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275화
59. 베를린의 마왕⑷
OOTY 오케스트라 대전 4라운드, 8강 대진표가 확정되었다.
빈 필하모닉과 런던 심포니의 1차 전을 시작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A 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2차전.
암스테르담 로얄 콘세르트허바우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3차전.
마지막으로 시카고 심포니와 베를린 필하모닉 B의 4차전이 예정되었다.
4라운드 주제는 바이올린 협주곡.
곡의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으며 창작곡도 가능하였다.
정체되어 있는 클래식 음악계에 활 력을 불어넣기 위한 규정으로 오케스트라 대전 개최 발표식에 공개된 내용이기도 했다.
이러한 규정으로 인해 가장 주목받는 이는 단연 베를린 필하모닉의 천재 배도빈이었다.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은 이미 세계인의 축제였다.
그에 대한 열기가 무르익은 만큼 각국은 연일 새로운 소식에 크게 반 응했다.
언론에서도 그러한 흐름에 발을 맞추기 위해 전문 패널을 초빙 여러 프로그램을 가지며 시청률과 조회 수를 올리기 바빴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었던 팬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에서는 내로라하는 인물들을 섭외.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여 오케스트라 대전을 더욱 풍성하게 하였다.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진행자 우진이 사회를 맡았다.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을 시청 하고 계신 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진입니다. 오늘은 오케스트라 대 전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 한 의견을 듣고자 각 분야의 전문가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앙드레 그랑디에가 좌우로 고개 숙 여 인사했다.
패널로 출연한 이들도 가볍게 목례 하여 답했다.
“먼저 영화 죽음의 유물의 오리지 널 스코어 감독으로 유명하신 작곡 가죠. 알렉스 데스플로 씨를 소개합니다. 오랜만에 뵙네요, 데스플로.”
“반갑습니다.”
간단한 소개와 인사를 더한 뒤 우 진이 다음 출연자를 소개했다.
“너무나도 유명한 분이시죠. 작곡 가 한스 짐께서 함께해 주셨습니다. 반갑습니다, 짐.”
“반갑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블랙 나이트의 팬이 라 너무나 반가운데, 이렇게 출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어 보이는 주제를 이렇게 멋 진 분들과 이야기할 수 있으니 거절 할 이유가 없죠. 넉넉한 페이와 함께요.”
“하하하!”
좋은 분위기로 대화를 마무리 지은 우진이 고개를 돌렸을 때 잠시 넋을 잃고 말았다.
대기실에서 이미 한차례 인사를 나 누긴 했어도 믿을 수 없는 미모였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한눈을 팔았네요.”
“하하. 이해합니다. 정말 옆에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네요.”
“내 빛나는 미모에 감탄하는 거야 이해하지만 불쾌하군.”
사회자 우진과 패널들이 농담을 주 고받으며 좋은 분위기를 이끌어나가는 도중에 아리엘이 찬물을 끼얹었다.
우진이 서둘러 진행을 계속했다.
“다음 달에 정식 취임하신다죠? 얼 마 전에 감독 취임 사실을 발표한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아리엘 핀얀스 음악감독을 소개합니다.”
“지금은 악장이다.”
“악장입니다.”
우진이 능청스레 소개를 정정했다.
패널들은 뚱해 있는 아리엘을 즐겁게 지켜보았다.
소개는 계속되어 피가로지의 모리 스 르블랑 수석 기자, 그래모폰의 한스 레넌 편집장, 평론가 파인 리 파스토가 소개되었다.
음악가 세 명과 언론인 세 명으로 균형을 맞춘 조합이었다.
“그럼 오늘의 이야기 주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팬들께 서 가장 궁금해하시는 건 이번 대회 의 우승 악단이겠죠?”
그래모폰의 한스 레넌 편집장이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실질적으로 세계 최고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인 정하는 기회가 없었으니까요.”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이 최고다.”
패널들이 아리엘을 보았다.
아리엘은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멋진 자신감이네요. 그럼 아리엘 악장께 먼저 여쭙겠습니다. 어떤 악 단이 오케스트라 대전에서 우승할 거라 예상하시나요?”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간결한 대답이었지만 사회자 우진 은 분위기가 끊기지 않도록 좀 더 이야기를 이끌었다.
“아, 정말 멋진 악단이죠. 강력한 우승 후보이기도 하고요. 아리엘 악 장은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헤바 우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이라 생각 하시나요?”
아리엘 핀 얀스가 우진을 물끄러미 보았다. 마치 그런 걸 일일이 설명 해 줘야 할 정도로 바보냐고 묻는 것만 같았다.
그때 모리스 르블랑 기자가 입을 열었다.
“우승 후보를 거론하기 전에 우선 4라운드부터 적용되는 규정을 살펴 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우진이 너무나도 반갑게 모리스 르블랑을 보았다.
“4라운드부터는 과제곡의 규정이 상당히 느슨해집니다.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창작이나 대규모 편곡 능 력을 시험한다는 느낌이 강하죠. 이 에 적절히 대응하는 악단이 유리하겠고요.”
“좋은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하면 르블랑 씨가 생각하는 우승 후보는 어디인가요?”
“……베를린 필하모닉 B입니다.”
모리스 르블랑은 잠시 생각을 정리 한 뒤 조심스레 의견을 제시했다.
“역시 배도빈 악장의 이야기가 거 론되네요. 한스 레넌 편집장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실 듯한데요.”
“네.”
배도빈이 어렸을 적부터 그에 대한 기사를 냈던 한스 레넌은 오늘 토론회를 위해 여러 자료를 준비해 두었다.
그의 생각은 모리스 르블랑이 짚었던 관점과 동일했고 오케스트라 대전의 기준이라면 다른 어떤 지휘자 보다 배도빈이 우위에 있다고 여겼다.
“아시다시피 배도빈은 21세기에 가장 많은 클래식 음악을 작곡, 발표하였습니다.”
한스 레넌이 준비한 자료를 보였다.
“이 자료는 배도빈의 음반 판매량을 도식화한 표입니다. 도저히 클래식 음악가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수 준이죠.”
“정말 그러네요. 자세히 설명해 주 실 수 있으신가요?”
패널들은 스크린에 떠오른 표를 확 인하면서 눈매를 좁혔다.
“배도빈은 여태 8개의 싱글 앨범과 4개의 OST 앨범, 2개의 정규 앨범, 1개의 베스트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누적 판매량은 6,200만 장. 믿을 수 없는 대기록이죠.”1)
한스 레넌의 말 그대로였다.
이제 만 17세.
배도빈이 총 15개의 앨범을 냈다는 것만으로도 놀랄 지경인데 판매량조차 설명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배도빈이 현재 가장 많이 사랑받는 음악가라는 걸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나 막상 수치화된 자료를 접 하니 새삼 괴물처럼 느껴졌다.
“이 표는 작년 기준인가요?”
“그렇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회자의 질문에 한스 레넌이 고개를 끄덕였다.
2006년생인 배도빈은 2009년 겨울 그의 첫 번째 싱글 앨범 ‘부활’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작년 2022년 까지 13년간 판매한 앨범이 6,200 만 장.
믿을 수 없는 기록이었다.
“만약 매절되었다가 중간에 계약 조건이 완화된 ‘죽음의 유물: 2부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처음부터 배도빈 소유였다면 이 수치는 더욱 불어났을 테죠.”
한스 레넌 편집장의 말에 아리엘을 제외한 모든 이가 입을 벌렸다.
“정말 대단했네요.”
“네. 정말 대단한 건 클래식 음악으로 이러한 기록을 수립했다는 겁니다. 영국에서는 해당 부분 베스트 20 중 유일한 클래식 음반이에요.”
한스 레넌이 관련 자료를 보이며 말했다.
과연 그의 주장대로 패널들과 방청 객들은 믿을 수 없는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배도빈이 모든 작업을 직접 진행하 고 가우왕과 공동 녹음을 했던 ‘배도빈: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 곡’은 영국에서만 450만 장이 판매 되는 진기록을 수립.
멀티 플래티넘 앨범으로 역대 가장 많이 판매된 4위에 랭크되었는데, 그보다 많이 판매된 앨범은 퀸의 , 오아시스의〈WHAT'S TH E STORY MORNING GLORY) 뿐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배도빈의 인기가 어느 한 국가에서만 해당되는 이야 기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은 물론, 북미에서는 영국 못지않은 대기록을 수립 중에 있었고.
대한민국과 일본에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워 매일 신기록을 갱신 중 에 있었다.
특히 중국에서는 가우왕, 소소와의 친분 관계가 알려지며 가우왕과의 경쟁 이후 다소 침체되었던 인기가 폭등.
배도빈의 음악이 깊이 퍼지지 않은 곳은 남미와 동아시아를 제외한 아 시아,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정도였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현재 배도빈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음악가는 없습니다. 오케스트라 대전이 창작의 영역에 진입한 이상 지금까지 의 모습 이상으로 활약할 것은 분명 하죠.”
한스 레넌이 말을 마쳤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스 짐이 허탈하게 웃었다.
“도빈 군이 영화계로 돌아오지 말 길 바라야겠는데.”
세계 최고의 영화 음악가인 한스 짐의 엄살에 방청객과 패널들이 잠시 웃었다.
영화계의 거장 크리스틴 노먼 감독 과 배도빈은 두 편의 영화에서 함께 작업하고 현재도 친분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을 엮어준 사람이 다름 아닌 한스 짐이었던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동시에 한스 짐 본인도 배도빈과 친분이 있으니 팬들은 자연스레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나야말로 일찍 함께할 수 있어 다행이었지. 지금은 같이 작업하자고 해도 페이를 맞춰줄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알렉스 데스플로도 이에 함께했다.
죽음의 유물: 1부의 음악감독이었던 알렉스 데스플로는 당시 사카모토 료이치에게 배도빈을 추천받아 함께하였다.
당시 배도빈이 ‘가장 큰 희망’을 만들어주면서 받은 금액은 백만 엔.
지금으로서는 턱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두 분 모두 배도빈 악장과 친분이 있으시네요. 한스 레넌 편집장께서도 그에 관련한 기사를 계속 써오셨고.”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한스 레넌의 주장에 힘이 실렸을 때 다행히 방송 분량을 챙겨준 이가 있었다.
사회자와 방송국 관계자들은 평론 가 파인 리파스토의 이견이 너무나 반가웠다.
“네, 말씀해 주시죠.”
“배도빈, 아니, 베를린 필하모닉 B 가 강력한 우승 후보라는 점에는 공감합니다만 이야기의 흐름이 한쪽으로만 흘러가는 듯합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B는 배도빈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지니고 있지만 단원들의 능 력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볼 필요 가 있습니다.”
파인 리파스토가 자료를 보였다.
팬 투표를 포함한 오케스트라 대전의 평가표였다.
“이 자료를 보시면 잘 나와 있지만 적어도 오케스트라 대전에서 최다 득표를 한 악단은 베를린 필하모닉 B가 아니라 빈 필하모닉입니다. 2위는 베를린 필하모닉 A로 B는 4위에 지나지 않죠.”
“흥미롭네요. 배도빈 개인의 음반 판매량과 팬 투표 비율이 비례하지 않는단 의견이신가요?”
“비례할 수밖에 없겠죠. 다만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실제로 대회라는 규격 안 에서는 여러 변수가 있습니다. 빈 필하모닉이 최다 득표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비교적 지금까지 대진운 이 좋았기 때문이죠.”
“하하. 그 발언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겠네요.”
“적어도 저는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암스테르담과 런던, 베를린 A가 보여주는 모습을 떠올리면 더욱이요. 또한.”
파인 리파스토가 리모컨을 조작해 다음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또한 이것은 심사 위원단들의 평 입니다. 합계 점수는 매우 높지만 베를린 필하모닉 B의 단원들에 대 한 평은 찾아볼 수 없죠. 반면 다른 유력 악단들에게서는 빈번하게 언급 되고 있습니다.”
파인 리파스토의 말을 듣던 한스 레넌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점은 베를린 필하모닉 B의 약점으로 꼽히죠.”
“네. 더욱이 베를린 필하모닉 B의 단원들은 젊습니다. 경험이 부족하고 또 대응력도 아쉬울 수밖에 없는 데, 그들이 과연 장기 레이스인 오케스트라 대전에서 배도빈 악장을 따라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 입니다.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A가 이번 대회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암스테르담이다.”
아리엘 얀스가 파인 리파스토의 그 럴 듯한 이야기를 끊어내듯 말했다.
사회자 우진이 억지로 웃으며 나섰다.
“팬 분들을 위해 조금 더 풀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싫다.”
“다들 이것저것 부질없는 이야기를 꺼내는군. 음악이란 자신만의 미학을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소리로 전하는 일. 마음이 움직이는 일을 결 정하는 건 단 한 번의 연주뿐이다. 그 전까지 어떤 연주를 했든, 어떤 기록을 세웠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사회자라는 자가 그런 것도 모르는 가?”
당황한 사회자를 두고 한스 짐이 턱을 괸 채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귀여운 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물었다.
“확실히 그렇네. 아리엘 악장, 당신 은 그럼 어째서 암스테르담의 우승을 확신하지?”
“좋아서다.”
아리엘 핀 얀스는 기껏 잘츠부르크 에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갔더니 도 착하자마자 취임 발표식에 밀린 업무 처리, 게다가 홍보를 이유로 뉴 욕까지 보내진 상황에 몹시 짜증이 난 상태였다.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 외출 때마 다 3시간씩 세팅을 해야 했던 만큼 그는 몹시 피로한 상황이라 조금이라도 빨리 쉬고 싶었다.
“으음. 좋다는 말은……
그러나 사회자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다.
정확한 근거와 이유로 이 토론회를 좀 더 격 있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방송국과 협회, 사회자의 바람은 알렉스 데스플로에 의해 산 산조각이 나버렸다.
“아니. 어쩌면 진리일 수도.”
“네?”
“그렇지 않습니까? 결국 현재 남은 악단들은 대부분 심사 위원단으로부터 만점 또는 그에 준하는 점수를 받아 왔습니다. 한스 레넌 편집장이 보여준 배도빈 악장의 음반 판매 지 수라든지 파인 리파스토 씨가 언급 한 팬 투표 결과라든지 모두, 결국 에는 팬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한 이야기 아닌가요?”
“ 아.”
“그걸 아리엘 핀스 악장이 팬심이 라는 쉬운 말로 잘 정리한 것 같네요. 그렇죠?”
아리엘은 알렉스 데스플로가 뭐라 말하든 신경 쓰지 않고 이 지루한 시간이 잠시라도 빨리 끝나길 바랐다.
1) 싱글 앨범:
‘부활(2009)’, ‘넘치는 기쁨(2010)’, ‘밴쿠오의 자손(2011)’, ‘심판의 날 (2012)’, ‘가장 큰 희망(2018, 리마 스터)’, ‘용감한 영혼(2019, 리마스 터)’, ‘베를린 환상곡(2022)’, ‘찰스 브라움 (2023)’
2) OST 앨범:
‘지니위즈와 죽음의 유물: 2부 오 리지널 사운드 트랙(2011)’, ‘블랙 나이트 인크리즈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2012)’, ‘퍼스트 오브 미 오리 지널 사운드 트랙(2013)’, ‘덩케르크 철수 작전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2017)’
정규 앨범: 1집 ‘배도빈: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모음곡(2011)’, 2 집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2013)’
베스트 앨범: ‘마왕의 연주 리마스 터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