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03화 (303/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303화

67. 클래식(2)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강점은 단연 교향곡, 그중에서도 베토벤이었다.

웅장하고 장엄하며 격정적인 베토벤의 아홉 교향곡.

베를린 필하모닉은 악성의 유산을 연주함으로써 지난 수십 년간 클래식 음악계의 카리스마로 군림했다.

굳이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을 통하지 않더라도 베를린 필하모닉의 진가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압도적인 연주와 절대적인 파장력.

베를린 필하모닉의 권위는 완벽 이 외에는 용납하지 않는 그들의 철저 함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첼로, 포르테를 포르티시모로.”

“약박 강세가 약하다. 다시.”

“벌써 지쳤나!”

“F음을 좀 더 밀어서. 다시. 붙여!”

잘츠부르크의 한 연습실.

단원들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강도 높은 요구에 맞춰 연주의 완성 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있었다.

연습실 한편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 고 있던 베를린 필하모닉의 사무국 장 카밀라 앤더슨은 새삼 감탄하였다.

두 달간의 긴 여정으로 인해 피로 할 법도 한데,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단원들의 눈빛은 칼날처럼 예리 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야.’

베토벤 교향곡 8번 도장조.

베토벤의 교향곡이라면 대부분 수십 회가량 공연한 베를린 필하모닉 에게도 8번 교향곡만큼은 생소한 편 이었다.

홀수 교향곡에 비해 덜 사랑받은 탓.

더군다나 빠듯하다 못해 도를 지나친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의 일정 이 큰 압박이었는데.

원곡을 유지하면서 박자와 강세를 최대한 활용해 리듬감을 극대화하려는 푸르트벵글러의 요구에 맞춰야 했기에 그 강도는 어느 유명 악단이 라 할지라도 고개를 저을 만했다.

그리고.

‘이 짧은 시간에 이만큼이나……

완벽하지 않고서는 결코 무대에 오 르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결승전을 하루 남긴 늦은 오후, 120명의 정상급 연주자들은 결국 까다로운 그들의 지휘자의 마음에 쏙 드는 연주를 해내고야 말았다.

“이상. 남은 시간을 활용해 컨디션을 유지토록.”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말과 함께 흉흉하기까지 하던 단원들의 눈빛이 풀어졌다.

“끄으윽. 이제 잘츠부르크도 끝이니 저녁은 배불리 먹어볼까?”

“나가는 길에 양복점에도 들려. 셔츠 단추가 불쌍하잖아.”

“나 설마 쪘어?”

단원들은 연습실에서 벗어나면서 평소와 같이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러면서도 없이는 죽고 못 사는 테이블 게임이라든가 맥주에 대해 언급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B팀을 존중하기 이전에 무대에 오 르기 전에는 암묵적으로 지켜온 그 들만의 룰이었다.

매 무대마다 최선을 다하기에 결승 전을 맞이해 달라진 점은 없었다.

단원들이 모두 나간 뒤.

카밀라 앤더슨이 푸르트벵글러에게 다가갔다.

“고생했어요.”

“고생은. 가까운 곳으로 가지.”

“봐둔 데가 있죠.”

주차장으로 향하는 도중 카밀라가 입을 열었다.

“어떨 것 같아요?”

“뭐가?”

“알면서.”

푸르트벵글러는 간격을 두곤 답했다.

“준비기간이 거의 없었으니 대중적이고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선곡이 중요하겠지.”

“언론에서 말하는 거랑 다르지 않네요.”

“말은 항상 그럴 듯하게 하지.”

카밀라가 웃으며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을 걸며 조수석에 앉은 연인에 게 물었다.

“그런데 왜 하필 8번 교향곡이에요? 대중적이라 할 순 없잖아요.”

카밀라의 질문에 푸르트벵글러가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췄다. 그의 눈은 확신으로 가득했다.

“지휘봉을 든 사람이 누군지 잊었나?”

카밀라는 그런 허풍이 싫지 않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무대를 통해, 이 보다 말도 안 되는 일을 실현시켰던 걸 두 눈과 귀로 직접 확인했기 때 문이었다.

카밀라는 센터 콘솔로 경로를 설정 하고선 괜스레 핀잔을 주었다.

“허풍은. 앨범 판매량은 도빈이가 더 많잖아요.”

“끄응.”

베를린 필하모닉의 이름으로 낸 앨 범과 디지털 스트리밍 관객 수 모두 배도빈이 앞서는 게 사실이었기에 푸르트벵글러는 불편한 심기를 감출 수 없었다.

그 모습을 귀엽게 본 카밀라가 애 마, 메탈릭 레드 색상의 CLS> 몰 아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정말 왜 고른 건지 안 알려줄 거 예요?”

푸르트벵글러는 평소에도 자신의 의도를 남에게 설명하길 극히 꺼렸는데 지휘자라면 무대 위에서의 연주로 말한다는 확고한 지론 때문이었다.

특히나 이번 선곡의 경우에는 특별 한 이유가 있어 더 그러했으나.

무슨 일이든 예외는 있는 법.

사랑스러운 연인에게만큼은 체면이 고 지론이고 없었다.

“A장조와 도장조는 비슷한 시기에 시작되었는데 강렬한 A장조가 호평을 받은 데 반해 도장조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

푸르트벵글러의 말대로 극찬을 받 은 7번 교향곡 A장조에 비해 8번 F 장조는 초연 당시 혹평을 받았었다.

그러한 경향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자주 연주 되는 7번에 비해 8번은 연주회나 앨범 대상으로 소외받곤 했다.

그러한 일화를 전해 들은 카밀라는 푸르트벵글러의 의도가 더욱 궁금해 졌다.

“비슷한 시기에 작곡되었는데 그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뭐예요?”

“그게 재밌는 점이지. 8번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유럽을 주름잡았던 양식을 다시금 채용한 곡이었어. 3 악장의 미뉴에트라든가 하이든이 즐 겨 쓰던 돌출이라든가 말이야.”

“……일부러 이해하기 어렵게 말하는 거죠?”

“쉽게 말하면 도장조의 실패가 그 당시 이미 대중들이 베토벤에게 빠져 있었다는 걸 뜻하지.”

푸르트벵글러는 카밀라 앤더슨이 스스로 생각하길 기다려 주었다.

“베토벤의 혁신적인 곡을 좋아하던 이들이 듣기에 예전 형태로 돌아간 8번은 매력적이지 못했나 보네요.”

“ 맞아.”

푸르트벵글러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베토벤에 대한 기대가 다른 음악가들과 달랐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만 난 음악이 변화해야 하는 걸 가장 잘 드러낸 경우라 봐. 만약 8 번이 18세기 말에 발표되었다면 명 곡으로 불렸을 거야. 지금까지 사랑

받는 것에 대해선 확신할 수 없어도.”

배도빈 클래식 음악을 파괴한다는 비판 아닌 비판을 받고 있는 지금,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본인만의 방 식으로 그를 보호하고 있던 것이었다.

신호를 받아 차를 멈춰 세운 카밀 라 앤더슨이 옆자리를 보았다.

그의 말에 배도빈을 아끼는 마음이 물씬 묻어나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제자 사랑이 지극하네요.”

“본인만 모르지.”

푸르트벵글러가 여러 직위를 받았을 때 화를 내던 배도빈을 생각하며 구시렁댔다.

신호를 확인한 카밀라가 다시 기어를 넣고 예약해 둔 음식점으로 차를 몰았다.

그러다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어 묻자 푸르트벵글러가 펄쩍 뛰었다.

“혹시 져줄 생각인 거예요?”

“무슨 소리! 아직 배울 게 한참 남았다는 걸 알려줘야지.”

“놀래라.”

푸르트벵글러를 흘겨본 카밀라가 다시 물었다.

“그렇잖아요. 당신도 음악이 변해 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예전 형식을 취한 8번 교향곡을 선택했으니 그런 생각이 들죠. 안 그래요?”

“아니야.”

조금 이해했다 싶다가도 또 다른 말이 나오자 인내심을 가지고 묻던 카밀라도 화가 났다.

그래서 더는 묻지 않고 가만있자 푸르트벵글러가 창밖을 보았다. 보 조 손잡이를 잡았다가 손을 떼 입가를 문지르다가 입을 열었다.

“안 궁금해?”

“ 뭘요.”

“아니. 뭐……

말끝을 흐린 푸르트벵글러는 다음 신호에 잡히자 더는 참지 못했다.

“멍청한 작자들이 클래식이 무너진 다느니 헛소리를 해대잖아. 그렇게 나불대는 입들을 닫게 하는 데 베토벤의 8번 교향곡만큼이나 좋은 곡도 없지 않겠어?”

카밀라 앤더슨이 황당하게 푸르트벵글러를 보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 리고 말았다.

“더 해봐요.”

“게다가 도빈이 그 녀석이 준비할 건 뻔해. 베토벤 교향곡 중 남은 거겠지. 베를린 필하모닉 이름으로 3, 5, 9번은 했고 B팀이 했던 레퍼토 리 중에 남은 건 7번과 8번. 녀석의 고집을 보면 8번을 고를 게 뻔해.”

생전 베토벤은 8번 교향곡이 7번 교향곡에 비교 당하며 혹평을 받자, ‘7번보다 이 곡이 더 뛰어나기 때문 에 도리어 저평가 받는다.’라고 불 평했는데.

그것은 8번이 양식은 복고주의와 같이 예전 고전 형식을 취했지만 그 형식 안에서의 다양한 변화를 보였던 것으로 인식.

베토벤과 꼭 빼닮은 배도빈이라면 현재 자신을 비판하고 있는 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8 번 교향곡을 지휘할 거라는 게 푸르트벵글러의 생각이었다.

“그럼 일부러 같은 곡을 연주하려 고 하려는 거예요?”

“정면승부지.”

“으음. 정말 8번으로 할까요?”

“암. 그 녀석에 대해서라면 내가 가장 잘 알아. 틀림없어.”

한편 베를린 필하모닉 B 역시 주 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었다.

배도빈은 암스테르담과의 준결승전 에서 탱고를 선택, 과감히 타악기 섹션을 배제했는데.

그것은 모두 적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시간적 안배였다.

“이게 다 뭐야?”

그리고 결승전을 준비하게 된 지 금, 단원들은 타악기 수석 피셔 디 스카우와 타악 주자들이 준비한 ‘악 기’들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많이 보던 물건이지만 오케스트라 무대 위에서는 보지 못했던 물건들 이었다.

“구두굽이잖아?”

“이거 설마 거북이 등딱지야?”

“휠도 있네.”

“이건 뭐지?”

“아, 솥뚜껑이에요.”

“솥 뭐?”

동료들이 신기하게 쳐다보는 가운데, 타악 주자들은 이상한 물건들을 세심하게 배치하였다.

“준비됐어, 보스!”

“좋습니다. 각자 자리에 위치하세요.”

다소 어수선한 느낌으로 시작된 베를린 필하모닉 B는 라흐마니노프의 마지막 작품, 교향적 무곡을 연주하 기 시작했다.

다소 몽환적인 느낌으로 시작된 음악은 순식간에 광활한 판타지 세계를 그려냈다.

치고 들어오는 타악기.

큰북과 작은북의 힘찬 소리와 함께 하자 곡의 분위기가 더욱 왕성해졌다.

파트별 연습는 해왔으나 다함께 맞춰보는 것은 처음이라 조율할 부분 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지만 다양 하게 들리는 타악기 소리는 지금까 지 그들이 했던 연주와 무척 다른 느낌이었다.

‘재밌다.’

비단 배도빈과 나윤희가 아니더라 도 B팀 단원들은 모두 살인적인 스 케줄과 스스로 부족함을 알기에 더 욱 노력했던 탓에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는데.

그럼에도 새로운 곡을 연주함에 따 라 기분만은 즐거웠다.

배도빈도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치고 나쁘지 않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타악기가 바랐던 만큼 잘 준비되었기에 배도빈 도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찰스 브라움이 이번에도 악장으로 나섰고 나윤희가 보조한다고는 하지 만 암스테르담 로얄 콘세르트헤바우를 상대하면서 남은 여력을 쥐어짠 단원들이 얼마나 따라와 줄 것인지는 그조차 예상할 수 없었다.

‘타악기 이외에 더 이상의 시도는 없어. 이틀간 완성도를 최대한 높여 야 해.’

그러나 완성도를 높이는 방법은 반복뿐이었다. 기간은 온전히 단원들 의 몫이라 배도빈은 최대한 세심하 게 부분들을 짚어가며 그들이 감을 잡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렇게 이틀간의 짧은 연습을 통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이들이 외 쳤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무대 위에 오르는 것뿐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리무진 버스 안에서 찰스 브라움이 말을 걸었다.

“다 좋은데 말이야.”

의아하게 시작한 말에 배도빈이 고 개를 돌렸다.

“왜 하필 새 레퍼토리야? 하던 베토벤이나 드보르자크면 좋잖아. 베토벤 A장조 교향곡이 좋은 선택 같은데.”

“아마 푸르트벵글러도 같은 생각일 거예요.”

“정면 대결은 피한다? 너답지 않은데.”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몇십 년간 쌓아온 완성도는 따라갈 수 없으니 까요. 마리 얀스를 상대하면서 느꼈 어요. B팀은 아직 더 발전할 수 있

어요. 그러니 지금은.”

배도빈이 고개를 돌려 뒷자리에서 곯아떨어진 단원들을 한번 홅어보곤 자세를 바로 했다.

“가지고 있는 장점을 활용해야죠.”

“네가 이렇게 약은 생각도 할 줄 몰랐는데.”

“패널티를 갖고 이길 수 있는 상대 가 아니니까요.”

배도빈의 말에 찰스 브라움이 진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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