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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270화 (270/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270화

58. 드보르자크(9)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모스코바 방송 차이코프스키 오케스트라의 3 라운드 3차전이 진행되는 도중.

체코 필하모닉은 마지막 연습을 위 해 배정된 연습실에 모였다.

긴장감이라고는 조금도 느낄 수 없이 쾌활한 분위기였고 그마저도 오전 연습이 마무리 된 뒤에는 왁자지 껄했다.

“이야. 이거 진짜 괜찮은데?”

“그치? JH라는 곳에서 낸 송진인 데 진짜 질이 다르더라고.”

“ 얼마야?”

“10유로.”

“생각보다 엄청 싸잖아?”

“점심 뭐 먹을 거야?”

“수플레 팬케이크.”

“아침에도 먹었잖아.”

“맛있으니까 어쩔 수 없어.”

수석 지휘자 엘리아후 인손이 오후에는 따로 연습 없이 개인 정비 시 간을 가지도록 배정했기에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은 자유 롭게 시간을 보냈다.

그런 도중에 밀로스 발렌슈타인만 이 손을 놓지 않았다.

“어이, 밀로스! 밥이나 먹으러 가 자고!”

동료 중 한 명이 불렀으나 밀로스 발렌슈타인은 대꾸하지 않고 악보와 연주에 집중할 뿐이었다.

단원들은 그런 밀로스를 두고 연습 실에서 벗어났다.

“정말 열심히란 말이야.”

“암. 어린데도 기특해.”

“요즘 밀로스 같은 애들도 드물걸? 저음이나 고음이나 제대로 소화해내잖아. 보통 노력으로는 쉽지 않다고.”

스무 살에 수준급 연주를 할 수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음악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가 기특했기에 체코 필하모닉은 그들의 어린 플루티스트를 응원했다.

“그래도 조금 즐겼으면 좋겠는데.”

“그치. 결국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까.”

“벨리텔도 그걸 걱정하더라고.”

“지칠까 봐?”

“그것도 그렇고. 어린애가 너무 대 쪽 같다고 하시더라. 아무래도 그러 다 보면 시야가 좁아진다고.”

“음. 뭐, 벨리텔이 예뻐하시는 만큼 잘 이끌어주시겠지. 아, 저기야. 저 기 팬케이크가 기가 막히게 맛있다 고.”

“그제도 말했어.”

“하하하하!”

한편.

밀로스 발렌슈타인은 단원들이 모두 떠난 연습실에 홀로 남아 연습을 반복했다.

플루트만큼은 자신 있었지만 피콜로를 겸해야 하는 작품인 만큼 스스 로 부족하다고 느꼈다.

‘완벽해야 해. 벨리텔의 의도를 완벽히 표현해내야만 해.’

그렇게 한참이 흘렀다.

엘리아후 인손이 만년필을 찾으러 연습실을 다시 찾았는데, 밀로스 발렌슈타인은 그때까지도 계속해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엘리아후 인손은 빙 그레 미소 짓고는 연주가 마무리되기를 기다렸다.

밀로스 발렌슈타인이 마침내 숨을 돌렸고 엘리아후 인손이 손뼉을 쳤다.

“벨리 텔.”

“많이 좋아졌구나.”

존경하는 수석 지휘자에게 칭찬을 받은 밀로스는 기분이 좋아졌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놓진 않았다.

나태해지는 것을 경계하고 항상 자 신을 몰아붙이는 걸 미덕으로 생각 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다시 연습을 이어나 가려는데 엘리아후 인손이 말을 걸었다.

“오늘 경연은 슈타츠카펠레가 진출 했더구나.”

“아.”

“정말 좋은 연주였으니 꼭 한 번 들어보렴. OOTY 오케스트라 대전 처럼 음악을 즐기기 좋은 기회도 드무니 말이야.”

“ 네.”

엘리아후 인손은 반성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밀로스의 옆에 앉았다.

“연습을 많이 한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란다. 난 너를 탓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 도리어 열심히 해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벨리텔 ”

“하지만 훌륭한 음악을 접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공부란다. 그걸 말해주고 싶었을 뿐이야.”

밀로스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아후 인손이 그의 어깨를 툭툭 달래고는 말했다.

“오늘은 고생했으니 푹 쉬고 내일 그간 준비한 걸 멋지게 연주해 보자 꾸나.”

“……저기, 벨리텔.”

“음?”

“저는 체코 필하모닉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엘리아후 인손이 빙그레 웃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수석 지휘자의 말에 밀로스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그래서 OOTY 오케스트라 대전에서 꼭 우승하고 싶어요. 우리의 연주가, 체코의 음악이 최고라 증명 하고 싶어요.”

엘리아후 인손의 자애로운 얼굴을 보며 밀로스 발렌슈타인은 그간의 고민을 토로했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래서 다들 조금만 더 열심히 해줬으면 해요. 그게…… 잘못된 건가요?”

엘리아후 인손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니. 다만 단원들은 음악을 즐기고 있는 거란다.”

“저는 그걸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어떻게 즐기면서 최고가 될 수 있죠? 최선을 다해도 어려운 일이잖아요.”

“최선을 다하는 것과 즐기는 일은 같은 일이란다.”

엘리아후 인손의 차분한 음성이 밀 로스에게 닿았다.

“네 눈에는 단원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

“……그런 건 아니지만.”

“자신을 몰아붙이는 걸로는 한계가 있단다, 밀로스. 급히 달릴수록 시야는 좁아지기 마련이고 자각했을 때는 이미 너무 멀리 와, 지나친 것들을 볼 수 없단다.”

밀로스 발렌슈타인은 그 말을 온전 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경험과 연륜의 차이였다.

엘리아후 인손도 밀로스 발렌슈타 인이 말 몇 마디로 자신의 말을 이 해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기에 차 분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답은 여러 가지고 그 답들을 향한 길도 여러 가지란다. 그 훌륭한 음악들을 두고 단 하나의 길만 걷기에는 너무나 안타깝지. 빈의 시대 연주와 토스카니니의 완벽함, 푸르트벵글러의 격정적인 세계관 등 모두 감동적이잖니.”

“……조금 알 것 같아요.”

“그래.”

“하지만. 하지만 전 런던이나 베를린에 치중된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 일 수 없어요. 우리야말로!”

밀로스 발렌슈타인이 잠시 말을 멈 추었다.

엘리아후 인손은 지금껏 단순히 호 승심이라고 생각했던 밀로스 발렌슈 타인의 집착이 다른데 근거를 두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무척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밀로스, 시야를 넓혀야 한단다. 나 도 체코의 음악을 사랑하고 최고라 생각하지만 그래야만 하는 법은 없단다.”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의 의의는 클래식 음악의 발전.

어떤 음악이, 어떤 악단이 최고인 지 가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린 음악가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모양.

우승하지 못하면 부정당한다는 생 각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연주자가 되는 과정까지 수 없이 치른 경쟁 시스템의 폐해라는 것을 알기에.

엘리아후 인손은 가슴이 아팠다.

그와 같은 기성세대, 앞선 세대가 만들어 놓은 악습이었기 때문이었다.

밀로스 발렌슈타인은 말이 없었다.

엘리아후 인손은 다시 한번 물었다.

“무엇이 널 그렇게 몰아세웠니?”

“……베를린 필하모닉 B가 드보르 자크의 9번 교향곡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엘리아후 인손은 밀로스 발렌슈타 인이 현장 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3 라운드의 규정상 알 수 없는 정보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거슬렸으나 일 단 지켜보았다.

“드보르자크는 우리나라 음악가인 데, 우리가 제일 잘하는데 베를린 필하모닉에게 지면 다들 그쪽이 더 잘한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제야 엘리아후 인손은 체코 필하모닉의 어린 플루티스트가 무엇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릇된 애국심.

아니, 그것은 애국심이라 할 수 없었다.

“ 밀로스.”

엘리아후 인손의 목소리가 다소 경 직되었다. 그의 표정도 굳어 있었고 그 눈은 무척 슬펐다.

어떻게 이 아이를 달랠까 고민이 가득했다.

“그런 동양인보다 우리가.”

그러나 밀로스 발렌슈타인의 다음 말에 엘리아후 인손은 어린 음악가를 달랠 마음을 잃고 말았다.

“ 밀로스!”

엘리아후 인손의 역정에 밀로스 발렌슈타인이 깜짝 놀랐다.

화를 내는 법이 없었던 엘리아후 인손이었기에 잔뜩 노한 그의 얼굴 은 밀로스 발렌슈타인을 당황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벨리 텔.?”

“내가 널 잘못 본 듯하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연주자를 체코 필하모닉의 단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

엘리아후 인손이 일어섰다. 그러고는 단호히 선을 그었다.

“내일 경연에 나올 필요 없다.”

“벨리텔?”

“더 이상 넌 체코 필하모닉의 단원 이 아니다. 날 그리 부르지 마라.”

엘리아후 인손의 차가운 모습에 당 황한 밀로스 발렌슈타인은 입만 뻥 긋거릴 뿐 무슨 말을 할 수 없었다.

“드보르자크를 말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다니. 정말이지 믿을 수 없군.”

“벨리텔, 벨리텔. 제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저는 단지!”

“그만!”

엘리아후 인손을 잡기 위해 나선 밀로스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마지막이다, 밀로스 발렌슈타인. 내 권한으로 너의 단원 자격을 박탈 한다.”

얼어붙은 밀로스 발렌슈타인을 두 고 엘리아후 인손은 연습실 문을 박 차고 나섰다.

그리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가 이렇게 심 하지는 않았다.

나치 이후 금기시되어 자정 작용이 있었기에 유럽 내에서 적어도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다시금 그러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잘못된 역사 교육.

경제적 어려움의 이유를 타 민족 탓으로 돌리는 일.

유럽 내 타 민족의 테러 행위.

길을 벗어난 애국심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면서 유럽에 전쟁을 불러 일으킨 문제가 다시금 수면 위로 올 라섰다.

엘리아후 인손은 설마 그렇게 귀여 운 밀로스 발렌슈타인마저 그런 사 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드보르자크를 존경하면서 어찌.’

안토닌 드보르자크.

누구보다도 체코인이라는 데 자부심을 가졌던 위대한 음악가 드보르 자크는 체코를 자랑스레 여겼던 만큼 타 민족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인 격자였다.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했을 때는 당시 여전히 핍박받고 있던 흑인은 물 론 원주민에 대해서도 차별 없이 대했다.

그들에게 가르침을 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서 배울 줄도 알았다.

그의 교향곡 중 가장 사랑받는 9 번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는 당시 흑 인들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었다.

가장 미국다운 음악.

안토닌 드보르자크는 애국심을 가진 만큼 다른 문화를 어떻게 이해하 고 접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었고.

그것을 소중히 대하는 음악가였다.

그런 위대한 인물을 존경한다는 밀로스 발렌슈타인이 ‘그런 동양인이’ 라는 말을 내뱉다니.

엘리아후 인손은 깊이 통탄했다.

한편 밀로스 발렌슈타인은 밤이 새도록 엘리아후 인손의 방 문 앞에서 잘못을 구했다.

“잘못했어요, 벨리텔.”

“제발 이러지 마세요.”

“알려주시면 꼭 고칠게요. 제발 문 좀 열어주세요.”

그러나 문이 열리는 법은 없었고 그는 그렇게 울다 탈진해 쓰러졌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그 상황을 알게 된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의 단원들은 조심스레 엘리아후 인 손을 찾았다.

“벨리 텔.”

“아, 좋은 아침일세. 악장.”

“복도에 밀로스가 잠들어 있던데 혹시 어젯밤에 무슨 일 있었나요?”

“……무시하게.”

“벨리 텔.”

“그 아이는 어제부로 제명했네. 그 런 사람을 우리 오케스트라에 둘 순 없어.”

“그게 무슨……

평소에는 한없이 자애롭지만 한 번 화가 나면 누구도 마음을 돌릴 수 없는 엘리아후 인손이었다.

수석 지휘자의 성향을 잘 알기에 체코 필하모닉의 악장은 마음을 접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유라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인손은 창밖을 볼 뿐 말이 없었다.

이내 포기한 악장이 방을 나서려 할 때 그가 입을 열었다.

“체코의 음악을 모욕했네.”

그 말을 들은 악장은 별다른 답 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방을 나섰다.

그러고는 모든 단원에게 밀로스 발 렌슈타인이 제명된 사실을 알렸고 충격을 받은 단원들을 뒤로 한 채 밀로스 발렌슈타인의 방을 찾았다.

어느새 잠에서 깬 밀로스 발렌슈타 인은 악장을 보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제발 버리지 말아주세요. 뭐든 할 게요. 악장, 제발 벨리텔에게 가게 해주세요.”

“……벨리텔의 결정이야. 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밀로스 발렌슈타인은 좌절했다.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그의 전부였다.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사랑했는 지 알기에 악장은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벨리텔께서 네가 체코 음악을 모 욕했다고 하셨어.”

“……제가요?”

“그래.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여 기까지야.”

악장은 혼란스러워하는 밀로스 발 렌슈타인을 두고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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