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277화
60. 토쟁이(1)
나윤희가 바이올린을 들고도 망설였다.
꼼지락대는 손가락이 신경 쓰인다.
“저, 정말 별 볼일 없는데.”
“ 괜찮아요.”
옥신각신한 끝에 그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활을 쥐었다.
뭐가 그리 긴장되는지 오들오들 떤다.
그러나 저 성격을 이해할 순 없어도 속으로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음을 알기에 묵묵히 기다리니 잠시 숨을 고르고 불새의 독주 파트를 연주 하기 시작했다.
‘ 아.’
소소가 그녀를 추천한 이유도 나윤희가 자신 없어 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연주였다.
사실, 내가 그렸던 그림과는 거리가 있다.
찰스 브라움이 내는 스트라디바리우스 파이어버드의 아름다운 음색과 그로 인한 감미로운 연주와 달리, 나윤희는 좀 더 선이 굵었다.
투박한 면도 보인다.
빼곡하게 나열된 전개부는 현존하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찰스 브라움조차 고생했던 부분이다.
표현해야 하는 음은 많은데 템포는 빠르고 소리가 찢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템포를 쫓아가지 못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면 돼.’
이대로라면 무리지만.
이 정도까지 소화할 수 있다면 앞으로 남은 4일간 어떻게든 손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짧은 시간에 이만한 수준으로 불새를 연주할 수 있다니, 내가 보 지 않은 곳에서 얼마나 자신을 몰아 붙였을지 함부로 예상할 수 없었다.
‘잘해.’
단지 시간이 부족했을 뿐으로 보인다.
지금은 본인의 버릇과 특징 때문에 원래 내 의도와 벗어나 있지만 적어도 곡이 말하는 바는 확실히 인지하 고 있다.
만약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더라면 훌륭히 소화했을 거란 생각도 든다.
곡 자체가 찰스 브라움을 위해 만 들어졌기 때문에 그럴 뿐이지 나윤희 역시 보기 드문 바이올리니스트.
독주 파트를 나윤희에게 맞춰 변형 시킨다면 다른 방향으로 좋은 결과 물이 나올 것 같다.
촘촘하면서도 빠르고 부드러운 느 낌에서 선이 굵고 당찬 느낌으로.
나윤희가 연주를 마쳤다.
“ 멋져요.”
“으으으으”
“누나가 해줬으면 좋겠어요. 독주 파트는 수정이 들어갈 거예요?"
“네, 네?”
당황한 나윤희가 예전처럼 존대를 했다.
“이 악보는 찰스를 위해 만들었던 거예요. 누나한테는 어울리지 않아요.”
금세 울상이 되었다.
“미, 미안해. 주제넘었지……
“그런 뜻이 아니에요. 저도 다른 누구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찰스 브라움만큼 연주할 수 없어요.”
나윤희가 입을 꼭 닫았다.
‘정말 나 같은 게 해도 되는 걸까’ 라는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을 게 뻔해 확실히 말했다.
“누나가 아니면 안 돼요. 지금 불 새로 저를 만족시킬 바이올리니스트는 누나뿐이에요.”
“윤희뿐이야.”
소소도 거들었다.
‘힘들었겠지.’
3라운드에서 나윤희는 자기 역할을 톡톡히 해내주었다.
특히 변화가 심했던 제2바이올린을 능숙하게 이끌어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끈 주역 중 하나다.
‘이런 준비를 하면서 말이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그녀의 연봉을 올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브라움 악장님의 연주랑
“처음부터 찰스와 똑같은 연주를 바라지 않았어요. 그런 일, 찰스에게도 누나에게도 못할 짓이니까.”
두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에게 그보 다 무례한 일도 없을 것이다.
찰스 브라움을 대신하는 사람이 존 재한다니, 어불성설이다.
반대로 그 자체로 훌륭한 연주자인 나윤희에게 남을 따라하라니, 오케스트라 대전을 포기하는 게 낫지 내 눈에 홁이 들어와도 그런 일을 시킬 순 없다.
내 마음을 이해했는지 나윤희가 손을 모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손 좀 보여주세요.”
“왜, 왜?”
신경 쓰이던 걸 물어보니 나윤희가 손을 더욱 감췄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고집이 센 편이니 말로는 보여주지 않을 터.
“ 아.”
손을 낚아채자.
‘이게 뭐야.’
긴 시간 혹사당해 손톱 모양이 변형된 거야 바이올리니스트들의 특징 이라 해도, 손끝이 다 터져서 피멍 이 잔뜩 들어 있다.
채 아물기도 전에 다시 터져서 언뜻 보기에도 상태가 심각했다.
이런 상태로 연주를 하다니.
제정신이 아니다.
“테이핑 왜 안 했어요?”
“지, 징그럽지.”
“왜 안 했어요.”
“무, 무뎌지니까. 그, 그만 봐.”
굳은살이 잔뜩 박인 그녀의 손은 깨끗하고 예쁜 다른 곳과 달리 무척 투박했다.
손가락은 오래 전에 변형이 왔으며 지금은 베를린 필하모닉을 위해, 또 다시 혹사당하고 있었다.
‘실격이야.’
단원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모르 고 있었다니.
지휘자로서 실격이다.
“미안해요.”
“아, 아, 아, 아니야. 왜, 왜 그래.”
그녀의 손에서 눈을 뗄 수 없어 지켜보는데, 나윤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 나도 베를린 필하모닉의 단원이니까.”
나윤희는 돕고 싶었다든지, 베를린 필하모닉을 위해서라든지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그 말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어 가슴이 아프 고 고마웠다.
“소, 손 좀 놔주면 안 될까?”
“아. 네.”
엉망진창인 손을 보고 말릴까도 생 각했지만 그녀의 마음을 안 이상 차마 그럴 수 없었다.
4라운드는 나윤희에게 맡기고 이후 충분한 휴식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은 문제는.
“파이어버드를 대신할 악기가 문제 인데……
“빌려준대.”
“ 찰스가요?”
소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파이어버드를 향한 찰스 브라움의 사랑은 집착 혹은 무서워 보일 정도였다.
그런 그가 파이어버드를 빌려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윤희가 연습하는 거 듣고 빌려준댔어. 윤희 장해. 그치?”
“아니야……
찰스 브라움도 나윤희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아주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니에요.”
소소와 나윤희가 고개를 돌렸다.
“윤희 누나가 연주할 불새는 다른 느낌이에요. 파이어버드는 좋은 악기지만 새로운 불새에는 어울리지 않아요.”
나윤희에게도 마찬가지다.
잠시 생각을 하다 멀핀 과장을 불렀다. 근처에 있던 멀핀이 금방 자리를 함께했고 소소는 어느새 조각 케이크를 3개나 다 먹어치웠다.
“부탁이 있어요.”
“무슨 일이든 말씀해 주세요.”
“베를린에 있는 캐논을 가져와 주세요.”
“••••••네?”
멀핀 과장이 되물었다.
캐논을 옮기는 일은 무척 까다로울 수밖에 없어 멀핀이 놀라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도 상황의 중대함을 인지한 듯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에 처리할게요.”
“부탁해요.”
어쩜 이렇게 한심할까?
이번에도 똑 부러지지 못했다.
모두 노력하고 있지만 도빈이는 매일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공연을 준비한다.
다들 도빈이를 하늘에서 똑 떨어진 천재라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곡을 쓰는 일이나 지휘뿐만이 아니라 단원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을 직접 연주해 주기도.
다루지 못하는 악기에 대해서는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 도빈이는 내가 아는 그 어떤 사람보다 노력가다.
누구보다도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무대 위의 모습은 정말 대단해 보일 뿐이지만 어느 누가 도빈이처럼 할 수 있을까?
그런 도빈이가 멋있으면서도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브라움 악장님이나 소소가 있어 다행이다.
두 사람은 정말 대단해서 도빈이가 기댈 수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베를린 필하모닉 B의 무게를 나누는 듯 해 안심이다.
하지만.
나는 이대로 괜찮을까.
수석이라는 분에 넘치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쓸모없는 사람으로 남을 뿐이겠지.
나도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이니까.
이번만큼은, 브라움 악장님이 빠져 기울어진 베를린 필하모닉을 받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들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 있는 내가 해야 한 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찰스 브라움 악장님처럼 연주할 수 없었다.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렇게 대단하신 분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정말 칠칠맞지 못하게.
하지만.
그래도.
‘지금 불새로 저를 만족시킬 바이올리니스트는 누나뿐이 에요.’
도빈이가 그렇게 말해주었을 때는 정말 기뻤다.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 인정 받은 것만 같아서 한심한 나도 쓸모가 있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기뻤다.
손을 보였을 때는 조금 부끄러웠지만.
‘도빈이 손 따듯했지.’
아, 그럼 내 손은 차갑게 느꼈겠구나.
“아아아아.”
베개에 얼굴을 묻으니 조금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미안하다고 했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도빈이가 다른 사람에게 사과하는 모습은 처음이라 조금 당황했다.
이런 나라도 함께할 수 있어 기뻤는데 도빈이는 뭔가 마음에 걸렸던 걸까.
고민해 봤지만 모르겠다.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과 주변 은 아침부터 사람들도 북적였다.
A와 B 모두 오케스트라 대전에 참 가 중이기에 한동안 한적했는데 갑작스러운 소란에 베를린 시민들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 뭐야?”
“글쎄. 공연이라도 준비하나?”
“베를린 필하모닉은 다들 오케스트라 대전에 가 있는 거 아니었어?”
“그러니까 이상하지.”
때마침 검은색 세단이 줄지어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 앞에 나타났다. 그 가운데에는 견고해 보이는 차량과 리무진이 있었는데 마치 호 위를 받는 듯했다.
그 진풍경에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고 이윽고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보관 중이던, 배도빈의 캐 논이 옮겨지기 시작했다.
리무진 안에서 그것을 구경하던 배도진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엄마, 엄마. 형아 보러가는 거예요?”
유진희는 이틀 전부터 형을 보러 간다는 말에 잠도 제대로 안 잔 둘 째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래. 형 많이 보고 싶었지?”
“네! 근데 왜 안 가요?”
“형이 바이올린이 필요하대. 저기 아저씨들이 형 바이올린 옮겨주시는 거야.”
배도진이 다시 창밖을 보았다.
그러나 바이올린의 무게를 아는 배도진으로서는 왜 저렇게 많은 사람 이 붙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바이올린을 베를린에서 잘츠부르크 까지 옮기는 데 드는 힘을 계산해도 이해할 수 없는 스케일이었다.
“1kg도 안 되는 바이올린을 ?00km 옮기는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해요?”
배도진이 정말 오랜만에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했기에 유진희는 웃으며 답해주었다.
“형 바이올린은 엄청 비싼 거야. 중간에 누가 훔쳐가거나 망가지면 큰일이잖아?”
“아, 응.”
배도진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아드님이 즐거워하는 것 같네요.”
유진희, 배도진과 함께 리무진에 자 리한 70대 노인이 호탕하게 웃었다.
“정말이지 첫째랑 둘째 모두 너무 특이해서 고생이에요. 그나저나 도빈이 때문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고 생하시네요.”
“아닙니다. 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위한 일인데요. 게다가 긴급한 상황 인 것 같으니 말이죠. 덕분에 저도 이 일을 핑계로 휴가를 얻었습니다. 하하하.”
베를린 필하모닉의 악단주 귄터 부 르비츠는 그들에게 빛을 안겨준 배도빈을 위한 일이라면 진심으로 무 엇이든 할 생각이었다.
“우와! 헬리콥터다! 엄마, 우리 집 거랑 다르게 생겼어요!”
“어머. 그러게? 도진이 헬리콥터 좋아해?”
“네!”
귄터 부르비츠가 헬기를 타고 가는 편이 좋냐고 묻자 배도진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고 유진희는 멀미가 난다며 아들을 말리느라 고생했다.
그러는 도중에 캐논을 운송하기 위한 준비가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