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278화
60. 토쟁이(2)
오케스트라 대전도 하루간의 휴식을 가졌지만 잘츠부르크는 여전히 음악으로 가득했다.
거리마다 연주자들이 솜씨를 뽐냈고 테이블이 놓인 야외에는 오페라가 상영되고 있었다.
과연 음악의 도시라 할 만했다.
관광중인 한 일행이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진짜 엄청 나네.”
“그러니까 말이야. 크리크 본선에 오케스트라 대전 그리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까지. 일 년의 반이 음악제 로 이루어져 있잖아?”
“모차르트의 고향다운 곳이지.”
“아, 방금 SNS에 올라온 건데 저 앞 공터에서 최가 피아노를 연주한대.”
“최?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한?”
“응. 가볼까?”
“가자. 한 번쯤 들어보고 싶었어. 쇼팽을 그렇게 잘 연주한다던데?”
일행이 막 자리를 옮기려 큰 길로 나왔는데 사람들이 되돌아오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일행은 무슨 일인가 싶어 앞으로 향했고 차량이 통제되고 있는 상황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이지?”
“글쎄.”
차량만이 아니라 펜스 주변에 보안 요원들까지 있으니 일행은 물론, 잘츠부르크를 찾은 관광객은 모두 이를 의아하게 여겼다.
마침 수십대의 차량이 두 줄로 이동하였다.
겉으로 보기에도 견고해 보이는 차량과 리무진 한 대가 호위를 받고 있었다.
“대통령이라도 오는 거야?”
“아니야.”
일행 중 핸드폰을 보고 있던 한 남자가 말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캐논을 가져 온다는데?”
“캐논? 과르네리?”
“과르네리는 뭐고 캐논은 또 뭔데?”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파가니니 의 바이올린이잖아.”
“베를린 필하모닉의 보물이잖아.”
“니아 발그레이가 배도빈에게 물려 줬다 들었는데.”
다른 일행이 모두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듯 말해 과르네리 델 제수 캐논을 몰랐던 남자는 마치 자 기가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모를 수도 있지.”
“그래. 그런데 바이올린 전공을 하는 네가 모른다니 놀랐을 뿐이야.”
“닥쳐.”
친구를 놀린 남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한편, 캐논이 이동한다는 소식은 많은 언론을 통해 외부에 알려졌다.
NBC의 김준용 기자가 웹상에 게 재한 ‘위기의 베를린 필하모닉, 강수를 두다’라는 제목의 기사에 한국 팬들이 관심을 보였다.
【위기의 베를린 필하모닉, 강수를 두다]
어제 20일, 베를린 필하모닉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정부에 캐논의 보호 요청을 요구했다.
양국은 유서 깊은 바이올린을 위해 경찰 인력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40명의 경호 인원과 두 대의 헬리콥터를 대동해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은 캐논은 잘츠부르크로 운반되어 현 주인인 배도빈에게 인 계된 뒤 경비업체로부터 보호받고 있다고 알려졌다.
캐논이 옮겨지는 일은 제노바에서 베를린으로 옮겨진 89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ㄴ 와, 배도빈 스케일 무엇?
ㄴ 바이올린 하나 옮기는 일에 원 난리냐;;
ㄴ 캐논 경매에 나오면 최소 3,000 만 달러부터 시작할걸?
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설 경 비업체에 의뢰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심한 거 아니냐는 말이야.
ㄴ 단순히 비싼 바이올린이 아니라 역사적인 가치를 가진 물건이라 그럼.
ㄴ 역사는 개뿔.
ㄴ 개뿔이라고? 니콜로 파가니니-빌헬름 푸르트벵글러-니아 발그레이-배도빈으로 이어지는 계보만 생각해도 그렇단 생각 안 드냐?
ㄴ 헛소리 그만하고 가라. 안 그래 도 불쌍한 인생 더 낭비하지 말고.
ㄴ 저거 도난당하거나 파손이라도 생기는 날에는 그냥 안 지나감. 잘못되면 목 날아가는 사람 한둘이 아냐. 차라리 저렇게 하는 게 낫지.
ㄴ 왜?
ㄴ 생각해 보느 문제가 생기면 제노 바에서는 가만있겠냐? 기껏 국보급 물건을 기증했는데 관리 제대로 못 하면 앞으로 베를린 필하모닉은 이탈리아 가는 건 꿈에도 못 꿀걸?
ㄴ 이탈리아 시장도 포기하는 거지.
ㄴ 또 오스트리아에서 분실이라도 생겨 봐. 오스트리아가 전 세계에서 날아드는 비난을 감당할 수 있겠냐? 그러니까 차라리 저렇게 신경 쓰는 게 낫다는 말씀이야.
ㄴ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 대체 왜 배도빈한테 가 있는 거냐? 돈 주고 삼?
ㄴ 저런 물건은 안 팔아
ㄴ 제노바 시에서 푸르트벵글러 할 배에 대한 경의 차원에서 넘겼음. 그걸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관리하고 있다가 푸르트벵글러의 후계자였던 니아 발그레이가 물려받은 거고.
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나?
ㄴ 바이올린으로도 대단했지. 은퇴 하기 전에는 찰스 브라움이나 데이비드 개릭도 니아 발그레이한테는 못 비볐으니까. 근데 그런 것보다 곡 해석 능력과 악단 관리 능력을 인정받은 듯함.
ㄴ 그런데 은퇴하게 되어서 배도빈 한테 물려준 거임?
ㄴ ㅇㅇ. 그래서 다들 베를린 필 차 기 지휘자를 배도빈으로 생각하는 거임.
ㄴ 그런 것치고는 푸르트벵글러가 칼 에케르트 언급을 많이 하던데. 예전이랑은 느낌이 다르긴 함.
대중이 캐논의 가치와 그것을 운반 하는데 드는 비용에 집중하는 사이, 음악계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에 집중했다.
지금까지 잘해오던 베를린 필하모닉 B가 굳이 캐논을 가져온 이유는 단 하나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소식을 접한 관중석의 정세윤 기자가 이필호 편집장에게 물었다.
“4라운드에서 캐논을 쓰겠다는 의미겠죠?”
“아무래도 그렇지. 멀쩡히 보관되 고 있던 물건을 가져올 이유가 없으니까. ……채은이라면 이야기를 들었을 법도 한데 아쉽네.”
“채은이가 그런 건 절대 말 안 해 주잖아요. 어려 보여도 그런 건 잘 지키는 아이에요.”
“그런 아이라 우리도 내부 정보를 공유할 수 있지.”
잠깐 웃은 이필호 기자가 한 번 더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거, 아무래도 찰스 브라움이 복 귀를 못 해서 생긴 일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대체자를 구하지 못한 거겠죠.”
“같은 이름의 바이올린과 곡을 선 정했던 만큼 난이도가 높은 편곡이었을 테니까?”
“네.”
“……그래서 캐논을 가져왔다는 거는.”
차마 말을 잇지 않았지만 정세윤 기자는 편집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본인도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배도빈이 직접 나선다는 말이겠죠.”
“그렇지.”
잠시 두 사람이 시선을 교환했고 급히 노트북을 폈다.
“선행 기사 있는지 확인할게요.”
“아니. 그건 내가 할게. 최대한 빨리 기사 준비해 줘.”
“넵.”
정세윤 기자가 우선 웹상에 등재할 기사부터 작성하기 시작했다. 일분 일초를 다투는 일인 만큼 제목은 고 민 없이 지었다.
‘배도빈, 오케스트라 대전에서 독 주자로 나올 가능성은?’이라는 제목을 기입한 정세윤이 입을 열었다.
“진짜라면 엄청난 일이네요.”
노트북과 핸드폰 그리고 태블릿 PC까지 대동해 북미와 유럽 쪽 기사를 확인하고 있던 이필호가 답했다.
“지휘나 피아노만큼은 아니지만 바이올린을 좋아했던 팬도 많으니까. 게다가 바이올리니스트로 나서는 건 17년 이후 처음일 거야.”
“네. 6년 만이에요.”
“잠깐. 그러고 보니 지휘는 어떻게 하는 거지?”
“설마 같이하는 건 아니겠죠?”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또다시 눈을 마주한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배도빈이잖아.”
“배도빈이잖아요.”
만 3살 때부터 일본과 미국을 놀라게 했던 배도빈이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더욱이 연주와 지휘를 겸하는 일이 전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두 사람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금 각자의 역할에 집중했다.
“미쳤어. 미쳤어.”
기사를 작성하는 정세윤 기자의 손이 빨라졌다. 배도빈이 또 한 번 큰 이슈를 만들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 역시.”
“뭐 올라왔어요?”
“다들 같은 생각인가 봐. 배도빈이 오케스트라 대전 4라운드 때 지휘와 연주를 겸할 거라는 기사가 올라오고 있어.”
“우리나라는요?”
“없어. 기사 대충 마무리됐지?”
“3분만요.”
이필호 편집장은 급히 한국에 있는 플랫폼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기에 세계 각 언론은 배도빈이 6년 만에 바이올리니스트로 무대 위에 오른다는 추측성 기사를 올리기 바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시간이 흘러 잠잠해지긴 했지만 배도빈의 팬은 본래 여러 갈래로 나뉘 어져 있었다.
처음 활동을 시작한 작곡가로서도 그러했고 지휘자,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마니악하게는 얼후 연주 자나 기타리스트로도 팬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 배도빈이었기에 베를린 필하모닉 복귀 이후 작곡과 지휘만 하던 행보에 아쉬움을 가진 이들이 많았고 그것이 이번 일에 대한 큰 기대 로 작용한 것이었다.
더욱이 천재 음악가의 지휘와 연주 병행.
화제가 안 될 수 없었다.
[엄마랑 도진이 숙소에 있을게. 아빠도 내일 도착한대.]
어머니께서 보내신 문자에 답장을 보냈다.
캐논만 도착해서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아마 연습에 집중하라고 숙소로 바로 가신 듯하다.
악단주도 인사만 짧게 나누곤 경비만 둔 채 떠났다.
“여기요.”
“아으으. 저, 정말 이걸로 연주해?”
“그럼요.”
손을 뻗었다가 움츠렸다가 반복하는 나윤희에게 캐논을 케이스째 넘겼다.
바들바들 떠는 손을 보니 안 그러 던 나도 불안해졌고 그녀가 무사히 캐논을 꺼내 들자 비로소 안도되어 한숨을 쉬었다.
함께 있던 소소도 마찬가지였다.
나윤희가 캐논을 켜기 시작했다.
잠깐 만져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차게 깜빡이는 두 눈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어때요?”
“……놀랐어.”
아마도 그럴 것이다.
캐논은 연주자의 의도를 확장시키고 더욱 명확히 해주는 명품 중의 명품.
자신에게 맞춰주길 바라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도도함과 달리 곁에서 함께해 주는 동반자와 같은 느낌이다.
“히, 힘을 빼야 할 것 같아.”
“아뇨. 그러면 안 돼요.”
“하, 하지만 그러면 너무 튀니까.”
“그러기 위해서예요.”
나윤희의 연주는 찢어지거나 뭉개 지는 음 없이 정확하고 거기에 직설 적이다.
독주할 때만의 특징이라 자주 들어 볼 순 없지만 악장 오디션 때나 가끔 홀로 연주할 때 그런 점이 부각 된다.
소심한 성격이나 작은 목소리와 전 혀 다른 연주를 하는 게 신기할 정도다.
‘나쁘지 않아.’
캐논을 쥔 그녀가 연주를 반복한다.
그럴수록 점점 더 내가 바랐던 지 점에 다가가고 있어 찰스 브라움의 부재를 잊어갈 쯤.
조금 지친 듯해 잠시 쉬자고 말했다.
“도빈.”
2시간이나 치즈와 토마토소스 소시 지가 잔뜩 들어간 빵을 먹으며 지켜 보던 소소가 말을 걸었다.
“ 네.”
“이상한 기사가 올라왔어.”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가 소소의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나윤희도 궁금한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베를린의 마왕, 지휘와 연주를 함께하다?”
본문을 읽어보니 증거도 없이 추측을 해댄 기사였다. 그 아래 댓글이 수천 개 달려 있었다.
이런 기사의 제목을 마치 사실처럼 지어놓으니 관심이 끌리지 않을 리 없다.
댓글난은 제목에 낚인 이들의 기대 로 가득 차 있었다.
“우엑.”
곁에서 기사와 댓글을 함께 본 나윤희가 화장실로 후다닥 뛰어갔다.
변기를 붙잡고 속을 게워내 소소가 등을 두드려주었다.
이승희의 난폭한 차를 얻어 탔을 때나 그녀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자선 연주회를 시작했을 때.
토란도트 무대에 오르기 전과 같이 전에도 몇 차례 겪은 일이었기에 그녀가 얼마나 부담을 느끼는지 알 수 있었다.
안 봐도 뻔한 일이다.
내가 나서는 걸 기대한 언론과 팬 들이 막상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캐논을 잡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 지 말이다.
나윤희라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실력 보다는 어째서 배도빈이 아니냐고 공격할 것이다.
나윤희의 성격상 그러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흘려들을 수 있을 리 없으니 더 걱정이다.
그러나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마’라거나 ‘그래도 좋아해 주는 팬도 있을 거야’와 같은 말을 쉽게 하지만 그런 말 따위 위로는커녕 당사자를 더욱 몰아붙일 뿐이다.
나 역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불특정다수에게 감정적 위해를 당하는 일을 겪어보지 못한 이들이 내뱉는 그런 위선을 수도 없이 받았기에 잘 알고 있다.
지금은 그 어떤 말로도 나윤희를 달래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