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271화 (271/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271화

58. 드보르자크(10)

3라운드 최고의 대진에 다소 누그러졌던 분위기가 한껏 끓어올랐다.

엘리아후 인손과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수십 년간 체코를 대표 하는 악단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왔다.

여러 언론에서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선정했으며 사실상 체코와 베를린의 대결은 3라운드에서 가장 예측하기 어려웠다.

앞선 세 번의 경연이 다소 예측할 수 있었던 결과에 반해 4차전은 누 구도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현 시대 가장 존경받는 음악가 중 한 명인 엘리아후 인손과 오랜 전통 의 체코 필하모닉이 우세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으나.

감히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였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비견 되는 천재 배도빈의 존재는 너무도 컸다.

그가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 B는 창단된 지 2년밖에 안 되어 여러모로 체코 필하모닉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그 실력만큼은 정직.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을 통해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기자들이 체코 필하모닉이나 베를린 필하모닉 관련자들에게 인터뷰를 따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대기실로 향하 기 위해 콘서트홀 뒤편으로 향하자 수십 명의 기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어마어마한 수의 팬들과 함께 어우 러져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빈! 빈! 도빈! 여기 좀 봐줘요!”

“악! 어떡해! 나 도빈 님이랑 눈 마주쳤어!”

“나 봐주신 거거든!”

“마에스트로 배! 마에스트로 배! 안 돼. 틀렸어. 안 들리나 봐. 진짜 배도빈 인터뷰 하나 따면 소원이 없겠다.”

“소소 악장! 소소 악장! 체코 필하모닉을 대하는 각오 한 말씀 부탁드 립니다!”

“졸려.”

“나윤희 수석! 오늘 연주에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면 팬들을 위해 간략 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아……. 그게……. 고, 곡은 현장 에서 발표하게 되어 있어서……. 마, 말씀드리면 서, 선공개가 되어버리 니. 죄, 죄송합니다!”

“마르코 수석! 오늘 4라운드 진출 에 자신 있으신가요?”

“그럼요. 제가 빈 필하모닉에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견습이었던 제게 배도빈 악장은 이런 말을 해주었는 데요. 그 말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주었고 그건 베를린 필하모닉 B의 다른 단원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스스로를 잃지 않으면서도 하모니를 이룰 수 있는 악단. 베를린 필하모닉은 그런 곳이니만큼 오늘도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료코! 료코! 나야! 언니 알잖아! 거기 좀 서 봐! 익. 왜 째려보지? 나 뭐 잘못했나?”

“이시하라 씨가 친한 척하니까 기 분 나쁜 거잖아요. 나이 차이가 얼 마나 나는데 언니라는 거예요?”

“뭐라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베를린 필하모

닉 B가 대기실로 향했고 팬과 기자 들은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아니, 팝 가수야? 무슨 팬들이 이렇게 열성적이야?”

“그러게나 말이야. 배도빈 팬덤이 큰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뭐.”

“체코 필하모닉 버스다!”

“뛰어! 뛰어!”

다행히 뒷문까지 찾아오는 팬들은 없었기에 기자들은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는 제대로 된 인터뷰를 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묘하게 체코 필하모닉의 분 위기가 경직되어 있었고 언제나 부드러웠던 그들의 태도와 달리 인터 뷰에도 잘 응하지 않았기에 기자들은 한숨을 푹 쉬었다.

프란츠 페터는 혹시 동생을 잃어버 리기라도 할까 봐 걱정되어 알베르 트의 손을 꼭 잡았다.

“알, 손 놓으면 안 돼?”

“응!”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알베르트를 보고서도 프란츠 페터는 걱정이 되어 손에 힘을 더 주었다.

그러면서도 가슴이 설렜는데 베를린 필하모닉 B의 연주를 직접 듣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형아, 오늘이 도빈 님 나오시는 거야?”

“응. 엄청 기대된다. 그치?”

“나는 이야기만 들었었는데!”

“형도 직접 듣는 건 처음이야. 오 늘도 얌전하게 듣자?”

그렇게 대화하면서 콘서트홀 안으로 들어선 페터 형제는 좌석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익숙지 않은 넓은 환경에서 제대로 된 자리를 찾는 건 쉬운 일 이 아니었다.

‘히무라 아저씨께 폐 끼치는 것 같아서 혼자 올 수 있다고 했는데. 부 탁드릴 걸 그랬나 봐.’

“형아, 우리 자리 없어?”

“아냐. 잠깐만.”

프란츠 페터가 허둥지둥 댈 때 그 가 의식하지 못하고 알베르트의 손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저쪽인가? 가봐야겠다.’

“알……. 알?”

가슴이 무너지는 듯했다.

당연히 잡고 있어야 할 동생의 손 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프란츠 페터는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알! 알!”

“형아!”

퍼뜩 정신이 들어 알베르트의 목소 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린 프란츠 페터는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알베르트가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 도록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최, 최지훈 피아니스트.”

단 한 번 지나가듯이 인사했던 사람이었다.

“동생 잃어버리면 큰일 나. 자.”

최지훈이 프란츠와 알베르트가 다시 손을 잡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프란츠가 고개를 연신 조아리며 감사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냐. 하지만 잃어버리면 안 돼. 하나뿐인 동생이잖아.”

“네. 정말 감사합니다.”

최지훈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동생을 아예 뒤에서 안아버린 프란츠를 귀엽게 보았다. 그리고 그가 들고 있는 티켓을 보았다.

“자리 찾는 거라면 도와줄게. 같이 가자.”

프란츠 페터는 너무도 감격스러워 감히 최지훈의 호의를 받을 수 없다 고 생각했지만 자리를 찾다 동생을 잃어버릴 뻔하니 그럴 수도 없었다.

“부,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감 사합니다.”

“하하. 몇 번을 인사하는 거야. 괜찮아. 애기야, 사탕 먹을래?”

“네!”

‘무서운 분이신 줄 알았는데.’

그렇게 페터 형제는 최지훈의 도움을 받아 자리할 수 있었다.

한편.

하룻밤 만에 악단에서 제명되어 버 린 실직자 밀로스 발렌슈타인은 악 장이 남긴 말을 곱씹었다.

‘체코의 음악을 모욕했다고 하셨어.’

그러나 그는 알 수 없었다.

어제 엘리아후 인손과의 대화를 반 복해 떠올려 봤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수석 지휘자 엘리아후 인손에 대한 그의 믿음은 절대적이었기에.

그나마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고 있다는 점이 희망이었다.

‘뭘 잘못했지? 벨리텔이 이렇게까 지 하실 만큼 큰 잘못이 대체 뭐야?’

‘체코의 음악은 최고야. 그래. 벨리 텔도 그걸 부정하진 않으셨어. 그럼 대체.’

‘……그런 동양인보다 우리가 낫다는 말인가?’

밀로스 발렌슈타인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와 주변 사람들 역시 모두 체코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투철했고 위 대한 음악가들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사명감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엘리아후 인손은 그 말을 듣자마자 벼락같이 노해 밀로스 발 렌슈타인을 쫓아냈고.

밀로스 발렌슈타인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왜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알 고 싶었다.

‘……직접 확인하겠어.’

밀로스 발렌슈타인은 얼굴을 가리 고 OOTY 오케스트라 대전 3라운 드 4차전을 방문했다.

다행히 아직 대회 참가자로서의 자 격은 박탈되지 않았고 덕분에 따로 마련된 객석으로 향할 수 있었다.

‘체코의 음악을 모욕하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요.’

무지한 밀로스 발렌슈타인은 무대 위로 올라오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바라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체코 필하모닉의 가운데에 한 자리 가 비어 있었다.

보통 한 사람이 빠지면 의자를 놓지 않을 터인데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그러지 않았다.

한 명이 빠졌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은 채 있었기에 콘서트홀이 잠시 웅성거렸다.

“무슨 일이래?”

“플루트 자리 같은데.”

“아, 분명 밀로스 발렌슈타인이라 고 했지. 어디 아픈가?”

“글쎄.”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밀로 스 발렌슈타인은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좀 더 가렸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거의 없었으나 간혹 들리는 자신의 이름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한 자리가 비어 있음에 사람들이 의아해하고 있었다.

그리 생각하자 자연스레 좀 더 움 츠리게 되었다.

“엘리아후 인손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잠깐의 소란은 마에스트로 엘리아 후 인손의 등장으로 씻은 듯이 사라졌다.

무대 위에 사뿐히 모습을 드러낸 엘리아후 인손은 객석을 향해 정중히 인사했고 방문객들은 박수와 환 호를 아낌없이 보내 답했다.

그때.

한 사람이 마이크를 들고 나와 엘 리아후 인손 앞에 마이크가 놓았다.

장내 모든 사람이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엘리아후 인손이 입을 열었다.

“어제, 저희는 한 명의 단원을 잃었습니다.”

충격적인 발표였다.

객석에서 여러 말이 나왔고 엘리아후 인손이 말을 이어감에 따라 간신 히 진정되었다.

“그는 자신의 길에 자부심을 가지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걸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열심히 달린 나머지 그 길이 자신을 잘못된 곳으로 이끌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밀로스 발렌슈타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가 되돌아오며, 자신이 지나온 길을 둘러보길 바라며 구스타프 말 러의 다섯 번째 교향곡을 들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엘리아후 인손의 말이 끝나고 객석에서는 그와 체코 필하모닉을 응원 하는 박수가 나왔다.

상황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으나 적어도 엘리아후 인손과 체코 필하모닉이 ‘빈자리’의 단원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 진심만큼은 사정을 모르는 이들도 느낄 수 있었기에 객석에 자리한 밀로스 발렌슈타인은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느라 애써야만 했다.

저렇게 좋은 사람이.

존경하는 사람이 그렇게까지 냉정해졌어야 할 만큼 심각한 잘못이 대체 무엇인지.

밀로스 발렌슈타인은 태동을 알리는 관악기를 들으며 자신을 뒤돌아 보기 시작했다.

구스타프 말러 5번 교향곡.

완벽함을 추구했던 말러가 수없이 많은 수정 끝에 완성한 이 곡은 이 전의 말러 본인, 일반적인 교향곡과는 사뭇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장중한 시작을 알리는 도입부부터 청중의 마음을 흔들어놓으나 대조를 이루는 경우가 많아 받아들이는 입 장이 갈리는 곡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구스타프 말러 라는 또 다른 위대한 음악가에게 있어 이 곡이 그의 발전과 함께 변화 한 곡이라는 점이다.

말러는 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5 번 교향곡을 수없이 수정했으며 그 것이 곧 그의 마지막 작업이 되었을 정도로 5번 교향곡에 집착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으나.

완벽이란 없다는 것을 잘 알았던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

현대에 이르러서는 엘리아후 인손과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의 해 더욱 발전하였음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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