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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296화 (296/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296화

    65. 탱고와 비올라(2)

    또다시 울먹이기 시작한 료코를 보며 말했다.

    “찰스는 4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켰대. 소소도 5살 때부터 얼후를 잡았고 지금은 대부분의 현악기를 잘 다루지.”

    “니아 발그레이는 10살 때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어. 푸르트벵글러는 오케스트라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악장으로 들어왔었고.”

    “지금 나 놀리는 거야?”

    “다들 뛰어난 재능이지?”

    “ 당연하잖아.”

    “그럼 모차르트는?”

    “모차르트는 3살 때부터 클라비어를 연주했대. 5살 때부터 작곡을 했고. 앞선 사람들보다 더 대단한 것 같지 않아?”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아마데를 능 가하는 재능은 없다.

    하늘이 준 재능.

    아마데보다 천부적이라는 말에 어 울리는 음악가는 없었다.

    “난 모차르트보다 뛰어난 재능, 아 니, 그에 준하는 사람조차 보지 못했어.”

    료코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기분이 좋은 건 잠시 숨기자.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잖아. 네 말대로면 모차르트 뒤에 음악 하는 사람은 멍청이일 뿐이네.”

    “비교 대상이 이상하잖아.”

    “아니. 같아. 재능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그게 음악을 못 할 이유는 될 수 없어. 어떤 경우에도.”

    기특한 후배들을 언급하자.

    “슈베르트, 바그너, 슈만, 브람스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베토벤.”

    “뭐.”

    “그래. 그렇게 뛰어난 음악가들도 결국 재능의 차이를 절감했지. 그런데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어. 그리고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

    “그러니까 경우가.”

    “ 같아.”

    난 누구보다도 큰 격차를 깨닫고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을 안다.

    7살의 최지훈에게 나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존재였을 거다.

    그러나 녀석은 좌절하지 않았다. 매일 피아노를 연주했고 항상 어제 보다 나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오직 피아노를 더 잘 치고 싶단 마음으로 끝을 알 수 없는 벽을 기어올랐다.

    그러나 두 사람을 비교할 순 없는 노릇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너에게, 베를린 음대생들은 재 능의 차이를 느끼겠지. 혹은 일본에 남은 학부생이나.”

    “그 사람들에겐 17살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자로 있는 네가 신기할 거야. 넌 그 사람들이 음악을 하 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게 아니야. 단지 사람마다

    어울리는 자리가 있는 거잖아.”

    “그게 재능의 차이로 결정되는 건 아니지.”

    혼란스러워하는 료코를 보며 말했다.

    “어쩌면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가 더 벌어질 수도 있어. 옆 사람은 벌써 두세 개의 벽을 넘어섰는데 자기는 정체하고 있을지도 몰라. 처음에는 이 악물고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으면 지칠 거야. 앞으로도 계속 느 낄 거야.”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좋아하잖아.”

    처음부터 비올라를 선택하는 건 꽤 드문 일이다.

    애석한 일이지만 바이올린을 전공으로 하다가 빠지는 경우가 많다.

    나카무라 료코 같이 어렸을 적부터 주인공이 못 되는 비올라를 선택해 성장한 경우는 매우 적다.

    그만큼 비올라를 사랑한단 뜻이다.

    내가 나카무라 료코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 이유다.

    “남들과 차이는 있겠지만 매일 더 나은 연주를 할 수 있잖아. 한동안 실력이 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래 도 언젠가는 넘어섰잖아.”

    “그렇게 성장해서 도착한 거야. 베를린 필하모닉의 비올리스트란 자리는 네가 비올라를 좋아하는 만큼의 위치야.”

    료코는 얌전히 내 말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 5년 뒤에는 좋아하는 마음 이 더 쌓여서 더 높이 올라가 있겠지.”

    “다른 사람은 더 멀리.”

    “그 누구도 끝에 도달할 순 없어. 바흐도 모차르트도 끝에 도달하진 못했어.”

    료코의 눈을 보며 말했다.

    “나도 계속 나아갈 거야. 음악을 좋아하니까 계속할 수밖에 없어.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걸 평생 반복하겠지. 그러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까.”

    녀석의 눈이 흔들린다.

    “힘들다고 재능에 차이가 난다고 좋아하는 걸 포기하지 마. 그렇게 속이면 상처만 입을 뿐이야.”

    나카무라 료코가 베를린 필하모닉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하지도 못했을 거다.

    비올라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일본 에서 독일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좋아하잖아. 단원들.”

    나카무라 료코는 눈물을 훔치더니 입을 앙다물고 애꿎은 방 한쪽 구석을 응시했다.

    그렇게 잠시간 기다리니 입을 열었다.

    “친해지고 싶어.”

    한참을 더 있다가.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이라고 말하고 싶어.”

    고백하듯이 말했다.

    “좋아한단 말이야. 근데. 근데.”

    지금껏 엘리트 코스만을 바삐 달려 비올라만을 알았던 녀석은 처음으로 소속감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울리고 싶은 마음을, 자격을 갖 춰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달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한때 그랬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불합리한 신분 사회 에서의 일이다.

    “이미 다들 좋아해.”

    료코가 날 째려본다.

    기운이 좀 난 모양이다.

    상임 지휘자가 되고 맡은 첫 상담 이 이렇게 고될 줄이야.

    앞으로를 위해 푸르트벵글러에게 조언을 좀 구해봐야겠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런던 심포니의 세미파이널을 관람하기 위해 잘츠부르크를 방문한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멀리 타국까지 와 암스테르담 로얄 콘세르트허바우 대 베를린 필하모닉 B의 경합을 놓칠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2023년 7월 16일 일요일 저녁 5시. 잘츠부르크는 어제의 분위기를 이 어, 현 세대 가장 뛰어난 지휘자 마 리 얀스와 왕위 계승을 마친 베를린 의 마왕의 대결에 달아올랐다.

    “빨리 좀 와!”

    “안 늦어. 왜 이렇게 서둘러?”

    “야, 내가 배도빈 무대 보려고 올 해 초부터 얼마나 기다렸는데. 결승 티켓은 못 구했지만 준결승이 어디 야. 게다가 마리 얀스라고. 그 마리 얀스!”

    “그래. 그래. 좋겠다.”

    “지는 안 기다린 것처럼 말하네. 통장 다 털었으면서.”

    “품위 있게 가자는 거야. 어? 옷이 그게 뭐냐? 너 그러고 입장 안 되 면 진짜 죽을 줄 알아.”

    “……옷 살 돈이 부족했어.”

    “……미안. 부탁해 보자.”

    공연 시작 시간이 다가올수록 콘서트홀로 향하는 걸음이 바빠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언론에서 외치듯 그야말로 두 세대를 대표하는 거물 중의 거물들의 만남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최근, 배도빈이 베를린 필하모닉의 정식 절차를 밟아 상임 지휘자로 선임되고 거기에 악단마저 인수해 버리니.

    배도빈이 베를린 필하모닉에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간 악장 신분으로 B팀만을 지휘 하던 세기의 천재가 비로소 베를린 의 지지 속에 왕위를 계승했으니.

    배도빈의 팬들은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은 뭘 연주할까?”

    “암스테르담 주요 레퍼토리는 모차르트랑 바흐잖아. 베를린 B는 베토벤이랑 드보르자크고. 그중에 나오 지 않을까?”

    “하긴. 상대가 상대고 결승전이 걸 린 거니 제일 잘하는 걸로 하겠다. 근데 베를린 으는 이미 다 한 거 같은데.”

    “에로이카랑 신세계로부터는 했고. 불새가 진짜 숨겨둔 수 같았지.”

    “혹시 베토벤 C단조?”

    “크. 생각만 해도 좋다. 배도빈이 지휘하는 운명이라니. 생각해보니 그럴싸한데?”

    “그치? 대중성도 그렇고 베토벤이면 배도빈 주 종목이니까.”

    현장을 찾아 잔뜩 흥분한 두 사람 의 대화처럼, 사람들은 오늘 두 악 단이 연주할 곡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나 가진 바 무기를 전부 활용 한 느낌을 준 베를린 필하모닉 B에 게는 베토벤 교향곡 5번(운명)을 연주할 거란 예측이 많았는데.

    팬 투표가 절대적인 지표가 된 현 재, 보다 익숙한 곡을 선정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실제로 3라운드 이후로는 모든 악 단이 스탠다드 넘버를 재해석하거나 완성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대회에 임하였다.

    그래서.

    현장을 방문한 기자들과 관계자들 은 따로 받은 팸플릿을 보고 믿을 수 없었다.

    “이게 뭐야.”

    “……이거 탱고 아니야?”

    클래식 음악을 전문적으로 다루던 기자들에게 베를린 필하모닉의 선곡은 신선하다기보다는 뜬금없었다.

    ‘머리 하나 차이로’가 한 시대를 풍 미한 곡은 맞지만 일단 클래식 음악의 결정체, 오케스트라 대전에서 다 룰 만한 곡은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더욱이 고작해야 4~5분 정도의 곡을 아무리 변형하고 늘려봤자 대회 규정인 30분 이상의 연주가 가능할 지도 의문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편곡을 시도해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던 배도빈을 의심할 정도로 황당한 상황에.

    더욱 가관인 건 협연자였다.

    “찰스 브라움은 그렇다 치고 가우왕? 이거 진심인데?”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이 바닥 짬 이 얼만데 그런 말을 해? 이제 막 악단 인수하고 상임 지휘자로 선임 된 배도빈이 그럼 장난이라도 치겠어?”

    “그럼 넌 이 선곡이 이해가 되냐?”

    “……천재들의 머리를 내가 어떻게 이해하냐? 봐. 교향곡 나올 줄 알았는데 암스테르담도 피협이잖아.”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네?”

    그 순간.

    기자들은 부리나케 노트북을 꺼내 들어 내용도 없는 기사를 올리기 시 작했다.

    마리 얀스와 배도빈으로 규정된 신 구대결이, 지메르만과 가우왕의 사 제대결까지 형성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을 동시에 전해 들은 가우왕은 의욕으로 불타 올랐다.

    그가 개인 대기실을 박차고 나와 지휘자 대기실의 문을 활짝 열었다.

    “꼬맹이.”

    “무슨 일이에요?”

    “카덴차에서 찌질이 빼.”

    “방금 찰스도 그 말 하고 갔어요.”

    “그래. 주제는 아네. 그 아줌마 이 길 사람은 나뿐이야.”

    “아뇨. 지금이라도 이길 거면 가우왕을 빼고 제가 연주하래요.”

    “뭐?”

    “그래서 쫓아냈어요.”

    “잘했네.”

    “그러니 헛소리 그만 하고 나가요.”

    “야, 자, 잠깐. 차지 말아봐. 야.”

    배도빈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두 사람 이 애처럼 구는 통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지메르만과 마리 얀스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이라.’

    그러나 암스테르담을 연주를 상상 하니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결승 진출을 축하해 주는 곡으로는 멋진데.’

    대관식이라는 별명을 가진 모차르 트 피아노 협주곡 26번을 기대하며 배도빈이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객석이 빈틈없이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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