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300화 (300/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300화

    66. 라이든샤프트(2)

    —으아아아아!

    -해냈어! 해냈다고!

    TV, 컴퓨터, 태블릿, 모바일 등 전 세계 모든 영상 매체에 배도빈을 향해 달려드는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 들의 모습이 비쳐졌다.

    또다시 배도빈을 던져 버린 그들의 얼굴은 작은 웃음은커녕 눈물과 주름으로 가득했지만 시청자들은 베를린 필의 단원들을 표정에서 더 없이 큰 행복을 느꼈다.

    대한민국의 유력 방송사 NBC의 메인 앵커 김동일이 상황을 전달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악단주이자 상임 지휘자 배도빈 씨가 현지 시각 9시 27분, 암스테르담을 꺾고 결승 전에 진출했다는 소식입니다.

    차분한 진행으로 정평이 난 그도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묘하게 고양된 목소리는 그도 배도빈을 응 원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현장에 특파된 김준용 기자와 연 결해 보겠습니다. 김준용 기자.

    -……네. 여기는 잘츠부르크 대축 전극장 앞입니다.

    -현장 반응은 어떻습니까?

    -……잘츠부르크는 축제의 도가니 입니다. 밤하늘엔 대규모 폭죽이 이 어지고 있고 사람들은 두 악단의 연주에 감동해 날이 넘어가는 지금까 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정말 간발의 차이였습니다. 심사 위원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지요?

    -……그렇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의 점수가 공개된 뒤 크고 작은 항 의가 빗발쳤습니다. 심사 위원단은 오케스트라의 완성도를 기준으로 평가했다며 심사 결과를 번복하는 일 은 없을 거라 밝혔습니다.

    현장 상황에 대한 질의응답 이후 화면은 데스크로 옮겨졌다.

    김동일 앵커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소식을 정리했다.

    -이제 첫 번째 대회를 마무리하는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은 그간 룰 추가, 악단 사이의 갈등, 심사의 공 정성 등에서 미숙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배도빈 씨와 베를린 필하모닉은 끝내 이 시대 최고의 오케스트라라 불리던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를 꺾고 결승에 올라섰습니다.

    그러나 말을 할수록, 생각할수록 대한민국에서 이런 인재가 나왔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독일의 문화평론가 게르트 카리 우스가 말했습니다. 낭만 이후 격정의 시대가 도래했다. 우리는 지금 음악사의 전환점에서 분투하는 위대 한 음악가와 함께하고 있다.

    게르트 카리우스의 말을 전달하는 김동일 앵커의 목소리는 격앙되었다.

    -모두 배도빈 씨를 두고 하는 말 이었습니다. 18세의 어린 나이로 유 수의 거장들을 제치고 우뚝 선 그의 앞날을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응원 합니다.

    NBC가 보도한 내용 이상으로 클래식 음악계는 태풍을 맞이한 것만 같았다.

    체코 필하모닉의 엘가르 데를과 시카고 심포니의 제르바 루빈스타인 모두 그 음악성과 명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지만.

    마리 얀스의 이름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마리 얀스는 2000년대에 이르러 그때까지 수십 년간 정상을 유지한 베를린 필, 빈 필을 제친 거장 중의 거장이었다.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중 한 명이었으며 21세기 초를 대표하는 그가 패배한 것이었다.

    문화평론가 게르트 카리우스의 말 대로 새로운 시대가 온 것이었다.

    【마에스트로 배도빈, 문을 열다!]

    【마침내 신이 된 샛별!]

    [배도빈의 음악. 고전의 파괴인가 또 다른 창조인가]

    [지각변동! 배도빈. 그는 신인가 악 마인가]

    [베를린 대 암스테르담 영상 시청 수 이틀 만에 1억 돌파!]

    [몰매 맞는 OOTY 오케스트라 대 전 심사 위원들, “심사 기준에 따른 결과였다.1

    【배도빈, “매일 어제보다 아름다운 연주를 바랄 뿐이다.”】

    【마리 얀스, “즐거웠다. 암스테르담 과 베를린이 더욱 발전하길 바란다.”]

    하루에도 수백 개의 기사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반복되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나는 배도빈이 마침내 클래식과 타 장르의 경계를 허물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였고.

    둘은 배도빈의 행보가 클래식 음악 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논란.

    셋은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두 거장의 자세였다.

    ㄴ 크으~ 매일 어제보다 아름다운 연주를 바랄 뿐이다래 ㅠㅠ

    ㄴ 도빈이 정말 대단한 게 저런 점인 것 같음.

    ㄴ 나도 같은 생각. 저 어린 나이에 더 올라갈 곳도 없이 성공했는데도 멈추지 않잖아.

    ㄴ 레퍼토리 늘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어느 미친 인간이 19개월 사이에 14곡이 넘는 곡을 새로 연주하냐. 배도빈이 아니었으면 불가 능한 일이었음. 그걸 따라간 베를린으도 대단하고.

    ㄴ 마리 얀스도 진짜 멋지다. 그 위 치에 있는 사람이 까마득히 어린 후 배에게 밀렸으면 자존심 상할 것 같은데, 암스테르담이 더 발전하길 바 라면서도 베를린 응원하네.

    ㄴ 위대한 지휘자이자 인격자임.

    ㄴ 근데 사실상 OOTY 끝난 거 아 냐? 결승이라 해도 A랑 B 대결이잖아.

    ㄴ 그러게. 어디가 이겨도 악단주인 배도빈은 손해 볼 거 없네. 푸르트벵글러도 그렇고.

    ㄴ 지지 그건 너희 같은 사람 생각이고. 푸르트벵글러랑 배도빈 성격 모르냐? 개최할 때만 해도 아예 루트 다르게 잡아서 갔던 사람들임. 집안싸움이 결승에서 났으니까 더 하면 더했지 그냥 넘어가진 않을걸?

    ㄴ 나 배도빈 쭉 응원해 왔는데 이 번엔 조금 망설여진다.

    ㄴ 왜?

    ㄴ 지금까진 클래식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조금씩 달라지는 거 같음. 클래식이 오거 클래식인데. 배도빈 혼자만 나아가는 거면 몰라도 모든 악단이 배도빈 따라가면 정통 클래식은 어디서 들어?

    ㄴ 그러진 않을걸. 모차르트랑 베토벤 음악은 100년 뒤에도 연주될 테니 걱정 마셈.

    ㄴ 나도 위에 댓글 쓴 애랑 같은 생 각인데. 난리 났잖아. 새로운 사조가 열렸다고.

    ㄴ 걱정도 팔자네.

    ㄴ 살아 있는 사람이 이런 평가 받는 것도 신기하지 않냨ㅋㅋㅋ 난 쟤들 생각 이해된다.

    ㄴ 아, 배도빈 기자회견 시작한다.

    운영 중인 두 악단 모두 결승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베를린 필하모닉은 악단주 취임, 상임 지휘자 선 임, 결승에 오른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가졌다.

    음악 전문 언론 이외에도 전 세계 유력 언론사는 모두 모여 기자회견 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잠시 후.

    배도빈 베를린 필하모닉 악단주이 자 예술 감독과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총 감독이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 냈다.

    쏟아지는 플래시에 두 지휘자 모두 불쾌한 표정을 보였다.

    조금도 닮지 않은 두 사람이었지만 그 표정이 너무 똑같아 라이브 중계를 보고 있는 팬들은 웃기 바빴다.

    슈피겔의 빌리 브란트가 가장 먼저 기회를 얻었다.

    “결승 진출을 축하드립니다. 마에 스트로. 베를린 필하모닉을 인수하 게 된 경위가 어떻게 되십니까?”

    배도빈이 마이크를 드는데 단상 옆 에 있던 카밀라 앤더슨이 눈썹을 좁 혔다 폈다 반복했다.

    크루즈라든가 아직 베를린 필하모닉이 준비하는 사업 계획을 발표하 기에는 시기상조라 판단했기에 말을 아끼라는 신호였다.

    배도빈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전 악단주 귄터 씨와 상의 끝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미래를 위해 결정했습니다.”

    배도빈의 발언을 들은 카밀라 앤더 슨은 속으로 안도했다.

    ‘예전 같았으면 할아버지가 사줬어 요라고 했을 텐데. 크긴 컸나 봐.’

    카밀라 앤더슨은 상황을 적당히 돌 려 말할 줄도 알게 된 그녀의 어린 보스가 기특할 뿐이었다.

    “여러 계획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해상 오케스트라라든가.”

    배도빈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기자 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카밀라 앤더슨은 손으로 이 마를 짚었다.

    연인 푸르트벵글러도 기자회견만 열면 어디로 튈지 몰라 되도록 언론 접촉을 피했거늘.

    성숙해졌다고 생각한 베를린 필의 새 주인이 시작부터 폭탄 발언을 해 버리고 말았다.

    “해상 오케스트라라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어, 언제부터입니까? 자세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베를린에 있는 시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뜻하지 않은 정보를 얻은 기자들이 질문을 쏟아냈고 그 분위기는 한동 안 계속되었다.

    간신히 진정되고 배도빈이 질문에 차례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오래 전 고향에서 팬레터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많아 일일이 답장하 지 못했지만 배도빈이 팬레터를 꼼 꼼히 확인하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은평구에 사는 분이셨는데, 두 딸과 함께 언젠가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를 들으러 오고 싶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때 깨달았습니다. 제 연주 회가 그분에게는 몇 년을 작정해야 찾을 수 있는 거란 걸요.”

    한국과 독일을 오고 가는 항공 비행과 독일 안에서의 교통비용, 숙박 등 기타 금전적 비용과 시간적 비용 까지 따지면 사실상 배도빈의 팬들 은 그 한 번의 공연을 보기 위해 수백만 원을 지출해야 했다.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라 유럽 외 다른 대부분 나라의 팬들이 그러했다.

    “저와 베를린의 연주를 듣는데 그런 일이 방해된다면 직접 움직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구상한 끝에 생 각한 방안이 해상 오케스트라입니다. 찾아가고 함께 여행하며 즐길 수 있도록요. 합리적인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배도빈이 그 이상 발언하지 않았기 에 기자들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 음 질문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그와 별개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던 클래식 음악 팬들은 ‘미쳤다’, ‘이건 타야 해!’, ‘비싸지 않을까’ 등 의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다음 질문의 권한은 아사히 신문의 이시하라 린에게 돌아갔다.

    “격정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이 인 정받고 있는 지금, 베를린 필하모닉 의 행보에 여러 평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클래식을 새롭게 창조한다는 말과 파괴하고 있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시하라 린의 질문에 기자들의 신 경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인수한 사실도 상임 지휘자로 선임된 일도 중요했지만 오늘 기자회견의 쟁점은 다름 아닌 음악사의 변환점이었다.

    지금까지 클래식 음악 안에서 활동 하던 배도빈이 탱고를 연주해 오케스트라 대전에서 당당히 암스테르담을 넘어선 지금.

    다른 장르와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 은 예측 가능한 미래였다.

    배도빈의 발언과 행동이 어떤 파장을 미칠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이미 큰 줄기의 강을 이룬 배도빈 이었기에 후발 주자들은 그에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만약 배도빈이 클래식을 이탈한다 면 시장 자체가 흔들릴 위험이 있다는 게 배도빈을 비판하는 이들의 공 통된 의견이었다.

    배도빈이 마이크를 들자 기자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파괴 없는 창조는 없습니다.”

    배도빈의 말에 기자들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마치 수백 년간 이어져 온 클래식 음악계에 마침표가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들 무엇을 걱정하는지 이해할 수 없네요. 이시하라 기자님, 음악은 계속 발전해 왔나요?”

    갑자기 질문을 받은 이시하라 린이 당황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네. 발전해 왔죠.”

    “맞아요. 당시 연주되던 아마데의 연주보다 지금 암스테르담이나 런던 심포니의 연주가 훨씬 뛰어나죠. 하 지만 아마데의 곡이 연주되고 있는 건 변함없습니다.”

    바삐 움직이던 기자들의 손이 멈췄다.

    기자들을 둘러보며 시선을 교환한 배도빈은 테이블에 팔꿈치를 댄 채 말했다.

    차분하고 여유로워 마치 사랑하는 제자에게 질문을 받은 교수의 모습 같았다.

    “아름다운 연주는 시대를 반영하죠. 음악이 변화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가톨릭이 세상의 법이었을 때.

    그레고리안 찬트로 그간 구전되어 오던 성가들이 집대성되어 서양 음악이 시작되었다.

    늘어나는 찬트(성가)를 기록하기 위해 기보법(악보를 작성하는 법)이 정립되기 시작했고.

    그 과정을 통해 음악은 마침내 누적되었다.

    이후 음악은 르네상스, 산업혁명 등 역사와 함께 변화, 발전해 왔으며 현재에 이르렀는데.

    배도빈의 말은 그러한 음악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었다.

    배도빈이 핸드폰을 꺼내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한 베토벤의 운명 교향 곡을 틀었다.

    단 네 마디의, 여덟 개의 음뿐이었지만 그 곡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음악의 시대를 위로하는 최초의 행위입니다. 그 본질은 아름다움과 감동을 탐하는 데 있죠. 아마데와 베트호펜이 그간의 정형화된 양식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형식을 취했던 것은 더 나은 음악을 위해서였습니다.”

    정상에 오른 음악가의 말에 어느덧 회장은 강연장이 되었다.

    “긴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이 곡을 모르는 시대가 올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루트비히 판 베트호펜의 정신이 사라지는 건 아니죠.”

    배도빈은 진실로 그리 생각했다.

    “변화를 두려워해 돌아가길 바란다면 아마데와 베트호펜 그리고 그 뒤 수많은 음악가들에 의해 걸어온 길을 되돌아갈 뿐입니다. 그것은 고전의 가치를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고전을 파괴하는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 나가는 것이야말로 클래식을 지키는 일입니다.”

    배도빈의 말에 라이든샤프트의 정신이 규정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끝없이 나아간다면 클래식이 무너질 일은 없을 겁니다.”

    카레는 여러 번 끓일수록 맛있다.

    다음 날, 그다음 날 농후함이 더해져 더 먹고 싶지만 언젠가는 빈 냄비를 보게 될 것이다.

    아쉬웠던 야채를 좀 더 넣고 끓인 카레는 지난 번 끓은 마지막 카레보다 가벼운 느낌이다.

    그렇지만 더 맛있는 카레를 향한 마음이 계속된다면 카레향이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이를 좋은 비유라 생각했던 배도빈은 최지훈과 차채은의 극심한 반대 로 포기.

    평범한 말로 정복지의 백성들을 교화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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