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307화
67. 클래식(6)
결승 무대가 모두 끝나고 투표가 집계되는 도중.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의 심사 위원단은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B의 무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평가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차적인 건 제외해야 합니다. 그 래요. 백번 양보해서 바퀴니 잡동사 니를 악기로 활용한 건 인정한다 칩 시다. 하지만 탭댄스 흉내와 연주 중간의 난입이라뇨. OOTY 오케스트라 대전 결승전이 어디 이벤트 무 대입니까?”
“제 생각도 같습니다. 베를린 B는 지나쳤어요. 연주 이외의 것으로 팬 들의 환심은 살 수 있겠지만 혹시나 이번 대회를 통해 다른 오케스트라 마저 베를린 B에 영향을 받게 될까 걱정입니다.”
비단 두 사람만의 의견은 아니었다.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는 클래식 음악의 미래를 위해 발족된 집단이었고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은 그 것의 연장선이었다.
팬들을 위한 이벤트성 장치라면 모 를까,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뽑는 자리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B가 보여준 행동은 적절치 않아 보였다.
특히 영국 출신의 바이올린 권위자 인 다니엘 하워드는 격렬히 반대하 고 나섰다.
“사람은 자연스레 자극적인 걸 찾아가게 마련입니다. 이런 풍조가 이 어진다면 클래식 음악계가 무너지고 말 겁니다.”
침묵을 지키고 있던 디미트리 알렉 스가 입을 열었다.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쇼팽 콩쿠르 및 여러 권위 있는 대회에서 심사 위원으로 위촉되었던 그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저는 베를린 필하모닉 B의 무대 가 무척이나 좋았는데, 다른 분들은 어떠셨습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나 했더니.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니엘 하워드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콧김을 내뿜으며 말했다.
“아뇨. 제 말은 그들의 연주를 말 하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멋진 라 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은 처음 들었는데,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전 혀 없습니다.”
“논점이 그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디미트리 알렉스가 눈매를 좁히고 다니엘 하워드를 노려보았다.
“심사 위원단에서 논해야 할 이야 기 중에 연주보다 중요한 것도 있습 니까?”
“있고말고요. 디미트리 위원께선 이런 식으로 클래식 음악이 무너지는 걸 보고만 있으실 겁니까?”
“이해할 수 없군요, 다니엘 위원. 대체 무엇 때문에 클래식이 무너진 다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럼요. 베를린 B의 우스꽝스러운 연주에 팬들이 길들어 버리고, 다른 악단은 어쩔 수 없이 그와 같이 행 동하면 그것이 클래식의 붕괴가 아 니고 뭐란 말씀이십니까.”
“하하하하!”
다소간 격앙된 대화 끝에 디미트리 알렉스가 폭소하였다.
그러나 미팅실에서 그 외에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이 두 사람의 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니엘 위원께선 정말 재밌는 분 이시군요. 팬들이 좋아한다면 그것 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왜 그리 걱정하시는 겁니까?”
“하. 디미트리 위원, 그 말씀이 정 녕 진심이십니까? 그들에겐 양질의 연주를 들려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야 팬들도 교양을 쌓을 거 아닙니까.”
디미트리 알렉스는 몹시 불쾌해 구 역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니엘 위원, 음악가는 팬을 가르 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누가 그랬습니까? 하지만 베를린 필하모닉만큼 영향력 있는 악단이 엔터테인먼트화 되어 버리면 누가 팬들을 올바른 길로 이끈단 말입니 까. 이번 기회로 베를린도 자가 반 성을 하도록 A에게 우승 트로피를 넘기는 게 최선입니다.”
대화가 길게 이어지자.
심사 위원들은 다니엘 하워드가 말 하는 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선민의식을 바탕으로 팬을 바른 길 로 인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었다.
그럴 듯해 보이는 말이었으나 음악 인으로 활동했던 심사 위원들이 보기에 다니엘 하워드의 생각은 언어 도단이었다.
“클래식을 정말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물론이지요.”
“그러면서 클래식이 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지에 대해선 전혀 모르시는 것 같군요.”
“뭐라고요?”
“듣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클래식이 위대해서 수백 년간 유지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에 지금도 연주되고 있는 겁니다. 올바른 길로 이끌다니. 대체 그 방향은 무엇입니까. 다니엘 위원 이 생각하는 좋은 음악으로 향하는 길입니까?”
디미트리 알렉스의 말에 음악인으로 활동했던 심사 위원들이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은 팬들이 선택하는 겁니다. 그들이 없어서는 예술도 미학도 남지 않습니다. 그저 의미 없는 행위 일 뿐이죠. 규격에 맞춰 팬들을 교 화시킨다는 발상은 대체 어디서 나 온 생각입니까?”
디미트리 알렉스에게 일침을 당한 다니엘 하워드는 당황하여 말을 몇 번 삼킨 뒤 삿대질하며 비아냥거렸다.
“아아. 그래서 클래식의 가치가 훼 손됨에도, 팬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는데도 손 놓고 있겠단 말씀이 시구려?”
“클래식의 가치는 팬들이 부여한다 고 말씀드렸습니다.”
“대체 팬들이 뭘 안단 말이오. 그 들이 곡의 구조나 연주의 완성도에 대해 우리보다 깊이 안다고 생각하 십니까?”
“알량한 지식으로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다니엘 위원. 당신이 말하는 그 올바른 방향 이 대체 뭡니까? 당신이 푸르트벵글러나 얀스, 배만큼 음악을 잘 안다 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뭐, 뭐라?”
그 말을 시작으로 미팅실은 난장판 이 되었다.
결국 고성이 오간 끝에 답을 내릴 수 없었던 심사 위원단 미팅은 각자의 판단을 통해 개인 심사를 하기로 결정되었다.
그것은.
작년 한해 음악계를 반으로 쪼개놓았던 논란의 정점이었고 곪아 있던 클래식 음악계의 염증이었다.
대중성을 띤 작품과 연주에 대한 의미 없는 거부.
쉽고 자극적인 음악에는 작품성이 없다는 착각은 어설프게 공부한 이들의 공통사항이었다.
개인실로 돌아온 디미트리 알렉스는 그러한 상황에 답답해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
대망의 결승전을 치른 OOTY 오케스트라 대전도 마지막 순위 발표 만을 남기고 있었다.
양쪽 모두 너무나 큰 기쁨을 선사 해 주었기에 팬들은 어느 쪽을 선택 해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ㄴ 미치겠네 진짴ㅋㅋㅋㅋ
ㄴ 생각하길 포기했다.
ㄴ 나 진짜 배도빈 마지막에 캐논 들고 연주할 때 소름 돋았잖아 ㅠㅠ
ㄴ 불새 때 망가졌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오늘 연주 들으니 멀쩡하더라.
ㄴ 넥을 갈았던데 뭐. 피 묻은 부분 이 많지 않아서 수리 가능한 수준이었나 봄.
ㄴ 나윤희가 정말 잘한 일이지.
ㄴ 난 발그레이가 캐논 들고 나올 때가 젤 좋았음. 진짜 캐논이 왕관 처럼 보이더라.
ㄴ 진짜 연출력 오졌지
ㄴ 내 생각엔 백퍼 찰스 브라움 생각임. 그 나르시스트가 아니고서야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음.
ㄴ 인정한닼ㅋㅋㅋㅋ 찰스 브라움 개인 리사이틀 들으러 가면 꼭 그런 연출 한 번씩 있었으니깤ㅋㅋ
ㄴ 클래식 듣다가 어깨 들썩인 거 처음이야. 진짜 막 춤추고 난리 나는데 나도 모르게 움직이는데. 아 아. 진짜 너무 좋아.
ㄴ 나돜ㅋㅋㅋ 진짜 배도빈 편곡력은 미쳤음.
ㄴ 베를린 B 표현력도 장난 없더라. 구성원이 좀 어린 편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대부분 배도빈이 멱살 잡고 캐리했다 생각했는데 저번 불새랑 이번 연주만큼은 달랐음.
ㄴ 난 푸르트벵글러랑 A의 묵직함이 진짜 좋던데.
ㄴ 나도. 나도. 카리스마 뿜뿜 미쳐 진짜 ㅠㅠ
ㄴ 베토벤 8번이 진짜 지금까지 왜 주목을 못 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더라. 과하지 않으면서도 존재감 미쳤고.
파이널라운드를 경험한 팬들은 결국 생각하길 포기.
마음이 가는 곳에 표를 던지고는 베를린 A 와 B 가 전해준 감동적인 무대에 대해 이야기하기 바빴다.
그것은 음악인들도 마찬가지였다.
“3악장 이어지는 부분에서 타악기를 배제한 것도 좋은 시도였네.”
“음. 확실히 앞선 악장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으니까. 분위기를 최대한 이끌면서 환기시키는 데 적절 한 방법이었지.”
마리 얀스는 제르바 루빈스타인과 배도빈의 편곡에 대해 토론 중이었고.
“피날레 직전에 내 피아노였으면 더 효과적이었어. 안 그래?”
“가우왕 씨랑 브라움 씨가 함께 연주했다면 세미파이널 때와 같지 않았을까요?”
“왜 그놈이랑 같이한다고 생각해? 당연히 소소랑 해야지.”
“음……. 전 브라움 씨랑 소소 씨 라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따뜻함 과 담백함이 잘 어울렸어요.”
가우왕과 최지훈은 무도회장을 연 상시키는 3악장의 표현 방법을 분석하였다.
‘도빈 님, 도빈 님, 도빈 님!’
‘아아. 나도 같이하고 싶었는데.’
나윤희와 프란츠는 B팀의 연주에 감격해 벅찬 가슴을 간신히 달래는 중이었고.
“빌헬름의 해석으로 베토벤 8번 교향곡이 다시금 조명 받을 것 같네.”
“확실히 고전의 재해석이 먹혀들었지. 그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걸 해낸 푸르트벵글러나 베를린 A나 참 대단한 친구들이야.”
사카모토 료이치와 브루노 발터는 푸르트벵글러의 의도를 추측하여 서 로의 의견을 공유하면서.
이미 어떤 악단이 더 나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영혼이 충족된 지금.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집계가 끝나고.
사회자 자르제가 무대 위에 올랐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OOTY 오케스트라 대전도 이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자 합니다.”
자르제의 목소리는 다소 떨리고 있었다.
“발표에 앞서 최고의 연주를 위해 평생을 갈고닦은 기량을 펼쳐주신 모든 참가 악단에 경의를 표합니다.”
단상에서 벗어난 자르제가 고개를 숙였다.
음악에 삶을 바친 이들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였다.
지금까지 오케스트라 대전을 즐겼던 팬들은 그 마음에 동조하여 박수를 보냈다.
“그럼, 영광을 거머쥘 악단이 어딘지 지금 바로 공개토록 하겠습니다.”
대형 스크린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로고가 떠올랐다.
겹쳐 있던 두 로고가 양쪽으로 이동하면서 그 아래로 Arena 와 Beethoven라는 문구가 내려왔다.
베를린에 상주하는 A팀과 위대한 베토벤의 정신을 잇기 위해 만들어진 B팀.
베를린 필하모닉이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뽑는 자리에 당당히 이름을 내걸고 있었다.
“총투표수, 10,172,119표! 최고 동 시 시청자 수 6억 2천만이 지켜본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의 우승 트로피를 거머쥘 악단이 어딘지! 지금 공개합니다!”
자르제의 말과 함께.
장내에 북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내 트럼펫 소리가 힘차게 뻗어 나오며 스크린 화면이 전환되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B
심사 위원단: 26.1 (261점)
팬 투표: 37.4(5431912표)
합계 63.5(우승)
베를린 필하모닉 A
심사 위원단: 30(300점)
팬 투표: 32.6(4740207표) 합계 62.6(준우승)
가장 먼저 환호한 목소리는 탁하고 늙었으나 기운 넘치는 목소리였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결과를 본 즉시 배도빈에게 달려들어 얼싸안고 들었다.
“크하하하핫! 하하하하!”
“자, 잠깐! 놔요! 아프다고!”
“잘했다. 잘했어!”
풍채 좋은 노인은 더 없이 기뻤다.
눈물 맺힌 그 행복한 표정은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의 기록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사진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