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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276화 (276/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276화

59. 베를린의 마왕(5)

“확실히 팬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 볼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또한 아리엘 핀스 악장이 언급했던 대로 앞으로 어떤 연주를 들려줄지는 예측하기 어렵죠.”

알렉스 데스플로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모리스 르블랑 수석 기자가 나섰다.

“그 점에 대해서는 같은 생각입니 다만, 베를린 필하모닉 B가 상당히 불리한 입장에 놓인 점은 짚고 넘어 가야 할 문제입니다.”

“불리한 입장이요?”

“찰스 브라움의 부재 말입니다.”

“ 아.”

모든 패널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는 세계 최고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찰스 브라움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핵심을 이루는 인물이었다.

“아시다시피 베를린 필하모닉 B에는 두 명의 악장이 번갈아 역할을 분담하고 있습니다. 찰스 브라움과 왕소소는 뛰어난 기량으로 배도빈을 받쳐주고 있죠.”

“그런 찰스 브라움이 빠졌으니 왕 소소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오케스트라 대전은 장장 2달간 이뤄지는 장기전입니다. 대체할 인물이 많은 다른 악단에 비 해 베를린 필하모닉 B가 부담스러 운 것도 사실이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스 레넌 편집장님.”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어려 움을 겪을 것 같습니다. 찰스 브라움이 4라운드에서 복귀할 수 있는지는 중요한 요소가 되겠네요.”

각 패널들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질문을 이어가던 사회자 우진은 문 득 궁금해졌다.

“찰스 브라움은 대체 무슨 이유로 입원한 건가요?”

“잘츠부르크 외각의 항문외과에 입 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병원에 서는 정확한 병명을 알리지 않고 면회나 악단 인터뷰조차 거절하고 있지만 뭐, 다들 예상하실 수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수술 경험이 있는 몇몇 이는 진심으로 찰스 브라움이 회복하길 바랐다.

“수술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은 걸 로 알고 있는데요.”

“회복 기간이 문제죠. 만약 상태가 괜찮았다면 베를린 필하모닉에서도 무엇인가 발표했을 텐데 그러지 않고 숨기는 것으로 보아 회복이 더딘 것 같네요.”

“베를린 필하모닉 B에는 큰일이네요.”

“생각보다 더 큰 문제일 수도 있겠습니다. 르블랑 기자께서 잘 지적해 주셨네요. 어제 공개된 4라운드 연주곡을 생각하면 더욱 위기라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 불 새였죠?”

“네. 특이한 건 발표된 곡 이름 아래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 적혀 있다는 점입니다.”

“무슨 의도일까요?”

“제 생각에는 아마 배도빈 악장이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명작을 대대적으로 편곡한 듯싶습니다. 투란도 트 때와 마찬가지로요.”

“아.”

“바이올린 협주곡이니 독주 바이올린이 필요할 테고 당연히 4라운드에 출전 예정이었던 찰스 브라움이 그 역할을 맡을 생각이었겠죠. 그의 스 트라디바리우스가 같은 이름인 걸 생각해 보면 퍽 어울리는 조합입니다.”

“이거 정말 노렸다고밖에 볼 수 없는 선곡이네요. 배도빈 악장의 승부 수라 봐도 괜찮을까요?”

“그럴 겁니다. 배도빈에게 있어 찰스 브라움만 한 무기는 없으니까요. 아마 4강이나 결승에서 선보일 예정 이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난감하겠네요. 배도빈 악장이 이 난관은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해지네요.”

“하하. 도빈 군이라면 분명 대비책을 강구해 두었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찰스 브라움이 입원한 지 시간이 흘렀으니까요. 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해줄 거라 믿습니다.”

“정말 기대되네요. 오늘 함께해 주신 분들과 시청해 주신 분들께 감사 드리며, 베를린 필하모닉 B가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의 4라운드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돌겠네.’

찰스 브라움의 상태를 확인하고 온 멀핀 과장이 호텔 라운지에서 최악 의 소식을 전했다.

“힘든 거예요?”

“네. 안타깝게도. 혹시 다른 방법은 없으신 건가요?”

그런 거 없다.

‘The Firebird-Violin Concerto’는 찰스 브라움의 기량을 최대한 뽑아 내고자 편곡한, 여태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난이도의 곡이었다.

찰스 브라움은 대체 무슨 짓이냐고 투덜댔고 나는 그의 수면 시간까지 줄여가며 강도 높은 연습을 요구했다.

결국에는 찰스마저 완벽히 소화하 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만큼(다른 스 케줄과 병행하긴 했으나) 대체 자원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찰스 브라움이 무대에 설 수 없다니 답답할 노릇이다.

‘어쩌지.’

어쩔 수 없이 대체할 사람을 구해 야 하는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 난이도를 소화할 사람이 손에 꼽힌 다는 것.

더욱이 내일 하루 휴식을 포함해 4일밖에 남지 않았기에 연습 시간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짧다는 것은 더 큰 문제였다.

‘……내가 해야 하나.’

나 또한 찰스 브라움의 연습을 도 우면서 연주가 손에 익었기에 그런 생각을 잠시 했지만 턱도 없는 일이었다.

‘The Firebird-Violin Concerto’를 연주할 사람을 구하는 일보다 나를 대체할 지휘자를 구하는 일이 훨씬 더 가망 없었다.

연주 난이도를 낮추더라도 바이올린 독주자를 구하는 편이 수월했기 에 어쩔 수 없이 원본은 포기해야 할 듯하다.

후보로는 역시 베를린 필하모닉의 악장단.

4라운드에 출전 예정인 헨리 빈프스키를 제외하면 케르바 슈타인과 파울 리히터 그리고 소소가 남는데, 이들이라면 난이도를 조절한다는 가 정 하에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할 시간이 없다.

맞은편에서 함께 고민 중인 멀핀 과장에게 물었다.

“멀핀, 케르바 슈타인이나 파울 리히터가 우리 쪽에서 연주할 수 있어요?”

“저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브라움 악장이 입원했을 때 알아봤는데 힘들 것 같아요.”

“이유는요?”

“A로 등록이 되어서 그렇다고 해요. 오케스트라 대전 규정에 의하면 A와 B는 다른 악단이거든요.”

그놈의 규정이 사람 속 터지게 한다.

그러면 남은 후보는 소소뿐인데, 사실 3라운드를 준비하느라 고생한 소소가 4일 만에 ‘불새’를 준비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을 데려다 두어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케르바 슈타인이나 파울 리히 터의 도움을 받고 싶었는데, 일이 참 거지 같이 돌아간다.

짜증이 나 애꿎은 책상만 두드리게 된다.

‘방법이 없어.’

“소소를 불러주세요. 이야기는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 네.”

멀핀 과장이 나가고 잠시 뒤 소소가 하품을 하며 들어왔다.

어제 공연할 때도 피곤해 보였는데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걱정된다.

“몸 안 좋아요?”

소소가 고개를 저으며 앉았다.

“졸려.”

무슨 일인가 싶은데 소소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요기할 만한 것을 주문하고는 입을 열었다.

“찰스가 4라운드에 못 나설 것 같아요.”

“응.”

“소소 이외에는 대체할 사람이 없어요. 가능하겠어요?”

“왜?”

소소가 눈을 비비며 물었다.

‘응’ 아니면 ‘안 돼’를 예상했던 터라 조금 당황스럽다.

“윤희가 준비하고 있잖아.”

“네?”

눈을 깜빡이니 소소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어 나윤희를 불렀다.

“응. 라운지. 응.”

통화를 마친 소소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에요?”

“윤희가 말했어. 브라움이 4라운드 못 나올 것 같다고.”

그 이외에 다른 연주자는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 애초에 그를 활용하기 위한 곡이었기에 너무 쉽게 생각했다.

지휘자로서 찰스 브라움이 연주를 못 하는 상황을 상정하고 대비책을 마련했어야 했는데, 이건 내 책임이 이다.

그걸 나윤희가 대신 나선 것이다.

“그래서 준비한 거예요?”

“응. 맨날 못 자게 연습 봐달라고 해서 귀찮았어.”

소소가 3라운드 당일과 지금까지 죽어가고 있는 이유가 밝혀졌다.

“아, 안 자?”

마침 평상복을 입은 나윤희가 호텔 라운지로 들어섰다.

파자마에 외투를 걸친 소소와는 다른데, 늦은 시간인 걸 감안하면 어 디 다녀왔나 싶다.

“앉아요. 뭐 마실래요?”

“괘, 괜찮아. ……무슨 일 있어?”

나윤희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제 보니 그녀도 꽤 피로해 보인다. 예쁜 피부에 그늘이 져 수척했는데 소소도 나윤희도 오늘 하루 제 대로 쉬지 못한 듯했다.

‘제대로 연주하려면 보통 노력으론 어림도 없으니까.’

나윤희의 바이올린 실력은 인정하 지만 전혀 연주해 보지 않은 곡을 단기간에, 그것도 나와 찰스조차 어 려워했던 곡을 소화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노력했을지.

“불새 연주할 수 있겠어요?”

“아.”

나윤희가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대 답했다.

“그…… 혹시나 싶어서 만약에 무 슨 일이 생기면 대비하려고 했는데.”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나윤희가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소 소가 주문한 케이크가 나왔다. 맛을 보더니 반쯤 감겨 있던 눈이 동그랗게 된다.

“……으으. 미안해.”

뭐가 미안한지 이해할 수 없다.

“마, 만약 할 사람이 없으면 나라 도 해야겠다 싶어서 노력했는데, 그게. 그게.”

“ 괜찮아요.”

“너무 어려워……

나윤희의 입꼬리가 쭉 내려갔다.

“맞아. 어려워.”

소소가 맞장구를 쳤다.

‘무리도 아니지.’

나와 찰스가 1달에 걸쳐 준비한 곡이다.

제2바이올린 수석으로서 오케스트라 대전을 준비함과 동시에 일주일 만에 불새를 연주할 수 있을 리 없다.

만약 나윤희가 내 기준에 부합할 정도의 연주가 가능하다면 내 안에 서 그녀의 바이올린에 대한 평가를 다시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역시 내가 할 수밖에 없나.”

무심코 생각하던 걸 입으로 홀렸다.

자칫 잘못되면 지휘와 바이올린 연주를 동시에 해야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터라 자연스레 생각이 그 쪽으로 흘렀다.

‘이렇게 되면 사전 준비를 더.’

“안 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소소가 단호히 말했다.

“뭐가요?”

“연습 더 시키려고 그러지.”

“네.”

“지금도 다들 죽어. 도빈은 4라운 드만 할 거야?”

그것도 맞는 말이다.

사실 지금까지 베를린 필하모닉 B는 각 개인의 기량을 넘어서 잘 따라와주고 있었다.

3라운드를 준비하는 것도 그들이 얼마나 노력해 주었는지 안다.

그러나 더 이상 주어진 선택지가 없다.

“들어봐.”

소소가 다시 말했다.

“윤희, 잘해.”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어렵다면서요?”

“잘해. 나 믿어. 완전 대박.”

“아, 아, 아, 아니야. 나 같은 건 브라움 씨를 도저히.”

말은 퉁명스러워도 속 깊고 거짓을 말하는 법 없는 소소다.

현악기 전반에 걸쳐 그녀만큼 능력을 보이는 실력자도 드물고 소소가 허튼소리를 꺼냈을 리 없다.

“올라가요.”

“어, 어?”

“어서요.”

망설이는 나윤희의 손목을 붙잡고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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