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04화 (304/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304화

67. 클래식(3)

클래식 음악의 부홍을 위해.

미래를 위해 설립된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가 수년간 기적처럼 화합 과 경쟁의 장을 마련했다.

Orchestra Of The Year.

클래식 음악의 정수라는 오케스트라 중에서도 한해 가장 뛰어난 퍼포 먼스를 보여준 악단에 수여하는 영광의 이름.

OOTY> 결정하는 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전 세계 모든 악 단이 참여하는 전쟁.

오케스트라 대전이었다.

내로라하는 명사들과 큰손들로 구성된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 구성원 의 노력과 팬들이 선택하는 점수 책정 방식으로 인해 유례없는 참여를 이끌어낸 오케스트라 대전은 예선부 터 수백 개 악단이 참여해 지금에 이르렀다.

정상에 오른 두 악단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같았다.

베를린 필하모닉.

부모 자식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고 자매 관계로 보는 이도 있었지만 이 미 두 악단, 아니, 베를린 필하모닉이 클래식 음악계를 주도할 거라는 전망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팬들은 즐거울 뿐이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A팀이 우승한다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또한 지금도 귀와 가슴을 즐겁게 해주는 B팀이 A팀에게 영향을 받아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반대로 배도빈과 B팀이 우승한다 면 이미 라이든샤프트라 불리는 세 대의 선지자이며 또한 베를린 필하모닉의 새로운 주인인 배도빈이 성 공적으로 세대교체를 했다는 뜻이니 이 또한 반가운 일이었다.

그러하다 보니.

OOTY 오케스트라 대전 파이널라 운드는 세미파이널에 비해 다소간 긴장감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재 잘츠부르크의 대축전극장 앞에 나와 있습니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만큼 대 한민국의 유력 방송사 NBC에서도 인기 리포터를 대동, 현장 중계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1시간 뒤에 시작될 베를린 필하모닉 자매 악단 간의 결승전으로 들떠 있습니다. 배도빈 씨가 과연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지! 많이 들 궁금하실 텐데요. 지난 두 달간 오케스트라 대전을 관람하며 여러 소식을 전해준 두 분과 인터뷰를 나 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한이슬 평론가님, 차채은 평론가님.”

“안녕하세요, 평론가 한이슬입니다.”

“아, 아, 아, 안녕하세요. 차채은입니다.”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방송에 익 숙한 한이슬과 첫 방송, 그것도 생 방송에 잔뜩 긴장한 차채은이 인사를 받았다.

“간단히 두 분에 대해 소개해 드릴 게요. 한이슬 평론가님은 한국대학 언론방송학과 출신으로 월간 관중석에서 기자로 활동하시다가 평론가로 전향하셨는데, 그 계기가 배도빈 씨와 고홍승일 피아니스트의 협연에 관한 칼럼이었죠?”

“네. 지금 생각해도 그보다 멋진 피아노 2중주는 없었어요. 제 개인 에게도 정말 좋은 기회가 되었던 고마운 일이었죠.”

“정말 그러네요. 이후 국내 여러 언론사를 통해 전해진 한이슬 평론 가의 이야기는 뛰어난 표현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한이슬을 소개한 리포터가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차채은과 눈을 마주 했다.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에 리포터는 차채은이 긴장을 풀 수 있도록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어머. 키가 무척 크시네요. 저도 작진 않은데.”

“아하하.”

‘큰일이네.’

그러나 그리 나아진 것이 없었기에 리포터는 걱정하면서 소개를 이어나 갔다.

“한편 차채은 평론가는 9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인기 블로거 입니다. 개인 블로그를 통해 이름을 쌓다가 최근에야 본격적으로 평론을 시작하셨는데, 그 계기가 배도빈 씨 와 최지훈 씨라 들었어요.”

슬며시 다가온 마이크에 차채은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네.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다 보니.”

“그러셨군요. 음악 분석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계신데 전문 지식은 어떻게 얻으셨나요? 역시 배도빈 씨와 최지훈 씨와 함께?”

“처음에는 그랬고 나중엔 독학으로……

리포터는 이제 16살인 아이가 긴 장된 와중, 생방송에서 이만큼이나 대답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며 인터뷰를 진행.

한이슬 평론가에게 결승 무대를 어떻게 예측하는지 물었다.

‘아, 답답해 미치겠네. 왜 이렇게 말이 안 나오는 거야?’

그러든지 말든지 차채은은 얼어붙은 입술을 탓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 차승현으로부터 말은 항상 자신감 있게 해야 한다고 배웠던 것을 상기하며, 다음 질문을 받으면 꼭 할 말은 당당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사실 현실적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B의 우승은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암스테르담전도 배도빈 씨의 뛰어난 편곡 능력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 은 덕이었죠. 완성도에 있어서는 심 사 위원단의 점수가 그것을 증명하 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배도빈이 라는 천재를 감당하기에, 또 선배들을 상대하기에 B팀은 역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뭐야. 진짜.’

차채은은 혹시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다시 고쳤다.

나윤희의 불새 연주만 해도 베를린 필하모닉 B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수준 있는 오케스트라인지 잘 드러 나는 일이었다.

차채은이 보기에 현재 베를린 필하모닉 B는 연주자들이 젊다는 점과 짧은 역사 때문에 과소평가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배도빈의 베를린 B가 낸 앨범이 지난 1년간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사실만 봐도 더욱 그러했다.

“이러한 이유로 마에스트로 푸르트벵글러의 우승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정말 기대되네요.”

“현실적으로 A팀의 우승이 당연하 다는 말씀이셨네요. 좋은 말씀 감사 합니다.”

잠시 뒤, 리포터가 한이슬의 말을 정리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다음 인터뷰 상대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긴장하고 있었는데 리포터는 생방송에 문제가 생기지만 않길 바라며 계속 진행했다.

“한이슬 평론가께선 현실적인 이유로 마에스트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와 A팀의 우승을 점쳤는데, 차채은 평론가의 의견은 어떤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차채은 씨, 배도빈 지휘 자가 과연 우승할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차채은의 당찬 외침에 한이슬과 리포터, 카메라맨까지 모두 움찔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말끝을 흐리던 아이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니 리포 터가 웃으며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다.

“정말 믿음이 대단하시네요. 이유도 말씀해 주시겠어요?”

차채은이 카메라를 뚫어낼 듯 노려보며 말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B는 오빠의 걸림돌이 아니에요. 다들 엄청나게 노 력하고 있고 오케스트라 대전으로 증명해냈어요.”

흥분한 차채은이 마이크까지 쥐고 한이슬 평론가를 보았다.

“베를린 필하모닉 B 단원들을 그렇게 보는 건 그들과의 경쟁에서 패 한 암스테르담과 시카고, 체코까지 무시하는 거예요!”

“채, 채은 씨 진정하시고.”

“음악가는 무대 위에서 말하는 법! 그들의 경력이 짧다는 건 평가 기준 이 될 수 없어요!”

차채은의 발언을 지켜보고 있던 대 한민국의 콩깍지들은 한이슬로 인해 답답했던 가슴이 뚫리는 듯했다.

“오빠도! 같은 오케스트라라고 맘 놓고 있기만 해봐, 진짜! 다들 응원하고 있으니까!”

차채은의 흥분도가 최고치를 찍었을 때는 이미 인터넷상의 반응은 뜨 거웠다.

ㄴ 잘한다!

ㄴ 엌ㅋㅋㅋㅋ 방송사곸ㅋㅋㅋㅋ

ㄴ 리포터 당황한 거 봨ㅋㅋ 귀엽닼ㅋㅋㅋ

ㄴ 의식의 흐름 개웃기넼ㅋㅋㅋ 나중엔 그냥 친구한테 하는 말이잖앜

ㄴ 한이슬 벙찐 거 왤케 웃기냨ㅋㅋ

ㄴ 차채은 말 잘하넼ㅋㅋ 진짜 결승전인데 다들 이미 끝났다고 말하는 거 별로 안 좋게 봤는데.

ㄴ 이게 중학생의 패긴가?

ㄴ 그래. 봐주는 게 어딨어. 승부에서 어디가 이겨도 상관없는 게 말이 안 되짘ㅋㅋ

ㄴ 차채은 말이 일리가 있는 게 이미 베를린 B 앨범 판매량은 작년 톱 이었음.

ㄴ 그러게. 암스테르담도 이겼는데 A팀이라고 못 이길까.

ㄴ 난 그냥 배도빈이 이겼으면 좋겠음.

차채은의 발언으로 다소간 어디가 이겨도 상관없다는 분위기는 팬들 사이에서도 흐려졌다.

특히나 결승 무대 전, 특별히 두 지휘자를 초대해 대담석을 마련한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의 안배로 이 와 같은 분위기는 모든 음악인 사이 로 퍼져갔다.

마련된 세트장에서 촬영과 동시에 기자들이 출입할 수 있게 하여 마치 기자회견장과 같았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시는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특별히 두 거장을 모셨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씨와 배도빈 씨. 사실상 베를린 필하모닉이 우승이 확정된 지금 두 분의 심경을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마에스트로 배, 결승 무대 준비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회자 우진의 질문에 배도빈이 심 드렁하게 답했다.

“이길 만큼요.”

배도빈이 더 이상 말하지 않았기에 당황한 사회자는 억지로라도 상황을 포장해야만 했다.

“아하하하. 대단한 자신감이시네요.

역시 최고의 자리는 양보할 수 없다는 뜻이겠죠? 그럼 마에스트로 푸르트벵글러께선 어떤 마음으로 결승 무대를 준비하셨나요?”

배도빈의 도발에 약이 오른 푸르트벵글러도 지지 않았다.

“암스테르담을 이기고 건방져지지 않도록 잘 가르칠 생각이다.”

푸르트벵글러의 말과 함께 지켜보 고 있던 기자들의 손이 분주해졌다.

스승과 제자, 왕과 왕자의 신경전 은 오케스트라 대전을 더욱 깊이 즐 길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었기에 주최 측 인사들은 크게 기뻐했다.

푸르트벵글러의 발언에 배도빈이 고개를 내밀어 폭군을 노려보았다.

“진심이에요?”

“뭐가 말이냐.”

배도빈의 오만함은 선천적인 것으로 패시브 스킬이나 마찬가지였다.

암스테르담을 이겼다고 해서 더해 지지도 덜해지지도 않다는 것을 푸르트벵글러가 모를 리 없었기에, 그 것을 알고 있는 배도빈은 푸르트벵글러가 일부러 자신을 도발하고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이제 이런 언론플레이도 익숙해져 야지, 이 녀석아. 대표가 지휘만 잘 해서 되는 줄 알았느냐.’

히쭉대는 푸르트벵글러의 입가를 보자 배도빈의 미간이 꿈틀댔다.

의심이 확신이 된 순간이었다.

“그런 말 해놓고 지면 창피할 거란 생각은 안 해요?”

“뭐, 뭐라고?”

배도빈의 추가 발언에 기자들은 촬영 중이라는 것도 무시하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려댔다.

촬영팀이 저지해도 왕위를 두고 서로를 공격하는 위대한 두 음악가의 이야기를 포기할 순 없었다.

ㄴ 싸워라! 싸워라!

ㄴ 그래! 훈훈해서 뭐가 재밌냐! 오케스트라 대전 우승이면 스승이고 나발이고 없지!

ㄴ 진짜 둘 다 자존심 센 건 인정해 줘야 함ㅋㅋㅋㅋㅋ

ㄴ 배도빈 진짜 예전부터 느꼈는데 성격 그리 좋은 건 아닌 듯ㅋㅋㅋㅋ

ㄴ 싸움꾼 푸르트벵글러한테 배웠는데 그게 어디 가겠냨ㅋㅋ

중계를 보고 있던 팬들은 물론, 모든 언론사가 팝콘을 뜯어 두 사람의 대화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가운데 난감한 사람은 사회자뿐이었다.

간신히 상황을 진정시킨 우진이 배도빈에게 물었다.

“자, 잠시 두 지휘자 분의 사담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마에스트로 배, 이 자리에서 오늘 연주할 곡을 발표 해 주셔야 하는데 베를린 B가 결승 무대에서 연주할 곡은 무엇인가요?”

“라흐마니노프의 마지막 작품인 교 향적 무곡입니다.”

“뭐!”

배도빈의 발언에 푸르트벵글러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역사적 인물의 돌발행동에 기자들과 팬들은 흥겨워 카메라 셔터와 펜,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 녀석아! 결승에선 베토벤을 해야지! 우리 베를린의 정신을 뭘로 보는 게야!”

“내 마음이에요.”

“당장 바꾸지 못해!”

“말이 되는 소릴 해요! 베를린의 정신은 무슨. 베트호펜 교향곡 하면 자기가 유리하니까 하는 말이잖아 요!”

“도전 정신을 말하는 거다! 머리 빈 것들이 더는 나불대지 못하게! 완성도 있는 연주를 들려줘야 할 것 아니냐!”

“그러니까 그런 개소리 신경 안 쓴 다고 했잖아요! 고생한 단원들한테 준우승 트로피 안겨줄 생각 조금도 없으니 포기해요!”

“못 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카밀라 앤더슨과 이자벨 멀핀은 타들어가는 속을 달래기 위해 크고 긴 한숨을 내쉬었고.

마찬가지로 두 지휘자의 말을 들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단원들은 더욱 불이 붙었다.

“귀엽게 봤더니 우릴 상대로 진짜 우승할 생각이었나 보네.”

“그러게. 기특하게 봐야 하나.”

“기특하지. 혼내주기 알맞게.”

A팀 단원들은 완벽과 최고만을 바 라는 그들의 정신을 훌륭히 장착한 후배들을 뭉개줄 생각으로.

“수십 년간 맞춰온 곡으로 승부하 려 했어.”

“우린 이제 겨우 2년인데.”

“이렇게 된 이상 진짜 이겨주자고. 어차피 선배들, 10년 뒤엔 은퇴할 거잖아. 맘 편히 가실 수 있게 해드 리자.”

오케스트라 대전을 통해 지휘자 배도빈에 대한 존경과 단원들끼리의 신뢰로 거듭 태어난 B팀 단원들은 선배들이 가는 길을 편안케 해주고 자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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