미 두 개 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었다.

    그런데 거기에 나머지 하나를 더한다니 나로서도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저 맑고 곧은 눈빛이 최지훈의 진심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의 퍼스트 피아니스트라면 그 정도는 해줘야지.”

    “웅.”

    최지훈이 시원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내 커피를 가져가 한 모금 마시곤 속내를 털어놓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는 듯했다.

    “새로운 연주법을 익히고 있어. 어렵긴 하지만 어떻게든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새로운 연주법?”

    “응. 완성하면 들려줄게.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꼭 해낼 거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해낼 거라 믿는다.

    “불새 연주, 질투 났거든.”

    고개를 돌리자 최지훈이 씩 하고 웃었다.

    “나랑 협연했을 때보다 더 감동이었으니까. 악기가 다르긴 하지만 지지 않을 거야.”

    이 끝없고 순수한 향상심이.

    피아니스트 최지훈의 가장 큰 원동력이리라.

    “기대할게.”

    진심으로 그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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