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266화
58. 드보르자크(5)
“잡아왔어요.”
“잡아? 뭘?”
히무라 쇼우는 갑작스레 찾아온 배도빈을 황당하게 지켜보았다.
그 뒤에는 배도빈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남자애가 꼼지락대고 있었는
데 좋게 말해도 귀엽게 생기지는 않았다.
차림은 남루하고 부모가 제대로 관 리해 주곤 있는지 의심될 정도로 꾀 죄죄 했다.
그러나 거의 우는 것처럼 보일 정 도로 감격하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그 모습이 애처로웠다.
“혹시 저 아이를 말하는 거야?”
“네.”
배도빈의 대답이 워낙 산뜻해 히무라 쇼우는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어디서 자꾸 주워오는 거야.’
히무라 쇼우는 죽은 아들이 종종 길고양이를 안고 돌아왔던 것을 떠 올리며 작게 웃었다.
지금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일단 들어와. 일하던 도중이라 조 금 어지럽긴 하지만.”
“들어가자.”
“네, 넵!”
히무라와 배도빈은 마주 앉았고 프 란츠 페터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히무라가 내준 전병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내지 않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지만 어린애 입맛에는 맞지
않을 거라 걱정했는데 그도 아닌 모 양.
“도빈 님, 도빈 님 이것 좀 드셔 보세요! 바삭바삭한 게 이렇게 좋은 식감인 줄은 몰랐어요!”
너무 맛있게 먹어 히무라는 도리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천천히 먹어.”
배도빈이 프란츠 페터를 달랬고 히무라가 입을 뗐다.
“누구야?”
“프란츠 페터라고 크리크 피아노 콩쿠르 올해 우승자예요.”
“ 아.”
“히무라는 알 거라 생각했는데 의 외네요.”
“그럴 수밖에.”
배도빈은 히무라의 대답을 의아하 게 여겼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히무라 쇼우만 큼이나 발이 넓은 사람도 드물었고 동시에 그는 새로운 정보를 무척 빠 르게 입수했다.
무명은커녕 만 3세였던 배도빈의 음악이 니코동에 오르자마자 접촉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 히무라였기에 배도빈은 크리 크 국제 콩쿠르처럼 공신력과 화제 성을 갖춘 대회 우승자를 모른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배도빈이 고개를 살짝 틀고 눈매를 좁히자 히무라가 한탄하듯이 말했다.
“있어. 유장혁 회장님이라고 그분 덕에 일이 너무 많아져서 요즘엔 현 장에 잘 못 다니니까.”
“ 하하.”
“그나저나 몇 살이야? 엄청 어려 보이던데.”
“열다섯이 래요.”
“……환경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발육이 확실히 더디네. 생각보다는 나이가 있잖아.”
그렇게 말하면서 히무라는 무심코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배도빈을 봤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에서 성장한 배도빈도 작은 편이었다.
‘그렇지도 않나.’
속으로만 생각하고 히무라가 말을 이었다.
“크리크에서 우승했고 네가 추천까 지 하니 재능은 말할 것도 없겠지. 니나나 마르코도 그랬으니까. 그런 인재를 들이는 것도 샛별 엔터테인
먼트로서는 좋은 일인데.”
“뭐가 걸리는 거예요?”
“피아니스트는 이미 많아. 샛별 엔 터테인먼트에 소속된 피아니스트만 11명이고 세계적으로 봐도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는 얼마든지 있어. 단 지 피아노를 잘 연주하는 것만으로는 상업적 성공을 바랄 수 없지.”
배도빈은 평소보다 배는 눈을 깜빡 이며 히무라 쇼우의 말을 들었다.
“게다가 결국에는 샛별 엔터테인먼 트 소속이 루트비히 오케스트라로 넘어갈 거잖아. 피아니스트만 12명 이 되면 그게 피아노단이지 관현악
단은 아니게 될 테고.”
잠자코 듣고 있던 배도빈이 고개를 젓고 히무라의 말을 끊었다.
“얘 피아니스트로 키울 거 아니에요.”
“ 네?!”
프란츠 페터의 목소리였다.
배도빈은 하늘이라도 무너지듯 놀 란 프란츠 페터의 경악에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프란츠 페터가 고개를 숙이고 있자 그의 넓고 툭 튀어나온 이마만 눈에 들어왔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바닥에 댄 채 좌절한 프란츠 페터가 울먹였다.
“여, 역시 오늘의 이 맛있는 음식 들은 최후의 만찬이었던 거네요. 끄 으으윽.”
‘뭐라는 거야.’
“결국 버리실 거라면 이, 이 맛있는 과자를 하나만 더 먹을 수 있도 록 해주세요.”
“조용히 하고 이거나 더 먹고 있어.”
배도빈이 주변을 홅은 뒤 선반 위 에 놓여 있던 고급 과자를 툭 하곤 건네주었다.
“으아아아! 도, 도빈 님! 과자 위 에 초콜릿이 올라가 있어요! 이걸 먹은 뒤에 저는 죽게 되는 건가요? 그렇다면 저는, 저는!”
프란츠 페터를 귀찮다는 듯이 보던 배도빈은 직접 과자를 뜯어다 프란 츠 페터의 입에 쑤셔넣었다.
완강히 거부할 줄 알았던 프란츠 페터는 의외로 쉽게 함락되어 그것을 맛보았고 이내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함에 정복되어 버리고 말았다.
“끄으으윽. 분하다. 너무 맛있어. 이런 걸 먹었으니 이젠 죽어도.”
“얌전히 있어.”
“네……
힘없이 대답한 프란츠 페터가 힐끔 힐끔 히무라의 과자를 보았기에 배도빈은 그것을 눈앞에 가져다 놓고는 엄포했다.
“먹어. 조용히. 한 번만 더 시끄럽 게 했다간 엉덩이를 차줄 거야.”
“넵.”
그 모습을 보던 히무라는 난감하게 웃었다.
‘선영이한테 줄 선물이었는데.’
잘츠부르크에서만 판매하는 과자라 이곳에 오기 전 박선영이 사다 달라
고 신신당부를 하던, 한정판매용 과 자였는데 아쉽게 되었다.
내일 다시 사러 가야겠다고 생각하 며 히무라가 물었다.
“그러면?”
“곡을 쓰게 할 거예요. 지금은 배 운 게 없어 손볼 구석이 많은데 제 대로 가르치면 분명 대단한 작곡가 가 될 거예요.”
“……저 애가?”
“ 네.”
배도빈의 대답에 확신이 가득했기 에 히무라 쇼우는 의심스러우면서도 프란츠 페터를 살피기 시작했다.
소리도 내지 않고 조심스레 비닐 포장을 뜯어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한 입 베어 먹는 순간 튀어나올 것 처럼 커지는 눈.
리액션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저런 음식을 처음 먹어보기 에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떻더라도 특이해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 원래 천재들이 이상하잖아. 사카모토 선생님도 푸르트벵글러도 도빈이도.’
히무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이 출연 해 엉덩이를 씰룩이며 하모니카를
부는 걸 진심으로 즐기는 사카모토 와 괴팍한 지휘자 푸르트벵글러 그 리고 배도빈의 기이한 행동들을 떠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 이틀 차.
고귀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베를린 음악 대학 교수 겸 베를린 필하모닉 악장 찰스 브라움은 신음했다.
‘뭐가 무통이란 말이야.’
강한 마약 성분이 함량된 무통 주
사를 맞았으나 엉덩이가 타오를 것 만 같았다.
더욱이 일을 볼 때는 마치 칼을 내빼는 듯한 고통에 초콜릿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꾜윽:
찰스 브라움은 분명 무통 주사가 불량품이라고 확신했다.
그러지 않으면 이렇게 괴로울 리가 없으니 말이다.
‘안 되겠어. 교체해 달라고 해야 지.’
“끄응.”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겨우 일어난 찰스 브라움은 주춤주춤 걸었다.
이제 거의 문에 닿을 수 있어 마 지막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병실 문이 활짝 열렸다.
빠악-
“어머. 괜찮으세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순간적으로 피할 수 없었던 찰스 브라움의 새끼발가락이 그대로 문에 찌였고.
찰스 브라움은 이내 당연히 느껴져 야 할 지독한 고통을 떠올렸다.
“……아프지 않아.”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새끼발가 락에서는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심하게 찌였는데.
아프지 않았다.
아픈 것은 오직 그의 항문뿐이었다.
“휴. 다행이네요. 정말 죄송해요. 그런데 어디 가시는 길이셨어요?”
“……아무것도.”
찰스 브라움은 무통 주사의 위력을 절감하면서 만약 그것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분명 죽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병상 위로 힘겹게 몸을 옮겼다.
“좌욕은 잘하고 계시죠?”
간호사가 링거를 갈며 물었다.
“그런 수치스러운 행동 따위 못 하겠소.”
“그럼 더 고생하실 거예요. 하루에 몇 번씩 꼭 하셔야 해요.”
간호사가 병실을 나가고 찰스 브라움은 우두커니 개인 병실 한쪽에 마
련된 화장실을 보다가 조심스레 일 어 났다.
그리고 잠시 뒤.
‘한결 낫군.’
좀 전보다 통증이 많이 가라앉아 찰스 브라움은 엉덩이만 물에 대고 있는 행위에 대해 평가를 달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노크 소리가 났고.
첫 방문자가 찾아왔다.
“아, 아, 안녕하세요.”
“음. 제2바이올린 수석이군.”
찰스 브라움의 병명은 기밀이었기에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멀 핀 과장과 일부 직원, 단원 중에서는 배도빈과 나윤희뿐이었다.
“이런 꼴이라 환대해 주지 못해 애석하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기 이거……
나윤희가 찰스 브라움에게 상자를 보여주곤 옆에 두었다.
그것을 본 찰스 브라움은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난 아무것도 먹지 못해. ……내 아름다운 외모가 벌써 이렇게 수척해져 버린 것만 봐도 알 수 있겠지?”
“정말 그래요.”
나윤희는 나이에 맞지 않게 맑고 탱탱했던 찰스 브라움의 피부를 떠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상자를 열었다.
“오렌지 주스랑 초콜릿이에요. 이 정도는 먹어도 괜찮으셔서.”
“오오.”
그제야 찰스 브라움이 반갑게 나윤희의 선물을 살폈다. 그중 그가 가 장 좋아하는 밀크 초콜릿이 있어 얼른 하나를 집어 먹었다.
배는 부르지 않았지만 그렇게나마 고통을 줄이고 싶었다.
“아주 훌륭한 선물이었어. 인사하 지.”
찰스 브라움이 아픈 와중에도 예를 보였고 나윤희는 도리어 고개를 푹 숙이며 화답했다.
“별말씀을요. 그냥 아는데 어떻게 모른 척하고 있나 싶어서.”
“아니. 연습만으로도 바쁠 텐데 정 말 고마워. 하지만 오늘로 되었으니 부디 3라운드 잘 치러주길 바라지.”
“마, 맡겨주세요!”
나윤희는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찰스 브라움은 면회를 와 준 것에 깊게 감사하나 그보다 중요 하게 생각하는 게 있었다.
그것은 나윤희, 아니, 모든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이 같은 생각이었으니 그들의 지휘자 배도빈과 함께 최고 의 연주를 이어 나가고 싶다는 마음 이었다.
사실 여러 신호가 있었다.
언젠가부터 후배, 칼 에케르트를 언급하기 시작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이상하게 인재 욕심을 부리는 배도
빈.
그리고 전과는 다르게 정식 후계자 로서가 아니라 베를린 필하모닉 B 의 지휘자로서 활동하게 된 점 등 모든 것이 배도빈이 언젠가 베를린을 떠나기 위한 모습처럼 보였다.
처음 그가 복귀했을 때의 분위기와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거기에 푸르트벵글러가 배도빈에게 우승하지 못하면 떠나야 한다고까지 말했으니 베를린 필의 단원들도 뭔 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오케스트라 대전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고.
나윤희도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요……