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02화 (302/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302화

67. 클래식(1)

세미파이널 이후 기대와 우려, 기 쁨으로 가득했던 잘츠부르크는 결승 무대 전,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나 최근 세계 클래식 음악 협 회와 협약을 맺은 샛별 엔터테인먼 트 소속 음악가들은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을 기념하기 위해 잘츠부르크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어, 결승 전을 기다리는 팬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덕분에 히무라 쇼우 대표와 부하 직원 스무 명은 눈 돌릴 틈도 없이 바삐 움직여야 했다.

“끄아아아!”

오후 10시까지 공연을 한 소속 음악가들을 챙기느라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켰던 박선영 팀장이 침대 위에 몸을 파묻었다.

“고생했어.”

히무라는 엎드린 채 죽은 듯이 있는 박선영을 보고 피식 웃었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의 계약을 마치자마자 잘츠부르크로 와 손을 더했으니 피곤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진짜아. 이렇게 부려먹어도 되는 거야?”

“이번 일만 끝나면 휴가 가자.”

“정말?”

히무라의 말에 박선영이 벌떡 일어 났다.

“일본. 일본 가고 싶어.”

“그래. 잘 다녀와.”

당연히 함께할 거라 생각했던 박선 영은 히무라의 얼굴을 멍청하게 보다가 이내 베개를 들어 그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진짜 못됐어! 일만 해? 응? 사람 이 어떻게 일만 하고 살아?”

“하하하. 너라도 쉬어야지.”

히무라는 마치 아이를 달래듯이 박 선영을 안고 등을 쓸어내렸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에도 각자 의 스케줄 때문에 자주 만날 수 없었기에 미안하면서도.

본래 그가 해야 할 일을 잘 처리 해 줌에 고맙기도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히무라는 자신이 꽤 박선영에게 감정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것도 깨달았다.

그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안정 됨을 느꼈다.

“자. 피로 회복에 좋은 차래.”

히무라가 찻잔을 건넸다.

박선영은 그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받아서 내려놓았다.

“진짜 안 갈 거야?”

“바쁠 때니까.”

히무라 쇼우는 침대에 걸터앉아 TV를 틀었다.

어떤 채널을 돌려도 배도빈과 오케스트라 대전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정말 대단하지.”

엎드린 채 턱을 괸 박선영이 우물 거리며 한 말에 히무라가 고개를 돌렸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어. 예전에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속도 깊고. 이상한 애 같다가도 결국엔 바른 길로 가고. 주변에 사람도 모 이고.”

“하하. 나도 많이 당황했지.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땐 정말 한 성깔했어. 피아노로 장난 한번 했다가 얼마나 혼났는지 몰라.”

“진짜. 고집 하난 알아주잖아.”

TV 에서는 2010년부터 배도빈의 활동을 정리해 주고 있었다.

“……다들 저렇게 좋아해 주고 더 할 나위 없이 잘하고 있는데 가끔은 좀 걱정도 돼.”

“걱정?”

“응.”

박선영이 일어나 히무라 옆에 앉았다.

“다른 사람은, 아니,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역사를 새로 썼다든지 선지자라든지 하는 말, 보통은 머리 희끗희끗해진 뒤에나 받는 평가잖아. 다른 사람이 평생 살 걸 마치 짧은 삶에 다 태우는 것처럼.”

“도빈이 스케줄이 어렸을 때부터 워낙 바쁘긴 했지.”

“그래서 나카무라 씨에게 한소리 들었잖아.”

“무서웠지. 이데가 화를 내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도빈이를 망가뜨리 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무서웠어.”

“……천재는 단명한다고 하잖아. 그 말에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도빈이를 보면 좀 알 것 같기도 해.”

히무라는 박선영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확실히 베를린 필하모닉에 들어간 뒤에는 그것에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소속이 달라지기도 했고 나이도 어느 정도 먹었고 본인도 건강관리에 신경 쓰고 있으니 의식하지 않았는 데, 생각해 보면 배도빈은 어렸을 적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해오고 있었다.

히무라는 외부인인 본인도 베를린 필하모닉이 푸르트벵글러와 배도빈 에게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알 정 도라면 실상은 더할 거란 생각에 잠 시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박선영이 말을 마저 이었다.

“저렇게 무리하는데 어떻게 버티겠어. 도빈이 건강관리는 계속하는 거야?”

“그 일은 괜찮을 거야. 회장님이 엄청 신경 쓰시니까. 도빈이도 스스 로 달마다 검진 받더라. 귀 검사라 든지.”

“오케스트라 대전 끝나면 좀 쉬었으면 좋겠다.”

“그러게. 아, 그러고 보니 대회 이후에는 몇 달간 B팀 지휘는 케르바 슈타인에게 맡긴다고 하더라.”

“ 휴가?”

“그건 아니고 오케스트라 대전에서 여러모로 느낀 게 있나 봐. 동유럽 이나 아프리카나 남미, 동남아시아 쪽 음악도 접해보고 싶대.”

“역시 쉬질 않네. 그러니 저렇게 대단한 거겠지.”

두 사람은 한동안 대화 없이 TV를 볼 뿐이었다.

그러다 박선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일본 같이 가주면 안 돼?”

“음. 휴가라면 이탈리아는 어때? 조용하고 좋은데.”

“그게 아니라.”

박선영이 히무라를 뒤에서 안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올해 아직 분향 안 했잖아. 더 늦기 전에……

박선영은 배도빈만큼이나 워커홀릭인 히무라 쇼우가 걱정이었다.

특히 대지진 이후 그러한 경향이 더 심해졌는데, 올해는 너무나 바쁜 나머지 사별한 부인과 죽은 아들의 기일조차 챙기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알고 있었어?”

“같이 가는 거 부담스러우면 혼자 라도 다녀와. 회사 일은 나랑 팀장 들이 하면 되니까. 나, 예전의 뺀질 이 박선영이 아니라고.”

히무라는 눈을 크게 뜨며 밝은 모 습을 보여주는 박선영을 보며 웃고 말았다.

고맙고. 그 이전에 사랑스러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같이 가줄래?”

“물론이지!”

박선영이 가슴을 탕탕쳤다.

마음속에서 이제 확실히 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하고 있었다.

* * *

“ 헤.”

“ 흐흐.”

준결승을 마치고 다들 맛이 가버렸다.

기사로 올라온 자신들의 사진을 보 거나 팬들의 반응을 확인하거나 그러지 않으면 가만히 있을 때도 넋이 나가 보였다.

“이거 봐. 우리보고 최고의 오케스트라래.”

“암스테르담을 이겼잖아.”

“그건 그래. 히힛

그 모습이 마땅찮아 어떻게 정신을 들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입에 뭔 가가 닿았다.

‘맛있네.’

카레와 청양고추를 넣은 소시지라니.

알싸한 향과 깊은 풍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훌륭한 요리다.

“형아, 맛있어?”

고개를 돌리니 도진이가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도진아, 형 밥 먹으라고 혼내줘.”

“때찌.”

어머니의 말씀에 도진이가 손바닥을 팔에 가져다댔다. 아플까 봐 봐 준 모양이다.

보답으로 방금 도진이가 준 소시지를 작게 잘라서 주니 고개를 젓는다.

“맛없어.”

많이 크긴 컸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도진이의 말에 한번 웃고는 물으셨다.

“오케스트라 대전 끝나면 시간 좀 나는 거야?”

“네. 경영은 잘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방향만 잡아주려 해요. B팀도 케르바 악장에게 맡길 거고요.”

“그럼 가족끼리 오랜만에 휴가 가면 좋겠다.”

어머니의 말씀에 나도 아버지도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대부분 이런 일에 있어서 배려해주시는 어머니께서도 이번만큼은 단 호하게 나오셨다.

“안 돼. 도빈이 무조건 일주일 휴 가. 당신도요.”

“그게…… 해독할 게 남아서 바쁠 때야. 사실 지금도 휴가고……

“안 된다면 안 돼. 나 화내는 거 보고 싶어요?”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보시다가 고 개를 돌리셨다. 눈빛을 보니 아버지 도 빠르게 포기하신 듯하다.

“도진아, 어디 놀러가고 싶어?”

“놀러가요?”

“응. 아빠랑 형이 도진이랑 놀아주 신대. 도진이는 좋겠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도진이가 이내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였다. 어 디서 배웠는지, 저런 행동은 가르치 지도 않았는데 잘한다.

“놀이공원 갈까? 해변은?”

도진이가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적기도 하고 또 아버지와 나 때문에, 어쩌면 도진이가 좀 더 자라면 도진 이도 각자 일에 미칠 것이기에.

어머니께서는 되도록 기회가 있을 때 함께하길 바라신다.

나도 같은 마음이라 기쁜 마음으로 휴가를 받아들였다.

“프라하는 어때, 도진아?”

“안 돼. 체코 필하모닉 공연 보러 가려는 거지?”

어머니의 촉은 변함없이 귀신같다.

“도진아, 아빠 일하는 데 갈래? 도 진이가 좋아하는 포클레인도 있는데.”

“배영준 씨?”

이젠 정말 포기하자.

“어디 가고 싶어?”

어머니께서 도진이의 머리를 쓰다 듬으면서 물으셨다.

그러자 고민을 마친 녀석이 테이블을 내려치며 외쳤다.

“독일연방 물리기술 연구원!”

‘그게 뭐야.’

아버지, 어머니와 시선을 교환했지 만 두 분도 모르시는 듯하다. 우선 이름부터가 마음에 안 든다.

“어, 어디?”

“독일연방 물리기술 연구원이요!”

도진이의 확고한 의견에.

어머니께서는 단 하루, 독일연방 뭐시기에 들렸다가 가족이 다함께 레버쿠젠에서 휴양을 즐기기로 타협했다.

월요일 하루 휴식 뒤에 연습실에 모인 단원들은 여전히 표정이 풀어 져 있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마디 하려 했는데, 스스로 마인 드 컨트롤을 하니 단원들을 좀 더 신뢰할 수 있었다.

아마 새로 취임한 악장의 영향이 없진 않을 거다.

“여, 여긴 좀 더 현을 눌러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직 손가락이 다 낫지 않아 결승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된 나윤희는 연습만이라도 참가해 보조를 해주었다.

그런 그녀의 열정을 보고 단원들도 느끼는 바가 있었을 거다.

‘본이 되는 리더만큼 좋은 지도자 도 없지.’

당분간 내가 없어도 배울 자세를 갖춘 이들과 케르바 슈타인, 찰스 브라움, 나윤희, 소소라면 B팀을 잘 꾸려나갈 수 있을 거다.

손뼉을 쳐 연습 시작을 알렸다.

단원들이 진지한 눈으로 내게 집중하고 있다.

“대회 일정이 타이트했던 만큼 현재 우리는 최고의 상태가 아니에요. 하지만 상대는 세미파이널에서 만났 던 암스테르담과 수십 년간 경쟁했던 이들입니다.”

B팀 단원들에게는 하늘과도 같은 이들이다.

“또 남은 레퍼토리가 서로 얼마 없기 때문에 같은 곡을 연주할 확률이 높아요. 그렇게 되면 이번에야말로 완성도의 싸움이 되겠죠.”

마리 얀스와의 대결에서 단 하나 인정하는 것은, 그들의 연주가 나와 베를린 B보다 더 완성도 있었다는 점이다.

하물며 푸르트벵글러와 베를린 A는 지난 수십 년간 단원이 바뀐 것 은 레몽 도네크를 제외하고 모두 은퇴였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조직력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A를 넘어서는 오케스트라는 지구상에 없습니다.”

단원들이 입술을 꽉 깨문다.

“오늘부터 이틀간, 우리는 베를린을 넘어서야 합니다.”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모를까.

이번에는 나도 장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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