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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279화 (279/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279화

    60. 토쟁이(3)

    잠시 뒤 조금 진정한 나윤희가 화 장실에서 나왔다.

    “미, 미안해. 시작하자.”

    “오늘은 됐어요. 좀 누워요.”

    “아니야. 이제 이틀밖에 안 남았는데 이대로는……

    “걱정 마요.”

    “그래도……

    캐논을 케이스에 넣으니 나윤희가 차마 나서지는 못했다. 안절부절못 하는 그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

    소소도 같은 생각인 듯하다.

    “마실 거 가져올게.”

    방금 토를 했으니 속을 달래기에 좋을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소소가 방을 나섰고 나윤희는 진이 빠졌는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 고는 나도 그녀도 말이 없어 시계가 도는 소리만 적막함을 달랬다.

    “미안해.”

    “사과할 일 없어요.”

    잠시 간격을 두었다가 한 마디 덧붙였다.

    “고마워요.”

    “어, 어?”

    “내 탓이에요.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는데 찰스가 해주길 바라서 무시했어요.”

    나윤희는 다른 말이 없었다.

    “누나가 없었으면 오케스트라 대전을 포기했을 거예요. 그래서 고마워요.”

    “ 흐.”

    나윤희가 작게 웃었다.

    “갑자기 이렇게 큰 무대에 독주자 로 나서게 된 것도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된 것도 모두 부담스러운 거 알아요. 의도치 않게 날 대신하게 된 것도.”

    나윤희가 느낄 짐을 늘어놓았다.

    그것으로 그녀가 이해받고 있다고 인지해 주길 바랐다. 섣불리 위로할 수 없는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이 정도뿐이다.

    “캐, 캐논을 연주하는 것도.”

    “ 네?”

    “그, 그게 제일 부담스러워.”

    “ 하.”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생각지 못했던 말을 꺼내서가 아니라 나윤희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는 것이 기쁘고 다행이기 때문이다.

    작게 웃기 시작하자 나윤희의 표정도 조금은 좋아졌다.

    그러고 다시금 대화가 없어졌다.

    어색하지는 않다.

    도리어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는 느 낌이라 안정된다.

    그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 나윤희가 호수 위로 조약돌을 던졌다.

    “어떻게…… 그렇게 어른스러운지 물어봐도 돼?”

    두 번 살고 있다고 답할 순 없다.

    어떻게 대답해 줄지 고민하고 있는 데 나윤희가 말을 덧붙였다.

    “나는 아직 듣지도 않은 말이 너무 나 무서운데 그, 그……

    “나쁜 말을 듣고도 어떻게 멀쩡하 냐고요?”

    “응……

    “솔직하게요?”

    "응."

    나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들, 사람으로 안 봐요.”

    “어?”

    “남을 깎아내리거나 거짓으로 이득을 취하거나 동기가 어떻게 되었든 그런 놈들은 인간으로 안 봐요. 짖는 소리가 거슬리긴 해도 음악을 못 할 이유는 아니에요.”

    “아••••••

    잠시 바닥을 보던 나윤희가 고개를 들었다.

    “난 그렇게 생각 못 할 것 같아.”

    “노력해서 되는 일은 아니니까요.”

    "응."

    나윤희에게는 그녀만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무시할 수 없더라도 음악을 할 수밖에 없는 이라면 어떻게든 버틸 것이다.

    “나도 하나 물어봐도 돼요?”

    나윤희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그런 연주를 할 수 있어요?”

    “무슨 뜻인지 자, 잘 모르겠어.”

    “힘차고 명확하잖아요.”

    평소 그녀의 성격과는 정반대다.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나윤희 도 내 뜻을 이해했는지 아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피멍이 크게 든 손가락을 꼼지락댄다.

    잠시 기다리니 의외의 말을 했다.

    “바이올린은••… 힘껏 켜도 예쁘니까.”

    쑥스러운 듯 말을 이어간다.

    “마음껏 켜도 예쁘니까 힘내서 할 수 있어. 연습만 많이 하면 바이올린은 항상 예쁘게 노래하잖아?”

    연주를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이유가 바이올린 소리가 아름답기 때 문이라니, 정말 음악가다운 대답이다.

    나윤희라는 사람이 어떤 바이올리 니스트인지 조금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었다.

    “그럼 평소에는요?”

    나윤희가 망설였다.

    그러나 확실히 말문이 트였는지 평 소보다 곧잘 대답해 준다.

    “내, 내 말을 싫어할 수도 있잖아. 트, 틀릴 수도 있고. 폐를 끼칠 수 도 있고.”

    “그렇지 않아요. 누나 덕분에 베를린 필하모닉이 자선 연주회를 하게 되었잖아요. 푸르트벵글러도 쉴 수 있었고.”

    푸르트벵글러 이야기가 나오자 나윤희가 얼굴을 감쌌다.

    “그, 그러니까 문제야. 나, 난 그냥 그러면 안 되나 싶었는데 세프께서 엄청 화나셨잖아. 말을 해선 안 돼.”

    “그건 바보들이 표를 하나도 안 줘서 삐진 거예요. 실제로 카밀라랑 하와이에서 잘 놀다 왔잖아요.”

    “그렇긴 해도.”

    나윤희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애꿎은 테이블을 긁었다.

    “누나가 항상 옳다는 말이 아니에요. 틀려도 괜찮아요. 미움 좀 받을 수도 있죠. 하지만 제가 알기엔 누 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아니 에요.”

    나윤희는 다시 말이 없어졌다.

    “알게 된 지 이제 2년뿐이지만.”

    “아하하.”

    나윤희가 갑자기 웃었다.

    의아해서 살펴보니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왜요?”

    “아, 아니야.”

    “괜찮다고 말했잖아요.”

    “••••••실은.”

    “ 네.”

    “만난 지 2년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물으려 했어.”

    “하하.”

    마음이 맞았던 모양.

    푸르트벵글러의 말장난 모음집처럼 웃긴 이야기는 조금도 없었지만 나윤희와 대화하다 보니 잔웃음이 많아진다.

    그녀도 나와 같은지 웃는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21일 아침.

    “도빈 군은 연습실에 있다고 합니다. 숙소와는 거리가 조금 있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희는 숙소에서 내릴게요.”

    잘츠부르크에 도착한 유진희는 배도빈이 연습 중이란 이야기를 듣고는 악단주 귄터 부르비츠에게 캐논을 잘 건네줄 것을 부탁했다.

    “오랜만이실 텐데 함께 가시지 않으십니까?”

    “중요한 때니까요. 저녁 때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귄터 부르비츠는 한 달 이상 떨어져 있어 많이 보고 싶을 텐데 그런 마음을 접어두고 아들을 우선하는 어머니의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부모 아래서 자랐으니 음악도 마음껏 할 수 있었겠지.’

    귄터 부르비츠가 웃으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도빈 군이 머무는 호텔까지 모시도록 하죠.”

    “네. 그렇게 해주세요.”

    잠시 뒤 배도빈과 베를린 필하모닉 B가 머무는 호텔에 도착한 유진희 와 배도진이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진달래였다.

    일이 있는 다른 사람과 달리 뜻하 지 않은 휴양을 맞이한 진달래는 숙 소에서 지루함을 달래다 두 사람이 왔다는 소식에 반갑게 달려 나왔다.

    “아줌마!”

    “잘 있었어?”

    “네!”

    진달래는 친이모보다도 자신을 잘 대해준 유진희를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기계야, 잘 있었어?”

    “……넌 나보다 이게 더 반갑냐?”

    "응."

    한편 배도진은 진달래의 의수를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이상한 형제라니까.’

    마치 영혼이라도 빼앗긴 듯 한참을 살펴보다가 가끔 ‘이거 분해해 봐도 돼?’라고 물을 때는 조금 무서웠지만 그래도 귀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도진아, 누나가 싫어하잖아.”

    유진희가 다그치자 배도진은 아쉽다는 티를 내며 어쩔 수 없이 의수를 놓았다.

    “뭐 하고 있었어?”

    “ 그게••••••

    “침대에서 뒹굴고 있었구나?”

    “ 아하하.”

    “잠깐만 기다려. 짐부터 풀고 나올 게. 어땠는지 이야기 좀 들려줘.”

    “그럼요! 짐 저 주세요.”

    “아니야. 괜찮아.”

    유진희는 벨보이가 따로 없지만 비 교적 깔끔한 내부를 둘러보며 객실 로 향했다.

    “소소 누나랑 윤희 누나는?”

    “연습하러 갔어. ……근데 너 몇 살이지?”

    “일곱 살.”

    “스무 살 차이나 나는데 누나라고 하는 거 좀 이상하지 않아요?”

    진달래의 말에 유진희는 예전 이승희와 배도빈의 일이 떠올라 웃고 말았다.

    “그러게? 도진아, 그렇대.”

    “그럼 뭐라 해요?”

    “이모?”

    배도진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본 진달래가 유진희에게 물었다.

    “아줌마, 이따 밤에 도진이랑 게임 해도 돼요?”

    “너무 오래 하면 안 된다? 도진이는 좋겠네. 누나가 놀아줘서.”

    “누나 아니고 이모.”

    “.어?”

    배도진이 황당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진달래를 올려다보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이모.”

    “야, 내가 왜 네 이모야?”

    “이모랑 소소 이모랑 언니동생 하잖아.”

    “……야.”

    갑작스러운 공격에 진달래는 당황 했다. 뭔가 말이 안 된다는 걸 설명 하고 싶었는데 듣고 보니 배도진의 말이 옳았다.

    ‘일곱 살한테 논리로 안 된다고?’

    진달래가 생전 처음으로 공부를 게을리 한 것을 후회하고 있을 때 유 진희가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달래 누나는 형이랑 친군데?”

    “마, 맞아! 내가 한 살 많긴 해도!”

    “어.”

    새로운 정보에 배도진의 알고리즘에 오류가 생겼다.

    진달래가 누나라면 진달래가 언니라 부르는 소소와 나윤희도 누나라 해야 했다. 소소와 나윤희가 언니라 부르는 이승희도 누나라 해야 했고 이승희가 언니라 부르는 엄마, 유진 희도 누나가 되었다.

    배도진이 조용해졌다. 오류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명제부터 잘 못되었음을 인지하지 못한 배도진으로서는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금방 울상이 되었다.

    “엄마? ……누나?”

    “어머머.”

    배도진이 엄마라 불러야 하는지, 누나라 불러야 하는지 몰라 유진희를 껴안았다.

    그러고는 울기 시작하는데 유진희는 이 상황이 웃겨 어이가 없었다. 웃음을 참으며 등을 토닥였다.

    “도진아, 엄마가 왜 누나야.”

    “끄으으으엉.”

    그러나 배도진이 너무나도 서럽게 우는 바람에 유진희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고 한참을 달랜 뒤에야 합의를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소소 언니랑 윤희 언니 한테 이모라 하라고?”

    단호히 고개를 끄덕이는 배도진과 그 뒤에서 알았다고 하라며 눈치를 주는 유진희 때문에 진달래는 하는 수 없이 손가락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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