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293화 (293/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293화

64. 베토벤을 계승한 자(4)

2023년 7월 15일 저녁 6시.

OOTY 오케스트라 대전 세미파이 널, 런던 심포니 대 베를린 필하모닉의 1차전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NBC 뉴스데스크에서도 방송 시간을 옮겨 관련 소식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세계인의 축제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이 오늘 4일간의 휴식 뒤에 준결승전을 맞이했습니다.”

“브루노 발터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두 거장의 만남에 클래식 음악 팬들이 열광하고 있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김수민 기자와 연결해 보 도록 하겠습니다. 김수민 기자.”

두 앵커의 부름과 동시에 화면이 분활되었다.

-네. 저는 지금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있습니다. 현지 시각 오후 6 시부터 펼쳐질 두 악단의 경합에 거 리는 설렘과 기대로 가득합니다.

“표를 구하지 못한 관광객을 위한 대책도 있다지요?

-네. 주최 측인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에서는 콘서트홀에 입장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여러 광장에 대형 스크린과 음향 시설을 설치해 두었습니다. 잘츠부르크 음악 축제 티켓 이나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을 한 번이라도 관람했던 이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발표에 따르면 도합 180만 명의 관광객이 잘츠부르크에 모여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관람을 못 하는 경우가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거리는 표를 구하기 위해 종이나 팻말을 들고 있는 사람 과 콘서트홀 건물에 기대어 작은 소 리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뉴스가 진행됨에 따라 공연 시작 6시가 되었다.

그 순간 200만 명에 가까운 인파 가 몰린 도시는 두 거장의 음악을 듣기 위해 고요해졌다.

이와 같은 모습이 전 세계에 송출 되면서 팬들은 브루노 발터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얼마나 존경 받는 음악가인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ㄴ 저게 말이 되나?

ㄴ 소음이 아주 없진 않겠지. 근데 진짜 대단하다. 도시 전체가 음악을 들으려고 조용해지네.

ㄴ 중국인이 없어서 가능하다는 게 정설의 학계임.

ㄴ 그만큼 푸렝이랑 발터를 존경한 단 뜻이겠지. 또 저기 있는 사람들 공연 한 번 듣자고 갔을 테니 방해 받으면 엄청 짜증날걸?

ㄴ ㅋㅋㅋㅋㅋ 기자 눈치 보면서 말 하는 거 귀엽닼ㅋㅋㅋ

ㄴ 이제 시작일 텐데 화면 좀 넘겨 라!

ㄴ 애초에 협회랑 계약한 곳 아니면 못 보는데 다 결제해서 보는 거라 TV로 볼 생각은 안 해.

ㄴ 시작한다. 방 옮겨야지.

무대 위에 런던 심포니가 들어서자 뉴스 중계를 보고 있던 팬들이 썰물 처럼 빠져나갔다.

동시에 콘서트홀에 자리한 관객은 모두 안달이 나 있었다.

브루노 발터가 지휘하는 곡은 발랄하거나 포근하여 감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배도빈이 활동하기 전까지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지휘자였으니 현 장을 찾은 관객들이 가슴 설레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관객들은 이제 막 무대에 오른 거 장을 반갑게 환영했다.

환호와 박수가 콘서트홀을 가득 채 웠고 브루노 발터가 고개를 숙이자 더 없이 기뻐했다.

이제 고요함만이 남았다.

인사를 마친 런던 심포니는 그들의 위대한 지휘자 브루노 발터만을 바 라보았다.

연주할 곡은 모차르트가 남긴 마흔 한 번째 교향곡 C장조.

‘신이 통치한 성역’이라는 수식어 가 붙어 있는 오케스트라의 정점에 달한 곡이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베를린 필하모닉을 상대로 런던 심포니가 칼을 벼려 나왔다는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브루노 발터가 절도 있게 두 팔을 휘두르니 런던 심포니가 힘 있게 치고 나와 1악장 알레그로 비바체 (Allegro vivace ‘ 빠르고 생기 있게)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모차르트 사후 그리스 모든 신들의 왕 ‘주피터’란 별명이 붙은 만큼 런 던 심포니는 도입부터 웅장한 면모를 자랑했다.

다소 변칙적이나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할 것처럼 배치된 음들은 모차르트가 왜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였는지 말해주었다.

차이를 두고 이뤄지는 다중 화음과 부점 리듬을 강조한 관악기, 그에 대비되어 노래하는 현악기가 이루는 찬란함.

브루노 발터는 자신이 왜 모차르트 음악의 최고 권위자인지를 완벽한 조율로 증명해내고 있었다.

힘차게 이어지는 전개부는 거친 느 낌이 조금도 없고 아름다운 선율은 관객들을 자연스레 심상으로 이끈다.

그것을 감상하던 배도빈조차 감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데의 곡을 이만큼 표현하는 사람이 있었나.’

관악기가 울리고 현악기가 빗발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정말 천둥번개라도 치는 듯했다.

브루노 발터와 런던 심포니는 분명 당대의 연주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시대연주를 한다는 빈 필하모닉과 런던 필하모닉은 분명 뛰어났지만 18〜19세기를 살았던 배도빈에게는 그들의 뛰어난 실력을 차치하고 그 리 매력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특히나 빈 필하모닉은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점이 아쉬웠다.

그러나 런던 심포니는 브루노 발터 의 뛰어난 곡 해석 능력으로 모차르 트가 남긴 걸작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는 곡처럼 모든 음표가 그 자리를 떠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브루노 발터는 그런 모차르트의 곡을 런던 심포니라는 훌륭한 악기를 사용해 천재의 머릿속에 있던 악상을 그대로 실현시켰다.

배도빈은 진정 처음으로.

그가 최고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단원들을 응원했다.

당연하게 여겼던 승리를 바라게 된 순간이었다.

영광의 음악이 끝을 향해 달리고.

브루노 발터에 의해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마지막 음이 공기 중에 스며들 때 까지 회장은 고요했다.

충분히 여운을 만끽한 뒤 누가 먼 저라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일어나 환호했다.

“진짜 엄청난데?”

이필호 기자가 고개를 저으며 박수를 보냈다.

오른쪽에 앉아 있던 한이슬 평론가 도 감탄할 뿐이었다.

“그러니까요. 런던 심포니 연주는 항상 좋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대단 했어요. 그 웅장함이며 유연함은 어휴.”

“나도 2악장이 좋았어. 아리아 같잖아.”

“아하하. 이거 모차르트를 칭찬하는 건지 런던 심포니를 칭찬하는 건 지 모르겠는데요?”

“그만큼 잘 표현했다는 거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두 사람의 대화처럼 런던 심포니의 주피터를 들은 이들은 하나같이 모 차르트가 직접 지휘한 것 같다며 찬사를 보냈다.

훌륭한 음악을 들어 벅찬 가슴은 진정될 줄 몰랐고 심사 위원들은 모 두 고민 없이 만점을 기입했다.

언젠가부터 오케스트라 대전에서 만점이 너무 잦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그들로서는 이 훌륭한 연주에서 흠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전 세계가 30분간 브루노 발터와 런던 심포니를 찬양했고 그 사이, 정세윤 기자가 옆자리에 앉은 차채은에게 물었다.

“어떨 것 같아?”

정세윤 기자가 옆자리에 앉은 차채은에게 물었다.

나이는 비록 어렸지만 배도빈과 베토벤에 관해서는 전문가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는 차채은이 오늘 경합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응원하고 있어요.”

“역시 확신할 순 없나 보네?”

“네. 너무 대단해서 정말 모차르트가 바랐던 연주를 들은 것 같아요.”

정세윤은 베를린 필하모닉과 배도빈이라면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냈던 차채은이 보인 반응을 보고, 이번만 큼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라도 쉽지 않을 거라 여겼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기자들에 게만 주어진 팸플릿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눈에 오늘 베를린 필하모닉 이 연주할 곡.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남긴 마지막 교향곡, ‘합창’이 들어왔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교향곡과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이라니.’

현대 음악사 중 가장 위대한 두 명의 지휘자의 대결에, 역사상 최고 의 음악가로 손꼽히는 두 천재의 교 향곡.

이내 장내가 술렁였다.

“뭐야?”

“설마.”

첫 번째 연주의 벅찬 가슴을 겨우 달랬던 관객들은 200명이 넘는 사람이 무대 위에 오르고 그중 일부가 계단에 오르는 것을 보고 그야말로 전율을 느꼈다.

세계 최고의 연주자들을 감싼 카리 스마와 더불어, 오늘의 프로그램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ㄴ 어? 뭐야? 합창임?

ㄴ 왘ㅋㅋㅋㅋ 진짜 둘 다 작정하고 나왔넼ㅋㅋㅋ

ㄴ 브루노 발터의 모차르트랑 푸르트벵글러의 베토벤을 하루에 듣다니 미쳤다 진짴ㅋㅋㅋ

ㄴ 이건 진짜 모르겠다.

ㄴ 뭐야. 저 사람 군둘라 야노비츠 아님?

ㄴ 맞네. 가수들도 미쳤는데?

ㄴ 선곡만으로도 분위기 휘어잡는 클라스

ㄴ 브루노 발터나 푸르트벵글러나 지휘자로서는 역대급인데 난 도저히 어디가 이길지 모르겠다.

ㄴ ㅇㅇ. 우위를 가르기 힘들지. 이건 사실상 모차르트랑 베토벤의 대 결이나 마찬가지임.

ㄴ 모차르트 최후의 교향곡과 베토벤 최후의 교향곡이라니

ㄴ 뭔 소리야. 모차르트 교향곡 더 있다는 거 밝혀지지 않음?

ㄴ 2차 세계대전 때 소실되어서 확실치 않다던데.

ㄴ EMI라는 프로그램이 만든 게 가끔 42번째 교향곡이라 불릴 때도 있음 ㅋㅋ

ㄴ 발터랑 푸벵 비교가 어렵다면서 모차르트랑 베토벤은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냐? 말이 많아지면 헛소리만 는다. 조용히 하고 봐

ㄴ 아, 푸르트벵글러 나왔다.

ㄴ 저 할배랑 베필 포스는 진짜 인정해야 한다.

ㄴ 니가 안 그래도 다들 인정함.

설렘과 기대 속에 당당히 지휘단에 오른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타오를 것만 같은 눈빛으로 무대를 압도했다.

굳게 닫은 입은 그의 고집스러운 성정을 짐작케 했으며 선 굵은 턱은 그의 음악을 향한 외골수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듯했다.

지휘자로서 처음 데뷔했을 때 직접 작곡한 교향곡과 베토벤의 서곡, 브 루크너의 9번 교향곡을 지휘했을 정 도로 자신감이 넘쳤던 그는 오만하 고 괴팍하기로 유명했으나.

결국 베를린 필하모닉이 40년 가 까이 상임 지휘자로 선임할 정도로 신뢰받은 위대한 음악가였다.

푸르트벵글러가 두 손을 모았다.

전 세계가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그의 손을 따라 베를린 필하모닉이 태동을 알렸다.

지평선 끝에서 머리를 드러내.

이내 장대한 빛을 비추기 시작한 태양을 알리는 동기.

그것이 활용될수록 고조되는 영광 의 아침이 관객들을 잡아끌었다.

거부할 수 없는 강한 힘에 이끌려 무대 위에 오른 듯했고 태양이 온전 히 머리 위에 떠오르자.

다시 한번 그 광활한 힘이 가슴을 묵직하게 파고들었다.

베토벤 특유의 고집스러운 주제 확 대와 변형을 완벽하게 수행하여 더 욱 더 장대히 울리는 호른의 화음과 현악기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전경.

새싹이 돋고.

꽃이 피고 나비와 벌이 날아든다.

나무가 자라고.

그늘 진 아래 사랑을 속삭이는 짐승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인간들이 과실을 따고 사냥을 시작함에 관객들 은 마치 이 세계의 시작을 보는 듯 했다.

오보에와 호른이 창조의 상징 태양을 노래했으며,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묘사하는 생명의 태동.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베를린 필하모닉이 그리는 장대한 창세기. 관객들은 이미 런던 심포니의 연주를 기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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