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280화 (280/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280화

    61. 이 시대의 거장들(1)

    나윤희가 불새를 준비하는 도중, 빈 필하모닉과 런던 심포니의 4라운드 첫 번째 경연도 진행 중이었다.

    4라운드 1차전에 몰린 온라인 스트리밍 시청자와 현장 방문객만 도합 2천만 명.

    두 명문의 명성이 오래 전부터 정상으로 논해졌던 만큼 그 어떤 대전 보다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음악가와 팬, 언론에서는 양 쪽의 우위를 가릴 수 없다고 판단했고 그것은 정확한 예측이었다.

    명장 칼 에케르트는 빈 필하모닉과 수십 차례 함께했던 만큼 빈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답을 알고 있는 듯했다.

    고전 중의 고전인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 G장조를 노래한 빈 필하모닉.

    청명한 그들의 연주는 마치 230년 전 모차르트가 있었을 빈의 정경을 보여주는 듯했다.

    관객들은 마치 푸른 바람을 맞이한 듯 상쾌하고 때로는 포근하게 감상 할 수 있었다.

    심사 위원단은 과연 그 명성대로 놀라운 수준의 시대연주와 정교함을 자랑한 빈 필하모닉에게 만점을 주었고, 전 세계 240만 명의 팬들에 게서 표를 받았다.

    그러나 런던 심포니는 만만치 않았다.

    거장 브루노 발터에 의해 재정립된 런던 심포니는 OOTY 오케스트라 대전에 임하는 각오부터 남달랐다.

    인터플레이로 인해 잃었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이미 정상이었던 악단 이 이를 악물고 나섰던 것이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선이 강한 정열적인 멜로디로 인해 가장 대중적인 곡 중 하나로.

    그 선곡부터 반드시 이기겠다는 그 들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꿈꾸는 지휘자라는 별명과 더없이 어울리는 연주였다는 호평이 이어짐 에 따라 브루노 발터와 런던 심포니는 과거의 오명을 씻어낼 수 있었다.

    사카모토 료이치는 오스트라이의 한 언론을 통해 브루노 발터의 모차 르트와 말러가 좋은 줄은 알았지만 멘델스존까지 완벽히 표현할 줄은 몰랐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심사 위원단 역시 지중해의 정열과 낭만을 느낄 수 있었다는 평과 함께 만점을 부여.

    전 세계 250만 명의 지지를 받으며 빈 필하모닉을 꺾고 세미파이널 (4강)에 이르게 되었다.

    *

    “끄으응!”

    원고를 마친 차채은이 있는 힘껏 기지개를 폈다. 기사를 쓰느라 굳어 있던 목과 어깨 근육이 비명을 질러 댔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러나 차채은은 지난 몇 주간 준 비한 원고를 마칠 수 있어 후련했다.

    배도빈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바이올리니스트 나윤희를 재조명하는 글을 완성한 것이다.

    ‘늦진 않았겠지?’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5시.

    오늘 배도빈의 가족이 잘츠부르크 로 온다는 소식을 받았던 터라 차채은은 서둘러 채비했다.

    이틀 내내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원고 작업을 하느라 세수조차 안 했기에 꼴이 말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뵙는 건데 그냥 갈 수 없잖아.’

    시간이 촉박했지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단정하게 준비한 뒤 거리로 나온 차채은은 포근했던 날씨가 살 짝 더워진 것은 느꼈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더운 건 질색인데.’

    그렇게 생각하며 배도빈이 머무는 호텔로 걸어가는데 광장 한쪽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시간이 없는 터라 무시하고 가려는 차채은의 눈에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최지훈의 얼굴이 들어왔다.

    ‘저기서 뭐 해?’

    부르려고 다가가자 마침 연주를 마 친 최지훈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박 수를 받으며 인사했다.

    “요.”

    “어? 듣고 있었어?”

    차채은이 다가가 인기척을 내자 최지훈이 놀랐다는 듯 보았다.

    “아니. 도빈 오빠 보러 가는 길이었어. 오빤 안 가?”

    “지금 가려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잠깐만.”

    최지훈이 피아노를 덮고 일어섰다.

    “이러고 가는 거야?”

    “응. 광장 관리인 아저씨께서 빌려 주신 거야. 덮고 가면 된다고 하셨어.”

    “흐흥.”

    두 사람은 함께 숙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봐?”

    “별일이잖아. 갑자기 왜 거리의 악사가 된 거야?”

    “축제니까 좀 즐기고 싶어서. 많이 들어주셔서 혼자 연주하는 것보다 재밌기도 하고.”

    “다른 생각인 거 같은데.”

    차채은이 최지훈을 살폈다.

    그 과장된 행동에 최지훈이 웃으며 반응했고 두 사람은 금방 약속장소에 이를 수 있었다.

    따로 마련된 세미나실은 배도빈과 그 가족들 그리고 그와 관련한 사람으로 북적였다.

    “이, 이모?”

    “달래, 미쳤어?”

    “아, 아니. 그러니까 도진이가……. 아니, 꼬집지 말아 봐. 설명할 수 있어.”

    “ 해봐.”

    가장 먼저 당황한 나윤희와 화가 난 소소를 상대로 쭈그러진 진달래가 눈에 들어왔고.

    “아핳학학학!”

    “하하하. 멋진데?”

    “ 끄으윽.”

    나카무라가 ‘베를린의 카리스마’라는 딸 료코를 향한 기사를 자랑하자 자지러지게 웃고 있는 이승희와 히무라, 사카모토 료이치가 그 곁에 있었고.

    “대머리 할아버지, 브로콜리는 이렇게 먹어야 해.”

    “난 매운 건 싫은데.”

    “하나도 안 매워.”

    푸르트벵글러는 배도진에게서 초장을 잔뜩 묻힌 브로콜리를 먹고 눈을 번뜩였다.

    그때 유진희가 최지훈과 차채은을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다.

    “아주머니!”

    “어머니!”

    최지훈과 차채은이 반갑게 달려가 자 유진희도 아들의 친구를 반갑게 맞이했다.

    “잘 지냈어, 아들?”

    “네!”

    최지훈은 열아홉 살이나 되었는데 엉덩이를 두드려주며 반갑게 인사해주는 유진희가 좋았다. 어렸을 때부 터 고정된 호칭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어머, 채은아. 너무 예쁘다. 어쩜 볼 때마다 예뻐져?”

    “제가 또 얼굴 하난 기특하잖아요.”

    차채은의 농담에 크게 웃자 배도빈이 하품을 하며 자리했다. 배도진이 쪼르르 달려와 그 옆에 앉아 재잘댔 는데 피곤해 보이는 와중에도 동생을 챙겼다.

    “형아, 저기 쟤는 누구야?”

    “알베르트 페터. 너랑 같은 나이야.”

    “같이 놀아도 돼?”

    “그럼. 프란츠, 알베르트?"

    배도빈이 부르자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구석에서 주변을 살피던 형제 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어머. 귀엽네. 혹시 프란츠 군과 알베르트 군이니?”

    유진희가 형제를 알아보아 배도빈 이 의아하게 여겼다.

    “어떻게 아세요?”

    “지훈이가 알려줬지?”

    정기적으로 안부 전화를 나누는 최지훈이 알려주었다고 하니 배도빈은 자신이 할 일을 빼앗긴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께 연락 자주 드려.”

    최지훈이 방긋방긋 웃으며 말했다.

    “알고 있어.”

    배도빈이 뚱해져 대답하곤 페터 형제를 보았다.

    “인사드려. 어머니셔. 이쪽은 내 동생 배도진.”

    “아, 안녕하세요! 프란츠 페터입니다! 도진 님도 안녕하세요!”

    “아, 알베르트 페터입니다.”

    프란츠는 있는 힘껏 큰 목소리로 인사했고 알베르트는 형의 뒤에 숨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반가워. 괜찮으면 같이 앉자.”

    “가, 감히 제가 어떻게 도빈 님과 같은 테이블에……

    프란츠 페터는 그러지 않아도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그에게 있어 이 장소는 꿈에서도 꾸지 못할 환경이었는데, 존경해 마지않는 배도빈과 거장 중의 거장이 라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사카모토 료이치는 물론 음악계의 내로라 하는 인물들이 잔뜩 모여 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배도빈의 기준으로는 소박한 모임일지라도 빈민가에서 나고 자란 페터 형제에게는 마치 다른 세 상에 온 것만 같이 느껴졌다.

    동생 알베르트 페터는 그러한 감정이 더욱 커 자칫 실수라도 했다가 평소처럼 얻어맞진 않을까 바들바들 떨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형제의 상황을 모르는 유진희와 배도진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배도빈이 귓속말로 대충의 상황을 전해주자 유진희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페터 형제에 게 다가갔다.

    “피아노 정말 잘 친다며? 나중에 꼭 한 번 들려줘.”

    “네, 넵! 지금 당장.”

    “지금은 밥부터 먹자. 동생이 배고 플 수 있잖아?”

    유진희가 직접 의자를 빼주자 페터 형제는 얼떨떨하게 자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맛있어.”

    “고, 고맙습니다.”

    배도빈은 동생이 알베르트에게 달콤한 호박죽을 주는 걸 보고는 안심 했다.

    둘이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진희가 자신을 걱정했던 것처럼 배도진도 또래 친구가 없었는데, 배도빈이 자라면서 자연스레 또래 친 구를 사귀는 것을 보고 안심한 유진 희와 달리.

    지금은 배도빈이 동생 주변에 또래 가 없음을 걱정하고 있었다.

    “여행은 어떠셨어요?”

    “정말 너무 좋았던 거 있지. 아빠 랑 도빈이도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올해 말이나 내년에는 꼭 같이 가요. 아버지도 그때쯤이면 여유가 생기실 테니.”

    모자가 안부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던 차채은이 나서서 물었다.

    “오늘도 연습한 거야? 1차전 안 듣고?”

    “응. 이제 그럴 여유가 없으니까.”

    “역시 브라움 아저씨 때문이지?”

    차채은의 질문에 배도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오케스트라 대전 참가를 결정했을 때부터 긴 시간을 들여 준비한 불새였기에 그간 참아왔을 뿐,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이었다.

    “아픈 사람한테 뭐라 할 수도 없고 퇴원하면 엉덩이를 걷어차 줄 거야.”

    “……그건 너무 심하지 않아?”

    최지훈의 말에 다들 또 한 번 웃었다.

    “그래도 윤희 누나가 잘 준비해 줘 서 다행이야. 4라운드도 어떻게 잘 풀어나갈 거 같아.”

    “어?”

    배도빈의 말에 순간 최지훈과 차채은이 동시에 놀랐다.

    그 때문에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식사를 하고 있던 페터 형제는 딸꾹질까지 하게 되었다.

    배도진이 알베르트의 등을 토닥토닥 대는 와중에 차채은이 물었다.

    “오빠가 하는 거 아니었어?”

    “그러니까. 캐논은 그럼 왜 가져온 거야?”

    최지훈도 거들었다.

    “윤희 누나가 연주할 거야.”

    배도빈은 대수롭지 않게 답하곤 구운 파프리카와 스테이크를 입에 넣었다.

    잠시간 정지한 차채은이 후다닥 일어나 나윤희에게 달려갔고 최지훈은 얼굴을 조금 내밀었다.

    “베를린 필하모닉한테 의미 있는 악기 아니었어?”

    “어쩔 수 없잖아. 파이어버드를 대신할 악기를 당장 구할 수도 없고. 윤희 누나랑 어울리기도 하고.”

    “그렇긴 해도 지금까지 베를린 필하모닉의 후계자에게만 물려줬던 건 데 윤희 누나 성격상 엄청 부담 느끼겠다.”

    “ 아.”

    최지훈의 지적에 배도빈이 잠시 포크를 멈추었다.

    여러 면에서 부담을 느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언론에서 떠들어댈 이야 기가 하나 더 있었다는 점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배도빈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웃고 있는 나윤희를 보고선 입을 열었다.

    “괜찮아. 연주가 끝난 뒤에는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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